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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일로 詩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골드
루네쌍스의 발상지 피렌체(플로렌스)를 향하여 아펜니노 산맥을 넘다.
6월 22일 오후 3시경 우리 일행은 아스티의 ICIF 이태리 요리학교를 뒤로하고
루네쌍스의 발상지 피렌체(플로렌스)를 향하여 고속도로를 달렸다.
아스티를 벗어나자 다시 찬란한 태양과 푸른 들녘이 크로즈업 되어 왔다.
보라! 이 푸른 하늘과 밀밭을, 그리고 우리의 산야같은 저 야산을,
소곤거리는 이 축복받은 황금빛 대지의 숨결을 귀를 세우고 가만 가만
들어보시라...
고속도로상의 한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이태리의 물가는 과히
살인적인 물가였다. 조그마한 미네럴워터 한 병에 3유로, 콜라
나 다른 음료수 한 병 값도 3유로였다. 심지어 고속도로 화장실
이용료도 2인당 1유로를 받아 먹었다.
그러나 휴게소 사용방법이 우리와 달랐다. 휴게소는 매점과 공중
화장실로 구분되어 운영되고 있었는데, 입구와 출구가 다른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말보로 담배 한 갑을 샀는데 자그만치 담배 한 갑에
4유로 40유로센트였다.
우리 돈으로 약 9천원 셈이다. 프랑크푸르트 공항바의 생맥주 한 잔 값과
놀랍게도 같은 가격이었다.
우리도 생맥주 한 잔 값과 담배 한 갑 값이 2,500원으로 동일하듯이
OECD국가의 생맥주 한 잔 값과 담배 한 갑 값은 이렇게 묘하게 일치했다.
휴게소 근방의 하늘 풍경이 우리의 가을 하늘처럼 청명하다.
하늘을 향해 펄쩍 뛰면 흰구름을 맨손으로 움켜쥘 수 있을 만큼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렇게 낮게 드리어진
구름은 대개 먹구름과 비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하늘이 갑자기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조화인지
알수 없었다.
여기서 피런체까지는 대강 한 4시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피런체를 갈려면
우리나라의 태백산맥과 같은 아펜니노 산맥을 장장 4시간 이상 넘어야 한다니..
그런데 이곳 휴게소에서 이렇게 멋진 일이 벌어질지 어이 알았으리오!
쉼터에서 한가치에 5백원짜리 말보로를 피우고 있는데 이 묘령의 두 여인이
나에게 생긋 미소를 띄우고 접근하며 담배불을 붙여 달라고 하였다.
난 스스럼없이 그녀들에게 라이터불을 붙여준 후 콩글리쉬로 말했다.
i'm a koreano, Would'nt you like to take a picture with me?
그녀들이 나의 콩글리쉬를 알아들을 일이 만무하지 않겠는가. 나는 디카를 찍는
몸짓을 해 보였다. 그녀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호! 황공무지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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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바로 옆의 여인의 어깨를 포근하게 감싸자, 그녀도 자연스럽게
그녀의 친구 어깨를 감쌌고, 뒤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던 한 60대의
이태리 남자가 기가 막히다는 듯 껄껄 웃고 있었다.
같이 여행을 하고 있는 우리 원우들이 기립박수를 쳐주었다.
그러나 달갑지 않게 난 이때부터 킴 카사노바라는 별명을 얻었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갑자기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폭우가 쏟아졌다.
버스는 느릿느릿 거북이 걸음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한 십분이 지났을까 폭우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거짓말처럼
하늘은 다시 서서히 푸른 빛을 되찾기 시작했다.
차창에 비추는 풍경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마치 우리나라의 대관령을 지나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고속도로상의 차량들의 주행은 참으로 질서정연하였다.
1차선으로 달리는 차량이 없었다. 1차선으로 간혹 가다 추월을 하더라도 그들은
곧 2차선으로 차선을 바꾸었다. 승용차는 대부분 소형차였고, 영업용 화물차는
대형이든 소형이든 전부 화물 케이스를 장착하여, 무슨 화물을 적재하였는지
알수 없었다.
이태리는 소형차의 천국이었다. 가이드가 말해 주었다.
이태리 시민들이 소유하고 있는 승용차의 평균 배기량이 1400cc, 일본이
1700cc, 우리 한국이 1900cc란다. 우린의 국민소득을 이들 나라와 대비 한 번 생각해
볼 일이었다.
또 이태리는 모든 도시가 거의 문화유산지구여서 주차시설을 새로 확충할 공간이
태부족이다. 그러므로 대부분 길거리에 주차하는 사례가 많다.
그리고 자동차에 관한 세금과 보험료, 휘발유 값도 비싸 시민들이 소형차를 선호할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영업용 차량은 비행기로 말하면 블랙박스같은 차량 주행 체크기가 붙어 있어
과속운행, 법적으로 규제한 일일 시간 초과 주행등이 자동 체크되어 법규를
위반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다고 한다. 벌점이 일정 수준 이성 누적되면 해고도
당한다니, 운전기사들이 차량운행시 규정을 잘 준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난 공감이 갔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며칠간의 여행중 난 교통사고를 목격하지 못했다.
우리의 자동차 관련 문화와 법규도 이태리에서 수입을 하여 시행하면 좋으리라 생각하였다.
아펜니노 산맥은 이태리 북쪽의 알프스 산맥과, 북서쪽에서 장화모양 같은
이태리반도의 중심부로 장장 1,300키로의 길이로 길게 늘어져 바람막이
역활을 하는 산맥이란다. 마치 우리의 태백산맥을 연상하면 된다.
아펜니노 산맥은 또 이태리 모든 지방에 걸쳐있고, 와인 산지를 중심으로
많은 강과 호수를 끼고있어, 지나치게 덮거나 추운 날씨를 제어해주는
역활을 하는 산맥이기도 한단다( 이상 인터넷 검색 인용)
우리가 피렌체로 가는 아펜니노 산맥에 설치된 고속도로는 해발 2000-2500미터
높이이고, 가장 높은 아펜니노 산맥상의 고속도로는 해발 3,500미터를 넘는다고
우리의 가이드 이병훈씨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그는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였다.
아까 한치 앞도 구분할 수 없게 엄청나게 쏟아부은 폭우는 지중해성 기후의
특징으로 금방 그치긴 하는데 이 아펜니노 산맥위의 고속도로상에서 만났더라면
큰일날 뻔 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하! 지중해성 기후에도 아열대성 스콜이 있나보다.
하늘은 제 빛을 복원하는 작업을 쉼없이 하고 있었고, 간혹 가다 만나는
계곡물은 우리의 심산유곡에서 흘러내리는 계수와 같이 투명한 맑은 빛
이었다.
밀라노나 토리노의 포강에서 본 평야지대의 강이나 시냇물은 석회암층의
잿빛이었는데 이 산의 물은 우리 산하의 물과 색깔도 같고, 그냥 손으로
떠먹어도 될듯 싶은 맑은 계곡을 휘감고 흐르고 있었다.
이태리는 우리보다 더한 산악국가라고 한다. 전 국토의 87%가 구릉이나
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 우리가 경부고속도로를 놓을 때
이태리 기술진의 자문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가이드가 해주었다.
아펜니노 산들의 가까운 연봉들을 바라보니 이 산도 우리 산과 너무나
비슷하였다.
밤나무가 많았고 밤나무엔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워있었다.
원우들이 올 가을에 생수를 많이 가져와 이곳에서 팔고, 밤을 따가자고
이구동성으로 떠들어댔다. 그러면 장사되겠다고...........
아스티에서 장장 5시간이 넘게 달려 피렌체 시의 외곽 호텔에 도착하였다.
호텔 벽면의 이 동판화가 특이하여 카메라에 담았다.
이 호텔의 음식이 동양인의 입맛에 맞아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 잠은
다른 호텔에서 잔다고 가이드가 말해주었다.
스파게티와 돼지고기를 얇게 썰어 이태리식 소스를 살짝 뿌려 익힌
메뉴로 저녁을 먹었다.
스파게티는 부드러워 부담이 없었지만, 이태리 사람들은 이런
스파게티는 쳐다보지도 않는단다. 그들은 면발이 탱탱한 스파게티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이렇게 부드러운 면발을 선호하여, 이런 스파게티를
주문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고 가이드가 설명해 주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과연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이동하여 알바트로스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원우들이 지난 3일간 꼬박 스파게티와 파스타만 먹어 어디
단 한끼라도 한식을 먹게 해달라고 현지 가이드 이병훈씨와 미팅을
하고 있는 사이 난 이사장과 함께 팩소주 3병을 들고 호텔 건너편에
있는 선술집을 찾았다. 우리로 말하면 길거리 생맥주 집이었다.
가이드도 없고 이태리 말은 한마디도 못하고 심지어 맥주 달라고
"플리즈 비어. 비어" 라고 소리쳤지만, 종업원들이 내 발음이 나쁜지
알아듣지 못했다.
할수없이 난 온몸으로 말해야했다. 현지 이태리인들이 먹고 있는 맥주를
그들의 좌석으로 가서 손으로 지정해 주었고, 안주는 다른 가족손님의
좌석으로 가서 그들이 먹고 있는 홍합과 바지락을 올리브기름으로 튀긴
요리를 손으로 가르쳐 주어야만 했다.
비로소 종업원이 OK 사인을 했다.
밖을 보니 어두운 밤인데도 아작도 하늘은 마냥 푸르다.
근 20분을 넘게 기다렸는데도 맥주도 갖다 주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중국사람들보다 더 만만디다.
낮이 기니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가이드가 가르쳐 준 극약처방을 써먹었다. 배고프니 빨리 달라는
이태리의 바디 랭귀지는 오른손의 엄지를 허리춤에 대고, 나머지
네 손가락을 돌리면서 배고픈 시늉을 하는 것이다.
내가 이 바디 랭귀지를 써먹자 그들이 웃더니 약발이 먹혔는지
맥주를 갖다 주고 홍합과 바지락 튀김 안주도 뒤따라 나왔다.
맥주 맛도 괜찮았고, 안주는 정말 우리 입맛에 잘 맞았다.
이곳은 술, 안주 모두 비싸니 잎새주 팩 3병을 소맥으로 타서 먹자고
내가 그에게 제안 했더니 그는 그래도 되느냐고 이태리 종업원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절대 시비를 걸지 못한다고 나는 이사장을 안심시키고
우리는 당당하게 이태리 맥주에 소주를 타서 마셨다.
나중에는 종업원들과 친해졌다. 그래서 내가 한마디 했다. 왜 요새 니네
나라 축구팀이 그러느냐? 지난 번 월드컵 우승팀 답지않다.
컨페더레이션 컵 대회에서 이집트에게 1:0으로 깨지고, 또 브라질에게
3:0으로 참패하고, 우리 코리아는 아시아에서 젤 먼저 2010 남아프리카
월드컵 본선에 올랐다고 은근히 자랑을 하면서 콩글리쉬를 겸한 바디랭귀지를
써먹었어도 그는 내 말을 잘 알아들었다.
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만약 2002 월드컵 때 이런 이야기를 겁없이
했다면 난 이태리 놈들에게 아마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 일이다.
그는 손을 무릎아래로 수직하향하는 동작을 해보이면서, 우리 이태리팀 요즘
형편없다고 말했다.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술자리를 일어날 때의 계산은 30유로였다. 생맥주 2잔에 홍합과 바지락 튀김
2접시가 55,000인 셈이다. 뭐니 뭐니 해도 우리나라가 참 좋은 나라다.<끝>
2009.7.10 작성 골드리버
다음 이야기/ 피렌체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미켈란젤로 광장과
단테의 생가를 찾다.(2009.6.23) 이태리 여행기 제 7화
첫댓글 이태리가 반도국가라서 그런지 우리나라와 산천이 비슷하네요. 한때 세계 문명의 중심지였던 프로렌스 지방을 방문했다니 그 지역의 중세기 문화를 보고와 산지식을 두루 섭렵했군요
우리 산하와 너무 비슷하더군요.
이태리 시민들의 승용차의 평균 배기량이 1400cc, 일본이 1700cc, 우리 나라가 1900cc ...우리집 차 2000cc. 나도 한 500cc 빼야겠다.
나도 600cc 빼어되는데, 한국에서는 더 크고 단단한 차를 타시게나, 그 놈의 교통사고를 대비해서
휴게소 근방의 맑은 하늘에 흰구름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처음본 여인들과 사진을 찍고, 소맥을 즐기고, 바디랭기지로 하고싶은 얘기 다하고~~ 대단한 용기입니다.~~ 여행기를 보니 갑자기 해외여행 한번 가고잡픕니다~ 성수기 지나고,,, 9월쯤 선선해 지면 가까운 곳이라도 한번 함께 합시다~~
내팔, 티베트, 차마고도같은 오지 여행을 한 번 기획해 보시게 따라 갈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