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연중 제27주일) 새 소작인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포도밭 소작인 비유를 듣는다. 포도밭 주인은 포도밭을 일구고 울타리를 치고 포도즙을 짜기 위해 확도 만들어 주고 그 안에서 머물 수 있게 탑까지 만들어 주었다. 소작인들이 해야 할 일을 포도밭 주인이 다 해준 셈이다. 소작인은 가지치기 등 관리만 하고 나중에 수확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들은 자신들이 소작인이라는 걸 잊어버렸나 보다. 주인 몫인 수확의 일부를 받으러 주인이 보낸 종들을 속속 다 때리고 죽이기까지 했다. 나중에는 주인의 아들까지 죽였다. 아들만 죽이면 그 포도밭이 완전히 자기 것이 되는 줄 알았나 보다.
그런데 소작인들의 만행에 대한 주인의 반응이 상식적이지 않다. 우선 포도밭을 맡기고 멀리 떠난 것도 그렇고, 종이 그런 폭행을 당했는데도 또 더 많은 종을 보내고 급기야 아들은 존중해줄 거라고 여기고 보냈다가 아들까지 잃었다. 국가 사이에서 사신을 죽이면 그것은 곧 선전포고인데, 주인은 끝까지 그들에게 기회를 줬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들려주신 이들은 포도밭에 일하러 가겠다고 하고 가지 않은 다른 아들인(마태 21,30)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 죽게 한 이들이다. 포도밭 주인이 하느님이면 포도밭은 하느님 나라고, 폭행을 당한 종들은 예언자, 죽임을 당한 아들은 예수님이다. 그리고 소작인들이 그들이다. 그 주인은 소작인들을 믿고 멀리 떠났다. 하느님은 당신이 선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그들을 믿고 하느님 나라를 그냥 넘겨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의 무게에 짓눌렸고, 율법을 철저하게 지킬 수 있었던 일부 엘리트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구원의 희망을 잃었다.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 지켜본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율법 준수로는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누릴 수 없음을 하느님은 아셨다. 그래서 그전 것들을 다 치우시고 새로운 계약을 세우셨다. 그 표지가 예수님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다. 아들을 죽인 이들에게 벌을 주시는 게 아니라, 죽은 그 아들을 부활하게 하셔서 그분을 믿는 이들은 죽음에서 해방하여 주셨다. 믿는 그들을 구원하셨다. 그래서 가장 큰 복수는 용서라고 하나보다. 하느님은 당신 나라를 주신 것도 모자라 아들 예수님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셔서 당신이 맺으신 구원의 계약을 끝까지 지키셨다. 그게 하느님의 의로움과 정의다.(로마 3,25)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 포도밭을 넘겨받은 새 소작인이다. 우리가 제때 소출을 바칠 거라고 믿고 주님은 하느님 나라를 우리에게 내주셨다. 그리고 처음처럼 멀리 떠나가셨다. 포도밭은 다 준비가 됐다. 우리는 관리하고 수확만 하면 된다. 예수님이 다 이루어놓으셨다. 우리는 다른 연구 필요 없이, 의심 없이 그분 계명만 믿고 따르면 된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끝까지 기회를 주실 거다. 아들까지 희생하며 소작인들에게 기회를 주시는 분이 뭔들 못 해주실까? 예수님은 간음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에게도 죄를 묻지 않으셨고, 당신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서 당신을 알아본 진짜 죄인의 청원도 들어주셨다. 매일 그리고 수시로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내 안에서 외치시는 예수님 말씀을 기억해야겠다.
예수님,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제 소원을 청합니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제 마음과 생각을 지켜 준다고 믿습니다.(필리 4,6-7)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이콘의 제목대로 성모님은 저를 영원히, 연옥에서까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도와주신다고 믿습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