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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서 집이 조금씩 꼴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박대표가 화장실에 사용할 타일을 보러 간다면서 같이 가겠냐고 물었다. 조금 무료하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해서 동행을 했다. 전주에 있는 타일 상점 큰 것 두 개가 전주대학교 근처에 있어서 그 쪽으로 갔다. 우리집에선 꽤 거리가 있는 동네다. 먼저 들어간 타일집에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는데 그 넓은 타일가게에 일하는 사람 한 명 있는데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박대표랑 현장소장님이 툴툴거리다가 그 사람을 불렀다. 뭐 찾으시는 거 있어요? 하며 다가왔다. 이건 화장실 바닥용 타일이냐 아니냐 벽에 쓰는 타일은 어떤 거냐 이건 바닥에 쓰는 타일 맞는데 품절이다 저건 어떠냐 하며 주고 받다가 박대표가 물건이 별로 없다며 다른 타일가게로 가자며 나갔다. 차를 타고 조금 가다 유턴하니 다른 타일가게가 있었다. 거기에도 한 사람만 있었지만 곧바로 응대하며 묻는 말에 이것저것 답해 주었다.
타일가게에 가보니 타일도 종류도 다양하고 모양도 다양했다. 타일 중에는 ‘랜덤’이라고 부르는 타일도 있었는데 비슷한 느낌의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는 타일을 불규칙하게 붙이는 거라고 했다. 화장실 타일은 대략 그걸로 결정하고 현관 타일도 랜덤 종류인데 따뜻한 색 계통으로 아기자기하면서 글자도 넣을 수 있는 타일로 하고 현관 앞에 환영합니다 같은 문구도 넣기로 하고 변기도 주문하고 나왔다. 변기 아래쪽의 모양이 들어가고 나온 곳 없이 반듯하게 펴져 청소하기 좋은 걸 해달라 했는데 그 이름을 ‘치마변기’라 한다는 걸 알았다. 이때 절수 변기로 해달라는 말을 하는 걸 깜빡해서 지금 우리집 화장실에는 절수 변기가 아닌 일반 변기가 놓여 있다. 암튼 타일이며 변기며 주문하고 수전(수도꼭지 등)은 예쁜 게 없다고 광주 가서 사야겠다고 하며 나왔다. 그런데 다음 날 박대표를 만났더니 우리가 주문한 타일이 없다고 했단다.
“그때 재고 있다고 해서 주문한 거잖아요?”
“네, 그런데 그 사이에 아파트인가 빌라인가 대랑 주문이 들어와서 이제 남은 게 없다네요. 할 수 없죠. 광주에서 사 와야겠어요. 광주가 물건도 더 다양하고 많은데 전주까지 가져오려면 운임비가 추가되어서 전주에서 살라고 했드만 안 되겠네요.”
“아, 그래요.”
“수전이랑 변기랑 광주에 있는 게 더 좋은 것이 많긴 해요. 거울이랑 타일이랑 예쁜 걸로 골라 올게요.”
그렇게 광주에서 각 화장실과 세탁실, 현관에서 쓸 타일을 사가지고 와서 작업을 했다.
“여긴 타일이 많이 필요해요. 화장실 세 개에 마당에 있는 화장실, 세탁실, 현관. 거기다 부엌 옆에 있는 화장실은 넓기도 넓어서 타일이 이렇게 많이 드는 집도 별로 없어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세탁실로 쓰기로 한 창고 옆에는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쪼그려 앉는 변기지만 수세식 화장실이었고 난 그 화장실에 남자 소변기만 하나 넣어 달라고 했다. 그러다 보나 그 화장실에도 타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부엌이었던 공간을 화장실을 만들기로 했는데 그 공간이 생각보다 넓어 화장실도 넓고 타일을 붙여야 할 벽도 넓었다. 암튼 그래저래 많은 타일이 필요했고 일반적인 주택에 비해 그만큼 타일 붙이는 작업량도 많아 타일 작업도 여러날 걸렸다.
이 방 저 방에 달게 될 문틀과 문짝들도 들여왔다. 기존에 있던 창문과 문들을 문틀까지 모두 새 걸로 바꿔 달게 되었다. 창문과 문공사를 하다보니 화장실 위에 있던 다락을 내려앉힌 방의 창문이 복잡했다. 다락방 창문, 화장실 창문에 화장실 환풍구까지. 이걸 어떤 창을 남기고 어떤 창을 막아야 하나 심란했는데 박대표는 그 창문을 다 살리자고 했다. 환풍구였던 자리는 문을 달지 않고 유리만 끼우고 다락방 창문이었던 곳을 미닫이 창, 화장실 창문이었던 곳은 (이름
은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래쪽을 밀어서 열고 닫는 창을 달았다. 환풍구였던 자리와 화장실 자리 창문은 바닥이 올라감에 따라 그 높이가 어른 엉덩이 부근 정도가 되었다. 그즈음 금요일마다 그릇을 만들러 다니던 참인데 도자기 선생님이 만들어 놓은 작은 꽃병을 따라 만들고 있어서 그 꽃병을 환풍구였던 창에 올려 두면 예쁘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사가 다 끝나고 그릇도 다 구워서 받아다가 그 창문에 작은 꽃병들을 올려두니 만족할 만한 모습이 되었다. 박대표는 이 방이 가장 재미있는 방이 될 거라며 결과물에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객실로 사용할 방을 마무리하기 전에 에어컨을 달아야 했다. 현장소장님이 마감하기 전에 에어컨 다는 데에 필요한 공사를 미리 해 놓자고 하셨다. 마감이 다 된 집에 구멍을 뚫고 어쩌고 하는 것보다 마감하기 전에 그런 부분을 손 봐놓으면 일이 더 깔끔하다고 하셨다. 일리가 있다 싶었다. 우리 가족끼리 지내는 공간이라면 에어컨 한 두 개 달고 선풍기로 어떻게 견뎌보자 하겠지만 손님을 받으려면 그럴 수가 없었다. 해남에서 쓰던 헌 에어컨은 거실에서 사용하기로 마음먹었고 객실에는 달 에어컨을 새로 사야 했다. 객실이 세 개라서 새 에어컨이 세 개 필요했다. 해남에서 전주로 이사올 때 엘지에서 전자제품을 좀 산 게 있어서 포인트가 제법 있다 생각하고 엘지 대리점을 찾아갔다. 엘지 대리점에 가니 에어컨 용량이 가장 작은 게 6평형이라는데 하나에 76만원이라는 거다. 세 개면 220만원 정도가 필요했다. 포인트를 보니 딸이 이사할 때 에어컨 사주면서 많이 써 버려서 별로 없었다. 6, 7년 전이지만 지금 갖고 있는 캐리어 에어컨을 20만원에 산 게 생각났다. 다음에 오겠다면서 일단 엘지대리점을 나왔다. 전주 캐리어 에어컨을 검색하니 두 군데가 나왔다. 일단 가까운 곳을 네비에 찍고 그 쪽으로 갔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데 아무리 봐도 캐리어 에어컨 대리점이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좀 먼 쪽을 검색하고 그 곳으로 찾아갔다. 월드컵 경기장이 전주 외곽에 있는데 그 곳을 지나 용진이라고 하는 면단위 동네에 캐리어 에어컨 회사가 있었다. 외곽에 넓게 자리 잡고 판매도 하고 설치도 하고 제품 보관 창고도 있고 AS도 하는 곳인 것 같았다. 6평형 에어컨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2021년 모델이 몇 개 있는데 그런 가격이 45만원이고 올해 모델은 60만원이라고 했다. 그래서 당연히 2021년 모델 3개를 계약했다. 그리고 서로 날짜를 협의해 에어컨 설치 전에 실외기 연결을 외한 배관을 미리 하러 오기로 했다. 그런데 지금 빵방이라 이름붙인 방이 안쪽에 있어 바깥 쪽하고 바로 연결되는 곳이 없어 장미방 천정으로 선이 지나가야 했다. 이런 저런 선을 설치하고 나니 그 설치비만도 30만원이라 했다.
방을 고쳐가면서 내가 계속 고민한 문제가 내가 사용할 방이었다. 처음에는 세를 내주었던 별채 공간의 거실과 부엌을 합쳐 방 하나로 만들고 그 방을 내가 사용하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계속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방이 폭이 좁고 길이만 길어서 침대를 둘 자리가 매우 애매했다. 내가 입을 옷가지도 둘 곳이 적절하지 않았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를 위해 그 방은 단열에도 신경쓰고 마당으로 통하는 문도 방음과 단열이 잘 되는 좀 비싼 문을 달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사용하기가 불편할 것 같았다. 그리고 객실로 사용하려 했던, 마당이 내다보이는 위치에 있는 방에 화장실이 딸려 있지 않은 것도 계속 마음에 걸렸다. 화장실이 따로 없어 그 방에 손님이 들면 내가 사용하는 화장실을 같이 쓰게 하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불편할 것이 분명했다. 나도 폭은 좁고 길이만 긴 그 방을 사용하는 게 많이 불편할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난 여기에서 쭉 살아야 하고 손님들은 며칠만 머물다 가면 그만이다. 하는 것이었다. 내가 사용하기 편한 방을 사용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박대표에게 내가 내린 결론을 말했다. 박대표도 ‘그 방이 화장실에 가까우니 손님도 화장실 쓰기는 더 좋겠네요 그렇게 하지요.’ 그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객실과 내가 쓸 방이 바뀌고 에어컨 선을 이미 다 설치했는데 내가 쓰려고 생각했던 방에는 애초에 에어컨을 설치하려고 하지 않았던 터라 방을 바꾸고 나니 에어컨이 하나 더 필요하게 되었다. 다시 캐리어 에어컨에 전화를 해서 에어컨이 하나 더 필요하다 이야기했더니 이미 여러 개를 주문해서인지 올해 모델 제품을 55만원에 주겠다 했다. 그렇게 에어컨을 하나 더 설치하기로 하니 원래 쓰던 거 하나에 새로운 거 4개 해서 모두 5개의 실외기를 설치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니 실외기 다섯 개도 문제였다. 에어컨 설치 전에 배관을 하러 온 에어컨 기사분이 현장소장님과 올라갔다 내려왔다 여기저기 살펴보고 같이 의논하더니 실외기 두 대는 거실 앞쪽 위의 옥상에 한 대는 집과 담벼락 사이에 설치해서 실제로 마당에는 두 대의 실외기만 놓이게 되어 한 걱정을 덜게 되었다.
미장은 원래 박대표와 팀을 이뤄서 하시는 분이 아파서 전주에서 미장하시는 분들을 불러 일을 했다. 미장을 마쳐야 도배와 장판을 할 수 있고 도배와 장판이 되어야 최종 마무리를 하는 거라 광주에서 오신 분들은 잠시 일을 쉬었다. 차츰차츰 일이 되어 가는데 막판에 비가 여러날을 계속 내렸다. 그래서 페인트칠을 할 수가 없었다. 주방과 거실에는 에폭시로 바닥을 하기로 했는데 에폭시도 페인트하시는 분들이 하는 일이라 같이 미뤄지고 있었다. 심야보일러가 있던 공간을 창고로 사용하기로 했는데 거기도 페인트칠로 마감을 해야 해서 옥상 계단 아래에 있는 물건들을 창고로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 이삼일 간격으로 아니면 이삼일씩 내리던 비가 그치고서야 페인트칠을 할 수가 있었다. 전주에는 세월호 분향소가 있는데 새로운 전주 시장이 그 분향소를 철거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세월호 현장교사 실천단 선생님들이 서울에서 응원방문하러 내려오기로 약속한 날 페인트칠을 하러 왔다. 마당에 있는 창고와 화장실 벽을 연한 하늘색으로 칠해 주시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손님들을 맞으러 가기로 해서 페인트칠을 하는 동안 나갔다 왔더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진한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이미 칠을 끝내고 가버렸고 내가 현장에 있지 못 해 생긴 일이라 아쉬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사용하기로 한 방에는 애초에 계획에 없던 붙박이 장을 놓기로 했다. 세 칸으로 나누어서 한 칸은 내 옷을 넣을 공간, 두 칸은 손님들용 침구를 넣는 공간으로 삼기로 했다. 아파트에서 쓰고 있는 돌침대를 옮겨 오지 않고 새로 침대를 사서 들이기로 했는데 방이 넓지 않아서 침대를 넣을 공간이 아슬아슬하게 나왔다. 붙박이장 문을 미닫이로 해서 가능한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침대를 주문해서 조립하는 데에는 아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내가 쓸 싱글 침대는 그런 대로 어렵지 않게 조립을 했다. 큰방에서 사용할 퀸사이즈 침대가 문제였다. 박대표는 싱글침대 두 개를 넣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딸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잘 것을 감안해서 나는 퀸사이즈 하나를 주문하겠다고 했다. 마켓비라는 곳에서 파는 침대가 디자인이 좋다고 박대표가 추천해 주어서 주문을 했는데 일단 부품이 휘어진 상태로 온 것이 있었다. 마켓비에 전화했더니 전화는 안 받고 홈페이지에 그 내용을 올렸더니 두들겨서 펴서 쓰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들이 검색을 해보더니 마켓비가 물건 판매한 후 문제있는 제품에 대해 제대로 응대(보상, 교환 등)를 해주지 않아 욕을 많이 먹는다고 했다. 부품에 대한 응대에 대해 나보다 아들이 더 많이 기분 나빠했다. 직접 조립을 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난 기분 나쁜 것보다 아들을 힘들게 한 것이 미안했다. 암튼 그렇게 두들겨서 조립을 하는데 침대 멀리 부분 프레임에 위 아래 세 군데에 구멍이 있고 누울 자리의 프레임을 거기에 맞춰서 끼워야 하는데 아래 두 군데를 기우고 나니 위쪽 구멍 끼워야 할 자리가 턱없이 맞지 않았다. 또 그걸 사진을 찍어 마켓비에 올렸더니 세 구멍을 끼울 때 첨부터 꽉 조이지 말고 조금씩 조이면서 끼우면 된다는 답변이 왔다. 이 대목에서도 아들은 기분이 나빴다. 자기들이 잘못 만들어 놓고 결국 소비자에게 해결하게 한다는 대략 그런 맥락이었다. 암튼 그렇게라도 힘들여서 조립을 마쳤다. 아들에게 미안했다. 우리가 해남을 떠나올 때 아들이랑 같이 일하던 박태정 선생이나 해남사회적공동체 지원센타에서는 아들이 계속 일해줄 것을 은근히 비춰서 좀 고민을 했었는데(아들이 해남에 남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아들이 전주로 같이 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도 같이 전주 오기 잘 했다고 안 그랬으면 엄마 혼자서 힘들었을 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