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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써놓은 글인데 미루다가 이제야 다 올리네요. 마지막 글입니다.
페인트 칠을 하러 오기 며칠 전부터 고친 집으로 옮겨 잠을 자기 시작했다. 거실과 부엌 바닥을 에폭시로 했는데 두어 군데 갈라진 곳이 보였다. 갈라진 곳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페인트칠 하러 와서 바닥도 다시 해주겠다고 했다. 에폭시도 페인트칠 하시는 분들이 하는 일이라 했다. 그래서 아 갈라진 곳 메꿔주나보다 했다.
전주에 있는 세월호 분향소를 새로 취임한 시장이 없애버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세월호 현장교사 실천단 선생님들이 지지방문을 하러 오기로 한 날 페인트칠을 하러 왔다. 2, 3 주 전부터 있었던 약속이라 페인트칠을 시작하시는 분들에게 맡겨두고 선생님들을 만나러 갔다. 세월호 분향소 지킴이 분들과 같이 점심을 먹고 분향소에서 이야기를 하고 일어섰다. 다들 멀리서 모처럼 전주에 오신 거라 그냥 가기 서운한 마음에 한옥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전망좋은 카페에 가서 차도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일어섰다. 선생님들은 좀 더 머루르다 간다고 하셔서 일단 집에 들어왔다. 집에 들어오니 거실과 부엌 바닥 갈라진 부분만 보완한 것이 아니라 전체에 에폭시를 새로 해서 마를 때까지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다. 선생님들이 처음에 전주에 오려고 이야기할 때에는 우리집에 와서 구경도 하고 하루 자고 가는 것으로들 이야기를 했는데 다들 일정이 바빠서 자지 않고 저녁에 올라간다고들 한 게 다행이다 싶었다. 아무튼 페인트칠이 끝난 집을 둘러보고 다시 나가서 아직 한옥 마을에 머무르고 계신 선생님들을 만났다. 같이 맥주 한 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선생님들과 작별하고 준혁이가 있는 아파트로 가서 잠을 잤다. 그리고 다음 날 에폭시가 충분히 마른 다음에 들어갈 생각에 오전에 집으로 가지 않고 점심을 먹은 후에 집으로 향했다. 날씨가 화창해서 충분히 마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바닥이 보송보송해져 있었다.
목포 창고에 있던 짐을 가져왔다. 책과 쓰던 냉장고, 처음 해남으로 이사했을 때 산 작은 김치 냉장고, 쓰던 에어컨, 제습기 등은 생각이 났는데 가져오고 보니 자질구레한 짐들도 제법 있었다. 6개월 가까이 창고에 있다 보니 먼지도 많이 쌓여 있어 정리하는 데에 재채기가 많이 나고 눈까지 간지러워 며칠 참다가 결국 안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아 오기도 했다. 해남에서 짐을 싸기 전에 나름 책을 좀 버렸는데 짐을 받아서 정리를 하다 보니 버리는 게 낫겠다 싶은 책이 제법 나왔다. 학교에 나가지 않는 지금 필요없다 싶은 책, 특히 국어교사 모임에서 나온 회지, 오래된 학습자료집 등과 너무 낡은 책들도 버렸다. 순천에서 살던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책대여점이 문 닫을 때 큰 아들이 만화 원피스를 그때까지 나온 걸 모두 샀었고 그 후에 나오는 신간을 계속 사서 보고 갖고 있었는데 60여권이 되어 좀 애매했다. 큰아들에게 전화애서 의논했더니 너무 오래된 책은 버리고 신간은 알라딘 헌 책방에 올리라고 했다. 그런 식으로 정리한 책도 꽤 되었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열 묶음은 버렸던 것 같다. 교육과 관련된 책이지만 버리지 않은(?) 못한(?) 책들도 있다. 교육 철학이나 수필집 형태의 책들은 굳이 교육 문제 때문이 아니더라도 읽을 만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버리지 않았다. 어떤 책은 책이 너무 깨끗해서 버리기가 미안한 것도 있었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버릴 결심이 설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연극과 관련된 책, 교육공동체 벗에서 출간한 책들은 버리지 않고 구역을 정해서 한 곳에 모아 정리해 두었다. 책을 정리해 둘 책꽂이를 준비하는 것도 일이었다. 쓰던 것도 있었지만 해남읍에 살 때는 읍내의 그 집에서 끝까지 살 생각은 아니어서 꽤 많은 책을 꺼내지 않고 상자에 담아둔 채로 있었다. 그때 갖고 있던 책꽂이에 맞게 책을 꺼내 뒀었고 그 집에 사는 3년간 사들인 책도 적지 않아 책꽂이가 더 필요했다. 비용의 면에서 부담을 줄이려고 하다 생각해낸 것이 새로 지은 친구네 집 구경을 가서 본 책꽂이였다. 벽에 막대를 박고 그 막대에 쇠로 된 선반 받침대를 꽂고 그 위에 판자를 올리는 방식으로 만드는 책꽂이였다. 지마켓에서 검색을 하고 책꽂이를 만들려고 한 자리의 폭을 재고 하면서 재료를 주문했다. 이미 사용을 해 본 두 친구에게 상담했을 때 한 친구는 벽의 상태가 중요하다고 했고 다른 친구는 판자 폭을 너무 넓게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그런데 난 벽의 상태가 중요하다는 말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벽이 전부 다 큰크리트이지 뭐하고 생각했다. 부엌에서 들어가는 화장실 문 옆의 벽 공간이 비어 있어서 그곳에다 책꽂이를 만들려고 했다. 그 자리의 폭에 책꽂이할 판자의 길이도 맞췄다. 그런데 박대표가 그 이야기를 듣더니 부엌에 책을 두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했다. 거실에 두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거실도 그다지 넓지 않고 거실을 둘러서 방이 세 개가 있고 부엌도 거실 옆에 있다 보니 비어 있는 벽이 넓지 않았다. 거실의 비어있는 벽 부분에 갖고 있던 공간 박스들로 책을 정리해 봤지만 영 맘에 들지 않았다. 거실이 좁기도 했다. 켄넬을 사용한 책꽂이를 거실 벽에 세워 보려고 했지만 벽이 너무 단단해 우리 집에 갖고 있는 드릴로는 잘 되지도 않았다. 부엌 벽에 책을 꽂으려다가 거실 벽으로 바꾸니 판자의 길이가 달라져야 해서 판자를 또 추가로 더 주문을 하게 되었다. 집이 넓을 것 같아도 공간이 여러 개로 쪼개져 있다 보니 거실이나 부엌이 생각만큼 넓지 않아 문제가 간단하지 않았다.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다가 통이 큰(?) 결심을 하였다. 애초에 내가 쓰려고 했다가 객실로 만들기로 했던 방을 책방으로 만드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객실이 하나 줄면 손님이 그만큼 줄고 수입도 줄겠지만 내가 할 일도 줄고 공간의 여유도 생기고 스트레스도 줄게 되었다. 사실 책방으로 하기로 한 공간은 내가 쓰려다 말기도 했지만 손님들이 들어와 자더라도 그다지 편한 구조가 아니어서 지금 생각해도 참 괜찮은 결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더라도 여기에 책꽂이를 설치하는 과정도 험난했다. 집에 갖고 있는 드릴로 준혁이가 작업을 하는데 어찌어찌 세 단은 설치했는데 드릴이 닳아서 더 이상 되지 않는다는 거다. 일단 만들어 놓은 책꽂이와 원래 갖고 있던 책꽂이에 책을 일부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에 오기로 한 현장소장님을 기다려서 부탁하기로 했다.
페인트칠하고 공사의 대부분을 마무리했지만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일이 남아서 소장님이 하루 더 와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거실에 실링팬을 달기로 했는데 천정이 높지 않아 너무 크지 않을 것을 달아야 했다. 그런 실링팬을 박대표가 인터넷에서 주문을 했다. 그런데 열심히 찾아서 주문을 했는데 품절이라는 연락이 와서 다시 찾아 주문했고 또 품절이고 세 번째에 주문한 것이 비로소 오는데 해외직구라 오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마당에 있던 화장실을 고쳐서 남자 소변기를 넣어 놓고 보니 손씻는 곳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마당에 씽크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선을 손질하거나 김치거리를 다듬을 때 쪼그려 앉아 일하는 게 힘들 것 같아 씽크대가 필요했다. 마당에 수도는 놓아 달라고 처음에 이야기를 해서 마당에 수도는 있었어서 씽크대 설치를 말하니 박대표는 예쁜 걸 놔야 한다고 했다. 게스트 하우스이니 손님이 오면 보기가 좋아야 한다고 했다. 그것도 일리있다 싶었지만 실용적인 면이 고민이 되었다. 그러면서 박대표가 마당에 놓을 수전을 주문할 링크를 보내준 걸 보니 그걸 설치하면 보기 좋을 것 같긴 했다. 씽크대가 아니어도 쓰기 나름일 것 같아 그걸로 주문했는데 그것도 해외직구라 시간이 걸렸다. 수전이 도착하면 소장님이 와서 설치해주겠다며 오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것들이 왔을 때 연락하면서 책꽂이 다는 문제도 이야기했더니 달아 주겠다고 했다. 세면대가 왔는데 보니 돌로 된 것이었다. 모양이 예쁘긴 했는데 생선을 씻거나 김치거리를 다듬거나 하기에는 물이 내려가는 구멍이 작았다. 이미 와 버려서 그냥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암튼 소장님은 혼자 오셔서 다신 안 올 요량으로 부지런히 작업을 했다. 손재주가 많은 분이었다. 화장실 한 곳이 물이 덜 내려가고 바닥에 고여서 물매를 다시 잡고 책꽂이를 달 수 있게 드릴로 막대기를 달아 주고 대리석 판을 두 개 가져와서 세면대를 놓을 자리를 잡아주고 또 뭘 했지? 아, 거울과 액자를 달 수 있게 여기저기 못을 박아 주었다. 어쨌든 해가 질 때까지 하루종일 일을 하고 내려가셨다.
그렇게 만든 책꽂이에 책을 정리했다. 높이 조절이 내 마음대로 가능하니 만화책 같이 세로가 짧은 책들을 많이 꽂을 수 있었다. 도서십진분류법 같은 건 안중에 없고 그냥 내 나름대로 정리를 했다. 아이들이 볼 책은 아이들 눈높이 맞춰서 정리하려고 했다. 시집은 시집끼리 모아서 정리했는데 나는 내가 시집을 별로 많이 갖고 있지 않은 줄 알았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시집이 많았다. 단행본 소설책들을 한 곳에 모아 정리하고 페미니즘 책들도 한 곳으로 모아 정리했다. 번역가인 친구가 번역한 책들도 한 곳으로 모아서 정리했고 전집류는 당연히 모아서 정리했다. 내가 아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동화책들을 몇 권 내신 분이 있는데 그 분의 책들도 함께 모아서 정리해 두었다. 나머지 책들도 나름 공통점이 있는 것끼리 모아 정리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좀 바빴다. ‘다음에’라고 생각하면 나머지 책들은 그냥 잡히는 대로 때려 꽂아두었다. 거실에 책이 너무 없는 것이 조금 섭섭해서 책꽂이이 주문해 거실에도 책을 좀 정리해 두었다. 9월 초에 친구들이 와서 하루 자고 갔는데 거실에 책 정리해 놓은 모양을 보더니 좋지 않다고 책꽂이 위치를 바꾸고 책을 다시 정리해 ‘줘버렸다.’
주방에 책을 꽂으려 했던 자리에 여유가 생겨서 창고에 넣어 두었던 김치 냉장고를 부엌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해남에서 쓰던 식탁은 주방에 약간은 아일랜드 식탁 느낌으로 자리를 잡았다. 거실에는 박대표가 가져다 준 탁자를 놔뒀다. 일반 식탁에 비해 폭이 좁고 긴 편이어서 오히려 우리집 거실에는 적당했다. 보성지회에서 같이 활동했던 선생님들과의 모임이 20년 쯤 이어지고 있는데 그 선생님들이 집들이 삼아 와서 하루 자고 가며 주신 돈과 친구들이 준 돈을 합쳐 비교적 괜찮은 식탁 의자도 더 샀다. 거실에 책을 두지 않아서 여유가 생긴 벽에는 코르크 보드를 사다 붙여서 안내할 내용도 붙이고 내가 그동안 모아서 갖고 있던 그림들도 조금 붙여 놨다. 내가 갖고 있던 액자들을 여기저기 걸다보니 녹휘님의 그림이 두 개 거실에 걸려 있게 되었다. 하나는 전병오 씨네서 창고 갤러리 전시인가? 할 때 경매로 산 그림, 하나는 작년 고정희 문화제 때 전시했던 그림. 두 그림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흐르며 그림이 더 깊어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시청에 가서 도시민박을 허가를 내는 데에 필요한 것들이 뭐가 있는지 알아본 후 준비해서 허가를 내는 것도 조금 시간이 걸렸다. 내가 작성한 허가서와 숙박명부를 인쇄해야 하는데 프린터가 고장나서 피시방에 가서 프린트했다. 지난 해에 장흥 비건페스티벌에서 만나 알게 된 모아라는 친구가 에어비앤비에 호스팅하는 것을 도와줬다. 낭만샘을 통해 알게 되신 분과 전주 와서 알게 된 소설가 친구를 우리집에 초대해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홍보를 해주겠다며 명함이 있으면 달라고 해서 명함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판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나서 혹시 인쇄소나 광고사 아는 곳 있으면 이야기 좀 해달라고 했더니 소설가 친구가 광고사 하는 후배가 있다고 소개를 해줘서 명함도 만들고 간판도 만들어 달았다. 그렇게 하나하나 준비가 되어서 10월 첫 연휴에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첫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딸 셋이 있는 젊은 엄마가 자기 친정 어머니랑 같이 포항에서 전주로 여행을 온 것이다. 내가 운이 좋다 싶은 게 이 가족들이 참 품성이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북스테이에 걸맞게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어서 밖에서 놀다 아홉시 전후해 들어와도 책방에서 책을 읽곤 했다. 9살, 7살, 5살인 아이들인데도 예의를 알고 밝았다. 그 꼬맹이들이 나를 ‘아주머니’라고 불렀다가 ‘이모’라고 불렀다가 ‘사장님’이라고 부르는데 웃음이 나왔다. 감사합니다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밥도 맛있게 잘 먹어줘서 예뻤다. 거기다 다음에 또 오고 싶다는 말을 돌아가면서 하니 나로서는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지인이 아닌 진짜 손님의 첫 방문으로 이 글을 마친다. 못 다한 이야기가 많지만 이젠 그만 쓰고 싶다. 여기에 못 다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쓰기로 하고 이걸로 끝!
첫댓글 사랑이랑 산책 나왔다가 읽었어요. 전주 생활이 더 즐거울 수 있기를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