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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법관, 고등법원장, 지방법원장 등의 고위 법관들이 법원을 떠나 개업하거나 대형 로펌에 몸을 담던 이전과 달리 최근 법원 내에 새로운 움직임이 있습니다. 법원의 고위직을 지낸 판사들이 다시 1심 재판을 담당하는 '원로법관'이라는 제도입니다.2017년 이래 적지 않은 고위 법관들이 고소득이 보장되는 단독개업이나 대형 로펌을 마다하고 주로 민사 소액 사건을 담당하는 원로법관으로 남아 묵묵히 판사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울산지방법원장, 서울행정법원장, 서울고등법원장 등의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파주시법원에서 소액 사건 등을 담당하는 원로법관으로 남으신 최완주 전 서울고등법원장님을 남민준 명예기자(변호사)가 만나 그의 삶과 생각에 관해 들어 보았습니다.
[[남변이 귀를 쫑끗 세우고 왔습니다-6] 최완주 원로법관(전 서울고법원장)]
남변: 법원에서 수 많은 후배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냈다, 사법연수원 교수로 재직한 이력이 있는데 교수로서 만나는 후배와 합의부장으로서 만나는 후배는 어떻게 다른가?
그: 사법연수원은 아무래도 스승과 제자의 분위기에 가깝다. 연수원 1학기 시험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대학교 1학년 때처럼 함께 자유롭고 즐겁게 지내지만 일단 시험이 시작된 이후부터는 수험생의 학부모 심정이 된다(웃음, 사법연수원은 각 반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 반에는 3개의 조가 있으며 각 조마다 담당교수가 있는데 마지막 시험에서는 과목에 따라 8시간 동안 시험을 치르기도 합니다).
그에 비해 법원에서 배석판사로 만나는 후배들과는 선·후배의 분위기에 가까운데 나중에 고등법원 정도까지 가게 되면 그때는 모두 같은 길을 걷는 동료가 된다.
법원에 워낙 일이 많다 보니 어떤 때는 가족보다 법원에서 만나는 동료, 후배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 가족같기도 하고.
남: '학부형'하니 생각이 났다, 자식농사가 제일 어렵다고들 하는데 슬하의 세 자녀가 모두 명문대 출신이다. 특별한 비결이나 교육철학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 특별히 얘기할 것은 없고 그냥 믿고 맡겨 뒀다(아빠 웃음). 워낙 일이 많다 보니 집에서 사건기록을 보기도 했는데 그 영향 때문인지 (아이들이) 책 읽는 걸 좋아했다.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게 해준 정도? 아이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무척 감사한 일이다(아빠 웃음).
남: (판사와 변호사로서 직역은 다르지만) 넓게 보자면 부녀가 동종업계에 있어 굳이 표현하자면 '가업승계'가 이루어진 것 같다(웃음).
그: 판사는 대단히 명예로운 직업이지만 다루는 일들이 아무래도 다툼이나 사건·사고이다 보니 힘든 부분이 좀 있다(필자 역시 사고 현장이나 사고 영상을 처음 접했을 때 참혹한 모습 때문에 많이 놀란 적이 있습니다), 판사가 된 이후에는 임지를 따라 이동해야 하는 일도 잦고. 그래서 딸에게 강요하진 않았지만 법대를 간다고 했을 때는 내심 반갑고 고마웠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어 아버지로서 걱정했지만 이겨내 줘서 자랑스럽고 대견하다(아빠 웃음).
남: 양쪽의 주장을 들어 판단하는 판사와 달리 변호사는 어느 일방을 대리하다 보니 아무래도 '내가 내린 판단의 무게'가 상대적으로 가볍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서도 자유롭다, 변호사로 활동할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 재판업무는 내가 평생 배워 왔고 나름대로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여전히 그 일이 좋기도 하고. 퇴직 후에는 변호사로 일하게 될 것이다. (필자의 '가업'이라는 얘기에) 딸이 아빠와 함께 송무변호사로 일하는 건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다(아빠 웃음).
판사가 사건을 접할 때에는 어떤 편견이나 예단도 없이 공정해야 한다. 그런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절차규정이 존재한다, 절차적 공정성을 지켜 재판을 진행하고 그런 절차를 거쳐 나타난 자료를 토대로 재판한다.
판사 역시 사람이다 보니 의도하지 않은 오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 절차규정을 더욱 철저히 지킨다. 그런 과정에서 '판단의 무게'로 인한 부담감이 조금은 줄어든다.
남: 최초로 '부부 사이에서도 강제추행이 성립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한 적이 있다, 법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법률을 적용하다 보니 다소 보수적일 수 밖에 없는 법원의 입장에서 부담스럽지는 않았는지?
그: 사실 큰 고민이나 부담은 없었다. 피고인이 행사한 강제력의 정도가 굉장히 심했다. 피고인도 주로 사실관계를 다투었지 법리적인 부분을 다투지는 않았다. 전례가 거의 없는 사건이어서 판결문에 법리적인 부분을 설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부부 사이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유죄판단의 근거로 설시했는데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는 생각은 든다. 당시에 '법조인의 성인지 감수성이 일반인에 비해 오히려 뒤쳐져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전담판사, 형사수석부장판사를 역임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답게 뉴스에 나오는 사건이나 거물 정치인들, 재벌 회장님들의 사건이 적지 않아 현실적인 부담감이 상당했을 것 같다.
그: 당시는 요즘처럼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아 대중으로부터의 부담감은 많지 않았다.
사안의 경중이나 외부적 요인과 무관하게 '누구나 법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생각으로 법률에 따라 소신껏 판단했다. 다른 건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남: 울산지방법원장, 서울행정법원장, 서울고등법원장 등의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원로법관으로 남았다, 경제적인 측면만 보자면 개업을 하거나 대형 로펌에 고액 연봉을 받고 가는 것이 나았을 텐데.
그: 변호사로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는 이미 좀 지났다(웃음). 정년까지 판사로 일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사실 이전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졌어도 그럴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원로법관 제도는 2017년부터 시행되었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의 전전임, 전임 원장님 모두 원로법관으로 남으셨다. 좋은 전통이 될 수 있겠다 싶기도 했고 평생 법관제도가 올바르게 정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남게 되었다, 깊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남: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사소한 주장을 경청한다' 평을 보았다. 사실 절박한 양 당사자가 정리되지 않은 주장을 할 때 그걸 모두 듣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을 들은 후 질문 자체가 어리석고 모자란 질문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그와 같은 분들이 원로법관으로 법원에 남으셔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그: 보통 사람들이 재판의 당사자가 되어 법정에 오는 일은 평생 한 번이나 될까 말까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절박한 그들의 얘기 속에 정리되지 않았거나 사건과 거리가 있는 인생사에 관한 얘기가 있기도 하는데 시간만 충분하다면 다 듣고 싶다.
현실적으로 시간상 제약이 있어 무한정 다 들을 수는 없지만 처음 몇 분 정도는 당사자의 얘기를 그냥 다 듣는다, 얘기가 쟁점과 지나치게 멀어지면 제지하기 보다는 당사자의 얘기 중 쟁점과 관련된 부분을 짚어 되물어 본다.
정리되지 않은 얘기라도 경청할 가치가 있다, 그 속에 분쟁의 원인, 당사자가 원하는 사건의 해결방향이 모두 들어 있다. 듣는 일은 전혀 힘든 일이 아니다.
남: 법원에 계속 중인 사건이 많다 보니 당사자의 불만도 크고 담당 판사는 판사대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 이 부분에 관한 생각이 궁금하다.
그: 법정은 의사 진찰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병원에 간 적이 있는데 많은 환자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오래 기다려 의사를 만났는데 의사가 내 말을 듣기보다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진료기록부만 작성하고 짧게 처방만 할 때는 많이 아쉽고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이 많아 변론을 하기 위하여 법정에 들어갈 때까지 오래 기다리더라도 일단 변론이 시작된 후에는 당사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충실하게 심리하면 기다린 시간 때문에 크게 불만이 쌓일 것 같지는 않다.
사건이 아무리 많아도 개개의 사건을 하나하나 충실히 듣고 꼼꼼히 살펴 판단하는 것이 사법신뢰회복에 도움이 된다. 사건을 빨리 처리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남: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판단의 결과가 충돌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그: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판단의 결과는 같아야 한다, 그게 정상이다. 그런데 양자가 다르다면 내가 어느 한쪽을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닌지 다시 한번 되돌아 본다. 사실관계를 잘못 본 것은 아닌지 기록을 다시 보기도 하고, 법리를 잘못 적용한 것은 아닌지 문헌과 판례를 다시 한번 살펴보기도 한다.
간혹 사건 초기에 법률가의 도움을 받지 못해 결론이 잘못 된 판결이 확정되면서 기판력 때문에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조정이나 화해권고 등을 활용하기도 하는데 당사자들 사이에서 상식에 맞도록 잘 해결되는 경우가 더러 있기도 하다.
('변론주의'에 따라 진행되는 민사소송은 '직권주의'가 적용되는 형사소송과 달리 소송의 당사자가 필요한 요건사실을 주장하지 않거나 입증하지 못하면 그 사실이 없는 것으로 되어 패소판결을 받을 수 있고 이처럼 확정된 판결에는 기판력이 생기는데 이후 억울한 당사자가 동일한 쟁점으로 다시 소를 제기하더라도 이후의 법원은 기판력에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남: 기억에 남는 사건이 궁금하다.
그: 고등법원 시절에 어느 여성이 한 남자로부터 납치·살해 협박을 받아 오빠가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이 찾아가 문을 두드렸으나 인기척이 없자 그냥 돌아 왔다. 결국 그 곳에서 여성이 살해된 채 발견되었고, 피해자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다.
인기척이 없는 상태에서 곧바로 문을 부수고 들어 갈 수는 없었다는 경찰의 항변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의 상황에 비춰볼 때 문을 부수어 주거의 평온이 깨진다 하더라도 경찰이 문을 부수고 들어 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판단해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공권력이 특정 시민의 안전을 보호할 의무와 일반 국민의 주거평온을 보호할 의무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관하여 깊이 고심하였고 2심 선고 이후 이에 관한 대법원의 판단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심리불속행으로 끝난 사건이어서 특히 기억이 남는다.
남: 판사로서 '젊은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에게 어떤 차이점이 있나
그: 젊은 시절에는 의욕도 충만하고 그 만큼 자신감도 넘쳤지만 요즘에는 오히려 '내 판단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법원에 사건이 많다 보니 젊은 시절에는 가능한 많은 사건을 처리하려 했는데 요즘엔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대한 듣고 최대한 살펴 보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의 여유가 좀 생겼다. 심신이 평안해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남: 후배 법조인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그: 지금 젊은 후배들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상대적으로 높아진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나와 같은 선배들이 잘 하지 못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후배들에게 많이 미안하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이미 말한 것처럼 심신이 평안해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고(필자는 이 부분을 '자신에게 주는 여유'로 이해했습니다) 내가 항상 맞는 것도 아니다(필자는 '다른 사람에게 주는 여유'로 이해했습니다).
[인터뷰 후기]
"긴 시간 거친 풍파를 견디며 묵묵히 고향 언덕을 지키고 있는 거대한 노송을 보고 왔습니다."
애초 필자는 무리들 중 일부 잘못한 사람들 때문에, 또 어떤 때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법원이 적지 않은 비판과 비난에 직면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다수의 법관들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부족한 글로나마 독자들께 전달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의 의도와 달리 거의 40년을 법조계에 몸 담았던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오히려 필자에게 깊고 큰 가르침이었다는 생각에 필자 혼자 소중한 지면으로부터 비롯된 기회를 의도치 않게 남용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만남이었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당사자의 얘기를 듣는 것이 힘들지는 않은가'라는 취지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을 듣자 마자 필자는 질문이 어리석었다는 생각과 그 어리석음이 필자의 모자람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에 순간 많이 당황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의 현상에 대한 모든 원인을 자신을 포함한 선배들의 책임이라며 (후배들이라고 다 잘 하고 있겠습니까만) 후배 법조인들을 책망하기 보다는 '잘 하고 있다, 마음의 여유를 가져라'는 따뜻한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2017년 이래 그를 포함해 적지 않은 노송들이 묵묵히 법원을 지키고 있으며 이제 그들을 지켜 보는 후배들이 그들의 경륜과 인격적 원숙함을 배워 가고 있습니다.
많이 알려 지지 않았지만 법원 내의 이런 노력들이 사법신뢰를 제고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필자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원합니다.
첫댓글 좌빨판사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