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부처, 문수화상의 영결식
지난 5월 31일 오후 2시 경북 군위군의 위천 둑방에서 ‘4대강 사업’ 반대를 외치며 ‘소신공양’하신 문수 스님의 영결식이 군위 지보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엄수됐다. 불기 2554년 6월 4일 오전 10시. 도반 스님과 신도 800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엄수된 문수화상의 영결식은 수국꽃이 만발한 지보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대한불교조계종 비구 문수화상 제10교구장’으로 거행됐다.
|
 |
|
▲ 문수스님의 영결식이 지보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많은 도반들과 추모객들이 들어선 가운데 엄수됐다 / 사진. 정수근 | 명종(타종7타)을 시작으로 각만 스님의 사회로 진행된 영결식은 예상대로 많은 도반들이 자리를 지키며 우리사회에 큰 서원을 남기시고 먼저 간 문수스님을 애도했다. 시종 낮은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삼귀의와 반야심경 낭독이 이어졌고, 산재 스님과 정암 스님의 영결법요에 이어 도반인 각운 스님이 문수 스님의 행장을 소개했다.
각운 스님은 부정부패 척결과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책의 요구 그리고 4대강 사업 반대를 외치며 “이 시대의 지장보살로 자신의 몸을 불사르신 비구 문수화상의 행장”을 하나 하나 소개한 후에 감정에 북받쳐 소리쳤다.
“나의 도반 문수야. 우리 내생에도 같은 시간에 만나 또 다시 출가해 도반으로 다시 만나 수행자로 금생에 못 다한 상구보리 하와중생의 서원을 기필코 이뤄내자 … 나의 도반 문수야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한 죄, 내생에 갚을게. 내가 갈 때까지 극락에서 기다려줘 … 같은 날 다시 꼭 환생하여 우리 서원 꼭 이뤄내자”며 애통해 했다.
|
 |
|
▲ 추모객들이 문수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배례를 올리고 있다 / 사진. 정수근 | 이어 장의위원장인 은해사 주지 돈관 스님의 영결사가 이어졌다. 돈관 스님은 “오늘 문수화상께서 문득 스스로 사바의 인연을 거두시고 소신공양으로 대열반에 드시니 일월은 실색하고, 대지는 진동했으며, 만물은 어찌할 바를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이는 화상이 자연을 생각하고 서민을 생각하는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 선사의 관심은 오직 중생을 생각하고 자연을 생각했을 뿐, 붕당이나 잡사에는 무관했습니다. 제방의 운납(雲衲)이 이런 문수화상에게 최극의 존경과 흠모를 봉헌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라 했다.
그는 또 “문수화상이 이렇게 와서 이렇게 가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화상이 남기신 소리 없는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 하고는 “문수화상이여, 평생을 한밤 중 밝은 달이 되어 천지를 밝히시고, 석화를 일으켜 정과 사를 판별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라 하며 스님의 빈자리를 충심으로 애도했다.
|
 |
|
▲ 도반 각운 스님이 문수화상의 행장을 하나 하나 소개해 올리고 있다 / 사진. 정수근 | 이어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의원 월탄 큰스님은 ‘법어’에서 “눈 뜬 사람은 똑똑히 볼 것이며, 눈 어두운 사람은 차차 볼 것이다. 뭇 생명을 내 몸 같이 아끼고 아껴서 그 생명들을 살기 위해 소신공양 올렸으니, 문수여 장하고 장하도다 … 다시 사바세계에 환원하여 아직 일깨우지 못한 중생을 위해 다시 모든 생명을 바쳐주기를 바라노라”며 그의 부재를 못내 아쉬워했다.
그리고 이어 영결식에 참석치 못한 자승 총무원장을 대신하여 조계종 총무부장 영담 스님이 자승 원장의 조사를 대독했다. 자승은 조사에서 “스님께서 소신공양으로 일깨워 주신 참회와 정신으로 세상의 모든 생명을 살리는 모든 일에 한치의 흔들림이 없도록 하겠다” 강조했다. 그렇다. 그는 분명 “한치의 흔들림이 없도록” 한다 했는데, 이는 앞으로 4대강 토목사업에 대한 불교의 대응과정에서 눈여겨 볼 대목처럼 읽힌다.
|
 |
|
▲ 유족들이 모두 나와서 추모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이어 문수 스님께 헌화하고 있다 / 사진. 정수근 |
이어 지보사 신도회 회장의 조사와 ‘고운님 잘 가소서’란 조가가 대웅전을 울렸고, 이후 지보사 주시 원범 스님의 인사말씀을 이어 헌화가 이어졌고, 이어 사홍서원을 끝으로 영결식을 모두 마친 후 문수스님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향했다.
그 뜨거운 불길 속으로 문수스님을 다시 보내며
‘번’이 앞서 가고 스님의 법구가 많은 도반들에 의해 운구 되어 다비장으로 향했고, 그 뒤를 신도들이 따랐다. 그리고 그 옆을 대구경북 60여 골재원노조 조합원들도 모두 참석하여 “4대강 사업 OUT"이라고 새겨진 대형 플랜카드를 들고는 스님 가시는 길을 든든히 배웅했다.
|
 |
|
▲ '번'(만장)을 앞세우고 문수스님의 법구가 다비장으로 운구되고 있다. 그 뒤를 대구경북 골재원 노동자들과 추모객들이 따르고 있고, 골재노조에서 준비한 ‘4대강 사업 OUT’라는 플랜카드는 마지막 가시는 스님의 뜻을 다시 한번 기리고 있다 / 사진. 정수근 |
이후 연화대를 둘러싸며 신도들이 모였고, 그 안에 스님의 법구를 모셨다. 이어 유족과 종단의 원로 스님들이 거화봉을 들고는 “문수야, 불 들어간다”라는 외침과 함께 연화대에 불을 붙였다.
|
 |
|
▲ 많은 추모객들이 둘러선 가운데, 스님의 법구가 안치된 연화대를 거화봉으로 점화를 하자, 이내 불길이 치솟았다 / 사진.정수근 | 불은 순식간에 타들어갔고, 그 주위를 신도와 도반 스님들이 ‘나무아미타불’을 독경하면서 스님의 성불을 기원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그 뜨거운 불길을 마주보고 서서 신도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큰절을 올리기도 했다.
다비장을 맴도는 스님의 뜨거운 서원
이렇게 문수선사는 다시 한번 그 뜨거운 불길 속으로 들어가며, 저 극락정토로 훨훨 날아갔다. 그러나 그렇게 타들어가는 불길은 못내 아쉬운 듯 다비장 주변을 휘휘 맴돌았다. 아마도 그것은 그가 남기고 간 그 큰 서원 때문이리라.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폐기하라”, “이명박 정권은 부정부패를 척결하라”, “이명박 정권은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라는 그의 서원은 다비장 주변을 빙빙 맴돌며 그 자리에 함께한 도반과 신도들 가슴으로 그렇게 흘러 들어갔던 것이다.
|
 |
|
▲ 불길이 잦아들자, 이날 함께 참여한 영남자연생태보존회 정재영 총무는 “우리 활동가를 대신해서 가신 스님을 위해 절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108배를 올렸다 / 사진. 정수근 |
또한 스님은 저 극락정토를 포기하고는 아마도 저 4대강에서 신음하고 있는 뭇생명들에게로 다시 나아가셨을 것이다. 그래서 분명 그들을 보듬어 안고는 지금 울고 계실 것이 틀림없다. 소신공양한 그 둑방을 거슬러 낙동강으로 달려가, 죽임을 막아주지 못한 그 수많은 생명들을 위해 눈물을 삼키며 그들의 극락왕생을 위해 '경'을 올리고 계실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다. 이제 그 스님의 울음에 답하는 것은 이제 온전히 우리들의 몫으로 남았다. 4대강을 그냥 그대로 흐르게 하기 위한 그 길을 말이다.
"4대강 사업 즉각 중지·폐기하라" 스님의 서원은 그렇게 다비장을 훨훨 날아갔다.
|
 |
|
▲ 이날 전국 각지 각계 인사들로부터 많은 조화가 답지했는데, 그 중 참 반가운 ‘전교조 대구지부’란 이름도 눈에 띈다 / 사진. 정수근 | 한편, '4대강 생명살림 불교연대'는 5일 오후 7시 서울 조계사에서 시민들과 함께 추모제를 개최한다. 또한 15일까지를 국민추모기간으로 정하고 '4대강 개발 저지와 참회·성찰을 위한 108배 기도정진' 등 다양한 추모행사를 펼칠 계획이라고 한다.
또한 문수 스님의 49재는 6월 6일 지보사에서의 초재를 시작으로, 6월 13일 은해사에서 2재, 6월 20일 해인사에서 3재, 6월 27일 월정사 4재, 7월 4일 개운사 5재 , 7월 11일 동화사 6재, 7월 18일 조계사에서 마지막 7재를 올리며 회향한다고 한다. |
첫댓글 _()()()_나무 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