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因緣
<제3편 세상꽃>
① 첫사랑 준희-23
남자의 뻣센 것은 어찌나 커 보이는지 빨랫방망이는 저리 가라이고, 여자의 속살은 희기가 설원(雪原)과 같아서 어둠속에서도 까만 음모가 또렷이 드러나 보이는 거였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정경이 아닐 수가 없었다. 비록 막노동으로 굴러먹던 노씨라 하더라도 이전에는 순직하기가 양떼와도 같았는데, 이러한 볼썽사나운 꼴을 보이고 있다니, 그의 속이 빠드름히 내보이었던 거였다.
이전 노씨는 바로 옆에 살았으나 허름한 판잣집이라서, 전쟁 당시 폭격을 맞은 건 아니었지만, 그 땅울림으로 하여금 집채가 폴싹 주저앉아버리었다는 거였다. 그렇더라도 가족들은 미리 위험을 느끼고서 어차피 집을 보아달라는 부탁도 있고 해서 경산의 집으로 들게 되었다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이제 집주인인 경산이 찾아온 마당에, 집이 쉽게 팔리어나갈 경우에 노씨는 집도, 절도 없게 되는 꼴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경산이 집을 방매하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든지 걱정이 앞서는 일이라서 뜨악하고 꺼림하였던 거였다.
그렇더라도 집을 사들일 재간도 못되었으니, 그로서는 막막하여 염치는 없으나, 당장 집을 비워주고 나갈 수 없으니, 떼를 써서라도 전세막이라도 뜯어내야겠다는 속셈이었다.
암튼 벌거벗은 노씨는 아내와의 일을 벌이면서도 몇 번인가 빨랫방망이를 앞세우고 괜스레 미닫이문을 여닫으면서 안팎으로 미친 개 모양으로 들락날락 설치어대는 데에는 필시 아내와 즐기는 교구가 아니라 경산을 의식하고 하는 떼거지 짓거리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이튿날은 아침부터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복덕방 노인들과 더불어 찾아와서 뜻밖에도 집의 처분은 쉽게 이루어지었다.
모이어든 사람들 가운데 좋은 값을 주겠다는 사람에게 팔게 되었으니, 경산은 소개료를 떨구어주고도 온전히 받은 집값은 22만원이었다. 그 가운데 5만원을 떼어서 노씨에게 선뜻 건네주고 나머지 17만원만 챙기었다.
그러자 노씨는 흐뭇하였는지 얼굴에 주름을 펴고 웃는 낯을 보이고 있었다.
“자당님, 고맙습니다. 이만하면 전세살이나, 판잣집 한 채는 장만할 만합니다. 제가 여기서 더 바란다면 도둑이지요.”
그러한 노씨의 표정을 보고 경산이 입을 열었다.
“나도 남의집살이를 해본 나머지라, 여러 식구 사정을 모르는바가 아니오. 낸들 이 돈을 가지고 시골에 간들, 서 마지기 논도 장만하기 어렵소. 예전 이웃의 정도 있고 해서 넉넉지는 못해도 생각해서 주는 것이니 집장만하고 잘 사세요. -그리고 혹시라도 우리 애들이 찾아오거든 충청도 고향에 있다고만 전해주세요.”
경산은 집값에 비하면 큰돈이지만 노씨네 사정을 가늠하여 넉넉히 떼어주고서 곧바로 서울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운 경산은 여러 날을 두고 혼자 고민에 빠지었다. 그동안 날마다 이 동네, 저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집집이 사람들의 신수나 사주 같은 것을 보아주고 받는 곡식으로는 하루하루를 겨우 먹고사는 식량일 뿐이지 목돈이 되기는 어려웠던 거였다.
그런데 서울의 집을 팔아서 목돈이 잡히기는 하였으나,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할지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가까이 동오가 있기는 하지만 기댈 만한 위인이 못되었다. 그리고 은산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큰아들 동룡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네도 어려운 살림살이를 꾸리어가는 형편인지라 되레 보태주어야 할 것 같았다.
이렇게 전실 아들들을 생각해보면, 다 믿기어지지가 않았다. 동혁과 동수 형제가 있다면야 속으로 낳은 자식이니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착지를 마련할 수도 있겠으나, 없으니 괜스런 공상에 지나지 않았다.
경산은 이러한 저러한 생각 끝에 정희를 머리에 떠올린 거였다. 살기도 넉넉하였고, 속으로 낳은 자식이라고는 비록 딸일지라도 세상천지에 그녀 하나뿐이었다.
게다가 정희가 사는 곳은 농토가 광활하여 들녘만 보더라도 풍요로워서 기왕지사 시골에 눌러 살기로 한다면 마땅하다는 결단이 서게 되어 이암동을 떠나기로 하였다.
이러한 경산의 결단은 용훈에게 큰 충격을 안기어주었다.
그는 준희와 멀리 떨어지기가 못내 아쉽고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열두 매기의 이암동을 떠나던 날은 피난살이에 검게 찌든 살림살이를 이고지고 온직리를 넘나드는 고갯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였다.
그때 그는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면서 수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첫댓글 생각보다 집이 빨리 팔려서 17만원이라도 챙겼으니 다행입니다
고갯길을 넘는 용훈은 준희를 못잊어 발길이 무겁습니다 ^^*
다행이지요. 전후 당시 서울의 빈집을 차지하고 주인이 와도 떼쓰고 집을 내주지 않아서 애를 먹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아마도 그 피난처에서 그냥 살았다면 용훈은 준희와 결혼했을 겁니다. 그런데 준희는 그 후???????????
지난밤에는 아주 늦지는 않으신 것 같습니다.
대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