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남을 중심으로 신종 ‘조기유학' 형태가 고개를 들고 있다. 국내에서 과외를 하던 선생에게 현지 체재비와 생활비를 지급하면서 자녀의 보호자 역할을 맡기는 이른바 ‘대리모 조기유학'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일부 부유층으로부터 시작됐지만 ‘네가 하면 나도 한다'는 한국식 뒤틀린 교육열을 바탕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과외강사 류경아씨(29)는 최근 과외 학부모에게 별난 제의를 받았다. 체재비를 비롯해 약간의 ‘용돈'을 지원할 테니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가 공부할 생각이 없냐며 물어왔다. 조건이 너무 파격적이라 어리둥절하던 류씨는 장고 끝에 제안을 받아들여 올 9월 학기에 맞춰 아이를 데리고 현지로 날아갈 예정이다. 류씨는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며 “원래 유학을 계획한 터라 흔쾌히 승낙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조기유학'은 어머니가 직접 데리고 가거나 현지 가디언(보모)에게 맡기는 형태가 주였다. 하지만 ‘기러기아빠' 등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어머니의 서툰 영어실력과 어두운 현지물정 때문에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 또 현지 가디언이 형식적 보호자 관계에 머물러 자녀들이 불편해하고 틈만 나면 추가비용을 요구하는 등 폐해가 뒤따랐다. ‘대리모 과외'는 이런 문제들의 틈바구니에서 생겨난 새로운 유형의 유학문화다.
그렇다고 아무나 ‘대리모'가 될 수는 없다. 영어권 국가에서 공부한 경험과 함께 유창한 영어실력은 필수고 장기간 과외를 통해 인성 행동 등에서 부모에게 신뢰를 얻어야 한다. 물론 아이도 잘 따라야 하며 무엇보다 본인도 현지에서 공부할 계획이 있어야 한다. 류씨는 “영국 유학 당시 어디에서 공부했냐부터 영어회화 테스트까지 꼬치꼬치 캐물었다”며 “아이의 미래를 담보로 ‘올인'하는 만큼 검증과정은 까다롭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돈'. 평균적으로 ‘조기유학' 비용이 150만원 정도 선인 데 반해 ‘대리모 유학'의 경우 두 배 정도 더 든다. 웬만한 부유층이 아니면 꿈도 꾸기 힘든 액수다.
자식교육을 위해서라면 ‘달러 빚'도 마다하지 않는 대한민국 부모는 단호하다. “국내에서 과외를 받아도 1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치열한 입시제도와 삭막한 학교환경에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를 생각하면 결코 아깝지 않다”는 한 부모의 자조 섞인 푸념이 그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최근에는 비용 절감차원에서 한 명의 ‘대리모'에 학생 여러 명을 팀으로 맡기는 ‘컨소시엄' 형태도 등장하고 있다.
유학원 쪽에도 부쩍 이런 문의가 늘었다. 아이들의 유학서류나 비자발급 등 준비를 부모가 아닌 과외선생이 맡는 사례가 많아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볼 수 없던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