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30분에 집을 나와 세 번씩 전철을 갈아타고 소사역에 내렸는데 11시가 거의 다 되어 늦어서 목사님은 성경만 가지고 먼저 뛰어 가고 내가 임 목사님 드릴 비타민 약 가방을 억지로 빼앗아 가지고 천천히 걸어서 서울신학대학교를 찾아가다.
수많은 학생들이 학교로 가고 있어서 찾기가 쉬웠다. 성결인의 전당 예배실로 찾아가니 성전이 예전보다 작아서 조금 이상했는데 학생들이 뜨겁게 일어서서 찬양하고 있었다. 순서지를 보니 오늘 설교 강사가 이동석 목사님으로 되어 있어서 차질이 생겨서 우리 목사님이 설교를 안 하시나 보다 하고 우리 목사님을 찾아 헤매다.
설교를 안 하게 되면 나올 텐데 하고 운동장과 총장실 근처를 돌며 찾았으나 도대체 보이지가 않아서 교수같이 보이는 사람들에게 미국에서 오신 강사 나균용 목사님을 찾는데 어디에 계신지 혹시 아시느냐고 하니 3층 예배실에 계실 것이라고 해서 올라가 보니 큰 성전에 학생들이 가득 모였고 예전의 그 큰 강당이었다.
먼저 갔던 곳은 대학원생들만이 모인 곳이고 이곳은 삼천 명의 대학생들이 모인 대 강당으로 두 곳에서 동시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내가 헤매다가 늦게 들어가서 앞의 순서는 모두 지나가고 막 설교를 시작하고 있었다.
목소리가 쩡쩡 크게 울리고 강하고 심각하게 믿음 없는 신학자가 되지 말고 성령 충만한 선지자가 되어야 한다고 설교하고 있었다. 설교가 끝나고 우리 목사님이 교수들과 나오는데 머리가 긴 교수님이 반갑게 인사를 해서 누군가하고 우리 목사님께 물으니 오랫동안 미국에 계셨던 이정기 목사님이라고 하신다.
사모님은 미국에서 안 오시고 혼자 오셔서 교수생활을 하신다고 하신다. 우리 목사님은 어떻게 몰라 볼 수가 있느냐고 나이가 들어 치매가 아니냐고 까지 하신다. 예전에 교수 퇴수회에도 같이 가고 아주 다정하게 지냈었다. 지금 시카고에 계신다고 연락하라고 명함에 사모님 전화번호를 적어 주신다.
한영태, 최종진 전 총장님, 이정기 박사님, 배종수 박사님 등과 같이 식당에 가서 두부전골을 먹으며 한참을 옛날 20여 년 전 초창기 교수 생활들을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앞으로 이런 자리를 또 만들자고들 하신다.
교수 생활을 같이 하며 지냈던 옛날이야기들을 나누며 모두 60들이 다 되어가고 있는 은퇴를 바라보고 있는 노장파 교수들이시고 그 중에 우리 목사님이 제일 나이가 많았지만 너무 젊다고 두 사람이 나이를 거꾸로 먹느냐고들 하신다.
조종남 박사님 이야기, 이상훈 박사님 이야기, 아직도 미제로 남아 있는 시험지 사건 등의 많은 이야기 등이 끝이 없다. 모두 소년들 같은 모습들로 재미있었고 나는 박사님들 틈에 홀로 끼어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고 감사했다.
지하철을 타고 전화를 하면서 상록수역에 오니 임가숙 목사님이 조 집사님 차를 가지고 둘이 마중을 나와 아파트 안에 있는 대일 교회에 가서 다른 여자 목사님(하 목사님)과 두 집사님과 같이 은혜롭게 예배를 드렸다.
책을 팔았다고 책값을 주셔서 책을 많이 드릴 테니 책값을 받아 교회 살림에 쓰라고 그만 두라고 하니 선교비를 그렇게라도 보태고 싶다고 그 기쁨을 빼앗지 말라고 하신다.
우리 목사님 책을 모두 사고 사모하고 그 책으로 설교를 하신다고 너무나 사모하여 얼굴을 뵙고 싶었다고 하시는 하 목사님도 오셔서 같이 예배드리고 사진도 찍었다. 애쓰고 책을 선전하여 주시고 새로 프린트해 간 책도 서로 먼저 가지려고 하는 두 목사님들이 참으로 감사하고 귀한 마음이 들었다.
정성껏 다과준비도 하셨고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는 것을 방금 식사했다고 사양하고 시흥 천문기도원에 와서 황선희 권사님 며느님에게 황선희 권사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이야기를 듣다.
당뇨로 많은 고생을 하셨고 기도원을 두 개나 세우시고 돌아가실 때까지 열심히 사역을 하신 참으로 여장부이신 귀한 권사님으로 우리 목사님을 자신을 키워준 스승이라고 말씀해 주셨던 참으로 고마우신 황 권사님이시다. 우리 목사님께 집회를 부탁하시고 갑자기 돌아가셔서 집회를 못하게 되고 중국에 다녀오게 된 것이다. 늦었지만 20만원을 부조하고 돌아오다.
안산에 있는 철호 전도사를 만나고 가려고 전화를 했는데 받지를 않는다. 신희를 찾아 서울대 앞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책방에 가서 주일학교 아이들 선물을 몇 개 사고 7시 30분에 신희 학원에서 원장선생을 만나다. 자기가 저녁 식사를 한번 대접하고 싶다고 하는 것을 시간이 없다고 사양하다.
신희와 젊은이들이 가는 양식집에 가서 메밀국수와 우동과 회덮밥을 서너개 주는 간단한 것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신희 집에 가다. 너무나 지저분하고 물건이 많아서 5월 달로 고만둔다고 하면 이 많은 짐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걱정이 된다.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면 돈은 조금 더 적고 집도 안 주지만 시간이 많고 여름, 겨울 방학이 있다고 한다. 학원에서 일하는 것은 제일 하위의 직업이라고..... 셋이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녹번동 집에 와서 한 방에서 다정하게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