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 서클 선배의 출판기념회가 있어 대구에서 오랜만에 선후배들이 모였습니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시는 분인데 여행사에 일정을 맡겨 가는 여행이 아닌, 왕복 항공권 외엔 지인과 인터넷, 책자를 통하여 자료를 수집하여 여행 전체를 구성해가는, 알찬 여행을 좋아하십니다. 우리 카페에는 여러 곳의 여행기를 단편적으로 올렸지만 이번에는 38일간의 남미여행기록을 본 선배의 지인의 강력하고도 지속적인 권유에 못이기는 체, 매일의 기록을 편집하고 스마트폰만으로 찍은 사진을 선별하여 책을 냈답니다. 당일, 보쌈과 국밥으로 유명한 남산동 화림보쌈에 모였습니다. 출판기념회 배너도 붙이고 꽃다발도 준비하고, 후배들이 준비하느라 애썼습니다. 작가인 선배는 형수님과 함께 저서를 들고 쑥스러운 듯 들어오셨습니다. 기념모임 참석자는 당사자 빼고 24명, 적지 않은 인원이었습니다. 가져오신 책이 35권이었는데 참석한 이들이 부탁받은 책까지 합치니 터무니없이 부족한 숫자였습니다. 일단 참석하신 분들 위주로 친필 사인을 해서 주시는데 책을 펼치면 첫 장에 내 이름이, 작가의 사인이 눈에 들어와 기분 좋았습니다. 책 제목은 ‘구름 나그네의 38일간 남미 자유여행’입니다. 내용을 보니 여행작가의 프로다운 맛은 없었지만 그러하기에 더욱 와 닿았습니다. 일자별, 시간대별로 일기처럼 편안하게 써내려갔는데 국가, 도시, 마을, 음식, 교통편의 소개와 가격정보까지 있어 사전 준비만 좀 한다면 이 책 한 권만 들고 가도 남미 여행은 거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편한 길을 마다하고 배낭여행을 할 수 있는 용기와 열정이, 그리고 그것을 책으로 냈다는 사실이 부러웠습니다.
사실 저도 언젠가는 책을 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으니 더더욱 부러울 밖에요. 회사 다닐 때, 읽던 책 중 좋은 글을 발췌하여 매주 1회 메일로 지인들과 나누었고, 일정 기간이 지나니 타인의 글만 보내는 것이 무성의한 것 같기도 하고 내 소회를 함께 적어 보내면 더욱 와 닿지 않을까 생각하여 제 느낌까지 보내기 시작한 게 벌써 8년 반이 지나 그간 보내드렸던 좋은 글이 454편이나 됩니다. 그러다보니 지인들이 공감 가는 내용이니 책을 내보라고 수년 전부터 권유하였습니다. 특히 출판사 일하는 후배가 도와주겠다고 해서 솔깃해졌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환갑이나 칠순 때 요즘은 잔치를 따로 않으니 기념으로 책을 내서 지인들께 나누어드리는 게 어떠냐고 하십니다. 어머니 말씀이 지당한 말씀이지요. 그래서 잊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책을 낸다는 말을 듣거나, 출판기념회에 가면 살짝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제 글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세상 살아가는 따뜻한 이야기들이니 주변인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책 제목도 이미 준비해 두었습니다. ‘더불어 살기에 더욱 행복한 (세상)’으로... 하지만 제가 보내드린 글은 모셔온 좋은 글의 의미를 살리기 위한 부록 같은 것인데 저작권을 생각하면 모셔온 글, 즉 본문의 대부분을 빼야하니 적절치 않을 것도 같았습니다. 책이 범람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책 낸다고 산 나무 몇 그루를 베어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나의 책보다는 몇 년 간 고민한 아내의 책을 내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나의 책은 그냥 나누는 책이지만 아내가 구상하고 있는 책은 어르신들, 신체구조가 틀어진 이들을 대상으로 운동과 치유, 명상의 효과를 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출강을 주로 하기에 지명도를 더욱 높이기 위한 방편도 되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출판사 후배가 도와주겠다고 한 지가 수년이 지났지만 바쁜 일상 때문에 아내의 구상만 지속적으로 보완될 뿐 구체적인 진행이 안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가 2년간의 조직생활을 끝으로 다시 야인으로 돌아와 안정이 되었으니 책 낼 시기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시간이 많이 나는 하반기에 아내의 생각과 글을 정리하고 틈틈이 사진을 찍어 책 발간을 준비하여야겠습니다. 아내가 지천명의 나이에 자기 일에 관한 열정과 지식과 나눔의 마음이 담긴,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책을 내는 일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시간 여유가 생기니 실지로는 시간이 더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직장생활 할 때는 틈틈이 책 보고, 운동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시간이 나니 한동안 끊었던 중국어 공부도 이어야하고, 오래 못 본 벗들도 만나야 하고, 자연을 벗 삼아 돌아다녀야 하고, 책 낼 준비도 해야 하고, 너무나 문외한인 예술에 대한 관심과 감성도 늘여야 하고, 인문학 강좌도 들어야 하고, 곧 시작될 거라는 문화해설사과정 수업도 신청해야하고.... 마음만 한 없이 바쁩니다.
그래도 선배 출판기념회 덕분에 한동안 잊고 있었던, 아내의 염원인 책 쓰기를 도와야겠다는 구체적인 목표 하나는 꼭 달성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마음만으로도 뿌듯해집니다. 그래서 즐겁습니다. 여유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지난 목요일에는 어머니와 함께 반 고흐의 작품세계에 빠졌습니다.
http://blog.naver.com/bornfreelee/220415816605
금요일에는 안동 군자마을에서 림코 앙상블의 연주회를 즐겼습니다.
http://blog.naver.com/bornfreelee/220417448215
그리고 토요일에는 오랜만에 의성 태양마을의 자연을, 차를 오롯이 즐겼습니다.
http://blog.naver.com/bornfreelee/220417389218
그림과 음악과 자연 그리고 차를 함께 하여 더 없이 좋은 나날이었습니다. 시간도, 마음도 여유 있는 요즈음이 좋습니다.
중년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모셔온 글)=======================
슬기로운 잎과 지혜의 향기가
마치 한 그루 노송과 같은 당신
당신의 연륜이 존중받는 것은
높이가 아닌 깊이 때문입니다
부피가 아닌 무게 때문입니다
중년의 당신이 아름다운 것은
물질의 풍요가 곧
마음의 풍요는 아니라는 것을
나누고 베푸는 사랑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를
삶의 깊이로 느끼며
세월의 무게로 터득한 까닭입니다
원칙에 충실하되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지 않으며
관대는 중용에서 비롯되니
때로는 타협의 노선도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와 양보의 미덕을 아는 까닭입니다
파도를 견디지 않고는
진주를 캘 수 없으며
바람을 만나지 않고는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참아낸 눈물에서 값진 의미를 배웠습니다
중년의 삶이 아름다운 당신이여!
한 알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당신의 삶은 또
얼마나 뜨거워야 했던가요
다가서면 저만치 다가서는 만큼 멀어지는
꿈은 늘 무지개 같은 아련함이어도
중년의 나이에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으며
또한 큰 열매도 아니라는 것을
오직 가꾸고 보살피는 내 안의 작은 보람
하여 삶은 결코
혁명도 쿠데타도 아니라는 것을..
-----이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