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랄드 5세 임금님과 까치
노르웨이 국왕인 하랄드5세(Harald V)는70대 초반인 37년생으로서 국민들로부터 대단한 추앙을 받는다. 형식적인 국민으로부터의 추앙이 아니라 마음속 깊이로부터 실질적으로 왕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그런 추앙이었다.
왕비인 소냐(Sonja) 여사는 평민출신으로서 오슬로 시내에서 백화점을 운영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이 당시 부왕이시던 울라프 국왕(Olav V) 때까지는 평민과의 결혼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9년 열애 끝에 “이 여자가 아니면 독신으로 살겠다”는 고집을 끝까지 부려, 1968.8.21 부왕 및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동의를 어렵게 얻어냄으로써, 31살의 동갑내기 소냐(Sonja) 왕비와 결혼하게 된다. 그리고 91년 부왕이 승하하자마자 국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그리고 슬하에는 Martha Louise 라는 71년생의 공주와 Hakon Magnus 라는 73년생의 왕자를 둔다. 그런데 문제는 평민과 처음으로 결혼한 하랄드5세가 왕세자가 된 하콘 왕세자의 진취적인 결혼을 허락하게 된다. 즉 왕세자비가 된 메테마리(Mette-Marit)는 한때 미혼모로서 마약복용까지 한 전력을 가진 평민여성이었고, 장녀 루이제 공주는 심령술에 빠져 영혼치료센터를 차렸다가 공주직위를 박탈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1.8.25 메테마리와 결혼한 이 왕세자의 실질적인 사랑은 오히려 왕실의 권위를 높여주는 부수효과를 낳았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로서 국민들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느끼게 하였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내려온 낡은 규범을 부자가 공동으로 깨고, 따뜻한 휴머니티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 노르웨이 왕세자비의 결혼사건은 존폐위기까지 간 왕실의 존속 필요성을 오히려 국민들에게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왕실의 참된 권위가 어디서 나오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라는 것이다. 그것은 진실된 마음과 사랑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만난 하랄드5세 국왕은 인자한 외모와는 다르게 웃는 소리가 아주 특별하였다. 이것은 웃는 소리가 아니었다. 정말로 괴상하였다. “히히히…히히”하는 것이 그 웃음소리만 들어도, 듣는 사람들의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하랄드5세뿐만 아니라 듣고 보니, 부왕이시던 울라프 5세 웃음소리도 각별하였다는 것이었다.
이 소리를 듣고 나는 무릎을 쳤다. “아하 그렇구나. 개인주의가 강한 북 유럽에서 국왕이 되려면 국민들보다 못한 무엇을 갖고 있어야 하는구나. 그래야만 국민들이 좋아하는구나” 하고 나는 다시 깨달았다. 이 글을 읽고 만약 의심이 가는 분이 있다면, 정말이지 이 국왕의 웃음소리를 한번 들어보시라. 웃지 않고 배기나!
내가 이 국왕에게 신임장을 제정한 것은3월,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95년5월, 나는 당시 러시아 대사, 남아공 대사와 함께 국왕이 주최한 오찬에 참석하였다. 오슬로 시내에는 큰 길을 사이에 두고 국회와 왕궁이 멀리 떨어져 마주보고 있었다. 이 왕궁의3층, 작은 연회장에서 국왕이 들어오기 전이라 우리들은 칵테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나무 위에 까치들이 많이 그려진 벽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무심코 까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권대사, 한국에서는 까치를 어떤 의미의 동물이라고 하나요?” 깜짝 놀라, 돌아보니 국왕이 어느새 칵테일 잔을 들고 그 인자한 모습으로 나를 처다 보고 있었다. 아마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이 신기하였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벽화를 보고 까치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려고 하였는지도 모른다. 러시아 대사와 남아공 대사도 국왕이 들어오자, 우리들이 있는 벽화 쪽으로 와서 자리를 함께 하였다.
“네, 한국에서는 영물이라고 합니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내방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폐하” 나는 어려서 할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하였다. 그러자 국왕은 신기하다는 눈빛을 짓더니 대꾸하였다. “영물이라고요? 까치가요?” 그리고는 벽화 속에 있는 까치가 몇 마리나 되나 세어 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세어 39마리까지는 세었다. 그러자 국왕이 계속하였다.
“믿겨지시지 않겠지만 90마리가 훨씬 넘는 까치가 이 벽화 속에 그려져 있다는 군요. 우리 할아버지인 호콘(Haakon VII) 국왕께서 내가 어렸을 때 말씀하시더군요. 그때는 사는 것이 매우 어려웠던 시기 같습니다. 왕실에서 은제품들이 자꾸 없어지는데 애꿎은 우리 할머니만 모두들 의심하였다 합니다. 할머니는 덴마크 왕실에서 시집을 왔었거든요. 그러다가 왕궁 마당에 있던 호두나무가 오래되어 쓰러졌는데 마침 이 나무 꼭대기에 까치집이 있었답니다. 이 까치집에서 잃어버렸던 은제품들이 모두 나오는 바람에 의혹이 풀렸답니다. 그만큼 까치는 빤짝 거리는 물건들이 있으면 몽땅 제집으로 물어 갑니다. 여간 장난이 심하지 않고, 짓궂은 동물입니다. 한국에서는 까치가 잘 사귀어 영물이라는 이름을 부쳐주었군요.”
그러자 나는 하랄드 국왕의 할아버지였던 호콘(Haakon)국왕과 왕비 생각을 하였다. 얼마나 한이 되었으면 벽화에 까치를 그려 넣을 정도나 되었을까! 역시 왕궁에서도 은제품에 대하여는 대단히 아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국왕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국왕께서는 보통사람 같다면 부끄러워서 자기의 실수 담을 잘 말하지 않을 텐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였다. 깜짝 놀랄 일이었다. 사실 누구나 한두 번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실수를 북 유럽에서는 다시 반복한다면 모를까, 처음 한번은 관대하게 봐주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자신의 이런 실수를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하는 국왕을 보고, 나는 새로이 존경심을 가졌다. 국왕은 보통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에는 말이다. 국왕의 실수담은 계속되었다.
“까치에 관련된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제가 52살 때 입니다. 부왕인 울라프(Olav) 국왕이 생존해 있던 89년 입니다. 노인이 되신 부왕 방에 들어갔는데 마침 창틀에 까치가 앉아 있었습니다. 부왕께서 문의하셨습니다. ‘저게 뭐냐?’고, 그래서 ‘까치입니다’ 라고 정중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한5분 지나서, 또 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까치입니다’ 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자 또 한5분 지났는데 ‘저게 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때는 나를 시험해 보려고 그러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다시 ‘까치잖습니까!’ 라고 답변하였습니다. 그런데 한5분 지나서 아직 창틀에 앉아 있는 까치를 보고 ‘저게 뭐냐?’고 다시 물으시었습니다.
이때는 나도 화가 났습니다. 똑 같은 질문을4번 받고 보니 노르웨이 사람들이 갖는 불뚝하는 성격이 그대로 나온 것입니다. “까치, 까치라니까요. 왜 자꾸만,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물어 보세요?”
그러자 부왕께서 나를 데리고 이 방에 올라 오셔서는 이 까치 수를 세워 보라고 말씀하시고는 계속하셨습니다. 내가3살 때랍니다. 그날도 까치가 창틀에 앉아 있는데, 3살 먹은 아들이 ‘저게 뭐야?’ 라고 묻더랍니다. 부왕은 ‘까치’라고 답변해 주면서, 3살짜리 귀여운 아들이 이 것 저것 관심을 갖는 것이 신통하다고 생각하였다 합니다. 그러자 귀여운 꼬마인 왕자는 21번이나 ‘저게 뭐야?’ 라고 똑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하였지만, 부왕은 아들을 안아주고 볼을 비비며, 끝까지 다정하게 ‘까치’라고 답변해 주었다는 겁니다. 21번도 즐겁게 답변을 해 준 것이지요. 사랑하는 아들이 묻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는 겁니다 … 부왕께서는 인내에 높은 점수를 주고 계셨습니다. 국민들과 동거 동락하는 방법으로서 말이지요. “이제는 그 짓궂은(mischievous) 까치가 제발 날라가 버리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