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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 93년 1월 26일 토요정례법회
□ "대종경 교의품" - 이정현 간사님 강연
□ 질문과 답변
Q. 김명선 : 간사로서 교당에 있으니 어떤 교도가 예뻐 보이던가요?
A. 이정현 : 뒷정리를 잘 해 줄 때, 세세한 것들을 알아서 신경써서 처리하시는 교우님.
그리고 간사가 많은 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고한다고 말씀해 주시고 힘북돋아 주실 때.
□ 전성욱 훈련교무님 감상담
아까 이정현 간사님께서 말씀을 하셨는데 앞으로 크게 자랄 새싹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정말 코 잘 꿰이신 것 같고,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기에 올 때마다 “유익함이 많은 교당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올 때마다 하나씩 얻어간다.
소개를 드리자면, 대학교 때 원불교를 만나서 전농교당에 있을 때 김제원 교무님과 함께 공부를 하였고,
그 때 인연으로 출가까지 하게 되었다.
4학년 때 교무님을 만나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 볼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고시, 취직.. 그 선택 중 어떤 선택을 할까, 하다가 교무님의 모습을 보고 출가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출가를 할 때에는...
공부를 하면서는 이 공부 이 사업이 세계에서 가장 큰 사업이요 거룩한 사업임을 알았다.
더불어서 김제원 교무님께서 너무너무 행복하게 사시는 것 같아서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행복해 지고 싶다,
그리고 이 공부 이 사업을 함께 하면 다같이 행복해질 수 있겠다 하여 출가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울산에서 간사근무하고 영산선학대학교에서 근무하다가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간사 할 때는 학교에 너무너무 가고 싶었는데, 과연 학교에 가니 너무나 좋더라.
오늘 아침에 많은 청년들이 좌선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기도도 마음껏, 공부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니 너무나 감사했고
내가 진급하고 있는 느낌이 팍팍 드는 것이었다.
영산을 가고 나니 내가 진급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 예전에는 너무나 어렵던 경계들이 쉽게 지나가더라.
대학원은 교화를 위해서 준비를 하는 시기,. 많은 실습 기회가 주어져서
대학원에 와 보니 교화하는 재미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
내가 교화를 하니 반응이 오고 같이 행복해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여러분들은 옆 사람들을 보기 바란다.
옆 사람이 아픈데 내가 피해준 것이 아니라고 무시하지 않았는가,
내 아는 사람, 내 교화단만 챙기지는 않았는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어제 교당에 와서 교무님과 말씀을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주로 여러분들 이야기를 하셨고, 어떻게 하면 여러분들을 진급으로 이끌어줄까 온통 그 생각 뿐이시다.
여러분들은 참으로 행복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함께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출가를 하니 더 좋더라.
아까 간사님 말씀하실 때 너무 흐뭇하더라.
나의 후배들이 많이 출가할 줄 알았더니 1년에 한 분밖에 안 나오시더라.
부처님 법에 코 꿰인 것은 아파도 유익하다 하니 꼭 코 꿰시길 바란다.
□ 김제원 교무님 설법
성욱 교무님께서 출가하신지 어느새 6년이 지났다.
이정현간사님이 교의품을 맡아서 하셨는데(34장, 134쪽) 함께 봉독하시면서 간단하게 하고자 한다.
ㅇ 물질문명의 피해 : 찬란한 물질문명에 사람들은 취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물질문명이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인가?
도취해서 사는 사람과 그것에 대해서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문명의 도수가 깊어질 수록 병맥이 깊어진다고 하셨으며,
이렇게 되다가는 장차 구하지 못할 위경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세상에 사는 사람으로 하여금 근심이라고 하였다.
취해서 사는 사람과 그것을 근심하는 사람 두 사람이 현재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 근심 되시는가?
나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근심인가,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은가?
나 돈이 없어서 취할 바 없고,
더 취하고 싶은데 그 물질문명을 내가 더 갖지 못하여 고민이다 생각하는가?
장차 이 사람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 이 걱정을 덜어주어야겠다는 마음인가?
본인과의 대화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대종사님은 이 세상에 대한 병맥을 짚었는데 그것을 다섯가지로 바라보신 것이다.
그 병든 환자의 첫째는 돈의 병이다.
향락과 욕망을 달성하는 데에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세상에 돈이 있으면 어떤 것이든 다 얻고 취할 수 있다.
그 돈 몇 푼 때문에 자존심 다 접고 일하고, 잠 못자고 고생하지 않는가?
그 돈으로 향락과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러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돈을 쓰는 데 있어서 자기만을 위해서 쓰는 사람도 있는 반면,
베풀기 위해서 버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 보니 분명히 과거 100년 전, 50년 전보다 엄청난 경제적 수익이 늘어났다.
지금 현재 앉아계신 여러분들이 나는 돈이 없다, 가난하다고생각하시는 분도 50년 전
지금의 생활을 했다면 상류층 10% 안에 든다.
현재 입고 있는 옷, 먹고 있는 밥, 당시처럼 그렇게 하는 사람 별로 없었다.
다 그렇게 살았었다.
내가 광주에서 모신 교구장님은 초기 교단에서 살면서 돈이 없으니 불을 때지 않고 살았다.
그래서 체질이 바뀌어서 겨울에도 선풍기를 틀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내가 광주교당을 갔더니 교당에 보일러를 안 틀고 사는 것이다.
과거에 우리 교무님들이 사는 것은 더 큰 것을 위해서 고생하셨는데
보통 사람들의 고생은 자기 몸 하나 잘 건사하기 위한 것이다. 고생의 질이 다르다.
돈을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이 벌고 사는데, 그렇다면 더 행복해야 맞지 않는가?
그리고 가족과 형제간에 더 우애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사실 어떤가?
과거에 수몰된 곳에 주천교당이라는 곳이 있다.
그랬더니 그 때 풍부하던 인심이, 보상금을 타 먹으려고 형제간에
재판을 벌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나라에서 돈을 빼앗아가서 그런다면 모르겠는데,
오히려 돈을 새로 주어서 형제간에 칼로 난도질하니 그것이 무엇인가?
우리 대통령이 경제 경제 하여 경제만 살면 우리 국민들이 행복해질 것 같지만,
나는 정말로 대종사님이 말씀하신 정신 수양력, 사리연구력, 취사력이 없다면
오히려 돈에 의해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돈이 나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돈은 무죄이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을 통계를 뽑아보았더니 당첨된 사람이 오히려 이전보다 더 불행되었다고 한다.
여러분들 주택복권에 당첨되면 그 중에 50%는 교당에 낸다 어쩐다 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래보라, 오히려 교당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형제간, 친구들, 돈 주라 할까봐 만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마음에 힘이 없기 때문이다.
행복은 기본적인 돈이 없으면 안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돈을 이용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힘이 없다면 오히려 돈이 나도 불행하게, 주위 사람도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그러나 절대적 가난이 있다면 그 또한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 대종사님께서는 돈을 더 잘 버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은행에 다니는 법해 교우가 전화왔는데,
자기가 몇 사람을 모아놓을 테니 강의를 해 달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일년 내 이직률이 참으로 높다는 것이다.
연봉이 참으로 센데도 그런 이유는, 참고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친구들 사이에서는 늦기도 하고 약속을 어기기도 한다.
그러나 직장에서는 그것이 아니다. 지금 한 시간 걸려서 할 일을 1년만 지나면 30분 걸려서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사이를 못 참아서 그만두는 것이다.
수양력 연구력 취사력이 있다면 돈이 있을 수록 좋겠지만, 그것이 없다면 더 강급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둘째는 원망의 병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사시는가?
원망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심에서 나온다.
부모가 있고 사은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면서 불만 투성이이다.
왜 그러한가? 그것도 알고 보면 욕심이다. 왜 나는 더 가지지 못하였을까?
왜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불편할까
이것은 두가지이다.
첫째는 인과의 이치를 몰라서 그러하다.
왜 내가 이런 부모와 가정을 만났고, 머리와 인물이 이렇고 가난하고 성격이 이런지, 성격이 이런지..
이것은 결국 인과를 말하는 것이다. 인과를 알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나의 근원적인 은혜이다.
아무리 부모가 나를 다른 형제보다 사랑한다고 하여도, 그 존재 자체로서의 절대적 은혜이다.
왜 그러한가? 부모가 없다면 나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에도 세가지가 있다.
하나는 낳아주신 부모님이요
둘째는 길러주신 부모님이요
셋째는 가르쳐주신 부모님이다.
그런데 이 세가지 부모님도 모를 뿐 아니라, 왜 우리 부모님은 그런 것인지를 의심한다.
나도 날을 새며 운 적이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교보문고에 갔는데 어느 부유한 가족이 쇼핑을 하러 온 여유로운 모습을 목격하고
부러워서 아침까지 울었다. 그것은 그 때까지 내가 가장 원하던 이상적인 모습 중 하나였다.
여러분 대리만족이라는 것 있지 않은가.
이번에 나훈아가 잠적하였다고 해서 말이 무성했다.
사람들이 나훈아 같이 멋진 사람이 어떤 흠집이 있다고 하면
대중들은 상대적인 쾌감을 느껴서 소문들이 착착착 퍼져나간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아들이 죽어서, 아무리 위로해 주어도 위로가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 아들이 죽었다는 소리를 들으니
한편으로는 안되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웃음이 지어지더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 위안, 상대적 비교 속에서 살고 있다.
원망은 절대를 뛰어넘어 상대적 비교이다. 한량없는 은혜에 대해서 우리들은 알지 못한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여러분들은 왜 좋아하는가?
여러분들은 상대적 우위감을 느끼면서 기뻐하는 것이다. 양면성이 있다.
내 안에 침잠하는 즐거움, 충만한 선 시간을 갖지 못하는 사람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상대적 위안을 느낀다.
우리는 0.0001초도 사은의 은혜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천지를 대할 때, 과연 근원적 부처님으로서 천지의 은혜로 대하는가?
아니면 천지를 너무나 우습게 아는가?
부모님께 가깝다고 함부로 해 버리는가?
오전에 누가 와서 나에게 상담을 하는데 가슴이 아프더라.
자기 어머니가 암에 걸렸는데 수술하지 말라고 딸들이 작당하였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어떻게 알 것인가. 그것이 이기적인 사고이다. 얼마나 이기적인가.
셋째는 의뢰의 병이다.
물론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면서 산다.
그러나 갈수록, 머리는 똑똑하고 옷은 잘입고 다니는데 갈수록 의뢰의 병이 심해진다.
세상에 학교 숙제까지 챙겨주더라.
그것이 자식을 죽이는 일이다.
교당에 여기저기 다녀보면 마음 아픈 경우가 있다.
기쁜 경우는 대종사님 법을 통해서 역량을 터져서 사회에서도 좋은 일을 해나가는 경우다.
어떤 사람은 원불교를 다니는데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뿐이어서...
원불교에서는 부자들도 많이 다녔는데, 어떤 사람은 잘 되었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되었다.
그런데 잘 못살게 된 경우는, 잘 사니까 자식에게 철저하게 못한 경우이다.
자식에게 자력양성을 가르치지 못하여 문제가 되었다.
그물을 짜고 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어야지,
고기만 물어다 주니, 나중에는 혼자만 문제가 아니라 부모님까지 비참하게 만들어버렸다.
그것을 보고 나는 그것도 당신이 짓고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왜냐, 대종사님께서 밝혀주신 법을 자식에게 적용하지 않으니 결국 자기가 받게 되는 것이다.
넷째는 배우지 않는 병이다.
사람의 인격은 배우는 데 있다.
대종사님은 시대에 따라 학업에 종사하여 학업을 준비하라고 하였다. 즉 배우라는 것이다.
보면 참으로 묘한 것이, 지식이 있는 사람일 수록 배우려고 하고,
지식이 없는 사람일수록 안 배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갑갑한 일이다.
있는 사람은 더 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속에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돈 쓰는 재미도 재미이지만,
스승님 슬하에서 까닭있는 공부를 해 나가면 지혜가 툭툭 터져나가는 그 맛
그 중에서 참 나에 대한 것, 이 세상의 이치에 대한 것
얼마나 행복한가.
그러나 이 핑계 저 핑계...
물질문명에 취하여서..
여러분 젊을 때 운동하고 놀기 좋지만
그것만 좋은 것이 아니다.
젊을 때 공부하기 좋다.
젋을 때 대소유무에 대해 알면 그 사람은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우리가 인연이 없고 지혜가 없어 어긋난 사람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어찌 다행 대종사님이 알려주신 대소유무와 시비이해의 이치를 알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 어떤 문제라도 갖고오라고 할 수 있따.
탄허 스님이라고 유명한 분이 계시다. 그 분들이 고려대 교수들 보고 어떤 것이라도 물어보라고 하였다.
숭산 스님이 하버드 안에서 어떤 것이라도 물어보라고 하였다.
어떤 것?이 세상에 아무리 어떤 것이 많다 하더라도 결국 대소유무와 시비이해이다.
그것을 확실하게 가늠잡은 사람은 과연 어떤 것이라도 물어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모르면서 오직 주관적 판단의 이해 속에 매몰되어서
내가 편한 것만 찾아서 그것만 찾아서 다는 사람은? 객관적 시비는 따지지 않는 사람은?
그 시비의 기준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은?
필요한 지식은 몸을 굽혀서라도 얻으라고 하였다.
자존심이 있어서...........
대종사님 당대에 팔타원님이 춘원을 만나라고 권하여 드렸으나 대종사님은 그러지 않았다.
춘원은 자기가 잘났다는 상이 있으므로 부처님을 만나도 마음을 열지 않으리라는 것을
대종사님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능력으로도 안되는 사람은 자기가 마음을 닫은 사람이다.
자기가 잘났다는 아상이 꽉 잡혀있으니 배우려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배움의 기쁨이라는 것이 참으로 행복한 것이다.
사람이 재미를 추구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다양한 면이 있다.
한 재미가 배움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전에 의해서 배우는 기쁨이라는 것은...
나는 출가하기 전 교전을 6번인가 읽고 상주선원에 갔었다.
그런데 이후 교무님이 앞에서 법문을 하시는데 가슴 속에서 기쁨의 눈물이 폭포수같이 쏟아지더라.
법문을 들으니 너무나 좋더라. 이것이 바로 청법삼매라는 것이다.
대종사님은 이 법을 너희들이 알면 칠일간 통곡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 통곡은 무슨 통곡인가.
가장 빨리 진급하는 길은 스승을 만나서 배움의 길로 들어가는 것이다.
다섯째는 가르칠 줄 모르는 병이다.
가르치는 것이 가장 빨리 배우는 길이다.
유지현 교우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영어회화반 팀장을 하면서 고생은 하지만 오히려 자기가 배우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가르치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선명하게 해 준다. 그리고 질문을 통해서 나도 공부한다.
많은 사람들이 봉사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을 통해 내가 얻는 것도 있다.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여기 어린이, 학생도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라.
얼마나 더 좋은가?
나중에 나는 돈을 더 벌어서 공도자가 되어서 보은하리라?
우리는 신앙과 수행이 동시오,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 동시이다.
윈윈으로 서로 도움이 된다. 잘 가르치는 것이 잘 배우고, 잘 배운 것이 잘 가르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유능한 CEO는 자기같은 유능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잘 가르치는 것이다.
여러분 내가 교당가니 너무나 좋다, 하는 것으로 끝나면 되겠는가?
내 주위 인연을 잘 가르쳐야 한다.
입교연원으로 교화하면서 내 주변 사람들이 엄청나게 선명해 진다.
그러면서 교무님, 단장님의 마음도 이해하게 된다. 해봐야 아는 것이다.
어중간히 자기가 조금 안다고 아는 척해서는 안된다.
여섯번째는 공익심이 없는 병이다.
은산철벽같이 굳어진 개인주의.
봉사활동 가려고 하면 어디 너의 것도 못챙기면서 거기에 간다고 하면서
못가게 하는 경우가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있었다.
그리고 나서 겨우 봉사한다고 하는 것이, 목에 힘주려고 넘치니까 남은 것 찌끄려주는 것인 경우가 많다.
그것 아닌 일원상의 원리, 하나에 바탕한 공익심이어야 한다.
조금 마음을 냈더라도 개인 문제 하나가 생기면 접어버리는 것은 일원상에 바탕한 공익심이 아니다.
그것이 바탕이 안된 나의 방황과 자존심, 여건과 의무감으로 공익심을 내면 그것은 곤란해진다.
법문에도 사람이 복을 받는 내역이 정확히 나와있다.
일요일에 새벽에 한번씩 단장중앙단회를 한다.
일요일 새벽이면 특히나 아무일 없을 시간이기에 잡았다.
그런데 그 시간에도 못 나온다면 한마디로 공심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하겠다. 그런데 나는 내 입장만 챙기고 있다...........
챙김을 받는 사람인가 챙겨주는 사람인가....는 것을 한번 보시기 바란다.
여러 가지 병들은 나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생각해 주시기 바란다.
복을 지을 때, 어떤 사람은 내가 결정한 것만 복짓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때로는 다른 사람의 권선에 의해 복짓기도 한다. 사실은 그것이 더 많디고 하다.
교당에 돈을 모으려고 할 때, 옆에 땅이 있으면,
많은 요인들이 “그 땅을 팔아서 지으세요”라고 한다고 한다.
그것은 공심이 아니다. 그리고 많은 교도들이, 교무님 입에서 돈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미리 조치해 주는 사람은 항마위 출가위라고 할 것이다.
오늘 설법을 듣고 단지 “오늘 길게 하네” 이런 생각만 한 사람은 배울 줄 모르는 병에 걸린 것이다.
이어서..
□ 겨울훈련 홍보를 위한 문화부의 공연
첫댓글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것도 "공심"이었군요 명선님의 "공심" 감사합니다
^^ 기수제 교우님도 이렇게 답글달아주시고 읽어주시는 공심 감사드려요~^^
우리 명선이 착하다 착하도다 겁나 착허다...
교무님, 그냥 혼내주세용 -ㅂ-a;;;
우와~~울 교무님 이렇게도 칭찬 해 주시네!!!부럽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