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충무동에서 내려 옛이름인 새벽시장을 한바퀴 둘러본 뒤 자갈치시장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새벽시장은 내가 처음 결혼하여 살았던 토성동에서 500미터 이내에 있었다.
당시에 나는 벌레잡이 새처럼 이른 새벽에 일어나 새벽시장을 한바퀴 돌았고, 퇴근 후에는 남포동에서 차를 내려 자갈치시장 가판대를 기웃거리며 집으로 돌아왔었다. 말하자면 흡사 시장통을 배회하는 장똘뱅이 흉내를 내고 살았었다. 그렇다고 값싸고 품질좋은 그 무엇을 탐하고자함도 아니었다. 당시엔 기분만으로도 충분히 배부른 시절 이었으니까.
다시 오늘로 돌아와서...자갈치시장 입구에 들어선지 얼마지 않아 점심시간이 되어 근처의 작은 식당으로 향했다. 내가 좋아하는 돼지국밥은 메뉴에 없어 부득이 그와 사촌간이며 면식이 있는 선지국밥을 시켰다. 주인장이 내려놓는 식탁위의 그릇엔 수북하게 국밥의 양이 많았다. 식사만큼은 양이 많은 것을 마다않는 식성인 나로서는 흐뭇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주인 할머니(이럴 경우 아주머니라고 해야하나...하여간)가 다가 오더니 더 주겠노라고 하였다. 나는 양이 많다며(실제 많으니까) 사양을 하였더니, 조금 뒤 돼지껍질 구은 것을 한접시 가져다 주었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행여 허름한 복장에 작은 가방을 멘 나에게서 측은지심이 든건 아닐까? 아무튼 아침도 그른탓에 감사한 마음으로 잽싸게 먹어치웠다. 이럴땐 나는 가끔 선달님의 노래가 생각난다.(술한잔에 시 한수로 떠나가는...)
배를 채우고 일어서며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 각박한 세상에 내게 베푼 인심이다. 이참에 간판을 사진찍어 나의 글창고에다 보관할 요량으로 계산을 하고 간판을 올려 보았더니 어라! 어릴적에 많이도 보았던 글자였다. 나는 주인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나와는 산이 서로를 경계삼고 있었다. 내친김에 물은 나이도 공교롭게 나와 동갑이라.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딸이 재미있는 듯 하는 말 "엄마 이제 블로그에 나오겠네"하며 거든다.
까마귀도 고향 것이 정겹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배불리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들이에 나섰다. 가시지 않은 괜찮은 기분에 아까는 모른체 그냥 지나쳤던 길바닦을 기며 구걸하는 장애인에게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건넸다.
주변의 시선들을 느꼈다. 뭐 좀 그게 어색한가? 그래도 쪽팔리지 않음을 느끼며 나도 드디어 그 1일1선 이란걸 해보는 보람찬 하루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늘따라 더없이 맑게 느껴졌다.
가판대에 놓인 수많은 고기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예전의 그 활기찬 모습은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삶은 여전하다. 내가 이곳에서 자주 먹었던 음식은 꼼장어였고, 그 다음으로 생선구이였었다.
가설시장 뒤편에선 많은 사람들이 고등어 낚시를 하곤 하였는데 지금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하는 수없이 새로지은 자갈치시장 옥상 전망대로 올라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고, 푸른 바다는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영도대교 아래엔 여기저기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뭔 고기가 잡힐까마는 아마도 그들 역시 세월을 낚는게 아닌가 여겨졌다. 3부두에는 해양대와 제주대의 해양 실습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그중 한바다호는 이름이 바뀌지 않았다면 아마도 40년이 넘은 선박이다.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곳을 다녔어도 오늘처럼 부두를 거쳐 올라가 보기는 처음이다. 3부두, 5부두 그리고 월남전 당시 파병이 있었던 부두까지도 갔었지만, 전구역을 훝어보기는 처음이란 이야기다. 북항건설의 현장에는 여기저기 부산항의 예모습 흔적과 사진들이 남아있다.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부근엔 어마어마하게 큰 크루즈선도 있었고, 하여간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관경들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범일동에서 나의 바다관광은 끝이 났고, 아직은 존재하는 오래된 시가지에서 길을 찾아 헤매기도 하며 교통부를 거쳐 서면으로 걸음을 재촉하여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첫댓글 용두산에레지,잘있거라 부산항,,저에 18번 들입니다 김해에 살림처를 두고 주로 지하철 부산 산보를 즐기시네요
아마 김해 이사한 것도 부산 나들이?를 염두에 둔듯 합니다 어디 꼼재기를 대다수 싫어할 연배인데 ㅋ 아무래도
타고난 방랑벽이 있으신가 봅니다~~
전에 심심해서 누굴 만났더니 노인복지센터에서 시간 보내자고 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내 스타일이 아니라, 혼자 생각하다 이길로 계속 나가네요.
나가면 네댓시간 걷고 힘빠지면 하루 해가 저무는 것도 괜찮아요. 언제까지 가능할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