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업계에 '감산(減産) 도미노'가 이어지고 있다.
GM대우·르노삼성이 지난달 감산을 시작했고,
현대·기아차는 이달부터 20%가량 감산을 시작했다. 내년 감산 폭은 더 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출 비중이 큰 국내 자동차 업계의 감산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감산이 재고 감소나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위기 때일수록 완성차 기업과 협력 업체들이 긴밀하게 공조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는 양자를 잇는 연결 고리가 취약해 협력 업체들의 붕괴 위험만 높인다는 지적도 있다.
◆현대·기아차 "감산이 재고 감소로 이어지지 않아"현대·기아차는 감산을 해도 재고가 줄지 않는 구조적인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잘 팔리는 차종의 생산은 빨리 늘리고 안 팔리는 차종 생산은 빨리 줄여야 하는데, 노조가 작업 변경에 대해 동의해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구조다.
공장별 생산 인력의 변경이 어려운 것도 문제다. 잘 팔리는 차종의 생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공장 간의 인력 이동이 자유로워야 하지만, 각 공장에 있는 노조들의 이해 관계가 맞서면 여간 해서 해결이 안 된다. 최근 기아차가 대형차만 생산하던 소하리 공장에서 소형차인 프라이드도 생산하기로 노사가 합의했지만, 갈수록 격화되는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일본업체, 공장별 생산 최적화로 위기극복 나서
도요타·혼다 등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미국 시장의 수요를 중심으로 기민하게 생산 차종을 변경,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도요타는 SUV(지프형차)차량인 하이랜더를 생산할 예정이던 미국 미시시피 공장 생산 라인을 하이브리드카인 프리우스용으로 개조하고 있다. 혼다는 미국의 소형차 수요 증가에 맞춰 인디애나 공장에서 준중형차인 시빅 생산을 확대했다. 캐나다의 픽업 트럭(리지라인) 공장에서도 내년부터 시빅을 생산한다.
도요타는 같은 차종을 국내 또는 국내외 공장끼리 동시에 생산하는 '브리지(bridge·연결) 생산 시스템'을 갖췄다. 어느 차종의 수요가 늘거나 줄면 각 공장별 생산량을 하루 단위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재고를 최소한으로 유지할 수 있다. 혼다는 일본 공장과 해외 공장의 생산차종을 한달 만에 완전히 교체하는 '초스피드 툴링(tooling·생산에 필요한 설비 변경)' 실력을 자랑한다. 픽업 트럭 공장에서 소형세단을 생산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전세계 혼다 공장의 설비를 표준화시켜 각 지역별 자동차 생산량을 한 개 공장에서 조절하듯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외국계 자동차회사의 한 고위임원은 "혼다는 국내외 공장 간 생산 차종 변경이 자유로운 것은 물론 일본 공장의 숙련 생산직 근로자가 전세계를 돌며 지원을 한다"며 "국내 공장끼리 생산 차종 변경은 고사하고 인력 교환도 안 되는 현대·기아차와는 비교가 무의미하다"라고 말했다.
◆완성차·협력 업체 힘 합쳐야
완성차 업계들이 본격 감산에 들어감에 따라 협력업체의 구조조정이 잇따를 전망이다. 현대차의 주력 협력 업체인 덕양산업은 29일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울산에 있는 1차 협력업체 가운데 처음이다. 하지만 노조가 크게 반발하고 있어 구조 조정 과정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협력업체들은 완성차 업계가 협력업체들의 구조조정에 대해 '각자 알아서 하라'는 자세로 일관,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완성차 업체가 먼저 얼마나 어려운지를 밝히고, 협력업체들과 함께 하는 구조 개편을 통해 생산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완성차 업체의 경우 노사협력을 통해 일본과 경쟁 가능한 수준으로 생산 유연성을 높이지 않으면 , 위기 상황 이후 벌어질 판매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가톨릭대 김기찬 교수는 "이번 위기에서 자동차업계가 법과 원칙이 존중되는 노사관계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