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콩, 맹호부대, 월남 쌀, 아오자이, 공산화 ... 중.고등학교 때 내가 알고 있었던 베트남은 딱 그 정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한다발의 삐라와 신문 감추어진 가방을 메고.." 대학에 들어가서 '사이공의 흰옷'이라는 노래도 부르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다시 공부하게 되면서 제주4.3을 제대로 알게 되었고, 베트남 전쟁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도이모이, '인민의 아버지' 호치민, 소설 '무기의 그늘',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쌀국수 ... 나중에는 그냥 그렇게 베트남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겨레21에 실린 구수정 선생님(당시 특파원)의 글을 읽으면서 미제국주의 용병이 되어 베트남에서 저질렀던 한국군의 만행이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 조선에서 저질렀던 만행, 제주4.3 때 정부군(군경토벌대)의 민간인 대학살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그리고 참 미안했습니다. 마음으로 용서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얼마 뒤 베트남 작가들과 제주의 작가들이 교류하는 걸 알게 되었고, 이따금 베트남 작가들의 글도 읽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베트남을 꼭 가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저질렀던 잘못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의 베트남을 보고 싶었습니다. 내가 먼저 베트남을 만나고, 베트남 친구들을 사귄 뒤에 제주의 미래세대들이 베트남을 만나고 베트남 미래세대와 친구가 되는 길을 열어주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그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올 10월이면 나는 베트남의 어느 거리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맙을 찾고 구수정 선생님을 만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마을 어느 골목에서 베트남 어린이들과 신나게 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나아가 2014년 1월 어느 즈음 제주의 미래세대들과 함께 베트남을 다시 찾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베트남을 찾을 그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신영복 선생님이 쓴 책 [더불어숲]에 나와있는 베트남 이야기를 다시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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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의 백학
초토 위의 새로운 풀들은 손을 흔들며 백학을 부릅니다
지금은 이름이 바뀌어 호치민이 된 사이공. 오늘은 그 사이공에서 북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길가의 작은 가게에 앉아 있습니다. 가게라고는 하지만 한적한 시골길에 살림집도 딸리지 않은 작은 초가입니다. 간판도 없고 인근에 마을도 없습니다. 키를 넘는 사탕수수밭이 가게를 둘러싸고 있으며, 사탕수수밭 뒤로는 눈 닿는 곳까지 푸른 볏논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한적한 시골길에 누구를 기다리는 가게인지 궁금합니다. 열여덟 살 난 팡티 홍린이 엄마 대신 손님도 없는 가게를 지키고 있습니다.
내가 베트남에 올 때 가장 걱정스러운 것이 당신도 이야기하였습니다만 베트남 사람들의 가슴에 전쟁과 함께 응어리져 있을 '따이한'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에 머무는 일 주일 동안 그들의 표정이나 말에는 단 한번도 그런 응어리를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다행스럽기도 하고 한편 더욱 난감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가슴 속이야 어차피 들여다볼 수 없지만 어쨌든 눈앞에 펼쳐져 있는 드넓은 들판에는 초록의 물결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인류사가 치른 수많은 전쟁 중에서 가장 많은 포탄과 화학무기를 쏟아놓았던 벌판입니다. 석기시대로 되돌려놓았다던 이 벌판에도 어느덧 세월은 흘러 그 초토의 기억도 사라지고 새로운 풀들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이윽고 그 푸른 들판 길에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의 자전거 행렬이 미끄러지듯 나타납니다. 녹색의 들판을 배경으로 흰 아오자이를 바람에 날리며 지나가는 모습은 마치 백학(白鶴)이 푸른 벌판에 날아드는 듯 평화롭습니다. 새로운 풀들이 들판을 덮고 그 들판에서 테어난 새로운 생명들이 백학처럼 날아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평화로운 광경을 눈앞에 두고 나의 심정을 어떻게 간추려야 할지 망연해집니다. 《사이공의 흰 옷》을 읽고 가슴 아파하던 당신의 얼굴을 잊을 수 없으며, 단 한시라도 분단의 세월을 떠날 수 없는 나로서는 백학이 날아가는 베트남의 푸른 들녘은 그 한복판에 앉아 있으면서도 잡을 수 없는 환영(幻影)처럼 멀기만 합니다.
이상한 것은 이때부터 베트남을 떠날 때까지 줄곧 몇 소절의 멜로디를 귀울음처럼 듣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연속극 <모래시계>의 주제가로 당신에게도 귀에 익은 '백학(Crane)의 노래'입니다. 결코 음정을 높여 외치는 법 없이 낮고 느린 비소츠키의 목소리에 실려 가슴을 적셔 오던 그 슬픔의 무게로 하여 마냥 아래로 아래로 침하(沈下)하는 심정을 어쩌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팡티 홍린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따라놓은 콜라 한잔을 비우지 못하는 못내 수줍고 순박한 농촌의 어린 소녀들이었습니다. 전쟁 후에 태어난 그들로서는 내가 처음 보는 외국인이라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였지만 그들의 모습에서 전해오는 것은 평화가 과연 어떤 내용을 갖는 것인가, 하는 절절한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백학이 포성에 떨지 않기를 바라는 불안은 소망이었습니다.
내가 이 한적한 시골 가게에 오기 전에 들린 곳은 구치 터널이었습니다. 구치 터널은 호치민 루트와 사이공을 연결하는 전략 지점에 있는 지하 요새입니다. 구치 마을 사람들이 반 프랑스 항쟁의 거점으로 건설하기 시작한 이 땅굴은 전쟁을 치르는 동안 총 길이 250km로 17,000여 명이 그 속에서 생활과 전투를 계속할 수 있는 거대한 지하 요새가 되었습니다. 병원, 학교, 공장 등을 두루 갖추고 있는 세기적 대역사(大役事)가 아닐 수 없습니다.
메콩 삼각주의 잘디잔 점토질 땅은 터널을 뚫어 흙에 바람만 쐬어도 금세 콘크리트를 방불케 할 정도로 단단하게 굳어 버리는 천혜의 토질이었습니다. 안내원을 따라 그 좁고 어두 운 터널을 체험했습니다. 이곳을 '청동의 요새' '강철의 땅'이라고 부르는 까닭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청동과 강철이라는 수사는 지하 터널의 견고함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호미와 삼태기만으로 이 대역사를 이루어낸 베트남 사람들의 의지를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한국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강인한 세 민족(Strongest Three)의 하나로 불리는 베트남 사람들의 일면을 느끼게 됩니다. 바람에 날리는 아오자이의 가냘픈 서정도 그렇습니다만 결코 강골이라 할 수 없는 베트남인들의 몸 어디에 그러한 강인함이 도사리고 있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호치민 시에 도착한 첫날 나는 참으로 납득할 수 없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탄손냐트 공항을 출발해 저녁 아홉시가 넘어서 도착한 호치민 시내는 뜻밖에도 마치 아침 출근 시간으로 착각할 정도로 수많은 오토바이와 자전거 행렬이 도로에 가득히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무슨 축제일인가를 물었습니다. 이러한 광경은 호치민 시내의 일상적인 여름 밤 풍경이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주거가 협소하고 날씨도 더워 바깥이 한결 시원하겠지만 인도나 네팔, 그리고 유럽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더운 여름밤을 맞고 있는 방식과 비교해 보면 참으로 판이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길가에 앉아서 부채질로 더위를 쫓지 않고 이처럼 어딘가로 사뭇 달려가고 있는 이 역동성이 바로 베트남의 강인함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베트남의 역동성은 이러한 여름 밤의 풍경에서만이 아니라 그들의 높은 향학열에서 확인된다고 하였습니다. 개방 정책 때문이기도 하지만 젊은이들의 외국어에 대한 관심이나 새로운 분야에 대한 관심은 놀랄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베트남을 일컬어 '자전거 위의 호랑이'라고 하는 말을 실감하였습니다.
베트남은 푸른 들녘에 돌아온 백학과 자전거 위의 호랑이가 공존하는 나라입니다. 그들은 이제 억척같은 과거를 씻고 다시 어디를 향해 나아갈 지 알 수 없습니다. 1세기가 넘는 장구한 세월을 반식민지 투쟁과 전쟁의 포연 속에서 살아온 그들이 지금부터 모색하는 길이 어떤 것일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겪어온 혹독한 과거의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물론이며 비슷한 과거를 가진 나라에게도 진정 새롭고 평화로운 도정을 보여주기 바랄 뿐입니다.
베트남에서는 귀울음처럼 비소츠키의 노래가 계속해서 들려옵니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병사들은
저마다 한 마리 백학이 되었구나.
……
백학의 무리와 함께 날이 밝으면
나는 땅위에 남아 있는 당신들을 모두 불러서
새들을 따라 푸른 안개 속으로 날아가리라.
첫댓글 <더불어 숲>에서 읽었던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오래간만에 다시 읽게 되었네요. 저희 <아맙> 사무실은 베트남 호치민시에 있습니다. 10월에 호치민시에 오신다면 만나뵐 수도 있겠네요. 그때는 아마도 우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지 아닐까 싶습니다. 올려주신 글 잘 봤습니다. 저는 <아맙>에서 공정여행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권현우'라고 합니다.
권현우 선생님, 답글 고맙습니다. 구수정 선생님에게는 페북을 통해 미리 연락을 드렸습니다. 10월, 호치민에서 꼭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