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는 직무정지 문제만 다뤄 '우리법연구회' 만들었던 박시환 대법관이 주심 맡아
헌법재판소는 이광재 강원도지사의 직무를 정지시킨 지방자치법 조항이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나 위헌 소지를 안고 있다고 판단했다. 문제의 지방자치법 111조 1항 3호는 지방자치단체장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이라도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이 조항이 '형사사건 피고인은 확정 판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헌법 제27조 4항에 위배된다고 본 것이다.◆사실상 위헌, 즉각 법 효력 정지
헌재는 이 조항을 헌법 불합치로 결정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위헌과 마찬가지의 조치를 했다. 통상 헌법 불합치는 법률이 헌법에 배치되지만 즉각 위헌 선고를 해 실효(失效)시킬 경우 생길 수 있는 법적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우려해 일정 시한(時限) 동안은 유효하도록 놔둔 뒤 시한이 경과하면 실효시키는 쪽으로 적용한다.
- ▲ 두달만에 사무실로. 2일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이광재 강원도지사의 직무정지가 두 달 만에 풀렸다. 강원도청 집무실을 찾은 이 지사가 머리를 만지며 머쓱하게 웃고있다. /연합뉴스
작년 9월 집시법 야간 옥외 집회 금지조항을 헌법 불합치로 선고하면서 올 6월까지는 해당 조항을 그대로 놔둔 것이 이런 사례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헌재는 지방자치법 조항을 헌법 불합치로 결정하면서도 해당 조항의 적용을 중지시킴으로써 사실상 위헌과 같은 효과를 부여했다.
이는 우선 이번 결정이 사실상 위헌 결정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위헌 의견 5명에 헌법 불합치 의견이 1명이어서 위헌을 선고할 수 있는 정족수인 재판관 6명에 미달했으나 결정 내용을 뜯어보면 '이광재 지사 케이스'는 위헌 의견이 6명이다.
재직 중 비리가 아닌 재직 전 범죄로 기소된 이 지사는 "해당 조항은 합헌과 위헌 부분이 섞여 있다"며 헌법 불합치 의견을 낸 조대현 재판관이 '합헌 부분'으로 본 '선거법 위반'또는 '재직 중 범죄로 기소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헌재는 지난 2005년에는 이 조항에 대해 4(위헌) 대 4(합헌) 1(각하)로 합헌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 당시에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4명은 직무 정지를 당하는 지자체장의 공무담임권이나 무죄추정원칙 등 개인적 법익 침해 소지가 크다고 했지만 합헌 의견을 낸 4명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는 헌법 제37조 2항을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재판관 9명 가운데 이공현 재판관(합헌 의견)을 뺀 8명은 교체됐다.
◆도지사 임기는 대법원 손에
이 지사는 도지사로 일할 수 있게 됐지만 4년인 그의 임기가 얼마가 될지는 대법원의 판결에 달려 있다. 도지사 직무 정지문제만 다룬 헌재 사건과 대법원이 심리하고 있는 '박연차 게이트' 연루 혐의는 완전히 별개이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정대근 전 농협회장에게서 1억1000여만원을 받은 혐의가 2심까지 인정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지난 6월 중순 이 지사가 상고함에 따라 사건을 맡고 있는데, 대법원이 2심 결과를 그대로 확정하면 이 지사의 도지사직은 그것으로 끝(당선 무효)이다.
대법원은 그러나 상고가 접수된 지 2개월이 넘도록 본격적인 심리에 착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 재판에서 선거사건을 제외한 형사사건의 재판을 언제까지 끝내야 한다는 제한 규정은 없다. 이 지사 사건 주심은 개혁 성향의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를 만든 박시환 대법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