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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의:옛사람이 이르시되 “三乘(성문, 연각, 보살) 十二分敎(부처님 일대시교를 형식따라 12로 구분한 것)의 이치를 체인하여 妙함을 얻으면 어느 곳에 다시 ‘祖師西來意’가 있으리오” 하시니 즉 敎外別傳(말 밖에 전한 소식)의 뜻도 역시 이 經(금강경)을 벗어나지 않았으되, 그러나 오히려 말과 글에 끄달려서 숨은 뜻이 드러나지 못하므로 이제 여러 조사스님들께서 실다웁게 맞춰서 드러내시니 말로써 가르친 뜻이 전부 드러날 뿐만 아니라 말 밖의 소식(禪旨)도 또한 여기에 환하게 드러나도다. 어떤 이가 말하길 홀로 전한 뜻(直指人心:禪旨)이 어찌 이 敎(금강경)에 숨어 있는 바라 하겠는가? 하나 黃梅(5조 홍인)와 曹溪(6조 혜능)를 보면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니라.
청봉착어:이 금강경은 교법이니 “교설 가운데 直指人心(말 밖의 소식인 선지)의 도리가 어디 숨어 있겠나”라고 의심할 수 있으나 여러 조사님들이 실다운 진리를 주해로써 드러낸 것은 황매 5조와 6조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다하는 것이다.
涵虛序:我曹가 生于千載之下하여 得遇難遇之寶하여 手接目覩하니 幸莫大焉이라
說 誼:慶遇斯解也도다
함허서:우리가 천년 후(세존 멸 후)에 태어나서 만나기 어려운 보배를 만나게 되어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니 그 다행스러움이 이보다 큼이 없는지라.
설 의:이 解(오가해)를 만난 것을 경사스럽게 생각하도다.
涵虛序:以此로 可以揚佛祖之餘輝며 以此로 可以延君國之洪祚로다
說 誼:?因斯解하여 豁開正眼則法印이 在握하고 化道가 在己니라
함허서:이로써 부처님과 조사의 빛을 드날리며 이로써 임금과 나라의 큰복을 늘일 수 있도다.
설 의:만약 이 五家解로 인하여 正眼이 활짝 열리면 불법의 진리가 손안에 있고 제도의 길이 자기에게 있느니라.
청봉착어:세존께서 입적하신 뒤 천여 년(함허스님 당시)이 지났으나 이 경을 보게되어 이 경 5가해로 인하여 마음을 깨닫게 되면 온 나라가 태평해지리니 크게 기쁘다 하는 것이다.
涵虛序:然此編集이 出於何人之手인대 而不現其名乎인가
說 誼:歎不現夫編者之名也노라
함허서:그러나 이 오가해의 편집이 누구의 손으로부터 나왔길래 그 이름을 나타내지 않았는가.
설 의:저 편집자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음을 탄식하노라.
청봉착어:어째서 이렇게 좋은 “금강경 오가해를 모아 편집한 분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나?” 하고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涵虛序:吾가 喜其爲一佛五祖師之心을 令一轉而便見也이니라
說 誼:一軸之內에 佛燈祖焰이 交光互映하여 可一轉而便見佛祖之心矣니 此所 以爲喜也니라
함허서:내가 기뻐하는 것은 한 부처님과 다섯 분 조사의 마음을 한번 굴려 문득 보도록 하였음이니라.
설 의:한 권의 책 안에 부처님의 법등과 조사의 불빛이 서로 어울려 비추니 가히 한번 읽으면 곧 불조의 마음을 보게 되니, 이것이 기뻐하는 까닭이니라.
청봉착어:이 경을 보고 기뻐하는 것은 부처님(金剛經)의 말씀과 다섯 분의 선지식이 드러낸 주해가 둘 아닌 도리임을 보게 됨으로써 인 것이다.
涵虛序:所嗟는 雖有彈絃之妙指나 未遇賞音之嘉聰이라 由是로 誤聽峨峨하여 作洋洋者가 多矣며
說 誼:三尺古琴에 妙音이 斯在하니 雖有妙音이나 若無妙指면 終不能發이요 縱有妙指하여 善能彈絃이나 聞而賞音者 蓋難이나 賞音者가 難故로 誤聽峨峨하여 作洋洋者가 多矣로다 一部靈文에 妙理斯在하나 雖有妙理나 若非匠手면 孰能抽毫하여 稱實發揚이리오 雖有稱實發揚이라도 目以善解者가 蓋難하니 善解者가 難故로 以淺爲深하고 以深爲淺者가 多矣니 是可歎也로다
함허서:슬퍼하는 바는 비록 거문고를 뜯는 묘한 손가락은 있으나 음을 감상하는 아름다운 귀(지인:도리를 밝게 아는 달인)를 만나지 못했음이라. 이로 인하여 峨峨(산울림 소리)를 잘못 듣고 洋洋(큰 강을 두고 연주한 곡)이라고 하는 자가 많으며,
설 의:석 자의 옛 거문고에 묘음이 거기 있으나 비록 묘한 소리가 있어도 만약 묘한 손가락이 없으면 능히 소리를 내지 못하고, 비록 묘한 손가락이 있어서 거문고를 잘 뜯더라도 듣고도 그 선율을 감상하기 대체로 어려우니, 선율을 감상하기 어려우므로 잘못 들어서 ‘아아’를 ‘양양’이라고들 하는 이가 많도다.
이 한 권의 신령스런 글 가운데 묘한 이치가 있으나 비록 妙理(불법의 진리)가 있어도 만약 장인(匠人:명안종사)의 손이 아니면 누가 능히 붓을 들어서 진실에 맞게 드러내리오. 비록 진실에 맞게 드
러냈더라도 그것을 보고 바르게 아는 이(눈 밝은 학인)가 매우 적으니 바르게 아는 이가 드문 고로 얕은 것으로써 깊은 것을 삼고 깊은 것으로써 얕은 것을 삼는 이(삿된 무리)가 많으니, 이것을 탄식함이로다.
청봉착어:이 좋은 경과 오가해가 있어도 이를 보고 통달한 자가 많지 않고 오히려 잘못 오도하는 이들이 많으며 이로 인해 전도된 삿된 소견으로 후학들을 그르침을 개탄하고 있는 것이다.
涵虛序:又於經?에 以僞濫眞하여 乳非城外者가 頗多하니 豈非以去聖愈遠하여 歷傳多手而致然歟리인가
說 誼:眞僞相雜하여 水乳를 難判하니 所以舛訛는 蓋緣傳寫之誤耳니라
함허서:또한 經?(주해)에 함부로 거짓으로 참을 훔쳐 우유가 성밖의 우유(진짜)가 아닌 것(가짜)이 자못 많도다. 성인이 가신지 더욱 멀어져서 많은 손을 거쳐 전해지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설 의:참됨과 그릇됨이 서로 섞여서 물과 우유를 가리기 어렵게 되었으니, 이그러지고 잘못된 까닭은 대체로 전하고 베끼는 과정에서 잘못이 있게 된 것이니라.
청봉착어:서로 전하고 베끼고 번역하고 재편집하고 하는 과정에서 첨삭되어 참과 거짓이 전도되어 오류를 범해왔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涵虛序:夫聖言之所以傳之於後之世也는가 唯文不能設하여 空義不獨傳이니 文義相資하여 方成妙唱하여야 作天下古今之龜鑑하여 開世與出世之眼目이거니와 若義有言肴訛하고 文有錯誤하면 則非唯不能開人眼目이니 亦令誤解하여 碍正知見하리니
說 誼:文字는 現道之具也며 導人之方也니 須文義相資하여 而血脈이 貫通하고 精審詳密이 備焉하여 而脫衍倒誤가 未嘗雜於其間然後에 能使人開解하여 得爲萬世之龜鑑也니라 不爾則非唯不能開人眼目이니 反爲惑人之具也니라
함허서:대체로 성인의 말씀을 후세에 전하는데 있어서는 오직 글만으로는 능히 베풀지 못해서 공의 뜻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게 되니, 글과 뜻이 서로 어울려 바야흐로 묘한 소리를 이루어야, 천하고금의 귀감이 되어 세간과 출세간의 안목을 열어 주려니와, 만약 뜻이 잘못되어 있고, 글에 착오가 있으면 오직 사람의 안목을 능히 열어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한 잘못 알게 하여서 바른 지견을 막게 하리니,
설 의:문자는 道를 나타내는 기구이며 사람을 인도하는 방편이니 모름지기 글과 뜻이 서로 도와야 혈맥이 관통하고, 정밀하고 자세하며 은밀한 것을 갖추어서, 빠지고 늘이고 거꾸로 되고 잘못된 것이 그 사이에 섞이지 않게 한 후에 사람들에게 알게 해서 길이 귀감이 되게 하여야 되느니라.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바른 눈을 열어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사람을 미혹케 하는 도구가 되느니라.
涵虛序:蓋不爲文字 所惑하고 能體聖人之意者는 誠難得也로다
說 誼:若非哲眼하면 不能不爲言肴 訛의 所惑也니라
함허서:대체로 文字에 미혹하지 않고 능히 성인의 뜻을 체달하는 이는 진실로 얻기 어렵도다.
설 의:만약 눈이 밝지 못하면 잘못되고 그릇된 것에 미혹하게 됨을 면하지 못하느니라.
涵虛序:然이나 若心淸慮靜하여 緣文究義하여 依義尋文하면 則文義之舛錯者가 不隱微毫하여 了然昭著함이 如世病脈이 不能逃於善醫之手니라
說 誼:雖非哲眼이나 若靜心慮하여 以硏之則文義之舛錯者를 可得而詳也리라
함허서:그러나 만약 마음이 맑고 생각이 고요해서 글을 보되 뜻을 깊이 참구하여 뜻에 의지해서 글을 찾으면 곧 글과 뜻의 잘못된 점이 털끝만큼도 숨지 못하여서 확연히 밝게 드러나는 것이
마치 세상의 병의 원인이 훌륭한 의사의 손에서 도망침이 불가능함과 같으니라.
설 의:비록 밝은 눈은 갖추지 못했어도 만약 마음과 생각을 고요히 하여 연구(窮究)하면 글 뜻의 잘못된 곳을 자세히 밝힐 수 있으리라.
청봉착어:깨달으신 분들의 말씀을 글자에 쫓아 해석들을 하고 전하다 보니 그 숨은 깊은 뜻이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여 도리어 삿된 소견을 짓게 되는 것이니 비록 안목이 열리지 못한 이라 할지라도 마음을 고요히 하고 깊이 사유(참구)함으로써 글을 본다면 그 깊은 도리를 깨우칠 수 있다 하는 것이다.
涵虛序:予가 雖非善醫之?나 幸粗識文義하여 略辨眞僞故로 今之經之?之中之或脫或衍或倒或誤者를 簡而出之하여 參之諸本하고 質之諸師하여 以正之하노라 然이나 他本所據外에 未嘗一字一句도 妄自加損於其間이요
說 誼:予以不敏으로 辨眞僞定言肴 訛也나 然이나 此는 以有據依而然이요 非爲臆斷이니라
함허서:내가 비록 훌륭한 의사의 짝은 못되나 다행히 글 뜻을 조금 알아 참과 거짓을 대략 가릴 줄 아는 고로 지금 이 經의 소(疏)가운데 혹 빠졌거나 혹 넘치거나 혹 거꾸로 되거나 혹 잘못된 것들을 가려내어 여러 책을 참고하고 여러 선사들께 물어서 그것을 바로 잡았노라. 그러나 다른 책에 의거한 외엔 일찍이 한 자 한 글귀도 망령되이 마음대로 그 사이에 더하거나 빼지 않았느니라.
설 의:내가 어리석고 둔하나 참됨과 그릇됨을 가리고 잘못되고 그
릇된 것을 바로 잡았으나 그러나 이는 근거가 있음으로써 그러한 것이요, 함부로 단정함이 아니니라.
涵虛序:凡有所疑는 他本無所據處는 據義以決하여 附之卷尾而已로라
說 誼:若以己意로 濫之於部內이면 則或者爲達者之所非矣요 知有闕誤而不寫以傳之則未有今日較正之功也니 後世에 或聞較正之說하고 槪以爲全하여 而不加察焉則佛祖之正意가 幾乎墜地矣리라 故로 不獲已書之於卷尾하여 而傳之也노라
함허서:무릇 의심이 있는 것은 다른 책에서 참고하지 못한 것은 뜻에 의해 해결하여 책 뒤에 붙일 따름이로다.
설 의:만약 자기의 뜻으로써 책 안에 그릇 붙이면 혹 깨달은 자가 그르다 할 것이요, 빠졌거나 잘못된 것이 있음을 알고서도 그것을 써서 전하지 않으면 오늘 바로잡는 수고를 피함이니, 후세에 고쳤다는 말(較正)을 듣고 대체로 완전하다고 여겨서 살피지 않으면 부처와 조사의 바른 뜻이 거의 땅에 떨어지리라. 그러므로 부득이해서 책 끝에 써서 그것을 전하노라.
청봉착어:내가 명안종사라 할 수 없어도(겸허의 표현) 진의를 가릴 정도는 되므로 5가해의 잘못된 점을 가려 바르게 하기로 했는데 이 작업은 근거 있는 다른 책들과 여러 선지식들의 자문을 구해서 한 것이며 소홀히 하지 않았으나 만약 잘못 되었다면 눈 밝은 이들의 지탄을 받을 것이요. 그러나 남의 시비를 두려워해서 잘못된 곳을 보고도 이를 고치지 않는다면 후학들이 교정되었다는 것만 믿고 잘못된 것을 알지 못하고 그대로 믿음으로써 불조의 바른 뜻을 왜곡되게 알까 염려해서 부득이 바르게 고치고 설의를 쓴다는 것이다.
涵虛序:若見盤根錯節之處하고 而抱拙拱手하여 不游刃於其間이면 則豈爲通人達士之所可乎리오 是以로 不揆不才하고 解其結通其碍하며 正未正齊未齊하여 永貽來學하노니 誰知王舍一輪月이 萬古光明長不滅이리오 呵呵他日에 具眼者는 見之하면 當發大笑矣리라
說 誼:解之舛訛가 如盤根錯節하여 結?不通하니 若一向畏人非之하여 知誤而不決焉則其於報佛恩之義에 爲如何哉랴 後世에 必有承訛踵誤하여 妄生穿鑿하여 以求其說之必通者矣리니 夫如是則其不決之蔽 至於使佛祖之言으로 終未免於駁雜之愆也리니 此는 通人達士之所不可也니라 由是로 終不固讓於決焉하여 寫以傳之也노라 夫然後에 一經之義天이 郞曜하여 當年之慧月이 將大明於天下矣리니 孰知夫如是之理乎이오 今吾自知其然而大慶于懷也로다 然이나 此言此說이 如蚊?之鼓太虛也니 達者가 當以是로 爲笑具也리라
함허서:만약 뒤얽힌 뿌리와 엉크러진 마디를 보고도 재주 없다고 팔짱만 끼고 그 사이에 칼날을 놀리지 않는다면 어찌 通達(깨달아 아는 이)한 이의 할 바라 하리오. 이로써 재주 없음을 헤아리지 않고 그 맺힌데를 풀고 막힌 것을 통하게 하며 바르지 못함을 바르게 하고 고르지 못한 것을 고르게 해서 길이 후학들에게 전하노니,
누가 왕사성의 둥근 달(般若智慧)이
만고에 빛나며 영원히 멸하지 않음을 알 것인가
하하, 다른 날에 바른 눈을 갖춘 자가 보면
마땅히 크게 웃을 것이리라.
설 의:이 해석의 잘못된 것이 마치 뒤얽힌 뿌리와 엉크러진 마디와 같아서 맺히고 막혀 통하지 못하니 만약 한결같이 남들의 비난을 두려워해서 잘못됨을 알고도 바로잡지 않으면 부처님의 은혜를 갚게 되겠는가. 후세에 반드시 잘못된 것을 이어받고, 잘못된 것을 따라서 망녕되이 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을 내어서 그 말에 끄달려 통하기를 구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니 이와 같으면 바로잡지 못한 폐해가 부처님과 조사의 말씀으로 하여금 끝내 뒤섞여서 순수하지 못한 허물을 면치 못하는데 이르게 할 것이니 이는 깨달아 아는 이가 할 바가 아니로다. 이러므로 바로잡는데 굳이 사양하지 않고 써서 전하노라. 무릇 그렇게 한 뒤에라야 경의 뜻이 밝게 빛나서 마땅히(석가세존 때의) 지혜의 달이 장차 천하에 크게 밝으리니 누가 이 같은 이치를 알겠는가.
이제 내가 스스로 그러함을 알고 크게 경사스럽게 생각하노라.
그러나 이 말들은 마치 모기와 등에가 허공을 두드리는 것과 같으니 깨달은 이가 마땅히 이것으로써 웃음거리를 삼으리라.
涵虛序:永樂乙未六月日에 涵虛堂衲守伊는 ?手焚香謹序하노라
함허서:永樂 乙未 유월에(1415년) 함허당 납자 守伊가 손 씻고 향 사르고 삼가 序文을 쓰노라.
청봉착어:잘못을 알고도 그대로 두는 것은 깨달은 이의 할 짓이 아니니 이를 바로잡음이 마땅히 해야할 일인 것으로 알아 후학들을 위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정리한다 하였는데, 그렇게 된 연후에야 불조의 바른 뜻이 전해질 것이며 불법이 바르고 밝게 펴질 것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끝으로 겸손하게 이마저도 모기와 등에가 허공을 요동치는 것 같은 작은 일에 불과 하다고 했다.
曹溪 六祖禪師 序
六祖:夫金剛經者는 無相으로 爲宗하고 無住로 爲體하고 妙有로 爲用이라 自從達磨西來로 爲傳此經之意하시어 令人으로 悟理見性케 하시니
說誼:般若靈源이 廓然無諸相하며 曠然無所住하여 空而無在하며 湛而無知라 今此一經이 以此로 爲宗爲體하여 無知而無不知하고 無在而無不在하며 無住而無所不住하고 無相而不?諸相이니 此所以妙有로 爲用也니라 諸佛所證이 蓋證此也시며 諸祖所傳이 蓋傳此也시니 其所以開示人者도 亦以此也니라
육조:무릇 금강경이란 相이 없는 것으로 宗(근본)을 삼고 머무름이 없는 것으로써 體(본체)를 삼으며, 妙有(묘한 있음)로써 用(작용)을 삼으니 달마 스님이 서쪽(印度)에서 오신 후로 이 경의 뜻을 전하시어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고 성품을 보게(見性)하시니
설의:반야의 신령스런 근원이 확 트여서 모든 상이 없고 넓고 커서 머무름이 없으며, 비어서(空) 있는 것이 없어서 맑아 알 수 없도다.
지금의 一經(이 금강경)이 이것으로 宗과 體를 삼아서 아는 것 없으나(無知) 알지 못함도 없고(無不知), 있음이 없으나(無在) 있지 않음도 없으며(無不在), 住함이 없으나 住하지 않는 곳도 없으며, 상이 없으니 모든 상에 걸리지 않으니, 이것이 妙有로써 用을 삼는 까닭이니라. 모든 부처님이 증득하신 것이란 모두 이것을 증득한 것이며, 모든 조사님이 전하신 것도 모두 이것을 전한 것이니, 그로써 사람들에게 열어 보이신 것도 역시 이것이니라.
청봉착어:상이 없어 공적(空寂)한 것이 근본 바탕이요, 한 곳에 치우침이 없이 일체처에 머무름 없이 머무는 것이 그 본체(妙有)요, 묘한 작용(妙用)으로 일체를 나투는 것을 용이라 하셨다.
六祖:?爲世人이 不見自性으로 是以로 立見性之法이나 世人이 若了見眞如本體하면 卽不假立法이니라 此經을 讀誦者가 無數며 稱讚者는 無邊하며 造?及註解가 凡八百餘家로되 所說道理는 各隨所見하니 見雖不同이나 法 卽無二니라 宿植上根者는 一聞便了하나 若無宿慧면 讀誦雖多로되 不悟佛意니 故로 解釋其義하여 庶斷學者疑心하니라 若於此經에 得旨無疑하면 卽不假解說하리라 從上如來所說善法은 爲除凡夫不善之心이니 經是聖人之語라 敎人聞之하고 從凡悟聖하여 永息迷心이니라 此一卷經은 衆生性中에 本有나 不自見者는 但讀誦文字이니 若悟本心하면 始知此經이 不在文字하리라 但能明了自性하면 方信一切諸佛이 從此經出하리라 今恐世人이 身外覓佛하고 向外求經하여 不發內心하며 不持內經하여 故造此訣하여 令諸學者로 持內心經하여 了然自見淸淨佛心이 過於數量하여 不可思議하노라
後之學者가 讀經有疑하면 見此解義하여 疑心이 釋然하면 更不用訣하리라 所冀는 學者는 同見鑛中金性하여 以智慧火로 鎔煉하여 鑛去金存이니라 我釋迦本師가 說金剛經하심은 在舍衛國하시어 因須菩提起問으로 大悲爲說하시니 須菩提가 聞說得悟하고 請佛與法安名하여 令後人으로 依而受持하니라 故로 經에 云하되 佛이 告須菩提하시되 是經은 名爲金剛般若波羅蜜이니 以是名字로 汝當奉持라하시니라 如來所說金剛般若波羅蜜로 與法爲名하신 其意謂何인가 以金剛은 世界之寶라
其性이 猛利하야 能壞諸物하니 金雖至堅이나 ?羊角이 能壞니라 金剛은 喩佛性하고 ?羊角은 喩煩惱니라 金雖堅剛하나 ?羊角이 能碎하고 佛性이 雖堅하나 煩惱能亂하나니 煩惱雖堅하나 般若智가 能破하며 ?羊角이 雖堅하나 賓鐵이 能壞하나니 悟此理者는 了然見性하리라 涅槃經에 云하되 見佛性者는 不名衆生이요 不見佛性이면 是名衆生이라하니라 如來所說金剛喩者는 ?爲世人이 性無堅固하여 口雖誦經이나 光明不生이니 外誦內行하여야 光明齊等하고 內無堅固하면 定慧卽亡하고 口誦心行하여야 定慧均等하리니 是名究竟이니라 金在山中이나 山不知是寶하고 寶亦不知是山이니 何以故인가 爲無性故니라 人則有性하고 取其寶用은 得遇金師하여 斬鑿山破하고 取鑛烹鍊하여 遂成精金하여 隨意使用하여 得免貧苦하나니 四大身中에 佛性도 亦爾하여 身은 喩世界하고 人我는 喩山하고 煩惱는 喩鑛하니라 佛性은 喩金하며 智慧는 喩工匠하고 精進勇猛은 喩斬鑿이니라 身世界中에 有人我山이고 人我山中에 有煩惱鑛하며 煩惱鑛中에 有佛性寶하고 佛性寶中에 有智慧工匠이니 用智慧工匠하여 鑿破人我山하고 見煩惱鑛하여 以覺悟火로 烹鍊하면 見自金剛佛性이 了然明淨이니라 是故로 以金剛으로 爲喩하여 因爲之名也시니 空解不行하면 有名無體요 解義修行하면 名體俱備하니 不修하면 卽凡夫요 修하면 卽同聖智으로 故名金剛也시니라 何名般若인가 是梵語이니 唐言은 智慧니 智者는 不起愚心이요 慧者는 有其方便이니 慧是智體요 智是慧用이니 體若有慧면 用智不愚요 體若無慧면 用愚無智니 ?緣愚癡未悟로 遂假智慧除之也니라 何名波羅蜜인가 唐言은 到彼岸이니 到彼岸者는 離生滅義니 ?緣世人이 性無堅固하여 於一切法上에 有生滅相하여 流浪諸趣하여 未到眞如之地니 ?是此岸이니라 要具大智慧하여 於一切法에서 圓離生滅하면 卽是到彼岸이니라 亦云心迷則此岸이요 心悟則彼岸이며 心邪則此岸이요 心正則彼岸이니 口說心行하면 卽自法身에 有波羅蜜이요 口說心不行하면 卽無波羅蜜也니라 何名爲經인가 經者는 徑也니 是成佛之道路라 凡人이 欲臻斯路이면 應內修般若行하여야 以至究竟이나 如或但能誦說하고 心不依行하면 自心에 卽無經이요 實見實行하면 自心에 卽有經이니 故로 此經을 如來가 號爲金剛般若波羅蜜也라하시니라
육조:다만 세상 사람들이 자기의 성품을 보지 못하므로 見性이라는 법을 말하거니와 세상 사람들이 만약 眞如本體를 깨달아 본다면 법을 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경을 읽고 외우는 자는 수도 없고 칭찬하는 자도 헤아릴 수 없으며 疏를 짓고 註解를 한 사람이 무릇 八백여 인(餘人)이로되 설하는 도리는 각각 자기 소견을 따르니, 그 견해가 비록 같지 않으나 법은 둘이 아니다. 전생에 심은 근기가 높은 사람은 한번 듣고 곧 깨닫거니와 만약 전생에 익힌 지혜가 없으면 읽고 외우기는 비록 많이 해도 부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니, 그러므로 그 뜻을 해석하여서 학자들의 의심을 끊게 하고자 하노라.
만약 이 경에서 뜻을 얻어 의심이 없으면 굳이 이 해설에 의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위로부터 여래께서 설하신 善法(바른법:진리,정법)은 범부의 착하지 못한 마음을 제거하기 위함이니 경은 성인의 말씀이라, 사람들로 하여금 가르침을 듣고 범부가 성인의 깨달음에 이르게 해서 영원히 어두운 마음을 쉬게 하고자 함이신 것이다. 이 한 권의 經은 중생들의 자성가운데 본래 있건만,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것은 다만 문자만을 읽고 외우기 때문이니 만약 본래의 마음을 깨달으면 비로소 이 經이 문자에 있지 않음을 알리라. 다만 능히 자기 성품을 밝게 깨달으면 모든 부처님이 이 경으로부터 쫓아 나오심을 믿게 될 것이다.
요즈음 세상 사람들이 몸밖에서 부처를 찾고 밖을 향해 말씀을 쫓아 구하므로 마음 안에서 드러내지 못하고, 내 안으로 말씀을 얻어 갖지(受持:契合) 못할까 염려되므로 이 구결(口訣)을 지어서 지금 모든 학자들이 안으로 마음의 길로 가져서 淸淨한 佛心을 이치로 생각하는 것을 뛰어넘어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을 명확히 스스로 보게 한 것이다. 후세의 학자들이 經을 읽다가 의심이 있거든 이 解義를 보아서 의심이 풀리면 다시 이 구결(口訣)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바라는 바는 공부하는 사람은 다같이 광석 가운데 있는 금의 성품을 보고 지혜의 불로 녹여서(鎔煉) 잡된 광물을 버리고 金만 있게 해야 한다.
우리 석가본사께서 금강경을 설하심은 사위국에 계실 때 수보리의 물음으로 인하여 대 자비로 설하시니, 수보리가 설하심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님께 법의 이름을 물어 뒷사람들로 하여금 이에 의하여 받아 지니게(受持:契合)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 이르되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이 경은 금강반야바라밀이라 이름하니 이 이름으로써 너희는 마땅히 받들어 가지라”하신 것이다. 여래께서 설하신 금강반야바라밀이라고 법다히 이름하신 그 뜻은 무엇인가? 금강은 이 세계의 보배라, 그 성품은 매우 예리하여 능히 모든 물건을 부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금강이 비록 지극히 견고하나 ?羊角(산양의 뿔)이 능히 부서뜨리니, 금강은 불성에다 비유하고 고양각은 번뇌에 비유한 것이다.
금강이 비록 견고하여 강하나 고양각이 능히 부수고 불성이 비록 견고하나 번뇌가 능히 어지럽히나니 번뇌가 비록 견고하나 반야지혜가 능히 부수며 고양각이 비록 견고해도 검은 쇠 덩이(賓鐵)가 능히 파괴하니, 이 이치를 깨달은 자는 명확히 자성을 깨달을 것이다.
열반경에 이르되 불성을 본(體認:見性) 이는 중생이라 이름하지 않고 불성을 보지 못한 자를 중생이라 하니, 여래가 설하신 금강의 비유는 다만 세상 사람들의 성품이 견고하지 못해서 입으로 비록 경을 외우나 밝은 빛(智慧)이 나지 않음이니, 밖으로 외우고 안으로 행하여야 광명이 함께 고르고, 안으로 견고하지 않으면 정과 혜가 곧 숨어버리며,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여야만 정과 혜가 균등하리라. 이 이름이 구경(원만 성취한 경지)이라 하는 것이다.
금이 산중에 있으나 산은 이 보배를 알지 못하고 보배 또한 이 산을 알지 못하니 무슨 까닭인가 성품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사람은 성품이 있어서 그 보배를 캐서 사용하는 것은 연금사를 만나서 부수고 뚫어 산을 파헤치고 광석을 꺼내어서 녹이고 단련하여 드디어 순금을 얻음으로써 뜻대로 사용하여 가난을 면하게 되는 것 같은 것이다. 四大로 된 몸 가운데 불성도 그러하여 몸은 세계에 비유하고 ‘사람인 나’라고 집착하는 것은 산에 비유하고 번뇌는 광석에 비유하며 불성은 금에 비유하고 지혜는 연금사에 비유하며 용맹정진은 부수고 뚫는데 비유하는 것이다. 몸의 세계 가운데 ‘사람인 나’라는 집착의 산이 있고 人我의 산중에 번뇌의 광물이 있으며 번뇌 광물 중에 불성의 보배가 있고 불성의 보배 중에 지혜의 연금사가 있으니, 지혜의 연금사를 써서 人我의 山을 뚫고 번뇌의 鑛을 발견해서 깨달음의 불로써 녹여 잘 단련하면 자신의 금강불성이 분명히 밝고 깨끗함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금강경에 비유하시어 이름하시니, 공한 것을 알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이름만 있고 實體가 없고 뜻을 알고 행하여 닦으면 이름과 실체가 갖추어지며, 닦지 않으면 범부요 닦으면 곧 성인의 지혜와 같으므로 금강이라 이름하신 것이다.
무엇을 이름하여 반야라 하는가? 이것은 범어이니 당나라 말(中國語)로는 지혜이다. 智는 어리석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음이요 慧는 그 방편(作用)이 있음이니 慧는 智의 體이고, 智는 慧의 用(작용)이니, 體가 만약 慧가 있으면 智를 쓰는데 어리석지 않고 體에 만약 慧가 없으면 어리석음으로 智가 없으니 다만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깨닫지 못하므로 드디어 지혜를 빌려 우치를 제거하게 되는 것이니라.
무엇을 이름하여 바라밀이라 하는가?
중국말로 到彼岸(저 언덕에 이른다)이니 도피안이란 생멸을 여읜다는 뜻이니 다만 세상 사람들의 성품이 견고하지 못하므로 인하여 모든 것에 대해 生滅하는 모습이 있어 諸趣(육도)에 유랑하여 진여의 땅에 이르지 못하므로 이것을 이 언덕(此岸)이라 한다. 긴요한 것은 이 대지혜를 갖추어 일체법에서 원만하게 생멸을 떠나면 곧 저 언덕에 이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어리석으면 차안이고 마음을 깨달으면 피안이며, 마음이 삿되면 차안이고 마음이 바르면 피안이니,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행하면 곧 자기 법신에 바라밀이 있는 것이요,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곧 바라밀이 없는 것이다.
무엇을 이름하여 경(徑)이라 하는 것인가? 경이란 길(徑:지름 길)이니 부처를 이루는 길이다.(이 길로 감으로써 저 언덕에 이름) 범부들이 이 길에 이르고자 하면 마땅히 안으로 반야행을 닦아야 구경에 이르려니와, 이처럼 혹 다만 외우고 말하는 것에만 능하고 마음으로 의지하여 행하지 않으면 자기 마음에 곧 徑(길)이 없음이요, 실답게 보고 실답게 행하면 자기 마음에 곧 경이 있음이니,
그러므로 이 경을 여래께서『금강반야바라밀』이라 이름하신 것이다.
청봉착어:무상(宗), 무주(體)로의 묘유한 것이 묘용(用)을 하는 이것을 깨우치고 전하며 이것을 설법으로 열어 보이는 것이라는 뜻이며 자성은 누구나 다르지 않고 둘 아니나 중생이 무명번뇌로 이를 가려 어리석으나 말과 뜻이 계합되어 지혜가 발현되면 이 자성을 봄으로 번뇌를 걷게 되어 일체종지(一切眞理)를 증오하여 곧 피안인 반야밀에 합일하게 되는 것이 곧 이것이며, 이 길(徑)을 일러주신 것이 경(經)이며 이 길을 금강반야바라밀로써 이름하는 것이다,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