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장난 하는 평론은 가라
1. 작가의 입장
작가가 책을 낼 때, 감사의 글이나 에필로그를 통해 내 놓는 말이 있다. 자신의 작품이 졸작이라는 말과 책을 내놓기에 부끄럽다는 말이 그것이다. 책을 완성하고 난 뒤에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이 이러하다. 혹자는 그런 작품이라면 내지 말면 될 일 아니냐 하기도 하고 독자는 작가의 겸손이라는 쪽으로 받아 들인다. 좀 더 들어가 보자.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통상 1년 이상이 걸리는데 몇 년 동안에 걸쳐 완성되는 작품도 있다. 완성하고 나면 강산이 바뀌었기도 하고 자신의 논지에 대한 배경이 달라져 있을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다고 해서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버리기에는 고통이 크다. 이런 경우 책을 내기에는 민망한 마음도 있으나 버리지 못하고 자식과 같이 애정을 쏟은 작품을 출판하여 숨을 불어 넣는다. 이는 책을 내는 모든 작가들이 끌어 안는 고통이며 모순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죽어라 써도 1년은 훌쩍 넘어가는 것을......
2. 평론의 말장난
평론이라는 이름으로 자신 만이 아는 말을 주절거리며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말장난을 나열하고 평론이라고 내놓는 위인들이 있다. 이런 위인이 심사위원이라는 완장을 차고는 좀 깊이 있게 살펴본 내용의 평론은 논문식이라고 평가절하 하고 평범하게 써 놓은 평론은 산문이라고 평가절하 하는 만용을 부린다.
소설을 평론하려면 적어도 자신의 장편소설 한 권 이상 출간한 이력 정도는 있어야 한다. 자신의 작품도 없는 사람이 대학교수라는 명함으로 소설을 평한 평론을 심사하는 것은 단적으로 말해 월권이다.
3. 뒷맘화 까기
스스로 완장을 찬 평론가가 있고 평론을 책으로 낸 정식 평론가들이 있다. 남의 작품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몇 마디의 사족을 붙인 것을 계기로 평론가라는 스스로의 완장을 차고 행세를 하는 몇이 있다. 내용을 보면 외국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평으로 점철되어 있다. 제목이나 주인공 이름 정도는 영어로 써 주면 좋겠는데 짬뽕으로 써놔서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족을 달고 싶어도 작가나 작품에 대해 인식이 없는데 뭐라고 붙일 수도 없다. 거의 뒷담화 수준으로 써내려간 내용을 보고 있노라면 이게 평론이라고 써놓은 것인지 소감이라고 써놓은 것인지 당췌 구분할 수가 없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4. 평론의 정석
평론이 학문인가? 작품에 대해 자신의 소감을 자신의 생각에 담아서 말하는 평인가?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졸작이라고 스스로를 평하고 있는 판국에 평론가 라는 양반은 이러쿵 저러쿵 각종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말장난에 불과한 단어들을 나열하고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언어 테러이고 작품에 대한 희롱에 불과하다.
남의 자식을 평할 때에도 할 수 있는 한, 좋은 쪽으로 말하는 것이 덕담이다. 그렇지 않으면 욕이다. 작가가 해산하는 고통을 다해 작품을 해산했는데 그에 대해 소질이 없다. 세월만 허비할 뿐이다. 라는 악평을 달아 놓는다면 그 말로 천재 작가를 죽일 수도 있다. 기껏 많아야 20여 줄에 불과한 자신의 소감을 평론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어쭙잖다.
평론은 학문이다. 일정한 틀을 갖춘 정형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라 평가를 해야 하는 문학의 꽃이다. 평론가는 해당 장르에 대해 한 권 이상의 작품을 출판한 이력이 있어야 하고 상당한 학문적 소양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일정한 틀이란 작품 속에 담긴 작가의 생각의 틀, 사상, 표현의 완성도, 이룬 업적 들과 현 작품의 기대효과까지 다루어 주어야 한다. 적어도 A4 용지로 5매 정도는 되어야 정당한 평가가 나올 수 있다.
바라기는 신인을 비롯한 모든 작품에 대해 1개월 안에 평론이 나올 수 있으면 한다. 작품의 속살 만지기 또는 할퀴기 등등의 야릇한 표현으로 희롱하지 말고 작가의 장래를 위해 기도의 손을 하나 더 덮어주는 마음을 담아야 한다. 잘 못 표현된 내용이나 전개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지적해 주고 장래에 대해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않는 덕담으로 선배된 이의 멋을 보여 주는 평론이 되었으면 한다.
"평론"은 죽어가는 인문학을 살릴 수 있는 인공호흡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