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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20230813 오전성경공부 (사무엘상 22:20~
어려움과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때 끔찍한 비극과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하셔야 돼요. 그러한 재앙은 자기 자신에게 직접 임할 수도 있지만 자기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과의 교제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가 깨져있을 때 다윗처럼 어리석고 경솔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유념해야 되고요, 또한 그러한 행동으로 인해서 쓰디쓴 고통과 재앙의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이에요. 이 무렵에 다윗이 시편 52편을 지었습니다. ( 놉 Nob땅의 비극, 도엑을 대상으로 지은 시)
사무엘상 23장 (하렛숲 크일라에 팔레스타인이 쳐들어왔다.)
팔레스타인이 공격했을 때 다윗은 곧바로 사람들을 이끌고 적들과 싸우러 가지 않았어요. 경거망동 안 한 것입니다. 가장 먼저 뭘 한 겁니까? 하나님께 뜻을 구했어요. 삼상 23:2절 보십시오. < 그러므로 다윗이 주께 물어 말씀드리기를 "내가 가서 이 필리스티아 인들을 치리이까?" 하니 주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가서 필리스티아인들을 쳐서 크일라를 구하라." 하시더라. >
자! 다윗은 더 이상 사무엘상 20장, 21장의 그 다윗이 아니에요. 자기 힘으로 일을 타결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20장, 21장의 다윗이 아닌 것입니다. 21장의 가드왕 아키스에 의해서 목숨을 위협받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자신에게 자비를 베프 셔서 목숨을 구해주셨고 또 위기에서 자신을 구출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의 손길을 경험했던 그 다윗은 그 마음의 상태나 그 모습이 달라져있는 거예요.
이번 크일라의 거민들을 구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당연히 자신의 힘이 아니라 뭐가 필요한 거예요?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했겠지요. 자! 그래서 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주님께서 친히 정해주시고 그 모든 길을 인도해 주시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올바른 자세지요. 그래서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통해서 그 뜻을 물은 거예요. 자! 그에 대한 응답으로 가서 구하라는 것이었지요.
자! 그런데 다윗을 따랐던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필리스타인과 싸우러 가는 것을 두려워했어요. 거기 3절 보십시오.
< 그러나 다윗의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하기를 "보소서, 우리가 여기 유다에 있는 것도 무서운데, 우리가 크일라에 가서 필리스티아인들의 군대를 대항하는 것이 얼마나 더하겠나이까? " 하니 > 지금 유다에 있는 것이 왜 무서운 것이지요? 지금 사울이 죽일려고 혈안이 되어 있잖아요. 눈에 보이는 현실만 놓고 보면 이들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에요. 이들이 크일라에 갔을 때 사울이 공격해 오면 진퇴양난에 빠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들이 간과한 게 있어요. 전쟁은 누구의 것이에요? 주님의 것이에요. 전쟁의 승패는 인간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에요. 사람의 수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에요. 적들이 양쪽에서 협공한다 여기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의 승패는 만왕의 왕이요, 군대대장이요, 전사요 용사이신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이지요.
일찍이 다윗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인 골리앗을 직면했을 때 뭐라고 선포했습니까? < 또 이 온 무리는 주께서 칼과 창으로 구원하지 않으심을 알게 되리니, 이는 전쟁이 주의 것이므로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 하니 삼상17:47 > 하나님께서 나더러 가라고 했다면 가는 것이에요. 적들의 수가 얼마든지 관계없이. 왜냐하면 가라고 명령하신 하나님께서는 전쟁의 승리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다윗은 알았기 때문에 움직이려고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 사실을 간과했던 다윗을 따랐던 사람들은 두려워했던 거예요. 안된다는 거지요. 가면은 위험합니다.
4절과 5절에서 다시 묻고 5절에 큰 승리를 거둔다.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어떤 문제든지 하나님께 그 뜻을 구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적들의 손에서 자신의 동족을 구해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너무나 앞서 가지고 무조건 지금 당장 싸우러 가겠다고 경거망동해서도 안되지만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두려움 때문에 싸우러 가는 것을 반대하니까 무조건 싸우러 가는 것을 포기해도 안되는 거예요.
자! 싸우러 갈 것이지 안 갈 것이지 결정은 다윗이 하는 게 아닙니다.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이 하는 것도 아니지요. 그들의 모든 상황을 인도하시고 그들이 싸우는 모든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결정에 달려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면은 가는 것이고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가는 것이지요.
자!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의 인생에서 어떤 문제에 직면해도 마찬가지에요. 그것이 영적인 문제이던지, 물질적인 문제이던지 직장을 구하는 문제이던지, 진로를 결정하는 문제이던지 어떤 사람을 만나는 문제이든지 다 마찬가지에요. 그 문제가 작든지 크든지 간에 그 모든 문제를 주님 앞에 가지고 가서, 주님 제가 이것을 할까요? 말까요? 이것이 가장 첫 번째 질문이 되는거예요. 여러분이 먼저 결정해놓고 저는 갈건데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렇게 질문하면 안되는 거에요.
잠언 3:5,6절에서는 < 네 마음을 다하여 주를 신뢰하고, 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네 모든 길들에서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가 네 길들을 지도하시리라. > 여러분이 이 교회를 선정해서 오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무작정 누구 따라오는 것도 아니지요. 그렇게 온 사람들은요 얼마 안 가서 떨어져 나갑니다. 자기 확신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아! 주님께서 나를 여기로 인도하셨구나. 정말 이 교회가 참된 교회구나!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올바른 성경이구나!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구나!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사역이구나! 이것에 대한 확신이 여러분 개개인에게 있어야 되는 거에요. 물론 처음에는 부모님 따라서 혹은 자녀들 따라서 혹은 친구들 따라서 올 수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이 이곳에 발을 내딛는 순간 여러분 안에는 확신이 있어야 되는 거에요. 아! 주님께서 나를 인도하셨구나! 나를 지도하셨구나! 이 확신이 있어야 되는 거에요.
여러분은 모든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가르침과 지도를 받고 있습니까? 매일매 순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가운데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습니까? 하나님만이 우리의 앞날을 알고 계시며 우리가 걸어가야할 방향과 앞으로 나아가야할 진로와 직업을 정해 주실수가 있어요. 여러분이 결정하는게 아니에요. 비록 우리는 내일 일어날 일을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앞날을 붙들고 계신 분은 누구인지는 확신할 수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서 주님 한분만을 신뢰하고 인생의 모든 길들에서 우리를 자상하게 지도해 주시는 주님을 매순간 매사에 인정할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주님의 도우심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는 인생은 끔찍한 인생이에요. 저는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고난과 어려움이 닦치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잖아요? 또한 그렇게 믿음의 기도로 신뢰하는 가운데 주님의 도우심을 받고 위로도 얻고 피할 길도 발견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지혜도 얻고 하나님의 피난처 안으로 들어가서 편안한 쉽과 안식도 누리지요. 그런데 구원받지 않은 죄인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 길고 지루하게 이어지는 악몽 같은 현실 속에서 도대체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까요? 어떤 참된 위로도 받지 못하고 어떤 보장도 없이 어떻게 그런 위험 천만한 삶을 그들은 살고 있냐는 거예요? 생각만 해도 아찔한 것이지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요 최후의 순간에 직면하면 뭘 합니까? 자살해 버리는 거예요. 무모한 것인지, 무식한 것인지 그야말로 그들은 뜨거운 불길가운데 뛰어드는 불나방들처럼 그 어떤 보장도 없는 삶을 살다가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아무런 소망도 없이 지옥의 불길 가운데로 향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불쌍한 인생이에요. 끔찍한 인생이지요. 비극이에요.
하지만 시편 146:5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해요. < 야곱의 하나님을 자신의 도움으로 삼으며 그 소망을 주 그의 하나님께 두는 자는 행복하도다. > 그랬어요. 행복한 그스도인은 바로 이런 그리스도인이에요.
다윗이 크일라를 구하면서 가장 먼저 했던 일, 먼저 뜻을 구했지요. 그것과 비교해서 이 상황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교훈과 관련한 주목할 사건이 하나 있는데요 재판관기 20:1~11절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미스페로 모인 이유는 당시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에서 한 레위인의 첩이 벨리알의 아들들인 동성연애자들에 의해서 비참하게 욕을 당해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베냐민을 향해 칼을 뺀 보병들의 수가 약 40만이다.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 일을 해결함에 있어 처음부터 하나님께 조언을 구한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들은 한 사람같이 주님께 모여 있었으면서도 주님께 조언을 구하지 않은 것이지요. 아무리 어떤 선한 목적을 위해서 사람들끼리 뭉치고 동맹한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함께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모인 사람의 수가 40만 명 아니 그 이상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예요. 주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한 승리의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자!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승리의 가능성은 100%이에요. 하지만 주님께서 함께하지 않으면 무일푼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예요. 그래서 아까 우리가 보았던 다윗의 경우도 가장 먼저 무엇을 한 거예요? 하나님께 뜻을 구한 거예요. 하지만 여기 미스페에 모인 백성들은 가장 먼저 최우선으로 하나님께 조언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재판관들의 시대가 어떤 시대예요? 자기 생각대로 하는 시대예요. 자기 마음대로 하는 시대입니다. 율법대로 하는 시대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최우선으로 하나님께 조언을 구하지 않고 행동한 것에 대한 그 열매를 톡톡히 거두게 됩니다. 그래서 15절에서 17절에 나오지만 삼일동안 치러진 이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은 처음 이틀 동안은요 15배 이상의 전력을 갖고서도요 대패하고 맙니다.
자!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처음 모였을 때는 실패한 거예요. 하나님 우리는 베냐민 지파와 꼭 싸우러 갈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됩니까? 우리중에 누가 먼저 싸우러 올라 가리이까? 이렇게 물은 거에요. 앞의 기도와 두번째 기도가 어떤 차이인지 아십니까? 앞에 있는 기도는요 진심으로 주님의 뜻을 묻는 거에요. 주님 제가 이 일을 해야 됩니까? 말아야 됩니까? 싸워야 합니까? 아니면 싸우지 말아야 합니까? 이게 제대로 된 질문이에요.
그런데 이들의 기도는 뭐였어요? 자기가 먼저 결정을 한거에요. 싸우러 갈 건지 말건지를 결정한 겁니다. 저는 싸우러 갈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이렇게 물은 거지요. 잘못된 기도예요.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조언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계획을 먼저 정해놓고 그 일을 수행하려면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물은 거지요. 주님 저는 이런 일을 할 건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알려 주세요. 이런 식의 기도는요, 응답이 안됩니다.
저는 이러이러한 사람과 결혼할 건데 어떻게 하면 됩니까? 아니 그거보다 뭘 더 먼저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주님 제가 이 사람과 결혼해야 됩니까? 이걸 물어야 되는 것이지요.
주님 저는 이 직장을 갈 건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이게 아니라 제가 이 직장을 가야 됩니까? 말아야 됩니까? 이 질문을 해야 되는 것이지요. 우선순위가 바뀐 거예요. 싸우러 가야 됩니까? 말아야 됩니까? 이걸 먼저 물어봤어야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그래 싸우러 가했으면은 그다음 수순이 뭐예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어떤 지파가 먼저 올라갈까요? 이렇게 묻는 것이 적합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방법이지요.
자! 그런가 하면요, 23절 말씀 보면요 앞선 두 번의 싸움에서 패배의 쓴 맛을 본 이들은 두 번째 전투에 임하기 전에 주님 앞에 눈물로 회개하며 첫 번째 기도에서 하지 못한 올바른 기도를 하게 됩니다. 내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을 대적하여 싸우러 다시 가야 하오리까? 자! 이 질문에 대해서 주님은 올라가라고 답해 주셨는데요, 결과는 또 참패예요. 이유가 뭘까요? 여기서 우리는 마귀의 간교한 술수 한 가지를 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마귀는 우리가 잘못된 행동을 하게 만들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보통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잘못된 행동을 거부하고 믿음으로 올바른 행동을 하려고 결심했을 때는요, 마귀가 전략을 바꿉니다. 어떻게 바꾸냐 면 그 올바른 행동을 하게 하기는 하되, 때에 맞지 않게, 잘못된 시기 그리고 적합하지 않은 시기에 하도록 만드는 거예요.
이런 모습은 신앙생활에서도 종종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지요. 지금 구려라고 진리의 말씀을 증거 해야 하는 시간에 기도하고 있는 것이지요. 기도는 올바른 것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기도할 시간이 아니라 구령하러 나가야 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엉뚱하게 기도하고 있는 것이지요. 또한 지금은 성경을 읽고 공부하러 가야 할 시간인데, 구령하러 가는 것이지요.
지금은 학업을 위해 공부하고 생업을 위해 일해야 할 때인데,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성경을 공부하겠다고 달려들게 만드는 것이지요. 식탁에 빵을 가져오는 것이 남편의 첫 번째 의무이에요. 어떤 사람은 그런 질문에, 지금 식탁의 빵을 가져올 그 일도 못하고 있는데, 제가 신학교에 와서 공부를 해야 할까요? 말까요? 이런단 말이에요. 그럼 저는 그 사람에게 말합니다. 먼저 올바른 직장을 구하시고 식탁의 빵을 가져오도록 하십시오. 그것도 안 하는 사람이 내가 진리의 말씀을 공부했다고 나선다? 그건 뭔가 안 맞는거에요. 가족을 버려둔단 말이에요? 뭔가 안맞는 것이지요.
올바른 때에 올바른 일을 해야되는 것인데에, 올바르지 않은 때에 올바른 일을 하려고 했을 때 그거는 참패를 가져오는 거예요.
마귀가 그렇게 간교한 것이에요. 반대로요 지금은 성경을 공부하고 사역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인데 학업이나 취직문제로 매달려 버리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불렀는데, 안 움직이는 거에요. 아! 저는 직장을 먼저 가야겠습니다. 아냐 너는 지금 직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역이 먼저야. 이렇게 그 사람을 부르고 있는데, 안움직이는 것이지요. 이것도 역시나 잘못된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은요 어떤 문제든지 진지하게 주님께 뜻을 구하셔야 돼요. 주님 제가 이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제게 알려주십시오. 제게 보여 주십시요. 그리고 그걸 보여주었다면 그다음 수순으로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렇게 묻는 것이지요.
자 그래서 이 전쟁에서도 패배한 것이지요. 자! 이제 이러한 패배를 경험한 이들은 드디어 하나님의 뜻과 올바른 방법에 따라 주님께 조언을 구하는데요, 자! 거기 26절~28절 보십시오. 앞의 상황과 비교해 보세요. 어떻게 바뀌었는지 < 그러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과 모든 백성이 올라가 하나님의 집에 와서 울며 집 앞에 앉아서 그날 저녁까지 금식하며 주 앞에 번제와 화목제물을 드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주께 물어 (그 당시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피느하스가 그 당시에는 그 앞에 섰음이라.) 말씀드리기를 "내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을 대적하여 싸우러 다시 나가야 하리이까? 아니면 그만두리이까? " 하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들을 너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시니라. >
우선 앞의 상황과 비교하여 어떤 변화가 있나요?
첫 번째 우선 이들은 처음부터 해야 했을 올바른 질문을 드리고 있지요.
두 번째 이들은 하나님의 집에 와서 울며 회개했다.
세 번째 이들은 지금 올바른 장소에 서 있었다. 하나님의 집, 특히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집.
네 번째 올바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갔다. 대제사장 피느하스.
다섯 번째 마지막으로 이들은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하나님한테 주세요, 주세요, 우리에게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 이런 방식으로만 기도한 게 아닙니다. 합당한 제물을 가지고 주님께 다가서면서 필요한 것들을 구했던 것들이에요.
히브리서 13:15절에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합당한 제물로 무엇을 언급합니까? 찬양의 제물, 감사를 계속 드려야 한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주님께 기도를 할 때 찬양과 감사를 먼저 하는 거예요.
이거 주세요, 저거 주세요 달라고만 하지 마시고 주님께 먼저 사랑을 돌리는 거지요. 그리고 자기가 이 받은 거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는 거예요. 내가 필요한 것만 말씀드리기에 앞서서 주님께 찬양하고 감사드리고 죄를 자백하고 눈물로 회개하고 이런 일들이 선행되야 되는 거에요.
자! 이렇게 모든 상황이 제자리를 찾게 되었을 때,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전쟁 승리에 관한 가장 확실한 응답을 주시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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