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안 용연에 용두암이 있다. 화산폭발 때 분출한 용암이 굳어진 바위가 해식작용에 의해 용머리 형상을 하고 있다. 운문사에서 흘러내린 물줄기와 얼음골 표충사에서 모여든 물줄기가 밀양에서 만난다. 밀양역이 있는 가곡동 용두목은 강물이 흐르면서 침식작용으로 드러난 바위가 용머리 모양이다. 잘 알려진 부산 자갈치 가까운 곳에 용두산이 있다. 같은 지명이 김해 장유에도 있다.
용두암, 용두목, 용두산은 모두 용의 형상을 한 땅이름이다. 용두가 들어간 지명은 땅의 생김이 용머리 형상을 하고 있다. 거기다가 용은 강이든 바다든 물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 울산 개운포 앞바다도 용연이라고 한다. 그곳 용연에 처용암(處容巖)이라는 바위섬이 있다. 삼국유사 헌강왕 때 나오는 이야기다. 동해 용왕 일곱 왕자가 가운데 하나인 처용이 뭍으로 오른 처용설화의 현장이다.
용은 물속에 살다가 때가 무르익으면 승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용은 실체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상 속의 동물이다. 옛글에 호랑이 그리기가 용 그리기보다 수월하다고 했다. 호랑이는 아무리 그럴듯하게 그려도 고양이 같다는 둥 강아지 같다는 둥 평한다. 호랑이는 실물이든 사진이든 본 사람이 있다. 그러나 용은 실제 본 사람 없기에 지렁이처럼 그려도 시비하지 못한다.
동양에서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는 상서로운 동물로 봉황과 용이 꼽힌다. 봉황은 깃을 길게 드리운 새로 알려져 있다. 용은 물고기처럼 비늘이 달린 상상속의 동물로 중국에서는 황제를 상징한 문양이었다. 조선에서 임금이 평상복으로 입었던 어의도 곤룡포다. 현대 정치판에서 대통령선거 앞두고 후보물망에 오른 사람을 잠룡이라 불러준다. 잠룡은 금배지 단 사람들이 꿈꾸는 마지막 단계다.
물속의 용이 하늘로 오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하늘의 용이 땅으로 내려오기도 한다. 서식하든 승천하든 하강하든 용과 관련된 지명이 여러 곳 있다. 창원 동읍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고개가 용강이다. 근처엔 용전 용잠 용정 용산 용암 등 용자 돌림 지명이 흔하다. 용강에서 멀지 않은 곳에 팔용산이 있다. 산이 위치한 행정구역은 마산이지만 창원과 가깝다. 창원역 앞 일대를 팔룡동이라고 한다.
마산의 주산은 무학산이다. 정상에 서면 사야가 탁 트여 다도해와 마산 창원 시가가 한 눈에 다 들어온다. 무학산만큼 높진 않지만 팔용산도 마산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산이다. 사실 팔룡산(八龍山)이라 이름 해야 하는데 정상에 ‘팔용산’으로 음각한 빗돌이 세워져 있다. 마산 창원의 경계지점이라 창원 사람도 더러 찾는 산이다. 마산과 창원은 인접도시라 행정구역 경계는 큰 의미가 없다.
나는 봄방학 때 틈을 내어 팔용산에 올라보았다. 팔용산은 하늘에서 여덟 마리 용이 소반 위에 내려앉았다는 반룡상(盤龍山)에서 유래했다. 같은 지명이 다른 지방에도 더러 있는 것으로 안다. 신도시 장유에도 반룡산이 있다. 마산지역 사람들은 반룡산을 여덟 마리 용과 관련 지어 팔용산으로 부르고 있다. 두 입술이 만나 떨어지면서 나는 예사소리 ‘ㅂ’이 거센소리 ‘ㅍ'으로 바뀌었다.
팔용산 등산로는 크게 세 갈래다. 마산 쪽에서는 봉암동과 양덕동에서 오르는 길이 있다. 나는 구암동 경남종합사회복지관 쪽에서 올랐다. 삼성병원 뒤쪽 교육단지 골짜기 학교건물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소나무와 아카시나무 숲속을 걸었다. 여러 그루 해송들이 재선충으로 말라가고 있어 안타까웠다. 정상으로 난 길로 오르지 않고 수원지 쪽으로 내려가서 약수터 샘물을 한 모금 마셨다.
수원지는 일제시대부터 댐을 만들어 물을 가둔 제법 큰 산중 저수지였다. 요즘은 상수도용으로 쓰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수원지를 빙글 둘러 팔용산 꼭대기에 올랐다. 정상에 서니 마산과 창원 시가지가 한눈에 다 들어왔다. 산속 수원지와 마산 앞바다를 굽어보면서 용은 역시 물을 좋아하는가보다 싶었다. 봉암동으로 내려오다 마산의 아홉 경치에 드는 돌탑 앞에서 두 손을 모았다. 09.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