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세현(李世賢)
조선 시대 군산 지역(옛 옥구현) 출신의 문관이자 학자로,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字)는 석경(碩卿)이다. 그는 중시조 이거명(李居明)의 28세손이고, 상서공파 파시조 이과(李簻)의 12세손으로, 상서공파 옥구 입향조 이몽원(李夢黿)의 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봉정대부 군자감 정을 지낸 이용근(李庸謹)이고, 할아버지는 장사랑을 지낸 이뢰(李雷)이다.
아버지는 장사랑을 지낸 이문빈(李文彬)이고, 외조부는 고전선(高傳選 : 본관 제주)이다. 장인은 송시조(宋時祖 : 본관 여산)이고, 두 번째 부인의 아버지는 전익태(全翊台 : 본관 천안)이다. 이세현은 1656년(효종 7)에 태어나, 1697년(숙종 23)에 사망하였다.
그리고 1681년(숙종 7) 식년시 생원시에 3등 58위(총 100명 중 88등)로 합격하였다. 『신유 식년 사마 방목(辛酉式年司馬榜目)』에 이세현의 거주지가 옥구(沃溝), 전자(前資)는 유학(幼學), 부모는 구경하(具慶下 : 응시 당시 부모가 생존해 있었다.
아버지는 유학(幼學) 문빈(文彬 ), 아우는 세태(世泰)로 각각 수록되어 있다. 이후 1691년(숙종 17)에 증광시 문과에 을과 4등(총 42명 급제자 중 7등)으로 급제하였다.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에 이세현의 전자(前資)가 생원(生員), 관직은 예조 좌랑(禮曹佐郞), 부(父)는 문빈이라고 수록되어 있다.
문과에 급제한 이후 예조 좌랑을 지냈고, 남정중(南正重)의 천거로 의정부에 들어갔다가, 남정중이 화(禍)를 당하자 부당하다고 주장한 까닭에 외직인 어천 찰방으로 제수되었다가, 1697년(숙종 23)에 근무지에서 사망하였다.
자태가 위엄이 있었으며, 문장과 서화에 능하고, 성품이 강직하였다. 1689년(숙종 15) 무렵에는 유생으로써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 두 선생을 문묘에 모실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당시 명사였던 민진원, 조태채, 이건명 등이 다 공경하고 중히 여겼다. 이세현의 묘는 전라북도 군산시 나운동관련항목 보기 미룡 저수지(현 은파 호수 공원) 옆 산에 있다.
출처>디지털군산문화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