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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1(陰 1221) 金曜日(佛紀 2568년)
■ 20240301(陰 1221) 金曜日(佛紀 2568년)
☯ 大韓佛國曹溪宗 제15교구 本寺 陽山 靈鷲山 通度寺(영축산 통도사)
세계문화유산 佛寶寺刹(불보사찰) 영축총림 통도사(Tongdosa Temple) Ⅱ
■ 나의 하루
아침에 눈을 뜨면 지금도 살아 있음에 감사드리며
저녁 잠자리에 들 때면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 살게 해 주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19950101(음1201) SUN, 나의 備忘錄에서
Mundy Sung
☸ 대한불교조계종
www.buddhism.or.kr/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위치. 조계종 사찰, 승가 교육, 총무원, 포교원, 종단 자료실수록.
☀ 대한민국의 3보 종찰-BTN
https:// www.youtube.com/watch?v=21vOWWMfjNE
☸ 통도사 (우)50501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하북면 지산리 583)
☏ 연락처 055-382-7182 대표번호
#단풍명소 #템플스테이 #홍매화
卍 通度寺(통도사) 金剛戒壇(금강계단)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22t3369b002
요약 : 통도사 대웅전 뒷편에 있는 신라시대 석조계단.
국보 제290호. 높이 300cm, 너비 990cm. 646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불사리를 경주 황룡사탑, 울산 태화사탑과 함께 봉안한 곳으로 매년 초하루와 보름날에 계(戒)를 설했다고 한다. 금강계단이라는 이름은 이곳에서 받은 계법이 금강(金剛)과 같이 단단하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삼국유사〉 권3 전후소장사리(前後所藏舍利)조에 의하면 사리가 도난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금강계단의 석함 안에는 구렁이와 두꺼비가 있다고 했으나 1235년(고종 22) 김이생(金利生)과 경석(庚碩)이 군사를 시켜 석종을 들어 보았더니 작은 석함의 유리통 안에 사리 4개가 있었다고 한다.
〈양산통도사석가여래사리기 梁山通度寺釋迦如來舍利記〉에는 1379년(우왕 5) 왜구의 침입으로 주지 월송대사(月松大師)가 불사리를 송경(松京)으로 옮겨오자 왕과 왕비가 예를 다하여 공경하여 사리의 분신(分身)을 얻었다고 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에는 통도사의 사리가 왜구에 의해 도난당했는데 백옥(白玉)거사가 적의 포로로 있다가 사리를 다시 찾아온 이야기는 유명하다.
또한 사명대사 유정(惟政)은 임진왜란을 피해 사리를 대소 2함(函)에 나누어 금강산에 있는 휴정(休靜)에게 보냈으나 자장의 뜻을 받들어 1함을 되돌려 보내어 1603년 통도사 계단을 중수한 뒤에 봉안했으며, 나머지 1함은 태백산 살나사(薩那寺 : 葛盤寺·淨岩寺)에 안치했다. 그러나 〈건봉사석가치상립탑비 乾鳳寺釋迦齒相立塔碑〉에 의하면 사명대사가 왜구로부터 다시 찾은 통도사의 사리는 금강산 건봉사와 대구(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용연사(龍淵寺) 석조계단에 나누어 봉안했다고 한다.
특히 용연사의 경우 통도사 금강계단을 모방하여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주목된다.
1652년(효종 3)에 정인대사(淨人大師)를 중심으로 중수되기 시작하여 1705년에는 성능대사(性能大師)에 의해 크게 중수되었고 그뒤에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구조는 정방형으로 된 2중 석단 위에 석종형 부도가 안치되어 있는데 그 안에는 과립 3매, 불아(佛牙), 정골지절(頂骨指節)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석단 네 귀퉁이에는 사천왕상을 배치하고 기단의 상하 면석에는 비천상과 불상·보살상을 조각했는데 특히 1층 계단의 면석에는 총 32구의 불상·보살상이 부조되어 있다.
석종부도는 연화대좌 위에 놓여 있고 앞면에는 향로를, 좌우에는 비천상을 양각했는데 조각수법이 부드러운 편이다.
석단 주위에는 석조 난간과 석문이 있으나 모두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금강계단은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쳤지만 창건 당시의 석조물로서 부처의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리를 정암사·건봉사·용연사에도 나누어 봉안했다는 점에서 불사리 봉안사찰의 원류가 되는 가장 오래된 불교 성지라 할 수 있다.
■ 대한불교조계종 영축총림 양산 영축산 통도사 Ⅰ
금강계단, 사천왕문, 부도전, 경상남도 양산시, 영축산 더 보기 ⇨
https://borisu303.tistory.com/14669
https://cafe.daum.net/mundypark1/CZVH/395
■ 國際(世界) 佛敎旗 와 WFB
國際(世界)佛敎旗(국제 불교기)는 불교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국제 불교기는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파랑, 노랑, 빨강, 흰색, 주황색으로 되어 있으며, 가장 오른쪽 열에는 5개색을 위에서 아래로 차례로 줄무늬로 되어 있다.
색은 각각 의미가 담겨있다.
불교기는 1950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세계 불교도 우의회(世界 佛敎徒 友誼會)'에서 만국공동의 불교기로 정식 승인되었으며, 현재 세계 불교국가의 불교단체에서 사용하고 있다.
원래 불교기는 1882년 영국인 불교도이면서 미국 국적을 가진 올코트(Colonel Henry Stell Olcott)대위가 창안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성도(成道)시에 성체에서 육종의 색광이 방출되는 것을 근거하여 일면육색기(一面六色旗) 를 설계하였다고 한다.
불교기의 5색의 가로선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타내고 5색(청.황.적.백.주)의 세로선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영원 불멸하다는 뜻을 상징 한다.
불교기에 사용한 색깔이 상징하고 있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청색 :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부처님의 법을 구하며 살아가는 힘을 의미하므로 정근과 지혜를 뜻한다.
- 황색 : 찬란한 부처님 몸의 빛과 같이 변하지 않는 마음을 의미하며 금강의 지혜를 뜻한다.
- 적색 : 대자대비한 법을 닦아 항상 쉬지 않고 수행에 힘쓰는 자비와 정진을 뜻한다.
- 백색 : 깨끗한 마음으로 온갖 악업과 번뇌를 없앤 청정의 지혜를 의미한다.
- 주황 : 수치스러움과 그릇된 길로의 꾀임에 잘 견디어 내는 인욕의 지혜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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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불교도우의회(WFB: World Fellowship of Buddhists)
세계불교도우의회(WFB: World Fellowship of Buddhists)는 가장 크고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 불교 단체이다.
1950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27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설되었다.
본부는 태국에 있으며, 역대 회장은 모두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에서 배출되는 등 상좌부불교(테라와다불교)가 가장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고 있지만, 모든 종파가 WFB에서 활동중이다.
미국,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와 유럽의 여러 나라 등 35개국에 지부가 설립되어 있다.
대한민국에는 1963년에 지부 위원회가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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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불교도우의회의 역대 회장
현재 회장은 태국의 en:Phan Wannamethee이다.
1950년 - 1958년 : Dr. G.P. Malalasekera, 스리랑카
1958년 - 1961년 : Hon. U. Chan Htoon, 미얀마
1963년 - 1984년 : H.S.H. Princess Poon Pismai Diskul, 태국
1985년 - 1998년 : Prof. Sanya Dharmasakti, 태국
1999년 - 현재 : H.E. Phan Wannamethee, 태국
■ 국제 불교기(Flag of Buddhism-國際 佛敎旗)
卍 通度寺 浮屠殿(통도사 부도전)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87XX74500128
부도원 또는 부도밭으로 불리는 곳으로 17세기부터 현재까지 통도사를 대표하는 역대 스님의 부도 60여 기와 각종 비석 50여 기가 안치되어 있다. 상단에는 부도, 하단에는 부도탑비와 통도사와 관련된 공적이 있는 분들을 기리는 각종 공덕비가 있다. 부도의 형식은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형태인 종형을 비롯하여 구형, 전각형 등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통도사만의 독특한 부도가 많다.
■ 통도사(通度寺)
⇨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59253
시대 고대/삼국
문화재 지정 양산시 기념물 제289호
건립시기 646년(선덕여왕 15)
성격 사찰
유형 유적
소재지 경상남도 양산시 통도사로 108,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분야 종교·철학/불교
요약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영축산(靈鷲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
개설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佛寶·法寶·僧寶로 일컬이지는 세 사찰] 가운데 하나인 불보(佛寶)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이다.
2018년 1월에 양산시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같은 해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내용
646년(선덕여왕 15)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다.
산 이름을 영축산이라 한 것은 산의 모양이 인도의 영축산과 모양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하나, 그 옛 이름은 축서산(鷲棲山)이다.
절 이름을 통도사라 한 까닭은
① 전국의 승려는 모두 이곳의 금강계단(金剛戒壇)에서 득도(得度)한다는 뜻,
② 만법을 통달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
③ 산의 형세가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는 뜻 등이 있다.
창건주 자장율사가 643년에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불사리와 가사(袈裟), 그리고 대장경 400여 함(函)을 봉안하고 창건함으로써 초창 당시부터 매우 중요한 사찰로 부각되었다.
특히 불사리와 가사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대장경을 봉안한 사찰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역사 기록은 통도사의 사격(寺格)을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매우 중요한 기록임에 틀림 없다.
그리고 이 절을 창건한 자장율사는 계단(戒壇)을 쌓고 사방에서 오는 사람들을 맞아 득도시켰다.
이에 통도사는 신라 불교의 계율 근본도량(根本道場)이 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대찰이 아니고 후에 금강계단이라고 불려진 계단을 중심으로 몇몇 법당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그 뒤 고려 초에는 사세가 더욱 확장되어 절을 중심으로 사지석표(四至石標), 즉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를 둘 만큼 대규모로 증축되었다.
특히 현존하는 중요 석조물이 고려 초기 선종대에 조성되었으므로, 가람의 정비는 이때 중점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 당시의 중요한 석조 조형으로는 금강계단 상부의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를 비롯하여 극락전 앞의 삼층석탑, 배례석(拜禮石), 봉발탑(奉鉢塔), 그리고 국장생석표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고려시대에 속하는 유물이고 그 밖에 현존하는 목조건물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건립되었다.
물론 조형상으로 가장 앞서는 석조물로는 영산전(靈山殿)에서 마주 보이는 남산 위의 폐탑재를 들 수 있으나, 이는 이미 파괴된 채 기단부의 사리공(舍利孔)만이 주목되고 있다.
이 석탑이 어떻게 하여 파괴되었는지 또는 최초에 건립된 사원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특징
1. 가람배치
통도사의 가람배치는 신라 이래의 전통 법식에서 벗어나 냇물을 따라 동서로 길게 향하였는데, 서쪽에서부터 가람의 중심이 되는 상로전(上爐殿)과 중로전(中爐殿)·하로전(下爐殿)으로 이어진다.
또, 그 서쪽 끝에 보광선원(普光禪院)이 자리잡고 있다.
본래 이 절터에는 큰 못이 있었고 이 못에는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으나 창건주 자장율사가 이들을 제도하고, 한 마리 용을 이곳에 남겨 사찰을 수호하게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현재도 금강계단 옆에는 구룡신지(九龍神池)의 자그마한 상징적 못이 있다.
먼저 동쪽에서부터 일주문(一柱門)·천왕문(天王門)·불이문(不二門)의 세 문을 통과하면 금강계단에 이르게 된다.
금강계단 앞의 목조건물인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45년(인조 23) 우운(友雲)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 상부의 기본 형태는 丁자형의 특이한 구조를 나타내고 있으며, 그 정면격인 남쪽에는 금강계단, 동쪽은 대웅전,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그러므로 이 건물을 대웅전이라고 하지만 남쪽 정면의 금강계단이 그 정전이라 할 수 있다.
즉, 이 건물의 바로 뒤쪽에는 통도사의 중심이 되는 금강계단 불사리탑(佛舍利塔)이 있다.
이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불사리를 세 곳에 나누어 황룡사탑·태화사탑, 그리고 통도사 계단에 봉안하였다고 하는 바로 불사리 계단이다.
통도사의 특징은 이 불사리 계단에 있으며 또 이로 인하여 불보사찰의 칭호를 얻게 된 것이다.
부처의 신골(身骨)인 사리를 봉안하였으므로 대웅전 내부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았으며, 내부에는 불상 대신 거대하고 화려한 불단(佛壇)이 조각되어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근본적 의미는 계단에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다는 신앙 때문이다.
그리고 금강계단 목조건물의 천장에 새겨진 국화와 모란꽃의 문양 또는 불단에 새겨진 조각은 주목되는 작품이다.
(1) 상로전
상로전의 법당은 금강계단과 대웅전을 비롯하여 응진전(應眞殿)·명부전(冥府殿)·삼성각(三聖閣)·산신각·일로향각(一爐香閣)이 있다.
1981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응진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건물로서 창건한 시기는 1677년(숙종 3)이며, 내부에는 석가삼존과 그 주위에 16나한상(十六羅漢像)을 봉안하였다.
후벽의 탱화를 위시하여 내외 벽화는 주목되는 불화들이다.
1981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명부전은 1369년(공민왕 18)에 창건되었고, 1760년(영조 36) 춘파(春波)가 고쳐 지은 건물로서, 내부에는 지장보살과 시왕상(十王像)·탱화를 봉안하였다.
삼성각은 고려 말의 삼화상(三和尙)인 지공(指空)·나옹(懶翁)·무학(無學)의 영정을 봉안한 건물로서, 1870년(고종 7) 영인(靈印)에 의하여 창건되었고, 현존 건물은 1935년 경봉(鏡峰)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건물의 내부 측면에는 산신탱(山神幀)·칠성탱(七星幀)을 봉안하고 있으며, 산신각은 1761년에 초창된 이래 철종대에 중수를 거친 사방 1칸의 건물이다.
(2) 중로전
중로전의 건물은 1985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관음전(觀音殿)· 198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용화전(龍華殿)· 2014년 보물로 지정된 대광명전, 장경각(藏經閣), 해장보각(海藏寶閣), 황화각(皇華閣), 감로당(甘露堂), 원통방(圓通房), 화엄전(華嚴殿), 전향각(篆香閣) 등을 들 수 있다.
관음전의 창건은 1725년 용암(龍岩)에 의하여 이룩되었으며, 내부에는 독존상으로 관음보살좌상을 봉안하였다.
용화전은 1369년에 창건되었으나 창건주는 미상이며, 1725년 청성(淸性)이 중건하였다.
내부에는 역시 약 2m에 달하는 미륵좌상을 봉안하였다. 대광명전(大光明殿)은 중로전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로서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상을 봉안하고 있다.
201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세존비각은 1706년에 건립된 사바교주 석가여래 영골부도비의 비각으로서 불사리 계단에 대한 내력을 기록하고 있다.
비문은 채팽윤(蔡彭胤)이 지었으며 중국에서 자장율사가 가져온 불사리·가사 등에 관한 내용과 임진왜란 당시 사리 수호에 따르는 수난의 사실들을 기재하였다.
비신의 높이는 약 2.5m, 너비는 약 1m이다.
장경각에 있는 목조 경판은 『능엄경(楞嚴經)』·『기신론(起信論)』·『금강경』·『법수(法數)』·『사집(四集)』·『부모은중경』 등 15종이 있다.
개산조당(開山祖堂) 바로 뒤에 있는 해장보각은 창건주 자장율사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고, 주위에는 고려대장경 완질이 봉안되어 있다. 요사(寮舍)의 중심이 되는 감로당은 창건이 1340년(충혜왕 복위 1)이나 현존 건물은 1887년(고종 24) 덕명(德溟)이 중건한 것이다.
口자형 건물로서 약 86칸의 대소 방사로 이루어져 있다.
감로당과 가까운 원통방은 1341년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현존 건물은 감로당과 함께 탄해(坦亥)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화엄전은 창건이 1368년이며, 1762년에 중건하였고, 1882년 불타서 없어진 것을 1887년 구련(九蓮)이 중건하였고, 1970년 재건하였다.
(3) 하로전
하로전의 중요 건물들은 영산전·극락전·약사전(藥師殿)·만세루(萬歲樓)·영각(影閣)·범종각 등이 있다. 이들 건물배치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배치 양식을 따른 것으로, 북쪽의 중심 건물과 그 좌우, 그리고 남쪽 전면에 누각을 두었다. 이러한 배치 방식은 하로전 일대의 건물군이 가장 짜임새 있게 배치되었음을 말하는 것이고, 동시에 이곳 일대의 법당들의 중요성을 드러낸 것이다.
그 중심 건물은 영산전이다.
2014년 보물로 지정된 영산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내외 벽의 벽화가 주목되고 있다.
내부에는 석가모니 불상과 팔상탱화(八相幀畵)를 봉안하였다. 팔상탱화는 1775년에 그린 것이며, 본존 후불탱은 1734년의 작으로 알려져 있다. 건물양식이나 구조로 볼 때 대웅전 건물과 함께 가장 주목받는 건물이다.
1981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극락전은 1369년 성곡(星谷)이 창건한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하여 추녀의 네 귀는 활주로 받치고 있는 아담한 법당으로, 내부에는 아미타삼존을 봉안하였다.
1981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약사전 또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극락전과 동시에 창건한 아담한 맞배건물이며, 1981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만세루는 창건이 미상이나 1644년 영숙(靈淑)이 중건하였다.
역대 조사(祖師) 및 통도사 고승들의 진영을 봉안한 영각은 1705년 처학(處學)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범종각은 2층 누각 건물로서 정면 상하 3칸, 측면 2칸의 팔작건물이다. 건물의 상하에 법고(法鼓)·운판(雲板)·목어(木魚)·대종(大鐘) 등 사물(四物)을 안치하였다.
이들은 모두 조석 예불시에 사용하는 의식용구이다.
그리고 1757년에 건립한 응향각(凝香閣), 도서실인 명월료(明月寮)와 금당(金堂)을 위시하여 종무소 건물들이 즐비하다.
또, 절의 세 문 가운데 일주문은 1305년(충렬왕 31)에 창건되었다. 현존하는 현판은 대원군의 필적이며, 기둥 좌우의 ‘불지종가 국지대찰(佛之宗家 國之大刹)’은 김규진(金圭鎭)의 글씨이다.
1985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통도사 천왕문은 사천왕을 봉안한 문이다.
사찰수호 기능을 담당하는 곳으로 목조 사천왕이 각기 특징있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1985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통도사 불이문은 1305년에 창건되었으며, 편액 ‘불이문(不二門)’은 송나라 미불(米芾)의 필적이다. 건물은 매우 단조로우며, 중앙에는 대들보 대신 코끼리와 호랑이가 서로 머리를 받쳐 지붕의 무게를 유지하는 건물이다.
사찰 경내의 현존하는 석조물로는 역시 금강계단이 가장 중요하며, 대웅전과 함께 1997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통도사 창건의 이유가 바로 이 계단에 있기 때문이다.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불사리 계단이 축조된 이래 특히 고려시대에 와서는 이 계단에 얽힌 수많은 기록이 전해 오고 있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계단의 석종을 들어 보려는 일이 잦았으므로 이를 막기 위하여 석함 속에는 긴 구렁이 또는 큰 두꺼비가 있었다는 기록 등이 남아 있다.
그러나 1235년(고종 22) 상장군(上將軍) 김이생(金利生)과 시랑(侍郎) 유석(庾碩)에 의하여 계단의 석종이 들려졌다.
“큰 일에 상장군 김공 이생과 유시랑 석이 고종의 명을 받아 강동(江東)을 지휘할 때 부절(符節: 왕이 하사한 旗)을 가지고 절에 와서 돌뚜껑을 들어 예하고자 하니, 승이 그 전의 일을 들면서 어렵다고 하였다.
김이생과 유석이 군사를 시켜 굳이 돌뚜껑을 들게 하였다……. 서로 돌려보며 예경하였는데 통이 조금 상해서 금간 곳이 있었다.
이에 유공이 수정함(水晶函) 하나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마침 기부하여 함께 간수해 두게 하고 그 사실을 기록하였으니 그때는 강화로 서울을 옮긴 지 4년째인 을미년(1235)이었다(三國遺事 卷3 前後所將舍利條).”
이와 같은 기록이 문헌상으로는 계단에 손을 댄 최초의 기록이다. 그러다가 1379년(우왕 5) 고려 말에 국세가 약해진 틈을 타서 빈번히 왜구들이 침입하여 이 계단은 일대 수난을 겪는다.
즉, 이색의 「양주통도사석가여래사리기(梁州通度寺釋迦如來舍利記)」에 따르면, 통도사의 주지 월송(月松)이 왜구들의 침입을 피하여 1379년 8월 24일 석가여래의 사리·가사 등을 가지고 서울의 평리(評理) 이득분(李得分)을 만난 일이 있었다.
임진왜란의 발발과 함께 영남지방이 왜구의 수중에 들자 의승장 유정(惟政)은 통도사의 사리를 대소 2함에 나누어 금강산에 있던 휴정(休靜)에게 보냈다.
이에 휴정은 “영남이 침해를 당하고 있으니 이곳 역시 안전한 장소는 못된다.
영축산은 뛰어난 장소이고 문수보살이 명한 곳이다.
계(戒)를 지키지 않는 자라면 그에게는 오직 금과 보배만이 관심의 대상일 것이고 신보(信寶)가 목적이 아닐 것이니, 옛날 계단을 수리하여 안치하라.”고 하였다.
이에 1함은 돌려 보내고 나머지 1함은 태백산 갈반지(葛盤地)에 안치하였다.
그 뒤 1603년(선조 36) 계단을 다시 복구하였으며, 1652년(효종 3) 정인(淨人)이, 1705년에는 성능(性能)이 중수하였으며, 그 뒤에도 영조·순조·헌종·고종 대에 이르는 여러 차례의 중수와 1919년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계단의 크기는 초층 너비 약 990㎝, 총높이 약 300㎝이며, 형태는 2중의 넓은 방단(方壇) 위에 석종(石鐘)의 부도를 안치한 지극히 간단한 구조이다.
석단 네 귀퉁이에는 사천왕입상을 배치하였고, 기단 상하면 돌에는 비천상과 불보살상을 배치하였다.
석단 외곽에는 석조 난간을 돌렸고, 계단 정면에는 석문을 두었으나 모두 후기의 작이다.
계단의 초층 면석에는 총 32구의 불보살상을 나타냈으나 모두 도상적 경직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상층 기단 면석의 불보살 및 비천상의 양식은 유연한 수법이 하층보다는 월등하다.
계단의 상층 중심부에 위치한 석종부도는 복련과 앙련의 상하 연화대 위에 위치하며, 그 조각수법이 다른 조각과는 달리 매우 우수하다. 동서 좌우에는 유연한 비천상을 부조로 나타냈고 정면인 남쪽에는 구름 속에 보합(寶盒)의 향로를 조각하였다.
2. 석조물
대체로 통도사의 석조물은 고려 선종대를 전후하여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다.
그 대표적 조형으로는 극락전 앞의 배례석·삼층석탑, 그리고 사지경계(四至境界)인 국장생석표 등이다.
(1) 배례석
배례석이란 국왕배례지석(國王拜禮之石)이라는 상징적 조형물로서 신라 사찰에서도 자주 볼 수 있으나 이곳 배례석은 1085년(선종 2)에 조성되었다.
길이 175㎝, 너비 87㎝의 판석으로 3절되었으며, 상면에는 아름다운 연화문과 운문으로 조각되었다.
현재의 명문은 ‘太康王一年乙丑二月日造’라고 되어 있으나 이는 ‘太康十一年乙丑二月日造’의 위각이고 또 중간의 판석(길이 35㎝, 너비 87㎝)도 후에 보충된 것임이 최근 판명되었다.
(2) 삼층석탑
배례석 바로 옆에 있는 2006년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 역시 신라 말기의 양식이나 이 시대 선종대에 조성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2중기단 위에 3층의 석탑으로서 전체 수법은 간략하게 조성되었으나 기단에 나타난 안상(眼象) 등 장식된 수법은 고려의 석탑으로 볼 수 있는 유력한 근거가 된다.
(3) 국장생석표
통도사에서 약 2㎞ 거리의 양산시 하북면 백록리의 1963년 보물로 지정된 국장생석표 역시 고려 선종대의 사찰 경계로 알려져 있다. 이와 동일한 명문을 지닌 장생석표가 울산광역시 울주구 삼남면 상천리에서 근래 발견되었으나 상부가 단절되었다.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에 의하면, 이와 같은 표지는 절을 중심으로 사방에 12장생을 설치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형태는 목방(木榜)·석비(石碑)·석적장생(石磧長生) 등으로 분류된다.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석비장생뿐이며, 이들은 고려시대 이두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는 금석문이다.
3. 기타 중요 유물
그 밖에 이 절에 현존하는 중요 유물로는
통도사 청동 은입사 향완(보물, 2011년 지정),
양산 통도사 봉발탑(보물, 1968년 지정)을 비롯하여,
통도사 석등(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자장율사 진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90년 지정),
통도사 삼화상 진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90년 지정),
통도사 팔금강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90년 지정),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보물, 2011년 지정),
통도사 영산회상탱(보물, 2002년 지정),
통도사 대광명전 삼신불도(보물, 1990년 지정), 통도사석가여래괘불탱(보물, 2002년 지정),
통도사괘불탱(보물, 2002년 지정),
통도사화엄탱(보물, 2002년 지정),
통도사 청동 은입사 향완(보물, 2002년 지정),
양산 통도사 삼층석탑(보물, 2006년 지정),
통도사 아미타여래설법도(보물, 2006년 지정),
양산 통도사 영산전 벽화(보물, 2011년 지정),
양산 통도사 청동은입사향완(보물, 2011년 지정),
양산 통도사 은제도금아미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보물, 2012년 지정),
양산 통도사 영산전(보물, 2014년 지정),
양산 통도사 대광명전(보물, 2014년 지정) 등이 있다.
그리고
대광명전 신중탱(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90년 지정),
가경원년명 오계수호 신장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90년 지정),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46(보물, 1984년 지정), 『문수사리보살최상승무생계경(文殊師利菩薩最上乘無生戒經)』(보물, 1982년 지정),
묘법연화경』권2(보물, 1994년 지정),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권9~10(보물, 1994년 지정),
청동은입사향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2012년 지정), 청동은입사정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이 있다.
또
청동여래좌상·청동사리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인적(印籍) 및 동인(銅印)(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청동여래입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양산 통도사 동종 및 종거(경상남도 유형문화재, 2013년 지정), 청동시루(철부포함.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양산 통도사 금동천문도(보물, 2003년 지정), 『금니묘법연화경』(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금니금강경 12곡 병풍』(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등이 있다.
그 밖에 전석가여래가사(傳釋迦如來袈裟)·전자장율사가사(傳慈藏律師袈裟)·고려은입사동제향로(高麗銀入絲銅製香爐)·청개와(靑蓋瓦)·감로병(甘露甁)·육환철장(六環鐵杖)·동자상(童子像)·동탑(銅塔)·화엄만다라(華嚴曼陀羅)·육각요령(六角搖鈴)·금자병풍(金字屛風)·구룡병풍(九龍屛風)·삼장서행노정기(三藏西行路程記) 등이 있다.
산내 암자로는 극락암·비로암·자장암·백운암·축서암·취운암·수도암·사명암·옥련암·보타암·백련암·안양암·서운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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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삼국유사(三國遺事)』
・ 『통도사지(通度寺誌)』
・ 『한국사찰전서』(권상로 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 『한국의 사찰』4 통도사(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4)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朝鮮總督府, 1919)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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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사(末寺)
통도사에 등록된 말사 중 일부를 다루는 장이다.
보기 편하기 위해 지역별로 분류하였고 가나다순으로 정리하였다.
6.1. 양산
계원암
내원사
미타암 - 한국에서 드문 석굴사원이다.
법천사
성전암 - 박종철 열사의 추모재를 지내는 절이다.
신흥사
용화사
원효암
6.2. 울산
관음사
내원암
동축사
문수사
백양사
석남사 - 비구니 절이다.
신흥사
옥천암
월봉사
해남사
6.3. 창녕
관룡사
극락암
도성암
법화암
삼성암
창녕포교당
청련사
6.4. 밀양
만어사
무봉사
석골사
용궁사
표충사
홍제사
6.5. 의령 및 기타
계승사
마산포교당 정법사
백련암
봉정사
선지사
수도사
운암사
홍법사
➠ https://namu.wiki/w/%ED%86%B5%EB%8F%84%EC%82%AC
卍 통도사 천왕문', 보물로 지정됐다
➠ https://v.daum.net/v/20240403144116405
명확한 건립 시기·공포의 변천사 등 학술적·예술적 가치 우수
[창원=뉴시스] 홍정명 기자 = 경남도는 경상남도문화재인 '양산 통도사 천왕문'이 지난 2일 문화재청 지정 국가문화재 보물로 승격됐다고 3일 밝혔다.
천왕문(天王門)은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봉안하여 가람을 수호하고, 사찰에 출입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악귀가 물러난 청정도량으로 인식하게끔 하려는 뜻에서 세워진 건물이다.
양산 통도사 천왕문은 1713년(숙종 39)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14년 중건했다는 기록과 천왕문 내부에 봉안된 사천왕상이 1718년(숙종 44)에 제작되었다는 묵서(墨書)가 확인되어, 건립 시기가 명확한 사찰 산문(山門) 중 보기 드문 사례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특히 기둥 위 공포인 익공살미는 익공이 주심포나 다포가 점차 간략화되는 변천과정을 알 수 있는 시대별 특성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경남도에서는 양산 통도사 천왕문은 1985년부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하다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판단해 지난 2023년 6월 관계 전문가들과 보물 승격의 타당성을 확인했다.
이어 2023년 7월 경상남도 건축문화재위원회를 개최하여 만장일치로 심의 가결하여 문화재청에 보물 승격을 신청했다.
경남도 이정곤 문화체육국장은 "경남도 문화유산이 보물로 승격 지정된 것은 지역의 우수한 문화유산 가치를 인정받은 매우 뜻깊은 일로, 지역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jm@newsis.com
홍정명 기자2024. 4. 3. 14:41
■ 人生(인생)
人生事(인생사) 先後(선후) 緩急(완급) 輕重(경중)이 있습니다.
우리네 人生(인생)은 아무도 대신 살아 주거나 누구도 대신 아파 주거나 죽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갈 수 있을 때 가지 않으면 가고 싶을 때 갈 수가 없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으면 하고 싶을 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奇跡(기적)은 아무에게나 어디서나 함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꿈과 희망을 먹고 자랐지만 성인이 되면 計劃(계획)과 實踐(실천) 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마음 가는 대로 잘 생각하고 判斷(판단)해서 몸 가는 대로 行動(행동) 하고 實踐(실천)하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될 것입니다.
다만, 嚴重(엄중)한 現實(현실)앞에 우선순위를 어디에 어떻게 둘 것인가에 愼重(신중)을 기해서 責任(책임)과 義務(의무)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人生事(인생사) 刹那(찰나)와 彈指(탄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最善(최선)입니까?
인생의 眞理(진리)는 오직 살아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로지 건강하세요.
가족의 健康(건강)과 가정의 幸福(행복)을 축원합니다.
늘 고맙습니다.
19991212(陰1105) SUN, 나의 備忘錄에서
Mundy Sung
■ 靈鷲山(영축산)
고도 1,082.235 m (3,550.64 ft)
지리 영축산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위치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울산 울주군 - 경남 양산시
산맥 낙동정맥
영축산(靈鷲山)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읍 방기리와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과 원동면에 경계를 이루는 낙동정맥의 산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과 원동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영남 알프스의 일부를 이루는 산이다.
높이는 1,082.235미터.
신불산 아래에 위치하며 울산광역시와 양산시 경계지역에 있다. 단조늪이 있다.
영취산, 취서산(鷲棲山)과 축서산 등으로도 불린다.
대체로 동쪽은 급경사를 이루어 암벽이 병풍을 편 듯 늘어서 있고, 서쪽은 완만하여 계곡이 발달되어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위치 : 낙동정맥
영축산은 가지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낙동정맥의 줄기가 능동산에 이르러 두 줄기로 갈라지는데, 남서진하는 줄기는 밀양의 천황산과 제약산으로 이어지고, 동쪽으로 내려와 배내고개를 건너 남진하는 낙동정맥의 산줄기는 간월산과 신불산을 지나 영축산의 첫머리에서 높이 솟구쳐 계속 남쪽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남으로 조금 내려가면 영축산의 남쪽 산록에 있는 가지산 도립공원 내에는 큰 사찰인 통도사를 찾을 수 있다.
지명 유래
영축산은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한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에 있던 산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자 표기는 '영축산(靈鷲山)'과 '취서산(鷲栖山)' 두 가지로 표기되어 한글로 영축산·영취산·축서산·취서산 등으로 혼용되어 부르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한자 '취 또는 축(鷲)' 자에 대한 한글 표기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일반 옥편에서는 '독수리 취'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축'으로 발음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한편 '취 또는 축' 자가 원래 '축'으로 표기되었다는 근거는 1463년(세조 9)에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법화경언해본》에서 찾을 수 있는데 산 이름의 혼용이나 혼재는 불교에서 유래된 '축(鷲)' 자를 취(就)자와 조(鳥)자의 합자로 된 '취(鷲)'자와 혼동하는 원인에 있다고 본다.
이러한 혼동을 피하기 위해 2001년 1월 9일 양산시 지명위원회에서 영축산으로 확정지었다.
卍 梁山 通度寺 木造四天王像(양산 통도사 목조사천왕상)
양산 통도사 목조사천왕상(梁山 通度寺 木造四天王像)은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에 있는 조신시대의 불상이다.
2013년 1월 3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30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 양산 통도사 목조사천왕상은 1718년(숙종44년)에 조각승인 진열(進悅)을 수화사로 모두 20명의 화원이 참여하여 조성되었다.
4구의 사천왕은 경상도 지역에서는 가장 거상이며, 다리가 길고 전체적인 신체가 가늘고 긴 신체 등 진열의 조형적 특징을 확실히 보여준다.
조선후기 대표적 조각승인 진열이 만든 가장 큰 상으로, 조성기와 복장물을 통하여 대형조각상을 제작할 당시의 불사운영 및 복장물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 慶尙南道(경상남도) 양산시(梁山市)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5a1051b
위치 경상남도 동남부
인구 355,347 (2024)
면적 485.434㎢
행정구역 1개읍 4개면 8개동
사이트 http://www.yangsan.go.kr/main.do
요약 : 경상남도 동남부에 있는 시. 부산광역시의 북쪽에 위치하며, 시의 동북쪽으로 울산광역시와 남서쪽으로 김해시와 접한다.
산이 많고 경지가 적어 주로 과수재배가 이루어진다.
경부고속도로가 양산천을 따라 남북으로 통과하여 시외지역과의 교통은 원활한 편이다.
취서산 기슭의 통도사는 한국 3보사찰 중의 하나로 유명하다.
인근의 노송 숲길 또한 아름다운 경관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면적 485.434㎢, 인구 355,347(2024).
대한민국 경상남도 동남부에 있는 시.
1995년 양산군에서 장안읍·기장읍·일광면·정관면·철마면이 분리, 기장군으로 신설되어 부산광역시에 통합되었고, 1996년에 나머지 양산군 지역이 시로 승격했다.
한국 3보사찰 중의 하나인 통도사로 유명한 곳이다. 물음읍·동면·원동면·상북면·하북면·중앙동·양주동·삼성동·강서동·서창동·소주동·평산동·덕계동 등 1개읍 4개면 8개동이 있다.
시청소재지는 경상남도 양산시 중앙로이다.
면적 485.434㎢, 인구 355,347(2024).
연혁
낙동강·남해와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연결하는 통로에 위치했던 이곳은 일찍이 신라의 세력권에 편입되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행정구역 개편 때 구주의 하나인 양주를 두고, 1주(州) 1소경 12군(郡) 34현(縣)을 관할하게 했던 중요한 지역이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양주로 개칭했으며, 조선초 군현제 개편에 의해 1413년(태종 13)에 양산군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별호는 의춘·순정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하여 1896년에 경상남도 양산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로 비입지였던 대상면·대하면이 김해로, 두입지였던 좌면이 동래로 이관되고, 울산의 두입지 외남면·웅상면을 편입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중북면이 상북면에 통합되었다.
1922년 외남면을 울주군에 이관했으나, 1973년에 동래군을 편입함으로써 면적이 크게 넓어져 조선시대의 기장현 지역을 대부분 포함하게 되었다.
1979년에 양산면이, 1980년에 기장면이, 1985년에 장안면이 읍으로 각각 승격되었으며, 1983년에 서생면을 울주군에 이관했다.
1991년 웅상면이 읍으로 승격했다. 1995년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2개읍 3개면이 분리되어 기장군으로 신설되면서 부산광역시에 통합되었다. 1996년에는 양산군이 시로 승격되면서 양산읍이 폐지되어 12개동으로 분할되었다.
1998년에는 웅상읍 덕계출장소를 설치되었다.
2004년에는 웅상민원출장소를 설치했다.
2007년 웅상읍이 폐지되면서 서창동·소주동·평산동·덕계동으로 분동되었고, 4개동을 관할하는 웅상출장소가 설치되었다.
2008년에는 부산 도시철도 2호선의 3단계 연장구간에 양산역이 포함되어 개통되었다.
2010년 중앙동이 중앙동과 양주동으로 분동되었다.
2015년 11월 20일 양산시 전체 인구가 30만 명을 넘어섰다(→ 기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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