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19일 성주 성밖숲 맥문동과 대구 근교 몇 군데를 보러 가려고 계획한 날이다. 조반은 가다가 먹기로 하고 아침 6시에 출발했다. 말복이 지나고 더위도 한풀 꺾이어 그리 덥지 않았는데 안개가 낀 것 같이 주위가 온통 뿌옇게 되어 흐렸다. 내비게이션으로는 성주 성문 밖까지 1시간 40분 걸린다고 했는데 중간에 휴게소마다 들리고 아침식사도 하면서 천천히 가다보니 3시간 반이 걸려 9시 30분에 도착하였다. 차를 군락지옆 보건소 마당에 주차하고 거대한 왕버들숲을 거닐면서 사진을 찍었다. 휴일에는 사진쟁이등 구경꾼들이 엄청 많았다고 했는데 평일이라 젊은이들은 별로 없고 중년이상 늙은이들 몇 명이 사진 찍는다고 난리다. 1시간가량 머물면서 사진 찍고 커피 마시고 다음 목적지인 하목정으로 출발했다. 부산서 성주 맥문동을 보러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좀 힘이 든다. 일단 기차로 동대구역으로 가서 대구 도시철도 1호선 동대구역에서 설화명곡 방향 열차를 타고 5정거장 가서 반월당역에서 2호선 문양가는 열차로 환승해서 12정거장가서 대실역에 내려 1번출구로 나가 250번 버스를 타고 성주터미널에 내려 12분(840m)정도 걸으면 된다.
성주 성문밖 왕버들숲 맥문동 배경노래 님의 향기 - 김란영 노래
성주 경산리 성밖숲 성주 경산리 성밖숲은 성주읍의 서쪽으로 효르는 하천인 이천변에 조성된 마울숲이다. 현재 숲에는 나이가 약 300~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왕버들 55그루가 자라고 있다. 성밖숲은 노거수 왕버들로만 구성된 단순림으로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가슴 높이 물레가 1,84~5,97m(평균 3.11m), 나무 높이는 6,3~16,7m(평균 12,7m)에 말한다. 성밖숲은 조선시대 성주읍성의 서문 밖에 만들어진 인공림으로 풍수지리설에 의한 비보임수(裨補林藪)인 통시에 하천의 벌람으로 인한 수해를 예방하기 위해서 조성된 수해방비림이기도 하다. 또한 에전부터 주민들의 이용을 전제로 조성된 마을숲으로서 전통도시의 마을공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지금도 성밖숲은 자연유산으로서의 가치 외에도 성주군민은 물론 인근 대도시인 대구시민들도 많이 찾는 공원으로서의 위상도 여전히 유지하고 있어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성밖숲에 대한 기록은 성주의 옛 읍지인 「경산지(京山志), 빛 성산지(星山誌)등에 수록되어 있다. 구전에 의하면 조선 중기 성밖 마을에서 아이들이 이유 없이 죽는 일이 빈번하였는데, 한 지관이 말하기를 "마을에 있는 족투리바위와 탕건바위가 서로 마주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재앙이 발생하니, 재앙을 막기 위해 투 바위의 중간지점인 이곳에 밤나무 숲을 조성하여야 한다." 고 하여 숲을 조성했더니 우환이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임진왜란 후 마을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밤나무를 베어 내고 왕버들로 다시 조성하였다고 한다. 성밖숲은 마을의 풍수지리 및 역사, 문화, 신앙에 따라 조성되어 마을 사람들의 사회적 활동과 토착적인 정신문화의 재현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마을 비보림 (풍수지리설에 따라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조성된 숲)으로 향토성과 문화적 의미를 통시에 가진 곳이다.
요양병원 & 요양원
우리는 나이가 들고 서서히 정신이 빠져 나가면 어린애처럼 속이 없어지고 결국 원하건 원치 않건, 자식이 있건 없건, 마누라나 남편이 있건 없건, 돈이 있건 없건, 잘 살았건 잘못 살았건, 세상 감투를 썼건 못썼건, 잘났건 못났건 대부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게 된다. 고려시대에 60세가 넘어 경제력을 상실한 노인들은 밥만 축낸다고 모다들 자식들의 지게에 실려 산속으로 고려장을 떠났다고들 하는데(실제로 고려장은 일제가 만든 거짓 역사였다) 오늘날에는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노인들의 고려장터가 되고 있다. 한 번 자식들에게 떠밀려 그곳에 유배되면 살아서 다시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니 그곳이 고려장터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곳은 자기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도, 가기 싫다고 해서 안 가는 곳도 아니다. 늙고 병들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자식들과의 대화가 단절되기 시작하면 갈 곳은 그곳 밖에 없다. 산 사람들은 살아야 하니까.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어떤 의사가 쓴 글이다. 요양병원에 갔을 때의 일들을 생각해 보니 어쩌면 이 의사의 말이 그렇게 딱 들어맞는지 놀라울 정도이다. 그래서 전문가라고 하는 것 같다. 《요양병원에 면회 와서 서 있는 가족 위치를 보면 촌수가 딱 나온다. *침대 옆에 바싹 붙어 눈물 콧물 흘리면서 이것저것 챙기는 여자는 딸이다. *그 옆에 뻘쭘하게 서있는 남자는 사위다. *문간쯤에 서서 먼 산 보고 있는 사내는 아들이다. *복도에서 휴대폰 만지작거리고 있는 여자는 며느리다.》 요양병원에 장기입원하고 있는 부모를 그래도 이따금씩 찾아가서 살뜰히 보살피며 준비해 온 밥이며 반찬이며 죽이라도 떠먹이는 자식은 딸이다. 대개 아들놈들은 침대 모서리에 잠시 걸터앉아 딸이 사다놓은 음료수 하나 까쳐먹고 이내 사라진다. 아들이 무슨 신주단지라도 되듯이 아들 아들 원하며 금지옥엽 키워 놓은 벌을 늙어서 받는 것이다.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는 세상인 것을 그때는 몰랐다. 요양병원 & 요양원! 오늘도 우리의 미래가 될 수많은 그들이 창살 없는 감옥에서 의미없는 삶을 연명하며 희망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들도 자신의 말로가 그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자신과는 절대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고 믿고 싶겠지만 그것은 희망 사항일 뿐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두고 보면 안다. 그래도 어쩌랴! 내 정신 가지고 사는 동안에라도 맛있는 것 먹고, 가고 싶은 곳 가보고, 보고 싶은 것 보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야지! 기적 같은 세상을 헛되이 보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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