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일까?
가슴 한 쪽이 싸하니 저려오는 건,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건,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온 큰 아이가 영문을 몰라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삼십오 년 전 선생님의 모습을 보니 자꾸만 눈물이 난다는 생경한 엄마의 모습이 이해될 리 없는 녀석은 욕실과 주방을 오고가면서도 힐끗힐끗 내게서 눈길을 놓지 않는다.
늦은 모임을 하고 돌아온 남편 역시 이런 내가 쉬 이해가 가지 않는 눈치다.
카페 사진을 가리키며 예전 초등학교 때 내가 몇 번인가 말한 적 있던 그 선생님이라고 애써 설명을 하지만 애닯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내 마음에 비해 건성으로 임하는 남편이 조금은 야속하다.
희고 검은 체크무늬 치마에 하얀 블라우스, 사진 속 단아한 모습의 선생님은 영락없는 삼십오 년 전의 모습 그대로시다.
강산이 세 번이나 족히 변했건만 시공을 초월한 선생님의 고운 모습에서 세월의 무색함을 느껴본다.
삼십오 년 전 거꾸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노라면 내 기억 속에는 무척이나 수줍음이 많은 내성적인 단발머리 가시내가 떠오른다.
검정 원피스에 소매 끝과 칼라가 곱슬곱슬한 흰 블라우스의 볼 살이 통통한 가시내였다.
3학년이 되던 해, 담임선생님을 가시내는 잊지 못한다.
긴 머리의 하얀 얼굴 동그랗고 반짝이는 눈동자, 고운 눈매로 웃음 지을 때마다 덧니가 살짝 엿보이는 맑고 고운 목소리, 자그마한 키에 유난히 몸이 약하신 선생님이셨다.
가시내는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를 적까지도 그 선생님의 고운 눈매를 잊지 못했다.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웃음 짓는 고운 눈매가 흡사 선녀와도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해왔더랬다. 어느 국어시간이었다.
'보름달' 이라는 제목의 시를 공부하는 중이었다.
시구 중에 어쩌면 토실토실 살이 쪘을까 어쩌면 토실토실 여물었을까' 라는 시구가 있었다.
그 시를 공부하면서 선생님께서는 가시내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연희처럼 토실토실 살이 쪘다" 는 말씀을 하셨다. 순간 가시내는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선생님께 불리어진 이름의 뿌듯함과 살이 쪘다. ‘라는 부끄러움 두 가지 이유에서였으리라.
지금은 나이에 비해서 날씬하다는 얘기를 주위로부터 들어온 터라 살이 쪘다는 말은 과거형이 되었지만 살면서 더러 초등학교 시절 국어시간의 얘길 지인들에게 곧잘 하곤 한다.
며칠 전에도 남편과 등산을 하면서 그 얘길 나눈 적이 있다.
그런 얘길 하면서 빠뜨리지 않는 건 그 선생님께서는 선녀처럼 곱고 아름다우신 선생님이셨음을 각인시키고자 고이 간직한 소중한 보물을 끄집어내듯 애써 기억을 끄집어내곤 한다.
선생님과의 추억을 모두 다 기억할 순 없지만 어렴풋하게나마 떠오르는 건 철부지 꼬맹이들로 인해 가끔씩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시는 걸 보았다는 것, 잘 웃으셨다는 것, 누군가(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무척 슬퍼하셨다는 것, 무용을 잘 하셨다는 것(조금은 번쩍이는 몸에 붙는 타이트한 무용 옷을 입었던 선생님의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결혼하신다는 것, 짝꿍 되시는 분이 무지무지 멋있으시다는 것, 큰 키에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지셨다는 것. 시댁쯤이 영주였다는 것. 모두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더 이상은 내 기억의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
불혹을 넘은 내 삶에 잊고 살았다고 생각되는 선생님의 기억이 내 기억 언저리에 오롯이 똬리 틀고 있었나보다. 선생님의 소식을 접하고 며칠 내내 이리도 마음이 들떠있는 걸 보면,
카페에서 나눈 몇 말씀은 내 기억속의 선생님과 한 치의 오차도 발견하지 못한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셨다.
반 친구들의 손을 잡고 운동장을 돌면서 고기 잡으러 가자. 는 선생님의 고운 목소리에 관암산도 빙그레 웃음 지며 내려다보는 듯했다.
유년의 시절 유난히 고우셨던 내 어머니의 모습까지 기억해주시는 선생님의 따스하신 심성은 고운 모습에 버금간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세월의 흐름을 무색케 하는 선생님의 에너지는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선생님의 고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나름대로 결론짓고 싶다.
카페 이방 저 방을 넘나들면서 선생님의 흔적을 읽고 있노라니
아직도 풋풋한 사과향이 나는 것 같다.
상큼한 장미의 향이 나는 것 같다.
은은한 들꽃향이 느껴지는 것 같다.
아니 무엇보다 선생님으로부터 분명 전해지는 건 아직도 남아있는 포근함과 따스함이다.
**조평진 선생님,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나 싶습니다. 가끔씩 만나는 초등학교 남자 동창들이
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명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며 이렇게나마
선생님께 인사올릴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함인지요.
감히 한 말씀 올리자면
"강산이 몇번 변했지만 선생님답게 변하신 모습과 향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선생님의 사진을 보고 또 보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또그르르르 옥구슬 구르는 듯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언젠가는 뵈올 날이 있겠지요. 건강하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