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나는 존재 자체다(생명)
호렙산에서 불붙는 떨기나무 가운데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라고 답하신다. 이 대목은 심오하고 웅장하다.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뜻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우주 안에 자기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돌멩이, 꽃, 나무, 나비, 동물, 인간, 지구, 하늘, 하늘의 별 어떤 것도 그것 스스로 존재한다고 인간의 이성은 인정하지 않는다.
버틀란드 러셀이나 스티븐 호킹 등 무신론 철학자나 무신론 과학자는 우주는 스스로 창조됐다고 주장한다.
"스스로 창조한다" 이 말 속에는 악의적인 거짓이 숨어있다.
왜냐하면 명백한 진실과 자기 이성을 속여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무엇을 창조하려면 그 누군가라는 게 존재해야 한다.
존재하는 자가 창조하는 것이지 존재하지도 않는 게 창조행위를 할 수는 없다.
산에서 "야호"라고 외치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맞은편에서 "야호"가 들려왔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를 창조하는가? 무도 존재를 가능케 하지 못하고, 존재도 존재를 무화시키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런 주장을 계속한다면 그것은 악의요 백치화된 지성이다.
하나님을 믿고 싶지 않는 불신 의지가 인간을 믿을 수 없도록 정형화하고 거기에서 이런 지성이 형성된다.
명백한 사실에 대한 악의적인 부정에 대해 그들은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무엇에 의해서 존재한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은 의존체다.
그러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의존해서 존재하는 그 무엇, 무엇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존재 자체인 자, 다른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 생명이시다.
이 생명을 다른 말로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고 하는 것이다.
신약 성경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생명이라고 한다.
② 나는 나다(주격)
그런데 I am who I am(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다)은 조금 더 깊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말은 "나는 나다" 또는 ”나는 ...이다"라고.
즉 “나는 곧 나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나’라고 하는 분이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고 하라.”
또는“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나'인 자가 너희에게 나를 보내셨다 하라.”가 된다.
그분은 ‘나’이시다. 그분은 나이실 수밖에 없는 분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분 외에 나는 없다.
하나님은 창조계에서 온전히 주격이시다. '나'이신 하나님이 '너'인 창조물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그분 앞에 ‘나’가 아니라 ‘너’이며, 그것이 창조계의 진실이다.
만물은 관계에서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어머니는 나에 대해서 어머니의 자격을 가진 자요, 남편은 나에 대해서 남편의 자격을 가진 자라는 뜻이다.
선생님은 나에 대해서 가르치는 자격을 가진 존재, 사장님은 내가 종사하는 업무에 대해 최고 경영권자라는 뜻이다.
여기서 어머니, 남편, 선생님, 사장님 모두 관계어이다.
즉 그들과 내가 무관하다면 그들은 나에게 어머니도 남편도 선생님도 사장님도 아니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나아가 우주 만물에 대해 '나'이시며,
이때의 '나'라는 말의 의미는 절대 주격이요 절대주권자이심을 나타낸다.
그러나 인간은 부패한 후에 이 질서를 도치하여 자신이 주격이기를 원하게 되었다. 이것이 죄다.
물론 피조물로서의 '나'는 여기 있다. 자기를 말소시키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우주가 거대한 관계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관계체 안에서의 정상적 질서는 하나님이 주격이요 나머지는 소유격이나 상대격인 것이다.
하나님만이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시며 창조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론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으면 본질, 형상, 존재 질서의 변화가 따라온다.
예수님이 내 생명이 되는 본질의 변화, 예수님의 형상이 내 형상이 되는 형상의 변화,
예수님(하나님)이 내(주격)가 되고 나는 너(상대격)가 되는 존재 질서의 변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사랑으로 다스리시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사랑하고 섬기는 관계가 된다.
이것이 그가 '주'가 되신다는 말, 그리고 내가 그의 '지체'나 '소유물'이 된다는 말의 뜻이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아름답고 다양하게 묘사한 말씀이, 요한 복음의 일곱가지 "나는 ...이다(에고 에이미)"이다.
나는 생명의 떡(6:35), 나는 세상의 빛(8:12), 나는 양의 문(10:7), 나는 선한 목자(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14:6), 나는 포도나무(15:1)
"나와 너", 이것의 완벽한 의미가 다가오지 않는가?
생명이신 하나님은 주격이요, 신비요, 사랑이시다.
2022. 2. 16
이 호 혁
첫댓글 "I am who I am." 생각할수록 신비스럽고 오묘한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심오한 진리의 글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