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 속의 純
-담양 순례를 다녀와서-
"한생명 부처님 생명, 여러분의 생명은 결코 가짜 생명이 아닙니다. 나고 죽는 몸뚱아리가 여러분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몸이 나기 전부터 있었고 여러분의 몸이 죽고난 뒤에도 있는 한 생명이 있습니다. 이 참 생명이 바로 여러분의 주인입니다. 일체(一切)는 일체(一體)입니다."
한탑 스님께서는 늦이 동참하는 우리들을 위해 하시던 법문을 중단하고 새로이 법설을 펴내신다. 선지식 순례에 나선 이십 인의 남순 객이 정토사 무량수전 법회장에 도착한 것은 11시 반이 조금 덜되었을 때였다. 아침 10시 30분에 법회가 있으니 그 시간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아침 7시 양재동 출발을 기약했다. 늘 그렇듯이 이런저런 사연이 있는 법. 밤새 근무하고 오는 이, 파주와 같이 먼 곳에서 오는 이들의 동참을 위해 20여 분 연발. 18인을 태운 콤비(기사 박상범)는 만남의 광장에서 잠시 쉬었다 장도에 올랐다. 남창현 회장 내외께서 준비한 빵과 음료를 나누며 기행의 서막을 열었다. 선지식 친견과 아울러 가사 문학이 활활발발 꽃핀 남도 담양의 정자 들을 들러 보기로 하였으니 가사 두 편을 복사했다. 전날 정토사로 어디가 좋겠냐고 여쭈니 주변의 면앙정을 권하셨다. 가사의 효시로 한 때 알려졌던 정극인의 상춘곡과 송순의 면앙정가를 준비했다. 담양에 대해 사전 간단한 상식과 한국문학사에서 가사가 점하는 위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 상춘곡을 뒤적였다. 대체로 언제나 그렇듯이 구체적인 텍스트가 나오면 누구나 졸리고 깊지 않은 지식에서 오는 가벼움으로 졸음을 불러준다. 가사 이야기보다 재미있는 것은 그래도 지난날 있었던 과거를 들추는 것인가 보다. 너나없이 한마디 거든다.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여산휴게소에 이르게 되었다. 갈 길이 멀어 간단한 볼 일로 휴식을 끝내고 담양을 향해 속도를 낸다.
백양사IC를 나와 메타쉐케아 늘어선 담양읍내로 들어선 시간이 11시를 막 지나서였다. 소읍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다. 대나무로 우리에게 더 알려진 담양은 맑고 깨끗했다. 과일이라도 좀 사서 가자고 했는데 마땅히 구입처를 찾지 못하고 그대로 절로 올라간다. 10시 반에 류광연 동문이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았고, 10시가 안 돼 칠보회 김승기 선배와 통화했는데 도착하지 않았다. 잠시 후 강태구 선배 내외가 부리나케 도착한다. 일행은 네모난 무량수전 삼보인을 향해 목례하고 법회중인 법당에 조용히 들어섰다. 스님께서는 잠시 말씀을 중단하시고 좌정하자 운을 떼셨다.
스님의 정정한 모습은 20여 년 전이나 별반 다르지 않으셨다. 가짜 생명의 몸뚱이를 버려야 합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은 운명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운명을 지은 프로그램을 수정해야 합니다. 하며 스님의 카랑카랑한 법음이 긴 무량수전 법당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88년 주례를 서신 뒤 동산법당에서 한번 법문을 들은 후 처음이었다. 76년 3월( 14일로 기억됨) 원각회 창립기념법회 참석을 시작으로 스님의 법문을 수없이 들었지만 깊이 있게 받아들였다기보다는 그시그시 듣고 그시그시 잊고 사는 우리네 삶이기는 하나 힘있게 들려 왔다. 30여 분 계속된 법문은 최고의 지성인 스님답게 현대물리학이론이나 최신의 이론들이 나열되며 펼쳐졌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를 인용하여 삼업 청정의 첫째 잘못된 말을 하지 말고 밝고 긍정적인 언어생활을 강조하신다. 옛날 옛적의 죽은 말씀이 아니라 펄펄 살아뛰는 법문이 종횡무진 전개된다. 스님이 내려주신 노자로 일행의 귀가길은 풍성하지 않을까. 금강경을 많이 읽으면 업장이 소멸한다는 스님은 정토사에 머물며 수행하는 분의 사례를 들어주신다. 병원에서 두 손을 든 암 환자가 우리말 금강경 매일 21독을 하며 마음을 맑힌 결과 거짓말 같이 병이 호전되었다고 하신다. 이것은 영험이 아니다. 본래 생명 자리로 자신을 돌려 놓았기 때문인 것이다.
나무아미타불은 무엇인가. 무량한 생명이며 광명인 참생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가짜 생명이 아닌 영원한 참생명으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염불이다. 금강경 독송과 마하반야바라밀 운동을 펴신 스님이나 광덕 스님의 원력들이 오롯이 법문에 담긴다. 스님의 법문이 끝나고 말로만 전해 듣던 문사수법회의식에 동참할 수 있었다. 찬불가 일색의 현실 법회를 되돌아 볼 수 있는 합송이 인상적이었다. 한글 경전을 1자 목탁에 따라 독송하게 되면 한문과는 달리 축 널어지게 되는데 명료해서 좋았다. 우리말 경전은 시 낭송하듯 해야 된다는 소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정근을 하며 보시를 하고 발원과 서원을 끝으로 법회를 끝낸다. 사회를 보시는 분께서 남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너스로 선물하시겠단다. 멋을 아는 고장의 멋을 아는 분들이다. 법당에서 점심공양이 진행되었다. 편의상 각자 소반에 담은 공양을 한다. 발우공양을 하지는 못했지만 식사에 염담하면 삼독도 구축한다는 오관게를 염하며 공양을 마치고 도량 주변을 둘러 보았다.
2001년 한국건축가협회 우수건축상을 수상한 아름답고 특이한 법당인 무량수전 앞에는 삼성각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정토사는 작은 시골의 이웃집과 같은 구조를 하고 있었다.?아직 불사가 완성되지 못한듯 요사채와 해우소 등은 가건물인 채였고 건축가 상을 수상한 이층 시멘트 건물 무량수전은 외장벽은 단청도 도색도 하지 않은 채였다. 절을 유지하기 위해 보시를 강조한다든가 재공을 강요하지 않는 순 불교를 하는 사찰이 그러하듯 모든 것이 미완성인 채였다. 요사채 앞 종각은 파암각(破闇閣)이라는 편액을 부쳤다. 범종각 일색에 비해 멋스럽다. 문종성 번뇌단(이 종소리를 들으면 번뇌가 끊어진다)이라 하지 않았던가. 무명을 깨버리는 종을 매단 종각이 아닌가.
무량수전 오른쪽에는 작은 저수지가 찰랑찰랑 맑은 물을 담고 있다. 저수지 저편에는 취죽이 가득하다. 암전취죽시방춘이라더니 여기서 또 관음의 성지를 만난다. 아미타 부처님의 좌보처로 관세음보살이 계신다. 관음보살을 찬탄한 노래가 떠오른다.
백의관음무설설 남순동자불문문 병상녹양삼제하 암전취죽시방춘; 백의관음보살은 말씀없이 말씀하시고 남순동자는 듣지도 않지만 법문을/중생의 소원을 다 듣는다. 호리병의 버드나무 늘 여름을 말해 주고 바위앞 푸른 대는 온세계가 봄이로다. 저수지 앞에는 봄나물이 덤성덤성 자라고 있다. 늦이 도착한 칠보회 보살님들이 법당 부처님보다 먼저 뵐려고 달려간 곳이 쑥 부처님 계신 곳이 아닌가. 남쪽으로 달려온 동자(진리를 찾아온 순례객)들은 법당에 들어가 법문을 들을 필요도 이미 없다. 자연의 멋진 법문을 듣고 있으니. 어김없이 봄기운을 만나면 파릇파릇 이쁘게도 자라고 있거늘. 몇몇 선배님과 이런저런 말씀을 한다.
주지 스님은 출타중이라 뵐 수 없었다. 동방대학에서 한탑 스님의 속가 아드님인 문사수 법회의 김태영 법사님을 만나 문사수 법회를 같이 이끌면서 스님을 시봉하는 그 거룩한 정신을 내려오는 길에 나누었는데 나중에 합류한 분들께 말씀드렸다. 혜광스님을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저간의 사정을 전해 들었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스승을 알아 보고 뫼시는 그 자체가 거룩하고 큰 수행인가를 역설한다. 공양을 끝낸 이들이 하나 둘 삼삼오오 짝을 짓기도 하고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스님께서 마당으로 나오셨다. 이런저런 안부를 여쭙고 빠져서는 안 될?사진 찰영을 한다. 30여 명이 넘는 동참객이다. 스님께 부끄럽지만 논문과 짬짬히 적어놓은 한시 몇 편을 살펴주십사 전해 드렸다. 따로이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으니 속내라도 보여 드렸으면 해서였다.
여기저기서 눈치가 온다. 빨리 가자고. 당초 정토사 출발 시간을 2시라 생각했는데 아직 20여 분이 남았는데 여기저기 눈치가 심상치 않다. 김태숙 선배 왈 심각하게 얘기하니까 분위기를 깰 수 없었다나. 푼수는 따로 없다. 그래 오늘은 푼수가 될밖에. 모처럼 선지식을 만나 가슴에 담았던 말씀을 조금이라도 드려야 하지 않을까. 선지식을 찾아가서 요연히 인가 마치라 경허스님은 참선곡에서 노래하지 않았던가. 뭐 그렇다고 깨달았다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말씀이나 근기 따라 가는 법이 아닌가. 이제 떠나야 한다니 못내 서운해 하신다. 좌담자리가 만들어지지 못해 아쉽기 거지 없다. 한번 길 나면 자주 올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청년기에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신 어른을 그간 찾아뵙지 못한 마음에 더욱 걸음이 무겁다. 어제 통화한 보살님은 면앙정을 소개했는데 스님은 식영정과 가사문학관 소쇄원 코스가 괜찮다고 하셨다. 김태숙 선배의 부군이자 남창현 회장님의 아우님께서 가이드로 나섰다. 어디를 가나 고마운 분들을 만나게 된다. 소쇄원과 식영정은 담양의 남쪽에 있다.
버스로 40여 분을 달려 그림자를 쉬게 한다는 식영정을 지나면서만 보고 소쇄원을 오른다. 한국정원의 정형이 가장 아름답게 짜여진 속된 말로 미치도록 이쁘고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작지만?기개 있고 여유와 품성을 보여 준다. 뒷 정원은 산도 아니고 밭도 아니고 감나무 몇 그루가 무작위적으로 몇 그루 서 있다. 담의 높이 비교적 경사가 있는 계곡에 간수는 심장의 고동처럼 폭포되어 흘러 내린다. 작은 아름다움을 담으려는 렌즈를 맞추는 이들이 축구장 골문보다 북적거린다. 한 줌밖에 되지 않을 듯한 정경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뒤늦게 소쇄원을 오르기 시작한 박 선배는 재미가 없다고 한다. 아, 아니 이렇게 좋은 곳에 와서 재미 없어 하니 어쩌면 좋담. 물과 계곡 대나무 숲을 보세요. 그 흔하디 흔한 게 담양의 대나무라 생각하지 말고 비록 벼슬을 버리고 하향하였지만 자신들의 절개를 보여 주기라도 하듯이 계곡 건너에 도열시켜 놓지 않았냐고. 저 개울이 거대한 계곡이라면 폭포물 소리에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하며 여름이면 저 간수에 세족을 하는 15세기의 지식을 생각하라고 열변을 토한다. 어떤 이는 재미있다고 듣지만 그들이 그렇게 살아갈 때 민중은 어떤 삶을 살았겠냐고 한다. 옳은 지적이다. 조선조 사림의 생활은 계급 그 자체였다. 그들이 민중의 아픔과 삶의 질을 고민하지 않은 데 대해 나는 한없는 안타까움과 조선조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오늘 만나는 것은 그들이 남긴 문학과 문학을 보러 온 것이 아닌가.
긍정과 부정이 아니라 그들의 멋을 보러 온 것일 뿐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재해석해야 하는 것은 역사이고 문학은 예술미를 안고 있는 장르이고 정서다. 자연 속에 들어와 세상의 영화를 떠나 초연히 살며 자연과 하나 되고자 했던 풍류를 맛보면 되는 것이다. 남도에 아름다운 자연 속에 그들은 시가를 짓고 자연이 되었던 것이다. 구름이 되고 새가 되면 현실을 떠난 현실을 갈구했다. 면앙정이 무언가 구부리거나 우러러본다는 정자이다. 구부려 땅을 보라. 지금 들판에는 한 해 살림을 시작하려는 듯 온통 푸름의 싹으로 변해가고 있잖는가. 고개를 들어 먼산을 보고 구름을 보면 자신이 기개를 담았다. 또 무언가. 우러르면 임금이 계신 곳이고 굽어 보면 민초의 삶이다. 또 우러르면 하늘이고 내려 보면 내 모습이다. 천지간에 한 점 부끄럼 없고자 했던 송순의 절의를 면앙정에서 볼 수 있잖는가. 우리는 한쪽만 보기 쉽상이다. 잘난 사람은 잘 보인다. 그러나 나보다 부족한 사람은 애써 외면한다. 나보다 잘난 사람은 시기하고 나보다 못난 사람은 무시한다. 면앙정은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지 않는가. 또 힘써 노력하라는 뜻도 보인다. 석 줄 시조로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다 표현하기 어려웠던 사림의 은일처사들은 가사를 지었다. 15세기 정극인의 상춘곡에서 출발한 가사는 16세기 초엽의 송순의 면앙정가에서 꽃피고 16세기말 정철의 성산별곡 사미인곡 관동별곡에서 절정에 이른다. 담양이 가사문학의 보고가 된 데는 송순 정철과 같은 위대한 문인들이 유행했던 면앙정과 식영정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지 않았던가. 수없이 명멸한 그 어떤 사림보다 한편의 시와 가사를 지은 이들이 역사라는 천지에 반짝이는 것은 결코 단순한 것만이 아니다. 그들은 삶의 치열성을 보고 자연과 동화되는 무위를 실천하며 그 세계를 노래하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쇄원보다 몇 배나 넓은 주차장에 내려와 다시 칠보회와 두어 시간의 조우를 마감해야 했다. 야, 우리는 재미없어 같이 못가겠어, 박 선배의 푸념이 아니라도 칠보회 차량은 군산을 가야 했고 우리는 귀경을 서둘러야 했다. 이제 오늘의 공식 일정이 끝나는 순간이 되었다. 하루 일과라 할 수 있는 8시간 정도를 선지식 친견과 우리 문화 답사로 보냈으니, 맹숭맹숭한 순간을 놓고 싶어 하는 이들이 외침이 들리기 시작한다. 담양 명물 대통술 있다고 남 선배 걱정 말란다. 그렇지만 시간이 많지 않으니 가다가 가게에 들러 곡차를 준비하기로 하고 백양사 IC로 향한다.
일행을 태운 버스가 담양읍내를 벗어나려는 곳에 '한국 죽향, 생태 담양'라는 구호가 잔디로 새겨져 있었다. 마침 옆자리에 있던 신 선배 왈: 자주 듣던 법문인데 오늘 왠지 더 가슴에 와 닿아, 한다. 정토사를 나올 때 자주 찾아뵈었으면 하는 마음이 다시 인다. 이제 버스는 담양을 벗어나 장성으로 접어드는 것 같았다. 백양사 입구로 보이는 곳에 백양수퍼가 있었다. 대중의 소원을 거역할 수 없어 곡차거리를 사 든다. 조용한 차내가 왁자지껄 금기의 영역이 하나 둘 사라지고 곡차판이 된다. 류광연 동문 차로 먼저 떠난 박 동문이 전주IC전방 2키로지점부터 정체가 된다며 자신들은 태인에서 나와 서해안을 탈 테니까 잘 결정하라고 연거푸 전화가 온다. 왠걸 한두 시간 먼저 서울 닿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가무의 시간이다. 나는 여기서부터 젠병이지. 듣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무념의 경지에 들어선다. 가장 원색적인 유행가들이 신나게 반복된다. 오늘 처음 만난 당신이 안 된다느니 하는 어쩌면 너무나 인간적인 유행가가 춤을 춘다. 아닌게아니라 전주를 지날 무렵부터 정체되기 시작했다. 한 30분이 그렇게 거북이걸음이다. 보리곡차는 용변을 일으킨다. 노변에 주차 볼 일을 본다. 여산휴게소에 또 선다. 장거리여행을 하다 보면 적적하니 끝없이 먹게 마련이다. 그러니 볼 일이 많을밖에. 인과의 원리는 어디도 예외가 없다.
차도 취했는지 논산천안간 고속도로 진입을 놓치고 경부선 쪽을 행해간다. 아 30분 날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가무는 한없이 기분을 업시켰나 보다. 일찍이 한서 위지 동이전에는 가무를 즐기는 종족이라고 우리 민족을 기술하였다지. 목천을 지나니 전용차선도 예외없이 주차장이 된다. 강태구 선배께서 문의 전화가 온다. 차 막히며 이명박이한테 전화한다는 남 선배의 횡설수설 속에 찻길이 트여지고 그럭저럭 왁자지껄하며 서다가다를 반복한다. 뜸금없이 남선배는 눈치도 없이 차 막히며 1인당 2만원을 지불하겠노라 중언을 날린다. 내자의 눈초리쯤은 상관이 없다. 최고회장 연호가 이어지고, 택도 없는 소리라고 총무로 왈 안할 수 없다. 장이 왜 장기집권이요, 경선해 경선해, 하는 김 선배. 그래저래 웃는다.
천안논산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아 도로비가 5,800원 절약된다. 9시가 넘어 양재동에 도착하게 되고 길건너 순대국집에서 아닌 밤중에 홍두깨비식으로 몰려가 저녁을 먹는다. 주인장에게는 횡재였는지 몰라도 최고의 불친절을 맛본다. 16인분 밥을 주문했음에도 불구하고 밥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새로 한 밥이라면서 일부는 식사를 끝날 때쯤 돼서 10분을 더 기다리란다. 차라리 처음부터 말했으면 나누어 먹기라도 하지. 대단한 서비스정신이다. 밥값을 깎아야 한다는 소리에 그러마 하고 계산을 서두른다. 그런데 진짜루 언제 나갔는지 남 선배는 계산을 끝낸다. 회비에서 계산해야 한다고 사모는 한마디 거들고 이래저래 난처한 가운데 작별을 고한다. 양재동 도착했을 때 방향감각을 잃었는데 다시 돌아와 길 건넌 것이 그대로다.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함께 해준 분들께 함께 하지 못한 벗들께도 감사의 마음 가득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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