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 해설
一始无始一1) 일에서 시작하니 무가 하나를 시작하니라
析三極2) 삼극으로 쪼개도
无盡本 다함없는 근본이라
天一一 하늘은 하나 얻어 첫째가 되고
地一二 땅도 하나 얻어 둘째가 되며
人一三3) 사람도 하나 얻어 셋째가 되니라
一積十鉅4) 하나가 쌓여 열로 커졌으되
无匱化三5) 어그러짐없이 삼으로 화하니
天二三6) 하늘은 음양으로 삼변하고
地二三7) 땅은 강유로 삼변하고
人二三8) 사람은 인의로 삼변하니라
大三合六9) 삼을 크게하여 육으로 합하고
生七八九10) 칠.팔.구를 생하니
運三四11) 삼사로 운행하고
成環五七12) 오칠로 고리를 이루니
一妙衍 하나가 묘하게 넓혀져서
萬往萬來 만으로 가고 만으로 오니라
用變不動本 용은 변해도 움직이지 않는 근본이라
本心本13) 본심은 본래
太陽昻明14) 태양의 앙명함이니
人中天地一15) 사람은 천지 가운데 하나라
一終无終一16) 일로써 마치니 무가 하나를 마침이니라
1) ‘一大爲天’이라 하니 一은 하늘이다. 옛 사람들은 하늘을 둥글다 하여 圓(○)으로 형상하였고, 이 하늘을 축소시켜 말할 때는 點(․)을 찍었으며 하늘을 무한히 넓혀 말할 때는 一字(一)로 표현하였다. 하늘은 천.지.인 三才를 갖추고 있고, 순환의 본체가 되니 이로부터 萬有가 나온다. 그래서 三才를 天符三印이라 말한다. 만유의 근원으로써 하늘을 말하니 또한 太極을 지칭하기도 한다. 天一.地一.人一의 一을 태극으로 보는 것이다. 宇宙萬有의 終始는 하늘, 즉 一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周易』에서는 「大哉라 乾元이여 萬物이 資始하나니...」라 하였다. 그리고 太極은 다름아닌 无極이다. 无極과 太極은 모습만 다를 뿐이지 똑같은 의미라는 뜻이다. 대개 有는 無에서 생기고 無는 有에서 생긴다. 『도덕경』에 ‘유는 무에서 생한다「有生於無」(40장)’ 는 글이 있듯이 만약 無가 없은 즉 有가 없고 有가 없은 즉 無는 의미가 없다. 濂溪선생의 ‘一則無慾’이라 하신 말씀은 바로 有無의 관계를 적절하게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지을 때에 ‘일시무시일’은 무에서 유가 생한다는 의미요 ‘일종무종일’은 유는 결국 무로 돌아간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2) .三極;天.地.人 三才의 지극한 理致를 말한다. 一은 천하의 大本으로써 모든 이치가 이로부터 나오며, 三은 一의 化現으로써 萬物을 낳는 근본수가 된다. 三才가 각각 三變한 것을 三極이라 한다. 『태백일사의 三神五帝本紀』에서 말하기를 “上界로부터 문득 三神이 있은 즉 한 분의 上帝시다. 主體인 즉 一神이요 각각 神이 있음이 아니나 作用인 즉 三神인 것이다. ...저 三神을 상고함에 曰天一 曰地一 曰太一이라하니 天一은 造化를 주관하고 地一은 敎化를 주관하고 太一은 治化를 주관한다”하였다. 따라서 이 뜻은 一이 三으로 나뉘어지고 三이 三變해서 三極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총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3) .이는 三才가 순서적으로 나오게 됨을 설명한 글이다. 대개 天地 사이에는 하나의 氣가 流行할 뿐이다. 이 氣가 한번 陰하고 한번 陽하는 것을 道라 하는데, 道라 하는 것은 바로 一을 표현한 다름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과 사람이 각각 一을 얻어 道를 이룬 것이며 하나에서 곧 三才로 나타나는(一而三) 이치를 표현한 것이다. 또한 이는 주역에서 말하는 ‘天地絪縕에 萬物이 化醇하고 男女構精에 萬物이 化生한다’는 뜻을 설명한 것이다. 대개 삼재가 삼변해서 삼극이 되는데, 이 구절까지는 삼재가 一變함을 말한 것이다.
4) .一은 數의 시작이고 十은 數의 마침이다. 始終을 모두 간직한 곳이 땅이므로 一과 十을 합해 土라 하였다. 『洪範』에서 ‘土爰稼穡’이라 함이 바로 이 뜻이다. 『태백일사. 마한세가 상』에 ‘신시개천시대에 이르러서 땅(土)으로써 다스림을 삼았으니 一積해서 陰이 세워지고 十鉅로 해서 陽이 나왔다’했으니 ‘일적십거’는 土를 뜻한다. 『주역.계사』에 河圖를 引用하여 數一에서 十까지 쌓인 수를 天地의 數라 하였는데 이 글과 符合이 된다. 사람도 天地의 기를 받아서 10달 만에 출생하는 것이다.
5) .三은 極數요 變化의 基本數이다. 道德經에서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이라 했으니 三은 곧 太極으로 萬物을 생하는 수인 것이다. 천부경에서는 數一이 三으로 변화돼 나오고 三이 다시 一로 들어가는 ‘一而三, 三而一’의 원리로 표현하였다.
6) .하늘에 해와 달이 있어 서로 進退往來하며 消息하니 二는 곧 陰陽을 가리킨 말이다.
7) .땅에는 물과 불이 있어 서로 부딪혀 육지와 바다를 이루니 二는 곧 剛柔를 가리킨 말이다.
8) .사람에게는 남녀가 있어 서로 만나 道德을 따르고 人倫을 지키니 二는 곧 仁義를 가리킨 말이다. 이 구절까지는 삼재가 二變함을 말한 것이다.
9) .大三이라 한 뜻은 天地人三才를 再變하여 설명한 것이다. 즉 三才가 體라면 각각의 陰陽.剛柔.仁義 여섯가지는 用으로써 變化의 道를 표현한 것이다.
『주역.계사』에 「하늘의 道를 세우니 陰과 陽이요 땅의 道를 세우니 柔와 剛이요 사람의 道를 세우니 仁과 義라(立天之道曰陰與陽이요 立地之道曰柔與剛이요 立人之道曰 仁與義라)」했으니 이것은 하나가 둘을 겸하지 않으면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역에서도 六爻를 그림으로써 괘를 이루고(六畫而成卦), 六位로써 문채를 이룬다(六位而成章)고 했고 또한 六爻之動은 三極之道라 했으니 天.地.人 三才의 道는 六으로 해서 나타난다는 말이다.
10) .六에 天一一을 더하면 七이되고 地一二를 더하면 八이되고 人一三을 더하면 九가 된다. 이는 天地人 三才를 각각 三變하여 物 이룸을 설명한 것이니, 天才는 三變해서 乾三連( ☰ ) 三(1×3=3)으로 이루어지고 地才는 三變해서 坤三絶( ☷ ) 六(2×3=6)으로 이루어지며 人才는 三變해서 지천태( ) 九(3×3=9)로 이루어짐을 설명한 것이라 하겠다. 비유하자면 사람의 몸이 九竅로 이루어 졌고 마음 또한 태양의 밝음과 같으며 태양의 수는 九이므로 사람의 몸과 마음이 모두 九數로 이루어 졌음을 이해 할 수 있다. 또한 數의 十은 體요 九는 用으로써 天地自然의 造化는 終始를 이루며 循環하는데 洛書의 九數와 부합이 된다.
11) .三이 用數요 變化의 數라면 四는 體數요 成數이다. 비유하자면 三個月을 한 季節로 삼고 四季節을 一年으로 삼는 이치와 같으니 하루와 일년과 129,600년의 運氣가 모두 運三四의 이치로 순환하는 것이다. 동주학당의 崔碩基씨(白山學報 제37호 참조)는 이를 설명하기를 ‘三(三才)에 四(四時.四方)를 곱하면 十二가 되고 여기에 九를 곱하면 一百八이 된다’고 하였는데 주역으로 설명하자면 주역은 64괘로 되어 있지만 도전괘와 부도전괘로 합하면 36괘가 되며 상하경으로 각각 18괘씩 이루어 졌는데 卦당 六爻씩 이므로 상경108효 하경108효를 이루고 있다. 생각컨데, 108이란 수의 의미는 예를들면 일년이 365일로 이루어진 것처럼 108의 수도 마디로 고리를 이루는 法數로 쓰여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으니 최석기씨의 설명도 일리가 있다.
12) 사시를 유행하게 하는 것이 五土다. 五는 五土를 가리키니 四行을 주관하는 뜻이고, 七은 ‘七日來復’ 즉 窮則通을 뜻한다. 土는 流行의 主體로 말한 것이고, 七은 歲功의 成果로 말한 것이다. 또한 五는 五星을 가리키고, 七은 七宿의 二十八宿를 말할 수 있으니 28수는 經星이요 5성은 緯星이 된다. 윷판 속의 그림이 바로 28수를 표현한 것이다. 최석기씨는 ‘成環五七’에 대해 설명하기를 ‘五에 七을 더하여 이 十二로 一百八에 周環하는 것이 九宮을 이루었으니 每宮에 十二란 것은 一日의 十二時와 一年의 十二月과 一元의 十二會라’ 했으니 一日.一年.一元의 法數로서의 108을 ‘經’이라 한다면 12는 ‘緯’라 할 수 있는 것이다.
13) .소강절선생은 그의 저서「皇極經世書」에서 ‘사람은 천지 가운데에 있고 마음은 사람 가운데에 있다(人居天地之中 心居人之中)’고 하였으며 또한 ‘마음이 태극이다(心爲太極)’라고 하였는데 태극은 一로써 마음 또한 一의 의미가 되니 마음은 곧 萬事萬物의 本源이 되는 것이다.
14) .一은 마음의 本體요 九는 마음의 極한 用數이다. 太陽의 밝은 神明이 마음속에 거주하고 하늘의 태양처럼 사방을 비치지 않는 곳이 없으며 四象에서 太陽의 數는 九가 되므로 마음을 ‘태양(9)앙명’으로 비유한 것이다. 생각컨데 마음이란 결국 하늘에서 비롯된 것임과 하늘 닮은 것임을 표현한 것이며, 그리고 마음 九數를 다한 九九 八十一字로써 天符經을 지은 뜻은, 천부경 81자 모두가 心法 밖을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淮南子의 地形訓』에 ‘天一地二人三 三三九 九九八十一이니 一은 日을 주관한다' 하였다.
15) .天地는 本體로써 恒常하지만 사람을 用數로 삼아 道를 이룬다. 그러므로 만약 사람이 天地萬物과 더불어 一體를 삼을 수만 있다면 그는 天地와 더불어 함께 자리하며[三極] 만물을 化育할 수 있다 하니 이른바『중용』에서 말하는 「致中和면 天地位焉하며 萬物이 育焉하니라」한 뜻이 이것이다.
16) .전술했듯이 道는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儒家에서는 一貫을 말하고 佛家에서는 歸一을 말하며 道家에서는 守一을 말할 뿐이니 옛 분들은 無慾으로써 定靜을 주장하며 하나를 지키려 힘썼던 것이다. 천부경의 修身用法이 바로 이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