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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
- 金光均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 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 속을 들여다 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文學」(1946년 7월호)---
<핵심 정리>
1. 시작(詩作) 배경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비통한 심경을 절제와 간결의 언어로 표현하여 더 많은 효
과와 감동을 준다.
2. 시상의 전개
* 제1연 - 은수저에 고인 눈물
* 제2연 - 애기에 대한 환상
* 제3연 - 안타까운 부정(父情)
3. 주제 : 아기를 잃은 부정(父情)
4. 소재 : 은수저
5. 시어의 상징 의미
* 은수저 - 애기를 상징
<감상의 길잡이>
이미지즘 경향의 회화적 수법을 앞세운 이전의 시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김광균의 이
시는 자식 잃은 아버지의 뜨거운 부정(父情)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시는
해방공간의 정치성 짙은 시들과는 달리 김광균의 시적 관심사가 다시 시인의 내면의 문
제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김광균이 문단에 처음 작품을 선보인 것은 불과 16세
이던 1930년 동아일보 지면이었다. 그리고 첫 시집 와사등이 출간된 것이 25세 때인
1939년이고, 두 번째 시집 기항지가 나온 것이 33세 때인 1947년이었다. 결국 그는
서른 이전의 나이에 시인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한국 시사에서 확보했을 뿐 아니라,
해방을 전후해서 이미 시인으로서의 재능을 거의 소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후 그는
시작 생활을 중단하고 실업계에 투신하여 역량있는 실업인으로 활약하다가 문단 고별
시집인 황혼가(1957)를 출간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30년이 지난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 생활을 재개하여 정지용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나, 예전만큼의 주목은 받지 못
하고 말았다.
이 시는 두 번째 시집 기항지에 수록되어 있지만, 후기 작품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기항지 발문에 ‘내 나이 스물 여섯부터 서른까지의 것’이라고 기록된 것을
참고한다면, 이 시는 예전의 시와는 전혀 다른 경향의 작품으로 서른 이후에 창작된 것
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추보식 구성의 이 시는 화자인 아버지가 저녁을 먹으며 아이의 부재
를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한밤중에 만난 죽은 아이의 환영과 죽음의 세계로 떠나는 아이
의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한편, 이 시는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을 노래
하고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비통한 심경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시어는 ‘눈물’ 하
나밖에는 없다. 그러나 간결한 3연의 구성과 단문으로 행을 마감한 시 형식 속에는 자식
을 그리워하며 피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의 아픔이 흠뻑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1연은 화자가 저녁 식사 시간에 아이의 죽음을 확인하는 모습이다. 저녁 식사 시간, 화자
는 문득 아이가 없음을 깨닫는다. 정말 죽은 것이 아니라, 잠깐 어디를 간 것이라고 믿어
왔지만, 저녁 밥상을 받고 아이의 빈 자리를 보며 그제서야 아이의 죽음을 인정하게 된다
. 그리고는 아이의 방석에 놓인 주인 없는 ‘은수저’를 보며 화자는 눈물을 흘린다. ‘저무는
산’과 ‘잠기는 노을’은 하강․소멸의 이미지로서 아이의 죽음을 상징하며, 아기를 ‘애기’로
표현한 것에서 더 짙은 아버지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은수저는 ‘수복강녕(壽福康寧)’을 빌
며 그가 아이의 돌잔치 때 선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화자는 그 은수저에서 더 깊
은 절망감을 느끼는 것이다. ‘은수저’에서 ‘애기’를 떠올리고, 다시 그것은 ‘부정(父情)’으
로 확대됨에 따라 마침내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2연은 한밤중에 화자가 아이의 환영(幻影)을 만나는 모습이다. 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화자는 들창을 열고 바람 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던 중, 불
어 오는 바람과 함께 어디선가 방실방실 웃으며 방안을 들여다 보는 아이의 환영을 만나
게 된다. 그러나 화자가 반가와하기도 전에, 아이는 벌써 문을 닫고 총총히 사라져 버린
다.
3연은 아이가 죽음의 세계로 떠나가는 모습이다. 화자는 ‘먼 들길’로 제시된 죽음의 세계
로 ‘맨발 벗은’ 채 울면서 가고 있는 ‘애기’를 목메어 부르지만, 아이는 ‘불러도 대답이 없’
고 ‘그림자마저 아른거’릴 뿐이다.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던 2연의 ‘애기’가 3연에 와서는
사자(死者)의 모습으로 바뀌어 나타나 있다. 아무리 목메어 부르며 그리워하더라도 이젠
더 이상 이 곳 이승의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아이임을 인정하고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드는 데서 진한 육친애를 느낄 수 있다. 정지용의 <유리창>과 동일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지만, <유리창>보다 화자의 감정이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으며, 별다른 수사
적 기교 없이 평이한 서술로 아픔을 토로하고 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이지만
, 그것을 절제하고 여과하는 시인의 인간적 성숙도를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