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 / 존 스타인벡
그들은 하이웨이에 서서, 물에 온통 잠긴 들판과 암적색 화차 덩어리와 천천히 흐르는 물
속에 깊이 잠겨 있는 트럭과 자동차들을 뒤돌아보았다. 그렇게 그들이 서 있는 동안에 또
안개처럼 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서 가야지."
하고 어머니가 서둘렀다.
"로자샤안, 너 좀 걷겠니?"
"좀 비틀비틀해요. 얻어맞은 것만 같아요."
아버지가 불평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 가긴 가는데 어디로 간다는 거지?"
"글쎄 말이유. 어서 로자샤안이나 붙잡아 줘요."
어머니가 딸의 오른팔을 붙잡자, 아버지는 왼팔을 붙잡았다.
"물이 안 난 데로 가야 해요. 이틀 동안이나 벌써 젖은 옷만 입고 있지 않았수?"
그들은 천천히 하이웨이를 걸어갔다. 길가에 있는 개울에서 세차게 흘러가는 물소리가 들렸
다. 루디와 윈필드는 발로 길바닥의 물을 튕기면서 나란히 걸어갔다. 그들은 천천히 길을 걸
어갔다. 하늘이 차차 어두워지고 빗발이 심해졌다.
하이웨이에는 왕래가 완전히 두절되었다.
"어서 빨리 가야지."
하고 어머니가 다시 서둘렀다.
"이 애가 너무 젖으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모르잖아요."
"빨리 가라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지 난 모르겠는데."
아버지가 또다시 투덜댔다.
길은 개울을 따라 구부러졌다. 어머니는 근처의 땅과 물에 침수된 밭을 둘러보았다. 길에서
멀리 떨어진 왼쪽, 다소 기복을 이루고 있는 언덕 위에 비에 젖어서 꺼멓게 보이는 헛간 한
채가 서 있었다.
"봐요!"
어머니가 반색을 했다.
"저길 봐요! 저기 저 헛간은 젖지 않았을 거에요. 비가 멎을 때까지 저기 가 있습시다."
아버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헛간 주인한테 내쫓기게 되면 그 땐 어떡한다?"
길가 저만큼 앞에서 빨간 점이 하나 루디의 눈에 띄었다. 그녀는 그 쪽으로 달려갔다. 들판
에 홀로 핀 쪼글쪼글 시든 제라늄이 한 그루 있고, 비에 두들겨 맞은 꽃이 한 송이 달려 있
었다. 그녀는 그 꽃을 꺾었다. 꽃잎을 한 장 살며시 따서 콧등에 갖다 붙였다. 윈필드가 보
고 달려왔다.
"나두 하나 줘."
"안돼! 다 내 거야. 내가 찾아 냈어."
그녀는 빨간 꽃잎을 또 한 장 따서 이마에다 붙였다. 조그맣고, 선명하게 새빨간 하트 모양
의 꽃잎이었다.
"응, 루디! 나에게도 하나 줘. 줘, 빨리."
그는 루디 손 안의 꽃을 뺏어채려다가 손이 빗나갔다. 루디는 손바닥으로 그의 뺨을 찰싹
때렸다. 그 순간, 그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렸으나, 곧 입술이 실룩거리고 눈에
서 눈물이 솟아 나왔다. 다른 식구들이 뒤쫓아왔다.
"아니, 너 무슨 짓이냐?"
어머니가 말했다.
"도대체 뭘 어쨌기에 그래?"
"저 새끼가 내 꽃을 빼앗으려고 했지 뭐야."
윈필드가 흐느끼면서 말했다.
"난― 그저 하나만 달랬는데―콧등에 붙이려구."
"한 장만 주렴, 루디야!"
"자기가 찾으면 되잖아. 이건 내 거야."
"루디야! 하나 주지 못해."
루디는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위협을 느끼자 전술을 바꿨다.
"이봐."
하고 그녀는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한 장 붙여 줄께."
어른들은 계속 걸어갔다. 윈필드가 그녀 앞에 코를 내밀었다. 그녀는 꽃잎을 한 장 혀로 적
셔서 아무렇게나 코에다 갖다 비벼댔다.
"요녀석."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윈필드는 손가락으로 꽃잎을 찾아서 자기 콧등에다 비벼댔다. 그
들은 다른 식구들에게 떨어질세라 빠른 걸음으로 뒤따라갔다. 루디는 이젠 재미가 없어진
것을 깨달았다.
"이봐, 더 줄께. 이마에 붙여라."
길 오른쪽에서 쫙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 왔다. 어머니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빨리 가자. 큰 비가 온다. 이 울타리로 빠져 나가자. 그게 가깝겠어, 자, 어서! 기 운을
내, 로자샤안."
그들은 딸을 거의 끌다시피하면서 도랑을 건너 손을 잡고 울타리를 빠져 나갔다. 그러자 그
때 폭풍우가 내리쳤다. 빗발이 굉장했다. 그들은 기를 쓰며 진창속을 저벅저벅 밟고 약간 경
사진 언덕을 기어올랐다. 검은 헛간은 비 때문에 거의 모습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비는
한바탕 휘몰아쳐 수면에 물창을 튕기고, 점점 더 몹시 불어대는 바람에 몰려 빗발을 저쪽으
로 몰고 갔다. '샤론의 장미'는 자주 발이 미끄러져 양친의 부축을 받으며 질질 끌려가야 했
다.
"여보! 이 앨 업을 수 없겠수?"
아버지가 허리를 굽히고 딸을 안아 올렸다.
"아예 펑 젖었구나. 윈필드―루디! 먼저 뛰어가라."
그들은 숨을 헐떡거리며 비에 흠뻑 젖은 헛간에 이르자 비틀거리며 열려 있는 한쪽 끝으로
뛰어들었다. 그 곳에는 문도 달려 있지 않았다. 둥근 가래 하나, 부서진 경작기 하나, 쇠바퀴
하나 등 녹슨 농기구가 몇 개 뒹굴고 있었다. 비는 지붕을 몹시 두드리고, 휘장을 친 듯 시
야를 가렸다. 아버지가 기름이 밴 상자 위에 조심스레 '샤론의 장미'를 내려놓으면서 말했
다.
"아이구 죽겠다!"
"아마, 안에 건초가 있을 거예요. 봐요, 문이 있군요."
어머니가 녹슨 돌쩌귀가 달린 문을 활짝 열었다.
"건초가 있구나."
어머니가 소리쳤다.
"자, 들어와 어서들."
안은 캄캄했다. 판자 짬에서 희미한 광선이 새어들어왔다.
"누워라, 로자샤안."
어머니가 말했다.
"누워서 좀 쉬어라. 옷을 말릴 방법을 찾아볼 테니."
윈필드가,
"어머니!"
하고 불렀지만, 요란하게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 때문에 그 밖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뭐냐? 왜 그러냐?"
"저것 봐! 저 구석."
어머니가 그 곳을 바라보았다. 컴컴한 구석에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반듯하게 드러누워
있는 남자와 그 옆에 눈을 크게 뜨고서 새로 온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앉아 있는 소
년. 그녀가 보고 있자니까 소년은 천천히 일어나서 이쪽으로 걸어와 목쉰 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닌 여기 주인이세요?"
"아니."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비를 피하러 들어왔을 뿐이야, 딸애가 병이 나서. 얘야, 젖지 않은 담요 없니? 이 애 옷을
벗기는 데 쓸 수 있을 만한?"
소년은 구석으로 되돌아가더니 더러운 깃털 이불을 한 장 가지고 와서 어머니에게 주었다.
"고맙다. 이 양반은 웬일이냐?"
소년은 목이 쉰 단조로운 소리로 말했다.
"처음엔 병이 났는데―이젠 먹질 못해서 저래요."
"뭐라구?"
"굶어 죽을 것 같애요. 목화밭에서 병이 났어요. 엿새나 먹질 못했거든요."
어머니는 구석으로 걸어가서 그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오십 세 가량의 사나이, 턱수염이 난
얼굴은 홀쭉 야위었고 뜬 눈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이 어머니 옆에 따라와
섰다.
"네 아버지냐?"
하고 어머니가 물었다.
"예! 배가 고프지 않다느니, 방금 먹었다느니, 그런 소릴 하며 내게만 먹을 걸 사 주시더니,
이젠 기운이 다 빠져서 움직이시지도 못해요."
지붕을 때리던 빗발이 좀 약해졌는지, 지붕에 떨어지는 소리도 이제는 조용히 달래는 듯한
소리로 변했다. 핼쑥 야윈 사나이가 입술을 움직였다. 어머니는 그 옆에 무릎을 꿇고 귀를
기울였다. 또다시 입술을 움직인다.
"그래."
어머니가 말했다.
"넌 이젠 안심하고 있어. 아버진 이젠 나으신다. 우리 딸의 젖은 옷을 벗길 때까지 좀 기다
려다오. 응?"
어머니는 딸 있는 데로 돌아와서,
"자, 그 옷을 벗어라."
하고는 깃털 이불을 펴서 딸의 몸이 보이지 않게 가리었다. 그리고 딸이 옷을 다 벗자, 어머
니는 그 깃털 이불로 몸을 싸 주었다.
소년이 또다시 옆으로 다가와서는 사정하듯 말했다.
"난 몰랐어요. 벌써 먹었다느니, 배가 고프지 않다느니, 아버지가 그런 소리만 했거든요. 어
젯밤 내가 나가서 유리창을 깨고 식빵을 좀 훔쳐다가 아버지에게 드렸더니 모두 토해 버리
구, 그 후부터는 전보다도 기운이 더 빠지셨어요. 수프나 우유를 드려야겠는데, 아주머니, 우
유 살 돈 좀 있으세요?"
"가만 있거라. 걱정 안 해도 좋아. 좋은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까."
갑자기 소년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리 아버진 정말 죽어요! 정말 굶어 죽어요!"
"조용하거라."
어머니는 죽어 가는 사나이를 막연히 지켜 보고 있는 아버지와 존 백부를 바라보았다. 그
다음, 깃털 이불로 몸을 싸고 움츠리고 앉아 있는 '샤론의 장미'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눈
은 '샤론의 장미'의 눈을 지나쳐 앞을 보고 있다가 다시 딸의 눈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두
여인은 서로 상대방의 눈 속을 깊이 들여다 보았다. 통하는 바가 있다는 듯이. 딸의 숨결이
가쁘게 헐떡거렸다.
"좋아요."
마침내 그녀는 말했다.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 줄줄 알았다. 이미 알고 있었어!"
어머니는 무릎 위에 깍지 낀 자기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샤론의 장미'가 속삭이듯 말했다.
"모두들―좀―밖에 나가 줘요."
빗발이 가볍게 지붕을 두드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몸을 숙여 손바닥으로 딸의 이마에 흩어져 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주고는 그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런 다음 재빨리 일어섰다.
"자, 모두 저 헛간으로 나가요."
루디가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리자,
"쉬!"
하고 어머니가 말을 막았다.
"잠자코 나가 있어."
어머니는 그들을 모두 문 밖으로 몰아낸 뒤, 자기도 소년을 끌고 나가 삐거덕거리는 문짝을
닫았다.
잠시 '샤론의 장미'는 속삭이는 듯한 빗소리가 나는 헛간 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고
나서 지친 몸을 간신히 일으키고, 몸에 걸친 깃털 이불을 끌어당기며 천천히 구석으로 걸어
가 사나이의 그 야윈 얼굴과 겁에 질려 말똥거리는 눈을 내려다보았다.
그 다음 그녀는 천천히 남자 옆에 몸을 눕혔다. 사나이가 느릿느릿 고개를 저었다. '샤론의
장미'는 깃털 이불 한쪽을 헤치고 젖을 꺼냈다.
"먹어야 해요."
그녀는 몸을 비틀 듯 더 가까이 다가가 사나이의 머리 뒤로 팔을 넣고 머리를 받쳐 주었다.
손가락은 부드럽게 사나이의 머리칼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쳐들어 헛간 안을 둘
러보았다. 그리고 입술을 모으고는 신비로운 미소를 지었다.
요점 정리
지은이 : 존 스타인벡(J. Steinbeck)/김병철 옮김
갈래 : 장편 소설. 예술 소설. 사실주의 소설
구성 : 복합 구성(이 작품은 총 30장으로 되어 있다. 홀수 장에서는 25만 명의 오우키(오클
라호마 사람)들의 삶을 그렸다. 짝수 장에서는 조드 일가의 삶을 그렸다. 지은이는 이처럼
홀수 장과 짝수 장을 상응시킴으로써 조드 일가의 비극이 곧 미국 전체의 비극으로 비치도
록 하고 있다.)
발단 -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과 조드 일가
전개 -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과 도착해서 겪는 고난의 삶
위기 - 틈의 살인과 끝없는 유랑
절정 - 밀어닥친 홍수와 로자샤안의 사산
결말 - 죽어가는 노동자에게 젖을 먹이며 미소 짓는 로자샤안
'분노의 포도'는 내용상 3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제 1∼10장은 오클라호마의 가뭄에 관한 것이고, 제 11∼18장은 캘리포니아로의 여행
에 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 19∼30장은 캘리포니아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이주자들의 몸부림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성경 '출애굽기'의 구조와 유사한데, 각각의 세 부분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인들이 받는 박해, 출애굽, 가나안 땅에서의 체류에 대응된다. 이처럼 이 작품을 출애굽기와
구조상 일치되게 그려냄으로써 역사의 한 시점에서 일어난 특정한 개인의 경험을 넘어선 모
든 인류가 당면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하게 하였다
특징 : 대화 중심의 사건 전개와 구체적, 사실적 묘사로 현장감을 주는 객관적 문체, 서술
자가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객관적 입장을 취함.
성격 : 사회 비판적, 인류애적, 노동자 가족의 비참한 삶을 객관적, 사실적으로 묘사함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
경향 : 사회주의적 리얼리즘과 휴머니즘
제재 : 조드 일가의 고난과 역경 극복의 삶
주제 :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비극적인 삶과 고난 극복의 의지, 경제 공황의 비정함을
이겨내는 인류애적 구원
내용 연구
그들은 하이웨이에 서서, 물에 온통 잠긴 들판과 암적색 화차 덩어리와 천천히 흐르는 물
속에 깊이 잠겨 있는 트럭과 자동차들을 뒤돌아보았다.(조드 일가가 홍수로 인해 지금까지
기거하고 있던 화차를 버리고 길을 떠나면서, 그들이 타고 다니던 트럭이 물에 잠겨 있는
것을 뒤돌아 보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그들이 서 있는 동안에 또 안개처럼 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서 가야지."
하고 어머니가 서둘렀다.
"로자샤안, 너 좀 걷겠니?"
"좀 비틀비틀해요. 얻어맞은 것만 같아요."(로자샤안은 사산(死産)을 하고 아직 몸이 회복되
지도 않은 상태에서 걷고 있기 때문에 어지러운 것이다.)
아버지가 불평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 가긴 가는데 어디로 간다는 거지?"
"글쎄 말이유. 어서 로자샤안이나 붙잡아 줘요."
어머니가 딸의 오른팔을 붙잡자, 아버지는 왼팔을 붙잡았다.
"물이 안 난 데로 가야 해요. 이틀 동안이나 벌써 젖은 옷만 입고 있지 않았수?"
그들은 천천히 하이웨이를 걸어갔다. 길가에 있는 개울에서 세차게 흘러가는 물소리가 들렸
다. 루디와 윈필드는 발로 길바닥의 물을 튕기면서 나란히 걸어갔다. 그들은 천천히 길을 걸
어갔다. 하늘이 차차 어두워지고 빗발이 심해졌다. - 전국을 휩쓴 대공황으로 떠돌이 신세
가 된 조드 일가는 홍수로 인해 기거하던 화차마저 버린 채 다시 살 곳을 찾아 나선다.
하이웨이에는 왕래가 완전히 두절되었다.
"어서 빨리 가야지."
하고 어머니가 다시 서둘렀다.
"이 애가 너무 젖으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모르잖아요."(로자샤안은 정상적인 몸이 아
니기 때문에 그녀에게 무슨 병이라도 생겨 딸을 잃을까 봐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다.)
"빨리 가라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지 난 모르겠는데."
아버지가 또다시 투덜댔다.
길은 개울을 따라 구부러졌다. 어머니는 근처의 땅과 물에 침수된 밭을 둘러보았다. 길에서
멀리 떨어진 왼쪽, 다소 기복을 이루고 있는 언덕 위에 비에 젖어서 꺼멓게 보이는 헛간 한
채가 서 있었다.
"봐요!"
어머니가 반색을 했다.
"저길 봐요! 저기 저 헛간은 젖지 않았을 거에요. 비가 멎을 때까지 저기 가 있습시다."
아버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헛간 주인한테 내쫓기게 되면 그 땐 어떡한다?"
길가 저만큼 앞에서 빨간 점이 하나 루디의 눈에 띄었다. 그녀는 그 쪽으로 달려갔다. 들판
에 홀로 핀 쪼글쪼글 시든 제라늄이 한 그루 있고, 비에 두들겨 맞은 꽃이 한 송이 달려 있
었다. 그녀는 그 꽃을 꺾었다. 꽃잎을 한 장 살며시 따서 콧등에 갖다 붙였다. 윈필드가 보
고 달려왔다.
"나두 하나 줘."
"안돼! 다 내 거야. 내가 찾아 냈어."(식구들이 어려운 상황을 모르는 천진한 아이들의 모습
을 묘사한 대목이다.) - 정처 없이 걸어가던 어머니는 언덕 위에 있는 헛간 한 채를 발견하
고 반색을 한다.
그녀는 빨간 꽃잎을 또 한 장 따서 이마에다 붙였다. 조그맣고, 선명하게 새빨간 하트 모양
의 꽃잎이었다.
"응, 루디! 나에게도 하나 줘. 줘, 빨리."
그는 루디 손 안의 꽃을 뺏어채려다가 손이 빗나갔다. 루디는 손바닥으로 그의 뺨을 찰싹
때렸다. 그 순간, 그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렸으나, 곧 입술이 실룩거리고 눈에
서 눈물이 솟아 나왔다. 다른 식구들이 뒤쫓아왔다.
"아니, 너 무슨 짓이냐?"
어머니가 말했다.
"도대체 뭘 어쨌기에 그래?"
"저 새끼가 내 꽃을 빼앗으려고 했지 뭐야."(이 작품의 문체적 특징이 드러난다. 속어와 비
어의 사용은 작품의 사실성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은 평범한 서민들의 삶을
다룬 것이기 때문이다.)
윈필드가 흐느끼면서 말했다.
"난― 그저 하나만 달랬는데―콧등에 붙이려구."
"한 장만 주렴, 루디야!"
"자기가 찾으면 되잖아. 이건 내 거야."
"루디야! 하나 주지 못해."
루디는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위협을 느끼자 전술을 바꿨다.(어머니가 야단을 치자 두려움을
느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행동했다는 뜻이다.)
"이봐."
하고 그녀는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한 장 붙여 줄게." - 루디와 윈필드는 식구들의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라늄 꽃을
가지고 서로 다툰다.
어른들은 계속 걸어갔다. 윈필드가 그녀 앞에 코를 내밀었다. 그녀는 꽃잎을 한 장 혀로 적
셔서 아무렇게나 갖다 비벼댔다.
"요녀석.'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윈필드가 손가락으로 꽃잎을 찾아서 자기 콧등에다 비벼댔다.
그들은 다른 식구들에게 떨어질세라 빠른 걸음으로 뒤따라갔다. 루디는 이젠 재미가 없어진
것을 깨달았다.
"이봐, 더 줄게. 이마에 붙여라."
길 오른쪽에서 쫙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 왔다.(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것을 감각적
으로 표현한 구절이다. 이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폭우는 조드가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괴롭
히고 있다.) 어머니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빨리 가자. 큰 비가 온다. 이 울타리로 빠져 나가자. 그게 가깝겠어, 자, 어서! 기운을 내,
로자샤안."
그들은 딸을 거의 끌다시피하면서 도랑을 건너 손을 잡고 울타리를 빠져 나갔다. 그러자
그 때 폭풍우가 내리쳤다. 빗발이 굉장했다. 그들은 기를 쓰며 진창 속을 저벅저벅 밟고 약
간 경사진 언덕을 기어올랐다. 검은 헛간은 비 때문에 거의 모습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비는 한바탕 휘몰아쳐 수면에 물창을 튕기고, 점점 더 몹시 불어대는 바람에 몰려 빗발을
저쪽으로 몰고 갔다. '샤론의 장미'는 자주 발이 미끄러져 양친의 부축을 받으며 질질 끌려
가야 했다. - 폭풍우를 만난 조드 일가
그들은 숨을 헐떡거리며 흠뻑 젖은 헛간에 이르자 비틀거리며 열려 있는 한쪽 끝으로 뛰어
들었다. 그 곳에는 문도 달려 있지 않았다. 둥근 가래 하나, 부서진 경작기 하나, 쇠바퀴 하
나 등 녹슨 농기구가 몇 개 뒹굴고 있었다. 비는 지붕을 몹시 두드리고, 휘장을 친 듯 시야
를 가렸다. 아버지가 기름이 밴 상자 위에 조심스레 '샤론의 장미'를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 조드 일가는 폭풍우 속에서 발견한 허름한 헛간에 다다른다.
"아이고 죽겠다.!"
"아마, 안에 건초가 있을 거예요. 봐요, 문이 있군요."
어머니가 녹슨 돌쩌귀가 달린 문을 활짝 열었다.
"건초가 있구나."
어머니가 소리쳤다.(비에 젖은 옷을 말리고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있다는 마음을 표현한 것
이다.)
"자, 들어와 어서들."
안은 캄캄했다. 판자 짬에서 희미한 광선이 새어 들어왔다.
"누워라, 로자샤안."
어머니가 말했다.
"누워서 좀 쉬어라. 옷을 말릴 방법을 찾아볼 테니."
윈필드가,
"어머니!"
하고 불렀지만, 요란하게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 때문에 그 밖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 헛간에 도달한 조드 일가와 병든 로자샤안을 돌보는 어머니
<이 지문은 폭풍우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던 조드 일가가 마침내 헛간을 발견하고 그 곳
을 향해 황급히 달려가는 장면이다. 이 소설은 가뭄으로 시작해서 홍수로 끝난다. 즉, 소설
의 결말에 해당하는 이 부분에서는 홍수와 폭풍우가 조드 일가를 괴롭히게 된다. 로자샤안
(샤론의 장미)은 사생아를 낳아서 힘이 빠진 상태에 있기 때문에 부모의 부축을 받을 수밖
에 없는 처지이다. 로자샤안을 극진히 돌보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따뜻한 모성애를 느낄 수
있다.>
"뭐냐? 왜 그러냐?"
"저것 봐! 저 구석."
어머니가 그 곳을 바라보았다. 컴컴한 구석에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이들은 폭풍우를
피해 헛간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로 부자지간이다. 지은이가 이들을 등장시킨 것은 휴머니즘
에 바탕을 둔 따뜻한 인간애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이다. 삶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사
랑은 얼마든지 꽃 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한 것이다. 휴머니즘은 이 작품의 바탕에
깔려 있는 작가 정신이요, 주제 의식이기도 하다.) 반듯하게 드러누워 남자와 그 옆에 눈을
크게 뜨고서 새로 온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앉아 있는 소년. 그녀가 보고 있자니까
소년은 천천히 일어나서 이쪽으로 걸어와 목쉰 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닌 여기 주인이세요?"
"아니."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비를 피하러 들어왔을 뿐이야., 딸애가 병이 나서 얘야, 젖지 않은 담요 없니? 이 애 옷을
벗기는 데 쓸 수 있을 만한?"
소년은 구석으로 되돌아가더니 더러운 깃털 이불을 한 장 가지고 와서 어머니에게 주었다.
- 조드 일가는 헛간에서 소년과 그의 아버지를 발견함
"고맙다. 이 양반은 웬일이냐?"
"처음엔 병이 났는데 ― 이젠 먹질 못해서 저래요."
"뭐라구?"
"굶어 죽을 것 같애요. 목화밭에서 병이 났어요. 엿새나 먹질 못했거든요."
어머니는 구석으로 걸어가서 그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오십 세 가량의 사나이, 턱수염이 난
얼굴을 홀쭉 야위었고 뜬 눈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야윈 얼굴, 멍한 눈으로 보
아 몹시 굶주려서 기운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소년이 어머니 옆에 따라와 섰다.
"네 아버지냐?"
하고 어머니가 물었다.
"예! 배가 고프지 않다느니, 방금 먹었다느니, 그런 소릴 하며 내게만 먹을 걸 사 주시더니,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애정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살리려고 자신의
배고픔을 참았던 것이다.)이젠 기운이 다 빠져서 움직이시지도 못해요." - 아버지가 병들 게
된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소년
지붕을 때리던 빗발이 좀 약해졌는지, 지붕에 떨어지는 소리도 이제는 조용히 달래는 듯한
소리로 변했다. 핼쑥 야윈 사나이가 입술을 움직였다.(뒤에 전개되는 사건으로 보아 그 사나
이가 겨우 한 말은 먹을 것을 달라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니는 그 옆에 무릎을 끓고 귀를 기울였다. 또다시 입술을 움직인다.
"그래."
어머니가 말했다.
"넌 이젠 안심하고 있어. 아버진 이젠 나으신다. 우리 딸의 젖은 옷을 벗길 때까지 좀 기다
려다오, 응?"(로자샤안의 젓은 옷을 벗기고 몸을 좀 추스르게 한 다음, 그녀의 젖을 그 사나
이에게 먹이도록 하겠다는 생각이 담긴 말이다. 어머니는 로자샤안이 비록 사산이기는 하지
만 아기를 낳았기 때문에 젖이 나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딸 있는 데로 돌아와서,
"자, 그 옷을 벗어라."
하고는 깃털 이불을 펴서 딸의 몸이 보이지 않게 가리었다. 그리고 딸이 옷을 다 벗자, 어머
니가 그 깃털 이불로 몸을 싸 주었다. - 아버지의 소생에 대해 확신을 하면서 소년을 진정
시키는 어머니
<이 지문은 헛간에 들어온 조드 일가가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장면이다. 병들
어 죽어가고 있는 오십 세 가량의 남자와 그의 아들이다. '턱수염이 난 얼굴은 홀쭉 야위었
고 뜬 눈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묘사를 통해 소년의 아버지의 병세가 얼마
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소년은 아들을 먹이려고 음식물을 사양했던 아버지의 속뜻을 이
해하지 못했지만, 독자들은 아버지의 따뜻한 부정을 느끼게 된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병이
완쾌될 것이라고 소년에게 확신시키며, 로자샤안의 몸을 따뜻하게 덥혀 주는 장면은 앞으로
조자샤안을 통해 아버지를 살리겠다는 어머니의 결심이 이미 어느 정도 세워졌음을 암시해
주는 부분이다.>
소년이 또다시 옆으로 다가와서는 사정하듯 말했다.
"난 몰랐어요. 벌써 먹었다느니, 배가 고프지 않다느니, 아버지가 그런 소리만 했거든요. 어
젯밤 내가 나가서 유리창을 깨고 식빵을 좀 훔쳐다가 아버지에게 드렸더니 모두 토해 버리
구, (소년은 아버지를 구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식빵을 훔친 것이다. 이는 극한 상황에서 나
타날 수 있는 인간의 행동의 특성을 표현한 것이다. 소년의 아버지가 식빵을 모두 토한 것
은 그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이미 음식물을 소화시킬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로자샤안으로 하여금 그에게 젖을 먹이도록 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그 후부터는 전보
다도 기운이 더 빠지셨어요. 수프나 우유를 드려야겠는데, 아주머니, 우유 살 돈 좀 있으세
요?"
"가만 있거라. 걱정 안 해도 좋아. 좋은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까."
갑자기 소년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리 아버진 정말 죽어요! 정말 굶어 죽어요!"
"조용하거라" - 아버지를 걱정하는 소년
어머니는 죽어 가는 사나이를 막연히 지켜 보고 있는 아버지와 존 백부를 바라보았다. 그
다음, 깃털 이불로 몸을 싸고 옴츠리고 앉아 있는 '샤론의 장미'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눈
은 '샤론의 장미'의 눈을 지나쳐 앞을 보고 있다가 다시 딸의 눈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두
여인은 서로 상대방의 눈 속을 깊이 들여다 보았다. 통하는 바가 있다는 듯이. 딸의 숨결이
가쁘게 헐떡거렸다.(로자샤안이 어머니의 의도를 알아차린 장면이다. 서로 아무런 말은 없었
지만 以心傳心으로 사나이에게 젖을 먹이는 일에 합의하고 있다.)
"좋아요."
마침내 그녀는 말했다.(낯선 성인 남자에게 젖을 먹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딸이
라 하더라도 어머니가 이를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로자샤안은 기꺼이 이를 수락
한다. 그녀의 따뜻한 인간애가 드러난 순간이다.)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 줄 줄 알았다. 이미 알고 있었어!"
어머니는 무릎 위에 깍지 낀 자기의 두 손을 내려다 보았다. - 이심전심으로 사나이에게 젖
을 먹이기로 합의하는 어머니와 로자샤안
'샤론의 장미'가 속삭이듯 말했다.
"모두들----좀---밖에 나가 줘요."
빗발이 가볍게 지붕을 두드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몸을 숙여 손바닥으로 딸의 이마에 흩어져 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주고는
그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런 다음 재빨리 일어섰다.
"자, 모두 저 헛간으로 나가요."
루디가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리자.
"쉬!"
하고 어머니가 말을 막았다.
"잠자코 나가 있어." - 영문을 모르는 가족들을 헛간 밖으로 내보내는 어머니
어머니는 그들을 모두 문 밖으로 몰아낸 뒤, 자기도 소년을 끌고 나가 삐거덕 거리는 문짝
을 닫았다.
잠시 '샤론의 장미'는 속삭이는 듯한 빗소리가 나는 헛간 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리
고 나서 지친 몸을 간신히 일으키고, 몸에 걸친 깃털 이불을 끌어당기며 천천히 구석으로
걸어가 사나이의 그 야윈 얼굴과 겁에 질려 말똥거리는 눈을 내려다보았다.(로자샤안의 행
동에 대한 사나이의 반응을 묘사한 구절이다. 예기치 않았던 로자샤안의 행동에 사나이는
내심 두려워하고 있다.)
그 다음 그녀는 천천히 남자 옆에 몸을 눕혔다. 사나이가 느릿느릿 고개를 저었다. '샤론
의 장미'는 깃털 이불 한쪽을 헤치고 젖을 꺼냈다.(이 작품에서 인간애의 절정을 보인 행동
이다. 죽어가는 낯선 노동자에게 젖을 먹이는 로자샤안의 행동은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
이면서도 주제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와 따뜻한
인간애를 동시에 보여 준 이러한 행동은 인간이 지닌 원초적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먹어야 해요."
그녀는 몸을 비틀 듯 더 가까이 다가가 사나이의 머리 뒤로 팔을 넣고 머리를 바쳐 주었
다. 손가락은 부드럽게 사나이의 머리칼을 쓰다듬고 있었다.(한 생명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인 애정과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는 여인의 모성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행동이다.) 그녀는
눈을 쳐들어 헛간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입술을 모으고는 신비로운 미소를 지었다.(한 생
명을 구할 수 있다는 기쁨과 만족감에서 신비로운 미소를 지었다. 작품 전체를 상징적, 함축
적으로 마무리한 문장이다.) - 소년의 아버지에게 젖을 먹이는 로자샤안
<이 지문은 이 작품 속에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휴머니즘적 분위기가
가장 잘 느껴지는 부분이다. 아버지를 살려내야 한다는 소년의 절박한 울부짖음에 어머니는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다며 소년을 안심시킨다. 그리고 어머니와 딸은 '서로 상대방의 눈
속을 깊이 들여다보며, '통하는 바'가 있다는 암시를 준다. 결국, 그 좋은 방법이란 사생아를
놓았던 로쟈사안에게서 나오는 모유를 소년의 아버지에게 먹이는 것이었고, 이심전심(以心
傳心)으로 로자샤안은 그 사나이에게 젖을 먹이는 일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들은 영
문도 모르고 모두 헛간 밖으로 내보내지고 로자샤안은 소년의 아버지에게 젖을 먹인다. 로
자샤안이 '젖'을 꺼내 소년의 아버지에게 먹이는 장면은 이 작품에서 따뜻한 인간에의 절정
을 이루는 대목이다. 이는 어떠한 역경 속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와 따뜻한 인간애를
동시에 보여 준 것으로서 인간이 지닌 원초적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 행동
을 통해 독자는 사람들은 서로 도와야 하고 그래야만 삶이 가치 있게 되는 것이라는 작가의
주제 의식을 이해하게 된다.>
이해와 감상
1930년대의 경제 불황, 1932년의 중서부와 서남부를 휩쓴 모래 바람으로 20만 농민들이 농
토를 잃고 난민이 되는 등 미국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노동자 가족의
비참한 삶의 역정을 조명한 작품이다.
농장 노동자의 비참한 생활을 구약 성서 중 '출애굽기'의 구성을 빌어 묘사한 서시적 작품
이다. 미국 사회 전반의 움직임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포괄적인 시야에서 농민의 생활을 극
명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이 작자의 소설 중 사회주의적 경향이 가장 짙은 걸작이다.
이 작품은 총 3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홀수 장에서는 25만 명의 오우키(오클라호마 사람)들
의 삶을 그렸고, 짝수 장에서는 조드 일가의 삶을 그렸다. 지은이는 이처럼 홀수 장과 짝수
장을 상응시킴으로써 조드 일가의 비극이 곧 미국 전체의 비극으로 비치도록 하고 있는 것
이다.
지은이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서부로 꿈을 찾아 나선 조드 일가의 비참한 생
활과 소작인들이 겪는 고난에 찬 역정, 그리고 이러한 삶의 과정에서도 고난과 역경을 극복
하려 애쓰는 농민들의 모습을 통해 역사 속에서의 인간의 삶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
의 바탕에는 역사적 상황에 대처하는 강한 인간 의지를 통찰하고자 하는 지은이의 따뜻한
인간애와 냉정한 역사 의식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심화 자료
존 스타인벡(John (Ernst) Steinbeck)
1902. 2. 27 미국 캘리포니아 설리너스~1968. 12. 20 뉴욕 시.
미국의 소설가로 대공황이 일어난 1920년대의 비참한 생활상을 그린 작품은 농장노동자로
일하는 이주민들의 역경에 대해 광범위한 동정을 불러일으켰다.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1939)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962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20~26년에 캘리포니아 주 스탠퍼드에 있는 스탠퍼드대학교를 간헐적으로 다녔으나 학위
는 받지 못했다. 자신이 쓴 책이 성공을 거두기 전에는 작품을 쓰면서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 속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
다. 애정어린 시선으로 멕시코계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쓴 〈토르티야 대지(臺地) Tortilla
Flat〉(1935) 로 처음 인기를 얻었다. 그 다음에 나온 소설 〈의심스러운 싸움 In Dubious
Battle〉(1936)에서는 그때까지의 부드러운 유머가 냉혹함으로 바뀌었는데, 이 작품은 농장
노동자들과 그들을 조종하는 2명의 마르크스주의자 노동조합 조직원이 일으킨 파업을 다루
고 있다. 같은 해에 연극과 영화로도 만들어진 중편소설 〈쥐와 인간에 대하여 Of Mice
and Men〉(1937)는 두 이주민 노동자 사이의 기묘하고 복잡한 인연을 그린 비극적인 이야
기이다. 〈분노의 포도〉는 퓰리처상을 받았고, 1940년에 영화로 만들어져 주목을 받았다.
이 소설은 한 일가가 오클라호마 주 더스트보울에서 쫓겨나 캘리포니아로 이주해가지만 무
자비한 농업경제정책으로 인해 계속 착취당한다는 줄거리이다. 제2차 세계대전중 나치 점령
하의 노르웨이를 그린 소설 〈달이 지다 The Moon Is Down〉(1942)를 비롯해 인상적인
선전용 작품을 몇 편 썼으며, 종군기자로도 일했다. 전쟁이 끝난 직후 쓴 〈통조림공장의 줄
Cannery Row〉(1945)·〈진주 The Pearl〉(1947)·〈제멋대로 가는 버스 The Wayward
Bus〉(1947)에는 낯익은 사회비평적 요소가 담겨 있으나, 접근방식이 느슨하고 분위기도 좀
더 감상적이다.
후기에는 비교적 가벼운 내용의 오락물과 대중을 겨냥한 읽을거리를 쓰면서 그 중간중간
대표적인 소설가의 위치를 되찾기 위해 〈밝게 타오르다 Burning Bright〉(1950)·〈에덴의
동쪽 East of Eden〉(1952)·〈불만스러웠던 겨울 The Winter of Our Discontent〉(1961)
같은 진지한 작품을 내놓았다. 비평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후기 작품은 모두 초기 작품의 수
준에 미치지 못한다. 그의 야심작 〈에덴의 동쪽〉은 캘리포니아의 한 농부와 두 아들 사이
의 도덕적 관계를 다룬 서사적인 작품으로, 1955년 기억에 남을 만한 영화로 만들어졌다.
〈진주〉(1948)·〈빨간 조랑말 The Red Pony〉(1949)도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이때는 그
가 직접 각색했다. 원래부터 영화대본으로 쓴 작품 중에는 〈잊혀진 마을 Forgotten Villag
e〉(1941)·〈비바 사파타! Viva Zapata!〉(1952) 등이 유명하다.
스타인벡의 명성은 주로 프롤레타리아트를 다룬 1930년대의 자연주의 소설로부터 얻은 것
이다. 풍부한 상징구조를 만들어내고 등장인물을 통해 신화적·원형적 요소를 전달하려 한
그의 노력이 가장 효과를 거둔 것은 바로 이 작품들에서였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문학사적 의의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 미국 농촌의 실상을 객관적 입장에서 치밀하게 묘사한 사실주의
소설이다. 대화를 중심으로 한 사건의 전개, 인간 심리의 표현 등은 작품의 현장감을 더해
준다. 이렇듯 당시 미국 사회의 실상을 고발하고 비판한 것으로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걸작
으로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이 작품이 오늘날까지 훌륭한 문학 작품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그러한 사회 비판적 소설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분노의 포도'는 캘리포니
아 이주민들에게만 국한된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 내지 이상향을 찾아 헤매는
인간의 탐색을 그리고 있고, 생존을 위한 투쟁과, 살아 남기 위한 인간의 본능적 욕구 등을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문학사적 의의를 두어야 할 것이다.
시대적 배경
미국의 1930년대는 '경제 공황'과 함께 시작된 시대이다.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미국
은 1929년까지 전례 없는 경제적 발전을 거듭하며 희망에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1929년 10
월 증권 시장이 붕괴되면서 시작된 경제 공황으로 이런 희망의 분위기는 절망의 분위기로
바뀌게 되었다. 경제 공황과 함께 1930년대를 특징지은 또 하나의 사건은 미국 중서부와 남
서부를 강타한 거대한 흙모래 폭풍이다. 이 여파로 거대한 평야 지대는 황무지로 바뀌었고,
많은 소농들은 자본가에게 재산을 저당 잡혀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소설은 1930년대의 공황으로 말미암아 현실에 대한 구조적 인식을 갖게 된 작자가 이러
한 그의 사회 의식을 바탕으로 작가적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내놓은 작품이다. 이 소
설에서 묘사되어 있는 사건은 현실에서 생긴 사실에 입각하고 있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
황 속에서 농촌의 고통은 극심했고 1934년 오클라호마의 땅을 빼앗기고 캘리포니아에 이주
해 온 25만의 빈농들의 문제는 작자뿐만 아니라 당시의 모든 사람들에 있어 커다란 사회 문
제로 여겨졌던 것이다. 1932년 루즈벨트 대통령이 경제 부흥과 사회 보장을 위한 뉴딜 정책
을 시행했지만, 일반 대중들은 자신들의 삶을 보장받기 위한 임금 투쟁을 벌였고, 이에 따라
사회는 지극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씌어져 있으면서도 동시에 시대와
장소를 넘어, 보편적인 영원성에까지 끌어올렸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분노의 포도'에 나타난 농촌 사회의 의미
스타인백은 이 작품에서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과 육체 노동에 대한 존경을 보여 준다.
그는 모든 사람이 '땅'과 긴밀하고 친화적인 관계를 맺는 농촌 사회를 선호하는데, 따라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농부들은 그들의 땅에서 떨어져 나옴에 따라 점차 심리적으로 위축되
고, 반면 캘리포니아 경영자들은 농민들의 땅과의 친밀한 관계를 기계로 대치함으로써 억압
자가 된다. 이를 통해서 스타인백은 보통 사람과 자립정신에 대한 강한 믿음을 표현한다.
'캘리포니아'의 '서부로의 이동'의 의미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캘리포니아를 종착지로 보는 '서부로의 이동'은 미국 사회를 규정하
는 하나의 특징이다. 서부는 미국인의 의식 속에서 개척 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이었고,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어 더 잘 살 수 있는 미래를 보장해 준다고 생각되는 '약속의 땅'
이라 할 수 있다. 즉, 서부는 희망의 상징이었으며, 캘리포니아는 미국인들이 인디언과 멕시
코 인들을 몰아내며 개척해 나갔던 미대륙의 서부 끝에 자리하고 있던 까닭에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1848년과 1852년 사이의 골드러시이후 캘리포
니아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와 희망이 가득한 곳이지 낙원으로 간주되었고, 공황 이전까지
는 주로 새로운 생활을 원하고 그 기회를 찾고자 하는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자발적인 이주
가 유입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분노(憤怒)의 포도(葡萄)
J.E.스타인벡의 장편소설. 1939년 출판. 40년 퓰리처상 수상. 이 소설의 무대는 1930년대의
텍사스로부터 캐나다 국경에 이르는 대평원으로 대사풍(大砂風)에 의한 피해와 대자본에 의
한 농업 기계화로 경작지를 잃은 오클라호마의 농민 조드 일가가 낡은 자동차에 가재도구를
싣고 캘리포니아의 비옥한 토지를 찾아 이주한다. 그러나 그들이 꿈꾸던 자유의 땅에서 기
다리고 있는 것은 착취와 기아와 질병이었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또한 사별한다. 갖은
고난을 겪은 후 아들 톰은 파업에 가담하여 살인을 저지른다. 노동자의 싸움에서 깨달은 어
머니는 힘차게 살아 갈 것을 절규한다. 농장노동자의 비참한 생활을 《구약성서》 중 <출애
굽기>의 구성을 빌어 묘사한 서사시적(敍事詩的) 작품이다. 미국사회 전반의 움직임을 간결
하게 표현하고 포괄적인 시야에서 농민의 생활을 극명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이 작가의 소설
중 사회주의적 경향이 가장 짙은 걸작이다. 이 소설은 출판되자마자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40년 J.포드 감독에 의하여 영화화되었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분노의 포도'의 구조
이 작품의 구조는 구약 성서의 '출애굽기'를 그 원형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백
성들이 모세의 인도에 따라 가나안 복지를 찾아 벌판을 헤매며 험난한 여행을 계속하는 성
서의 이야기는 곧 이 작품의 이야기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지은이는 오클라호마 노동자들
의 이주와 그에 따른 고난을 이러한 원형에 넣어 그려 냄으로써, 작품 속의 이야기가 한 시
대 한 나라의 이야기라는 차원을 넘어 범인류적인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게 하였다.(출처 :
박경신 외 3인 공저 금성 문학교과서)
'분노의 포도'의 가치
이 작품은 1930년대 미국이 겪은 역사적 비극을 사실적인 필치로 그린 것이다. 지은이는
이 작품에서 인간이 주어진 역사적 조건 속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진지하
게 탐색하고 있다. 이 작품은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차원을 넘어서 끝없이 이상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의지적인 인간상과 고난을 극복하려는 강인한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가치가 있다.
존 스타인벡의 문학
존 스타인벡의 문학은 한 마디로 단정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낭만
적인 사랑 이야기를 쓰기도 했고,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전쟁 소설을 발표한 바도 있으며, 우
화적인 신비주의 경향을 띤 작품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의 저류에 흐르는 중심
경향은 사회주의적 리얼리즘과 인간 중심적인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분노의 포도'에
서도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고발함으로써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경향을 뚜
렷이 하고 있지만,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휴머니즘적 경향도 곳곳에서 보
여주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들이 어려운 삶 속에서 고민하고, 울고, 고통스
러워하면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고 따뜻한 인간애로 서로를 감싸며 이를 극복하려는
꿋꿋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