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
묘장왕은 우선 딸을 낳았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썩 기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날 때 나타난 수많은
기이한 징조들을 듣고는 보덕 왕후가
회임했을 때 꿈을 떠올리며 이 아이에게
무언가 내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다.
이에 묘(妙)자 항렬에 따라 그녀에게
묘선(妙善)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조정과 재야의 신하와 백성들은 궁에
새 공주가 태어난 소식을 듣고 모두들
몹시 기뻐하며 경축하는 큰 잔치를 열었다.
묘장왕은 궁에서 군신들과 공주의 탄생을
축하하고자 3일간 대 연회를 열었다.
이 삼일 동안 흥림국(興林國)의 기쁨은
하늘을 찔러 태평성세의 기상이었다.
본래 백성들은 태평성세와 풍년을
맞았었는데, 또 이러한 경사를 맞이하여
자연히 즐거워할 만했다.
묘장왕이 궁궐에서 환영 연회를 연
3일째 날, 궁녀에게 명하여 묘선 공주를
궁전에 안고 와서 군신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 아이는 궁중에서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대전에 올라가 많은
신료들이 술에 취해 고기를 구워 먹는
광경을 보고는 바로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달래보아도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없었고, 젖을 먹여도 소용이 없었다.
유모가 허둥지둥 당황하자 군신들은
술잔과 젓가락을 멈추었고, 묘장왕은
그런상황에 기분이 언짢아졌다.
이때, 갑자기 황문에서 전에 아뢰었다.
“궐 문 밖에 한 늙은이가 공주님께 물건을
바치겠다고 하며 전하를 뵙기를 청합니다.”
묘장왕은 궁전 안으로 들이라고 명령했다.
그 노인의 선풍도골(仙風道骨)을 보고는
인품과 용모가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묘장왕은 그에게 물었다.
“노인장,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요?
어디 사람이오? 오늘 여기에 온 것은
무슨 일 때문이오? 어서 말해보라.”
노인은 대답했다.
“왕이시여, 졸로(老拙)의 성명 내력은
잠시 후에 물으십시오. 우선 제가 오늘
여기에 온 까닭은 임금님께 공주의
내력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졸로는 임금님께서 셋째 공주를 낳으시고
뭇 신료들을 위해 큰 연회를 여신다는
말씀을 듣고 일부러 급히 왔습니다.
첫째는 임금님께 축하를 드리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묘선 공주님의 내력을 알려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 공주님은 자항(慈航)이 강생하여 세상 만겁(萬劫)을 구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 자항慈航': 불보살님이 자비심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배에 비유하여
자비의 배 자항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여기서는 관세음보살을 의미한다.
임금님께서는 이 공주님을 얕보지 마십시오. 공주님은 현재 인왕(仁王)의 국가를 장차 불왕(佛王)의 국가로 만드실 겁니다!”
묘장왕은 이 현묘(玄妙)한 말을 듣고는
자신도 모르게 하하하 하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이 허튼 소리를
할 줄은 몰랐소! 자항(慈航) 대사(大士)가
서방 극락 세계에서 유유자적한 복을 누리지
않고, 어찌 다시 진겁(塵劫)에 빠져 이곳에 환생하여 범부의 속자(俗子:자식)가 된단
말이오. 이것이 어찌 사리에 맞는 일이겠소?
무슨 말도 안되는 인왕의 국가니,
부처의 왕국이니! 떠들어대니 이는
틀림없이 늙은이 당신이 거짓말을 꾸며
과인을 능멸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노인은 말했다.
“왕께서 모르시나본데, 불문(佛門)에서는
비록 대부분 출세관(出世觀)을 지니고
있지만, 일찍이 입세관(入世觀)을 지니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 출세관(出世觀: 세속적 번뇌와 속박에서
벗어나 도를 닦는 것)
※ 입세관(入世觀: 세속을 떠나지 않고
세상속에서 머물며 중생을 제도하는 것)
자항 대사는 세상 사람들의 진겁(塵劫)이
대단히 심하여 고난과 재앙을 해소하기
어려운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고난에서 구하겠다는 큰 소원을 빌어
이번에 인간 세상에 환생한 것인데 어찌 우연이란 말입니까?
졸로가 어찌 감히 왕 앞에서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이 것은 정말로 사실입니다.”
※ 진겁(塵劫: 번뇌와 욕망이 가득한
고통의세계, 곧 속세를 뜻한다.)
묘장왕은 또 말했다.
“늙은이의 말이 다소 근거가 있고 또한
자항 대사가 세상에 뛰어들어 겁난을
구하겠다는 발원을 했다 치더라도
남자로 태어남이 마땅 하거늘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이 역시 일반적인 도리가 아니다!
과인은 전혀 믿을 수 없도다.”
노인은 듣고 말했다.
“허허! 이 깊고도 오묘한 인연을 어찌
임금님께 낱낱히 설명드릴 수 있겠습니까?
믿지 못하신다는 것은 단지 임금께서
믿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래에 반드시 분명해지실 날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졸로 또한 분별할
필요가 없습니다.”
막 이 말을 하고 있을 때, 유모 품에 있던
묘선 공주가 한층 더 심하게 울었다.
묘장왕은 어린 딸의 울음소리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약간 움직였다.
이어 노인에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당신은 이 아이의
전생 인연을 알고 온 것이니 도가 있는
사람일 것이요. 지금 이 아이가 이렇게
미친 듯이 크게 우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이유를 아는가?”
노인은 하하하 하고 웃으며 말했다.
“알지요, 알다마다요! 모든 것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는 것이니 모를 것이 없습니다.
공주님의 울음을 바로 대비(大悲)라고
합니다! 공주님께서는 오늘 임금님께서
자신의 탄생을 위해 주연을 크게 여신 것을
보고 얼마나 많은 소와 양, 닭, 돼지, 새우, 게,
물고기를 살육했고
수많은 생명을 해쳤는지 모르며 여러분들의
입과 배를 즐겁게 하기위해 자신에게 무궁한
죄업을 가중시켰기 때문에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참을 수 없어서
이렇게 울음을 그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묘장왕은 말했다.
“기왕 그렇다면, 노인장께서 이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할 방법이 있습니까?”
노인은 말했다.
“있습니다! 졸로가 게(揭: 싯구)를 읽어
공주에게 들려주면 자연히 울음을
그치실 것입니다.”
그는 묘선 공주 옆으로 걸어가서 손으로
그녀의 정수리를 만지며 중얼중얼 게를
읽었다.
“울지 마십시오! 울지 마십시오!
울지 마십시오. 정신이 혼미해지면
총명이 막힙니다.
대자(大慈)하신 큰 소원을 잊지 마시고,
입세(入世)의 자비심을 잊지 마십시오.
반드시 3천 호겁(浩劫: 대재난)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모름지기 당신이 제도하십시오.
3천 가지 선한 일을 행하십시오.
울지 마십시오, 울지 마십시오!
범음(梵音)을 들어보십시오.”
말하자면 좀 이상하지만, 그 노인이 이렇게
게송을 읽자 묘선 공주는 과연 마치 이해한
것처럼 귀를 쫑긋하고 들으며, 눈을 뜨고
노인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미 그의 뜻을
안 것처럼 즉시 울음을 중단하고 맑은
눈망울로 노인을 주시했다.
이런 광경을 보고 묘장왕과 모든 궁의
군신들이 놀라워하며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칭찬이 자자했다.
이때, 노인이 다시 말하였다.
“이제 공주님께서 울음을 그치셨습니다.
졸로 역시 여기에서 오래 머물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서 이별을 고하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묘장왕에게 절을 하고
양 소매를 휘두르며 가볍게 활개 짓을 하며
궁을 떠나갔다. 그의 허리와 발이 튼튼하여
마치 나는 듯이 빠르게 걷는 것을 보니
노인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묘장왕도 이때에는 그가 도를 얻은
고인(高人)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떠나니 어찌 안타깝지 않겠는가!
곧 궁전 시위(侍衛)에게 분부했다.
“빨리 따라 가서 노인장을 청해 오너라.
과인이 아직 부탁과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부디 돌아오시라고 해라.
그러나 좋은 말로 청해야지 경솔하게
그분의 노여움을 사서는 안 된다.”
시위는 명령을 받고 궁궐 문 까지 갔지만
이미 노인의 종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빠른 말을 타고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추적에 나섰다. 그러나 끝내 노인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백성들에게도 물어보았지만 그들 역시
너무나 즐거운 환경에 처한 가운데 연회에
빠져서 즐기기에 바빠 누구도 노인을
유심히 살피지 않았다. 그래서 그분이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볼 수 없었다.
한 무리 시위들이 다시 한번 사방을
찾아보았고 끝내 자취가 보이지 않자
어쩔수 없이 궁으로 돌아갔다.
묘장왕은 군신들에게 말했다.
“분명 그 노인이 간 것은 단지 한 순간이었다.
그들에게 쫓아가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어째서 보이지 않을까? 설마 그 노인의
몸에 날개가 달려 날아갔다는 말인가?”
군신(君臣)들은 모두 놀랍고 이상하게
생각하였고, 대신 파우문(婆優門)이
아뢰었다.
“신의 생각으로는 오늘 백성들이 경축을
하느라 온 도시가 매우 왁자지껄합니다.
노인이 나는 듯이 빠르게 걸어갔으니 그가
조정 문을 나서 인파 가운데 섞여 들어갔다면
자연히 쉽게 찾을 수 없을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시위들을 시켜 집집마다 찾아다니게 한다면 분명 노인의 행방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
좌상(左相) 아나라(阿那羅)가 이어서
아뢰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오늘 백성들이
기뻐하며 성전(盛典)을 경축했습니다.
만약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노인을 찾는다면
그들의 흥을 깨뜨리며 성전을 방해하게 될것입니다. 노신이 보기에 그 노인은
절대 예사 인물이 아닙니다.
그가 방금 한 말과 거취 행동을 듣기만 해도
대충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조금 더 머무는
것에 응하지 않았으며, 찾아봐도 소용없으니
그냥 가게 하는 것만 못합니다! 저는 이 노인을
보고, 아마도 불조(佛祖)께서 현신(現身)하여
점화(點化: 나타남)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어떻게 그 노인을 감히 불조(佛祖)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원래 나이가 많고 덕이
있는 아나라(阿那羅) 승상은 불법(佛法)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어떤 일이든지 불법으로 해석을 했던것이다.
다시 묘장왕을 말하자면 묘장왕은
아나라 대신의 말을 듣고 다시 아주 짧은
순간의 일을 자세히 돌이켜보았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다소 반신반의하며
말했다.
“만약 승상의 말처럼 어렵게 부처님께서
강림한 것이라면 매우 다행이다. 단지
범부의 육안으로 직면했을 때 의식이
깨어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거듭거듭
부탁하면 좋은 일이 아닌가?
마주 대했을 때 이 좋은 기회를 놓치고
약간의 가르침도 구하지 못한 것이 정말로 안타깝도다! 이는 과인이 덕이 부족한 탓이니
지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아나라 승상이 피치 못했다는 말로 묘장왕을
한 번 위로했고, 군신들은 다시 한 바탕
통쾌하게 술을 마시고는 기뻐하며 흩어졌다.
그러나 부처님이 현신하신 일은 그로부터
민간에 퍼졌고, 모두가 기이한 일을 퍼뜨려
거의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 되었다.
이 사건으로 화제가 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본래 흥림국 백성들은 근본적으로 이미
불교화 되어 대부분 부처님을 믿었다.
이외에 작은 부분은 비록 성실하게 믿지 않았지만 머릿속으로 일반적인 부처의
인상은 남아 있었다.
그런 까닭에 이 이야기를 듣고, 정말이라고
생각하며, 또한 수많은 추측과 갖다 붙이는 것들을 더해 소문이 자자해져서 온 나라가
알게 되었다. 마치 석가모니 부처님이
흥림국의 보위(寶位)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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