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불광사 일요법회 법문 2025.5.25(일)
<보살의 윤리적 행동주의를 향하여-탈자본주의적 수행론>
1. 서문: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지금 우리는 욕망의 시대, 과잉의 시대, 파편화된 자아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적 세상은 끊임없이 말합니다.
“더 가져라, 더 되라, 더 나아가라.” 그러나 그 끝은 어디입니까?
비교 속에서 자기를 증명하고, 고통 속에서 타인을 지워내며,
자신조차 잃어버린 채 이윤이라는 유령에 쫓기는 삶—
우리는 지금 ‘욕계’라는 악마의 맷돌Satanic mills 아래에 갈리고 있습니다.
이 맷돌을 멈출 수는 없을까요?
우리가 함께 돌리는 이 맷돌을 치우고 다르게 살 수는 없을까요?
2. 보살은 누구인가 – 해탈을 뒤로 미룬 자?
불교에서 보살은 자주 오해받습니다.
마치 "자신의 깨달음을 미루고 남을 돕는 자"로서
영웅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만 묘사되곤 합니다.
하지만 보살은 결코 세속을 초월한 영적 존재가 아닙니다.
보살은 세속의 한복판에서 고통을 끌어안고, 그 구조를 거스르는 실천을 시작하는 자입니다.
그는 삶의 형식을 바꾸는 사람입니다.
자본의 논리에 굴종하지 않고, 타자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자,
소유하지 않고도 풍요로운 자, 비어 있으나 충만한 자, 그는 보살입니다.
3. 자본주의는 어떻게 욕망을 길들이는가?
들뢰즈는 말합니다. “욕망은 결핍이 아니라, 생성의 힘이다.”
하지만 자본은 이 욕망을 결핍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소유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남보다 뒤처지면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고, 타인을 소비하고, 세계를 경쟁화 합니다.
이 구조 안에서 불교가 말하는 탐·진·치(貪瞋痴)는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욕망의 체제 >그 자체입니다.
수행이란 무엇입니까?
이 욕계의 질서 즉 자본주의체제를 살아 있는 채로, 깨어 있는 채로 거부하는 일입니다. 다시 수행이란 무엇입니까? 자본주의체제 안에 이윤추구 대신에 가치, 생태주의적인 상호부조 공동체 즉 승가공동체라는 섬을 만들어 귀의하는 것입니다.
4. 보살의 길은 무엇인가 – 세 가지 윤리
보살의 길은 단순한 도덕이나 자비심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의 체제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정치적 윤리이며, 생활의 실천이며, 수행의 리듬입니다.
①소유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림은 자신의 소유에 대한 집착을 비움으로써 大他者(중생)와 연결됩니다.
②내가 가진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눔은 소유로 부터 자유, 물질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의 자유, 축적을 거부하는 선택입니다. 이것이 보시바라밀입니다.
이것은 자본의 질서에 맞서는 가장 조용하고도 단호한 행위입니다.
보살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가진 것은 내 것이 아니며, 나를 비운 바로 그 ‘빈 자리’에서 세계와 연결된다.”
③연기-나와 너의 경계를 넘어서는 삶
보살은 자기를 고립된 존재로 보지 않습니다. 모든 존재는 서로의 조건입니다. 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프고, 당신이 해방되지 않으면 나의 해탈도 거짓입니다.
“모두가 함께 깨어나지 않으면, 나도 해탈하지 않는다.”
5.진리의 충성 – 알랭 바디우Allan Badiou의 말처럼
진리란, 한 사건이 우리 존재 전체를 흔들 때,
그 사건에 충성fidelity하며 살아가는 사건l'Événement이다.
보살에게 그 진리는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순간,
자신의 삶의 궤도를 수정하는 용기,
욕계적 삶 너머의 가능성에 자기의 인생을 거는 행위입니다.
6. 결론: 보살은 바로 당신입니다
보살은 먼 이상향에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오늘의 세계 속에서, 침묵과 돌봄과 결단으로 응답하는 사람입니다.
과소비를 하지 않기로 결심한 순간,
고통받는 타자에게 귀를 기울인 그 하루,
나의 삶이 타자에게 열려 있다는 것을 느끼는 그 짧은 직관—
그 모든 순간, 당신은 이미 보살의 길 위에 있습니다
🔔 법문의 마무리 명상
잠시 눈을 감고 이렇게 되뇌어 봅니다.
나는 오늘 가진 것을 조금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며,
불평등과 냉담함이 가득한 이 세계를 보듬어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보살의 길’을 걸어 가겠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들이쉽니다. 내쉬면서 나의 행복을 그들에게 줍니다.
세계의 고통을 들이쉽니다. 내쉬면서 나의 즐거움을 그들에게 줍니다.
우리나라의 고통을 들이쉽니다. 내쉬면서 내가 닦은 공덕을 그들에게 줍니다.
<보리심의 서원>
나와 허공에 가득한 모든 중생이 지금부터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삼세일체불의 공덕을 한 몸에 구현하고 계신 석가모니부처님께 귀의합니다.
팔만사천 다르마에 귀의합니다. 성스런 승가에 귀의합니다. 나는 일체 중생을 위하여 부처를 이루렵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법을 전하여 깨어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여 행복으로 인도하겠습니다.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과 번뇌가 다할 때까지 나는 열반에 들지 않고 세상과 함께하면서 보살의 원행을 완성하겠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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