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관 시인에 대한 추억[2]
- 대전경찰청 개청기념 ‘축시 원고 청탁’에 얽힌 사연 -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전 대덕경찰서 정보관
충남도경에 근무할 때였다. 충남지방경찰청에서 대전지방경찰청으로 분리되어 ‘신설 대전지방경찰청’이 개청하게 된 해가 2007년이다. 당시 대전지방경찰청 개청기획단에서는 7월 1일 개청을 앞두고 대전지역 전 경찰관을 대상으로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신설되는 지방경찰청의 문(門)을 여는 뜻 깊은 행사에서 어떤 이벤트가 <축제의 의미를 품격 있게> 살릴 것인가에 대한 답을 현장 근무자인 일선 경찰관들에게서 얻고자 함이었다.
◆ 뜻 깊은 ‘개청 행사 이벤트’에 동참코자 응모
그동안 이런저런 형태의 적지 않은 글을 써 왔지만 ‘아이디어 공모’라는 글에 응모하기는 처음이었다. ‘대전경찰’의 한 사람으로서 남다른 자부심과 대규모 개청축제 행사에 동참 의식이 발동해 아이디어를 제출했다.
필자가 제출한 아이디어 제목은 ‘어린이 축시 낭송 이벤트’였다. 행사 취지의 적합성, 실행 가능성 면 등에서 뜻밖에도 ‘최우수 다득점’으로 선정되어 개청 축제 행사에 반영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 대전경찰청 개청 이벤트 아이디어 공모 당선작 발표 - 경찰 수필작가가 제안한 ‘어린이 축시 낭송 제안’이 최우수 제안으로 뽑혔다.
무엇보다도 개청 식에서 새롭게 인식해야 할 가장 중요하면서도 간과하기 쉬운 점을 제안서에 담고 싶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민들의 입장에서 경찰을 보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 날 개청식의 주인공은 대전중부, 동부, 서부, 북부, 둔산경찰서 등 5개 경찰서와 지방경찰청에 소속된 경찰관들이지만 이 지역에 새로운 경찰청이 신설되어야 하는 당위성은 지역주민들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 새롭게 출발하는 대전경찰이 ‘듣고 싶은 목소리’
대전 시민을 대표로 하는 어린이의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빌어 ‘경찰 아저씨’에 대한 평소 주민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와 앞으로의 기대감을 담은 동시(童詩)를 뜻 깊은 개청식 행사장에서 듣고자 하는 소이가 거기 있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누가 시(詩)를 짓느냐 하는 것이었다. 동시(童詩)라면 중앙 문단에서 그 이름을 찾지 않아도 우리 대전지역에서도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얼마든지 많다. 크게 고민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시인이 있었다.
전영관(全榮寬)시인.
평소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 아동문학가로서 대전지역은 물론 중앙문단에서도 잘 알려진 중진이다. 나는 전영관 시인의 동시를 읽으면 언제나 정신이 맑아진다. 살아가면서 두통약을 찾을 이유가 없다.
한 편의 동시가 거친 직무 환경에서 각종 스트레스를 느끼며 살아가는 경찰관의 복잡한 머리를 씻은 듯이 맑게 하는 신통력을 발휘한다면 불가사의한 일이 아닌가. 필자의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님은 그의 동시 한 편 음미해 보면 자연히 알게 된다.
고 조그만 산새 알에서
어떻게 하늘을 주름잡는
날개가 나올까?
고 조그만 꽃씨 속에서
어떻게 아름다움을 주는
꽃이 나올까?
고 조그만 새싹이 자라
어떻게 밀림을 만드는
아름드리나무가 나올까?
고 조그만 글자들이 모여
어떻게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글이 나올까?
고 조그만 아기가 커서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나올까?
- 전영관 / ‘고 조그만 것이’
이근옥 문학평론가는 ‘작은 것, 약한 것, 옛것에 대한 사랑과 자연친화적인 동심의 미학’이라는 제목의 <전영관 論>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 조그만 것은 바로 우리의 관심밖에 있는 아주 작은 미물들이다. 조그만 산새, 조그만 꽃씨, 조그만 새싹, 조그만 글자 등 힘도 약하고 크기도 작은 것들이지만 산새→하늘을 주름 잡는 날개, 꽃씨→아름다움을 주는 꽃, 새싹→ 밀림을 만드는 아름드리나무, 글자→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글로 강하고 크게 의미를 변화시키고 있다. 조그맣고 약한 것에게 애정을 주면 크고 강하게 성장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힘없고 약한 주민들을 내 가족처럼 보살펴야 하는 일선 경찰관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위해 불철주야 일을 하는 경찰관들에게도 공명(共鳴)을 주는 밝고 희망찬 ‘긍정의 글’이다.
◆ 밝고 희망찬 ‘긍정의 시선’ 담아주길 기대
요술쟁이처럼 이렇게 맑고 깨끗한 글을 맛깔스럽게 빚어내는 우리 대전지역 저명시인이 일선 경찰관이 축시를 청탁하자 흔쾌히 승낙해 주었다. 개인적인 친분을 떠나 공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더 없이 고마운 일이고, 훗날 ‘대전경찰사(史)’에 기록해도 좋을 것이다.
티 없이 맑은 동심으로 주옥같은 시를 빚고 있는 자랑스러운 이 지역 시인이 개청과 더불어 새롭게 출발하는 ‘대전 경찰’을 위해 이번에는 어떤 메시지가 담긴 글을 보여줄 지, 자못 기대가 컸다. 축시는 개청 행사장에서 어린이의 청아한 목소리로 낭송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대전경찰청 청사 벽에 걸어 두고 경찰관들이 두고두고 음미하게 될 것이다. 이런 뜻 깊은 이벤트를 계기로 ‘문학을 아는 경찰’, ‘세상을 보다 유연한 안목으로 볼 줄 아는 멋진 경찰’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다음은 전영관 시인이 필자의 원고청탁을 받고 <개청 축하 동시>를 보내오던 날, 필자가 <디트뉴스24>, <정책브리핑> 등 대내외에 소개한 졸고 칼럼이다.
[경찰에세이]
대전경찰이 가슴에 담고 싶은 시
시인이 경찰관에게 보내준 ‘따뜻한 선물’
― 전영관 시인의『대전경찰청 개청』축하의 글 ―
윤승원(수필문학인. 경찰관)
동시(童詩)는 어린이들만의 시가 아니다. 어른들이 읽으면 더 좋은 시다. 어린이의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본다는 것. 순수하고 아름답다.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물보다 맑고 깨끗하며 단순 소박하다. 향나무 좌대 위에 올려 진 한 점의 진귀한 수석을 바라보는 것만 같다. ‘시’라는 말이 애초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보석’이라 이름 붙여도 좋은 글이 ‘동시(童詩)’다.
경찰관인 나는 동시를 자주 읽으려고 노력한다. 거칠고 삭막한 직무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일수록 동시를 가까이 할 필요를 느낀다. 한국문인협회에서 다달이 보내주는 문예지를 받으면 나는 맨 먼저 동시 란에 눈길이 간다.
나무들도 걸었을 거야
맨 처음엔 나무들도 걸었을 거야.
뚜벅뚜벅 산길을 걸어 올라가던 나무,
마을길을 걸어가던 나무,
냇가를 걸어가던 나무에게 어느 날 선생님 같은 하느님이
“제자리 섯!”
호루라기를 불자 나무들은 모두 제자리에 멈춰 섰을 거야.
걷기만 하지 말고 주변을 살펴보라고 말야.
그래서 집 없는 새들에게 둥지를 틀 자리를 마련해 주고,
온종일 서있는 허수아비에게 손도 흔들어 주고,
땀 흘리며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에게 그늘도 만들어 주고 있지.
또 언제 하느님이 “앞으로 갓!”호루라기를 불면 나무들은 모두 다시 걸어갈 거야.
도와 줄 일을 찾아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말야.
- 전영관 <나무도 걸었을 거야> 全文
내가 좋아하는 아동문학가이자 현직 교장선생님인 전영관 시인이다. 외양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우람한 몸집에서 주옥같은 글이 나올까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동심의 토양’에서 한 평생 교육자로 헌신하면서 글을 지어 온 시인이니, 그 순수하고 맑은 동심의 눈망울들이 작품 속에 녹아드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앞으로 갓!”호루라기 불면 나무들은 모두 걸어갈 거야」에서 ‘나무’가 마치‘일선 경찰관’으로 연상(聯想)되는 것은 경찰 신분을 가진 나만의 해석일까?「도와 줄 일을 찾아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면서」에서 그 주인공이 바로 일선 경찰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바로 이 전영관 시인이 대전지방경찰청 개청을 축하하면서『우리 경찰관 아저씨』란 동시를 ‘선물’로 보내 주었다. 개인적인 친분을 넘어 국가 경찰로서 고마움과 함께 감동의 언어가 가슴에 잔잔하게 스며든다. 개청(開廳)과 더불어 새롭게 출발하는 ‘대전경찰’에게 이처럼 ‘귀한 선물’도 없을 것 같다.
우리 경찰관 아저씨
/ 전영관
손을 내밀면
언제나 따뜻한 손으로 꼬옥 잡아주시고
인자한 눈빛으로 웃어주시지만
나쁜 일 저지른 사람에게는
가장 엄한 아저씨 경찰관 아저씨
사건과 사고가 있는 곳에
쏜살같이 제일 먼저 달려가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공정하고 깨끗하게 처리해 주시는
가장 바쁜 아저씨 경찰관 아저씨
거리에서나 낯선 길모퉁이에서
경찰관 아저씨 모습만 보아도
어느새 마음이
포근하고 편안해지는
가장 믿음직한 아저씨 경찰관 아저씨
늦은 밤에도
비가 오나 눈이 오는 날에도
항상 우리들 가까이에서
도와줄 일 없을까
요리조리 살피시는
가장 고마운 아저씨 경찰관 아저씨
밤길 환히 밝히는 가로등 같고
집집마다 행복을 지키는 튼튼한 울타리 같아
경찰관 아저씨와 잡은 손 언제나 따뜻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 축시낭송 - 대전경찰청 개청식장에서 ‘우리 경찰관 아저씨’를 낭송하는 대전 회덕초등학교 조인애 학생. 스크린에는 전영관 시인의 축시가 떠 있다(2007. 7. 3)
전체 5연으로 짜여 진 이 시는 연마다 각기 다른 경찰에 대한 특징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선량한 주민에게는 가족처럼 따뜻하고 범죄인에게는 추상 같이 엄격한 경찰관의 두 모습을 순수한 어린이의 시선으로 그려 놓았다.
공정하고 깨끗하게 직무 수행하는 경찰관, 울타리 같이 든든한 경찰관 아저씨의 모습은 시민들의 바라는 기대감이기도 하다.
새롭게 출발하는 ‘대전 경찰’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과 신뢰감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라는 포근한 언어로 마무리함으로서 ‘경축의 자리’를 한껏 따뜻하게 빛내주었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주체는 시를 지은 시인도 아니요, 개청식장에서 예쁘고 사랑스런 목소리로 시를 낭송하는 어린이도 아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경찰관이란 생각이 든다.
청사 벽에 걸리게 될 이 동시를 음미하면서 새삼 다짐하게 된다. 시민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는 경찰, 더욱 믿음직하게 다가서는 경찰, 사랑과 신뢰를 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경찰로 거듭 태어나야한다는 다짐이다. (2007. 靑村 윤승원) ◈
※ 후기 : 축시를 써 준 전영관 시인에게는 대전지방경찰청장 명의의 감사장과 선물이 전달됐다.
단상에서 거행된 ‘감사장과 소정의 선물 전달식 장면’을 필자가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대전지방경찰청 자료실엔 아마도 청장이 전영관 시인에게 감사장을 전달하는 장면[사진]이 낭송시와 함께 보관돼 있을 것이다.
▲ 각계각층 축하 내빈과 경찰관들이 식장(대전지방경찰청 대강당)을 꽉 메운 가운데, 전영관 시인과 필자가 나란히 앉아 어린이가 낭송하는 축시를 감상한 것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가슴이 뜨거웠다. 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감동>이라 할 것이다.
▲ 개청 이벤트 아이디어를 제출하여 최우수 제안작으로 당선된 필자는 쑥스럽게도 대전지방경찰청장 명의의 표창장을 받았다. 경찰 재직 중 <특별하고도 의미 있는 표창장>이다.
※ 충청권 인터넷 언론 <디트뉴스24> 고정칼럼을 집필할 때 쓴 글이다. 국정홍보처에서 운영하는 ‘정책브리핑’(포털사이트-다음뉴스)(2007.7.9일자)에도 <어느 시인이 경찰관에게 보내준 선물>제목으로 소개됐다.
첫댓글 곳곳에서 윤선생의 수순함과 재치가 넘쳐납니다. 전영관 시인과 연계하여 멋진 이야기가 술술 풀려납니다. 어린이 시 낭송을 통해 경찰이 나갈 방향을 미리 미리 제시해쥐고, 민주경찰상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참으로 훌륭한 인품의 시인이고 감동적인 동시를 많이 남긴 저명 시인인데, 몇해 전에 안타깝게 타계하셔서 허전합니다. 언제 읽어도 머리가 맑아지는 동시이기에 소개했습니다. 현직 경찰관들도 다시 음미해 보았으면 하고 바라면서 페이스북에도 올립니다. 존경하는 정 박사님의 따뜻한 격려와 칭찬에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