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두 번씩이나 울린 보행기 노부부의 사랑!
솔향 남상선 / 수필가
나는 매일 같이 120여 분에게 카톡 자료를 보내고 있다. 그러면 그 자료를 꼬박꼬박 다 열어 보는 분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분도 있다. 그 중에서 손명수 할머니 같은 분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열어보시는 분이셨다. 그러시던 할머니가 최근 며칠 사이엔 톡 자료를 열어본 흔적이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거 같아 전화를 걸어보려 했다. 마침 그 시각에 톡 문자가 왔다. 할머니한테서 온 문자였다. 문자 내용은 이렇다.
「2월 5일 이동찬님이 별세하셨습니다. 여러 분들의 따뜻한 위로와 조의 덕분에 무사히 장례를 마치게 되어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큰 슬픔을 함께 해 주셔서 그 고마움 오래오래 간직하겠습니다. 항상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문자를 읽는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 매일 새벽4시에 일어나‘이동찬 할아버지 치매 걱정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기적의 쾌차를 은총으로 주소서.’하는 기도를 빼먹은 날이 한 번도 없는데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왜 할아버지 부음 소식을 안 주셨느냐?> 했더니 <민폐를 끼치기 싫어 아무데도 연락하지 않고 가족끼리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고 하셨다.
부음을 듣지 못해서 그랬지만 그래도 결례한 것을 사죄했다. 당장 살고 계신 집으로 달려가 인사하려 했지만, 초상 치르고 많이 지쳐 있을 거 같아, 다음 날, 아침먹자마자 발걸음을 재촉하여 벨을 눌렀다. 문을 열고 할머니가 나오셨다. 거실로 들어오라 하셨지만 바빠서 부의금 봉투만 전달했다. 부의금 봉투를 안 받으려 하셨지만 내 의지를 꺾지는 못하셨다.
조의를 표하는 순간 누가 뭐라 하지 않았지만, 나와 할머니의 두 눈에선 슬픔의 감정이 공통분모를 함께 하고 있었다. 그 때도 새어나오는 액체는 예외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울보임을 확실히 해 두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살아계실 땐 매달리다시피 할아버지가 붙들고 있었던 보행기가, 할머니는 힘에 부쳤지만 남편노옹을 살려야겠다는 신념과 사랑으로 여기저기 끌고 다니셨다. 그때의 보행기 왼쪽 손잡이엔 간식거리를 담은 가방과 요구르트 몇 병, 비스킷 2 봉지가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아니,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있었다. 그러시던 할아버지가 지금은 저 세상에 가셔선 또 염기 묻은 액체를 흘리게 하고 있었다.
2년 전만 해도, 할아버지는 보행기에 매달리고 그걸 끄는 할머니의 모습이 하도 감동스럽고 아름다워‘보행기 노부부의, 꽃보다 아름다운 사랑’이란 제목으로 수필을 써서 발표하기도 했다. 참된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하겠다.
날 두 번씩이나 울린 손명수 여사님과 이동찬 할아버지!
살아계실 땐 감동으로 울리더니, 돌아가셔서는 애도의 눈물을 흘리게 하고 있다.
부의금 봉투 쥐어 주며 나도 울고, 할머니도 울었다. 만감이 교차했는지, 할머니가 내 손을 덜컥 잡고 놓지 않으시는 거였다.
할머니 하시는 말씀이 치매할아버지 살아 계실 때 보행기 끌고 다니는 게 어렵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때가 행복했다고 하셨다.
스페인 속담에‘사랑이 있는 곳에는 고통이 함께 한다.’더니 바로 손명수 할머니를 두고 이르는 말 같기도 했다.
‘날 두 번씩이나 울린 보행기 노부부의 사랑!’
보행기에 매달렸던 향년 85세 이동찬 할아버지의 모습!
그걸 끌고 밀고 하는 향년 78세 손명수여사의 안간 힘을 다하는 모습!
거기엔 세상 제일가는 헌신과 사랑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니, 꽃보다 아름다운 사랑이 사람마다의 가슴을 적시고 있었다.
보행기, 노부부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갈 데를 못 찾고 있었다.
아름다운 삶!
과연 그건 무엇을 일컫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