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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산(普賢山)에 들다!"
오래전 삼국시대 때 중국으로부터 불교문화가 도입된 후 각 지역마다 산 이름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니
큰 산 아래 큰절 하나씩은 자리하는데 큰 절 뒤로는 산과 봉우리마다 불교 용어의 산들이 들어섰다.
법주사를 품은 속리와 희방사를 품은 소백산이 대표적이며 그외 천왕, 비로, 연화, 지장, 금강. 문수, 보현... 등이 있다.
이렇듯 삼국시대에는 대부분의 산들이 불교의 영향을 받아서 불교 이름을 빌려썼다가 이후 조선이 들어서면서 유교 형태의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곳 보현산은 조선 전기까지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것 같다고 해서 모자산(母子山)으로 불렀다가 조선 중기 들어서면서.보현산으로 개명되었다고 한다.
보현은 문수와 늘 한 몸처럼 짝을 이루어 석가모니 부처님을 좌, 우에서 협시하는 보살인데 보현에 들면 문수는 어디 가고 보현만 존재할뿐이다.
인근을 둘러봐도 큰 절은 어디에도 없으니 보현산 남쪽 아래 절골에 천 년 전에 있었다는 절의 흔적인 주춧돌과 깨진 기와 조각만 남아 있다
절의 유래를 알 수 있는 일주문이라도 남아있다면 모를까? 절에 대한 어떠한 이야기도 존재하지 않아 조선 중기 때 개명된 보현산의 유래를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셨다던 기룡산 아래 기룡사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아니면 단순하게 부처님 우측에 서서 협시하는 보살로만 기억해야 할지...
보현산에서 본 풍경
팔공산과 우측으로 의성군 가음면의 선암산이 유별나게 솟아있다.
팔공산 앞에 풍력 발전기가 희미하게 보이는 걸 보니 화산이고 그 옆은 옥녀봉(각시산)이 있고 그 뒤로 조림산이 보인다.
옥녀봉과 조림산 신령의 갑티재는 6,25전쟁때 산이 울고 사람이 울었던 곳이라 몇 번을 찾았던 산들이다.
드넓은 평지가 이어지는 화산은 삼국시대 때는 팔공산 자락이었다가 세월이 흘러 팔공과 함께하지 못해 화산은 그냥 화산일 뿐이다
보현산 아래로 보이는 골마다 흐르는 물은 반변천 지류인 길안천이며, 길안천은 경치가 아름답기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인 남한강길 중에 만나게 되는 동강의 절대 비경에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의 경치를 자랑한다.
조용한 보현산
오늘은 영천시 화남면에 살고 계시는 정다운님의 가게에 들러 달달한 생강차 한잔하고
정다운님께서 이곳 보현산까지 택배를 해주셔서 쉽게 올라왔습니다.
정다운님께 감사인사드립니다.
좌측 멀리 낙동정맥길의 운주산 앞으로 큰 산은 기룡산이 보이고 기룡산은 산아래 기룡사라는 절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는데 신라시대 의상대사께서 저곳에 절을 짓자 동해 용왕이 설법을 구하고자 말처럼 달려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뒤로 천장산과 도덕산과 삼성산 방향인듯 바로 앞은 오늘 내려가야할 고현천이고
기룡산이나 운주산 방향으로 흐르는 물은 모두 금호강 유역이며 그뒤로 흐르는 물은 모두 포항 포스코 앞으로 흘러가는 형산강 지류인 기계천 물이다.
시루봉과 팔공산 방향
지나간 경로와 누적거리 9천05km
1만km 걸으려면 50개 이상은 걸어야 하겠지만 시간은 흐르게 마련이니 올해 안에 끝날 것 같기도 하다
보현산 정상에서 몇 걸음 더 진행하다가 동쪽 골안골 계곡으로 스며들어 진행
산정은 아직도 조금 추워서 일까 진달래꽃은 피지 않았고 앙상한 가지만 바람을 잘으려 두 팔 벌려 서있고
급한 경사는 아니지만 계곡은 온통 너덜지대다. 이런 곳은 물 찾기가 쉽지 않아 행여라도 물소리를 놓칠까
낙엽 소리조차 조심스러워 살금살금 걷는다
끝 모를 너덜이 길게 이어지고
계곡의 물소리를 듣고 찾으며 내려왔지만 물소리는 고사하고 흔적도 보이지 않으니
골안골 비탈진 곳에 산사태가 난 흔적이 있지만
이곳에도 물 흐른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산사태 난고 바로 옆에 작은 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층층이 쌓여있는 곳에 물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수량도 제법 많고 잠시 앉아 한 모금 마시고 세수도 하고
좌측은 내려온 곳이고 우측 산사태 난 곳에 물이 많이 흐른다.
물은 아래로 이어지며
정상으로 향하는 등로가 있지만 산사태 지역이라 등로는 허물어지고
산객도 찾지 않은 듯 보인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샘터에는 물이 많이 흘러나오고 그옆에 먹는 물 수질 기준 충족여부 확인할 수 없으니 절대 마시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아마도 이물이 고현천(횡계천)의 발원지로 보면 될듯하다.
그래도 마셔봐야지...
샘터와 경고문을 지나
잠시 임도길을 따르다가 계곡으로 내려서면 다시 천문대로 올라가는 도로가 나온다. 이제부터는 도로길 탐방이니
무릎이 아작 날것 같다.
물은 천연 암반 위를 옥구슬 구르듯 흐르고
천문대와 절골이 보이는군요
절골이란 지명은 예전 삼국시대 때 규모가 제법 큰 절이 있어 그렇게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보현산은 멀리서 보면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했는데
여기서 보니 소한마리가 누워있는 듯한 편안한 능선이 인상적이다.
천연 암반이 꽤 길게 이어지며 상류에 몇몇 가정집들이 있었지만 아직은 그런대로 깨끗하게 흐르지만
물은 산에서 흘러와 대략 3km정도 흐르면 더러워지게 되어있다.
화북면 정각마을
길가에 자리하는 보현산 식당에 만들어 놓은 예전에 사용하던 지게나 짚공예품
주인장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시니 들어가 구경이라도 하며 나무, 짚 내음을 맡아본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이런 것 잘 만드셨는데...
절골 삼거리에서
산 아래는 사과나무와 자두 그리고 복숭아나무가 지천에 자라며
하천에는 크고 작은 돌들이 자란다.
큰 장마라도 온다면 작은 돌들은 큰 물에 몸을 의지한체 몇 바퀴 굴러갈 것처럼 보인다.
기룡산이 자리하고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
오래전부터 다른 동물은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미어캣과 사막 여우는 꼭 한번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나이 들어 시골로 간다면 꼭 두 녀석을 키워볼까 한다(잠시 송아지 개밥 먹는 소리를 해봅니다.)
벚꽃 백리길인데
아직 꽃망울만 있을 뿐 화사하게 터트리지 못했고
앙상한 나뭇가지가 따사로운 햇살을 그물로 막아서듯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찌해서 지나왔지만
또다시 사람사는곳을 지나야 하는 물의 여정도 참 고달파 보인다.
제방으로 떨어지며
도로가로는 온통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있고
도로에는 차량 이동이 뜸한 편이다.
혼자서 보기에는 너무 아깝지만, 하천길에 만나는 또 다른 즐거움이 바로 이거죠
하천과 자연이 그린 그림 속
하나하나 맞춰나가면 그림 속에 뭐가 있을까
횡계 저수지에서 조금씩 흘러온 물은 횡계리를 지나면서 탁해지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하천으로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있는 듯 흐르니 물이 더러워질 수밖에
옥간정
조선 숙종 때 정만양과 정규양 형제가 학문을 연구하고 후배 양성하기 위해 세운 건물
문이 닫혀있어 들어갈 수 없고 하천 따라 내려가며 몇장 담아본다.
하천 양 옆으로 아름드리 고목나무가 즐비하게 서있으며
5월 초여름이나 가을에 단풍이 물들 때 오면 아주 좋을 것 같다.
보현산에 가신다면 이 길을 꼭 지나는데 차에서 내려 잠시 구경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천에서 다시 올라와 옥간정 안을 담아보고
서원에는 어지간하면 은행나무가 자라는데 이곳에도 300년 된 은행나무가 자란다(보호수)
전국 대부분의 서원에는 학자 나무로 선비정신을 나타내는 은행나무, 향나무 배롱나무를 심었는데
은행나무는(도동서원, 전주 향교), 향나무(울진 후정리 죽변, 서산 송곡서원), 배롱나무(병산서원)가 대표적이다.
세 가지 나무 중 향나무는 사철 푸르고 거칠며 야성적이라 좋으나 평풍 뒤에서 맡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 외 양반 나무라는 감나무, 석류나무, 대추나무 그리고 매화, 소나무, 대나무, 모란(목단) 능소화(어사 나무), 배롱나무,
산수유,동백나무, 철쭉나무를 심었는데 이중에 특별한 나무로는 신라 진평왕 때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꽃 중의 왕이라는
모란이 있고 능소화는 어사화로 일반 평민이 심으면 안 되는 나무였다.
평민들이 심는 나무는 주로 배고픔을 달라기 위한 유실수인 밤나무,대추,감나무,고암나무를 심었는데
감나무는 평민은 먹고 살기 위해 양반은 사색이나 그림의 도구로 사용했다고 한다
시골집에 가면 감나무나 대추나무 한그루 정도는 다 있죠
횡계 저수지를 내려온 물은 맑지 못하고 바닥에 더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런 곳으로 흐르는 물은 거울처럼 깨끗해야 정상 아닌가.
모고헌
정규양 선생께서 1701년도에 세운 누각인데 옥간정보다 먼저 지은 건물이다.
300년 된 향나무
서원에 자라는 향나무중 최고로 멋진 나무는 울진 죽변항 인근에 자라는 울릉도에서 물 건너온 500년 된 나무와
서산 송곡서원의 580년 된 향나무가 있다.
울진과 서산의 향나무는 용트림하며 하늘나라로 승천할 것 같은 기(氣)가 대단한 나무고
이곳의 향나무는 350년 정도인데 속은 비어 있으나 단단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여러 종류의 고목나무가 있는데 대략 1만 5천 그루 정도 되며
어지간한 동네에 거의 다 아름드리나무가 자라며 보호수로 지정되어 관리를 받고 있다.
멀리 보현산이며
좌측은 노귀재나 석심산 방가산에서 흘러온 고현천 물이 보현산 동쪽 계곡에서 흘러온 횡계천과
합류하면서 고현천이 되어 흐른다.
두물이 만나면서 수량도 많아지고 깨끗해졌다
자천 마을과 복숭아 밭
빨래하는 아낙네
요즘은 하천가에서 빨래하는 모습 보기 어려운데
하천 100개 이상을 돌아다녔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인 것 같다.
화북면 옆 하천가로
직업이 저 녀석을 짓는 직업이라 유심히 살펴보고
화북면과 멀리 보현산
물속 풍경은 다른 곳과 다르지 않고 더럽게 보인다.
하늘이 파란 모습이니 물 위의 모습은 맑기가 깨끗하고 투명해 보이고
천년기념물인 영천 자천리 오리장림(五里長林)
길가에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줄지어 서있으며
여름날이나 가을날 이곳을 찾는 나들이 객들이 많은 곳이다.
물은 하류를 따라 흘러와 갈대숲에서 잠시 멈춘 듯 보이고
멀리 팔공산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불법 소각하지 말라고 그렇게 이야기했건만
방가산에서 아미산- 방가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와 노귀재 방향
산줄기 뒤로 흐르는 물은 낙동강 제1지류인 위천이며
군위땅을 거쳐 의성군 안계평야를 고루 적시며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다.
좌측 팔공산 가운데 화산으로
화산은 육군 3 사관학교 유격장과 고랭지 채소밭이 있고
조선 숙종 때 쌓다가 그만둔 미완의 화산 산성이 자리한다.
하천변에 건축 자재로 쓰던 나무가 버려져 있고
물은 맑은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영천시 화남면 임란의병 한천전 승첩 탑
임진왜란 최초의 승리를 기록한 승첩지이다.
1592년 4월 13일 3천명의 민관군이 전사한 동래성을 시작으로 작원관 전투-영천성전투-상주전투에 탄금대 전투에 이르기까
지 수많은 민관군이 사망했다.
4월 27일 지역의 많은 지사들이 목숨 바쳐 도탄에 빠진 백성과 나라를 구하고자 5월 6일 이곳 한천 일대를 중심으로 전개된 전투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둔 역사적인 장소이다.
읽어 보시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길 바라며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가다 보니
할아버지 한분이 하천 제방에 버려놓은 썩은 사과를 주워 드시는데 "할아버지 그거 드시지 마세요!" 하니
초점 잃은 눈으로 나를 보시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다.
배낭에 든 한라봉 하나와 환타 한병 건네 드리며 "사과는 썩어서 못 드시니 이거 드세요!"라며 건네 드린다.
목이 말라던 듯 환타 뚜껑을 힘겹게 돌리시더니 드시고...
남은 길도 얼마 안 되는데 뭐가 그리 급했나! 갈길이 멀다는 핑계로 식사라도 하시라며 돈이라도 조금 드리고 올 걸 하는
생각도 못하고 한참 와서야 생각이 난다.
더러라
고현천 물은 이렇게 더럽게 흘러 대구 시민이 마시고 부산분들이 마시는 남한제일의 낙동강 물이된다.
저녁마다 커피끓이는 물도 이물이고
화남면에 들러 물 한 병과 아이스크림 하나 사 와서
지방하천 고현천
마실 나오신 할머니분들께서 "다슬기를 잡으시겠다"며 나오셨는데
이런곳에 뭔 다슬기가 산다고... 설령 산다고 하더라도 먹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며칠이 지나고 우리 집 밥상에 이 녀석들이 올라오는 건 아니겠지만...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할머니분들은 종종걸음으로 가시고
멀리 지맥 길인 화산과 방가산이 이어진다.
물이 이렇게 더러운데 다슬기라니
냉장고가 집을 나와있고
화산에서 경림산과 방가산이 이어진다.
가운데 조그맣게 보이는 산은 보현산이고 우측으로 크게 보이는 산은 기룡산
연분홍 복사꽃이 피어있고 멀리 보이는 산은 금호강 좌측의 비슬 지맥길의 구룡산과 채약산이 고개를 내민다.
지나온 하천길
방각산과 노귀재 방향 가운데 보현과 기룡산 줄기
양파 가격이 그야말로 형편없지만 농부님의 마음은 씨 뿌리고 다시 거두는 것에 감사드리며
오늘도 메마른 양파밭에 물을 주고 있다.
양계정사
조선 후기 진주목사를 한 정호인의 정사로써
의병장 정세아 선생이 할아버지이며 정사는 고현천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세웠다.
잠시 둘러보고 나와 짧은 하루해가 서산에 걸릴 무렵 영천 개인택시를 어디로 오시라해 두고
신령천에 합류하는 고현천
신령천은 팔공산 동봉 북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팔공 폭포를 만들어 놓고 영천시 신령면을 지나
금호강 품에 안기는 하천이다.
신령천의 물속 풍경은 더러움 자체이며 하천이 더럽건 말건 어느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은 하천으로 보였다
멀리 영천분들이 매일보는 채약산과 예향산이 보이고 그 사이에 구룡의 전설을 고이 간직한 구룡이 고개를 빼꼼이 내민다.
석가모니불을 협시하는 보현보살이던 아기를 안은 어머니의 모습을 하던 그보다 하천이 좀 더 맑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호출해둔 택시가 "여 왔으니 퍼떡 오시소" 라며 전화가 온다.
첫댓글 올만입니다. 오래전 보현산 그룹 산행을 마치고
정각마을 팔각정에서 하산식을 했던 곳을 보니 추억이
새록새록하네요.언제나 건강한 걸음 이어가시길 응원합니다.
멀리 팔공관 ,선암산 운주와 낙동길이 끝없이 이어지는 조망이 좋은 보현산은 능선이 아주 편안한 많큼 짧죠
정각마을 정자는 기본형이라 조금 싼건데 하루면 다 짓고 집으로 올 수있는 거랍니다.
글 감사합니다.
잘보고가요
방장님~
하천길 곳곳엔 불법쓰레기소각
많이 좋아지긴 했어도
아직은 아닌듯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백두대간에서 이어져 오는 산둘기가 낙동으로 이어지는 동쪽은 아직도
깨끗함을 간직하고 있지만 내륙의 물은 그야말로 구정물이라 할 수 있답니다.
인간이 살고 있는 곳 인근으로 온 물이 다시 깨끗해 진다는 건 토끼가 늑대를 사냥하는 것 보다
더 힘들다는 걸 알았죠
동해안길 열심히 걸음 하시기 바랍니다.
영천 보현산
어느 4월 모진 비바람에 힘겹게 오르던
그날이 생각나내요.......
10년전 일인가 십습니다...
늘 안전하게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그날 비도 오고 안개도 자욱했고 많이 추웠죠
10년전 참 좋았던 날들도 이제 기억속으로 멀어져가니
다음주에 기분 좋게 봐요
지금은 벚꽃이 지고 없는데
벚꽃이 활짝핀 것을 보니 다녀온 시기가 어림 짐작이 되는군요~ㅎ
보현지맥을 다녀온지가 얼마 안돼서
보현산 주변 산세가 더 반갑기도 하고요.
고현천 물줄기 잘보고 갑니다.^^
ㅎㅎ마창진이나 부산 11산 클럽 정기산행이 올라올 무렵이라
저는 조금 기다리다 보니 늦네요
다 써놓았지만 밀려있는 후기가 6편인데 천천히 올릴까 합니다.
비슬산 진달래 너무 아름답게 담으셔서 잘 보고 왔어요
감사합니다.
@배병만 석천환종주 3구간 팔음지맥 역으로 분기점인 봉황산 오르고 있는데
까칠하네요~ㅎㅎ
사람이 사는곳이라 쓰레기 없는곳이 없네요
아직도 불법으로 소각하는 시골들이 많은듯 합니다
못볼꼴도 가끔씩 보시는 방장님 수고 하셨습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죠
스레기도 많고 물은 더럽고 전국 어딜가도 그렇습니다.
저쪽 옥동천은 그나마 조금 깨끗하구요
ㅋ 전원일기 같습니다
잘지내시죠...
매일 매일 어제 같고 내일 같습니다.
물론 잘지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