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소개>
브룩클린 미술관 (Brooklyn Museum)
에서 찾은 100년 전 한국의 향기
<1913년 뉴욕 맨해튼 그리고 서울>
글 | 이성범 KBS PD (한국언론진흥재단 장기해외연수자
브룩클린 미술관
#Scene 1
1913년 3월 중순의 어느 오후.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의 채광 창으로 커다란 세 줄기의 빛이 쏟아지고 있다. 표를 구하기 위해 줄을 서있는 사내들이 피우는 담배연기가 초록색 천장에 새겨진 별자리 지도 위를 가득 메우고 있다. 브룩클린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50대 중반의 스튜어트 큘린(Stewart Culin)은 한국에 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지만 이미 한국과 관련된 책을 18년 전에 출간했다. 민속학자로서 타국의 전통 놀이, 예술과 의복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기에 머나먼 이방인의 나라 한국의 전통놀이를 소개하는 책자인 ‘Korean Games’를 내놓을 수 있었다. 6번 플랫폼에서 스태튼 아일랜드 중악역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증기선을 타고 일본 도쿄로 향하는 장거리 여행에 나서게 될 스튜어트는 중절모를 눌러쓰며 생각에 잠긴다.
금귀걸이
청자 물주전자
#Scene 2
일본의 시모노세키항에서 출발해 인천항 1부두에 도착한 스튜어트. 은발의 서양인을 뜯어보는 일본인 순사의 눈이 예리하다. 통행증과 신분증 검사를 거친 후 제물포역에서 기차에 몸을 싣고 대한제국 최대의 역 경성역으로 향한다. 5월 초순의 철로 변에는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었다. 창덕궁의 낙선재 뒤편 만월문 바깥에 자리 잡은 오래된 돌배나무에도 탐스럽게 배꽃이 맺혔다. 난생처음 경성에 발길을 디딘 스튜어트 큘린. 거리를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과 인력거들 사이로 저 멀리 남대문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 주변으로는 판자촌들이 드문드문 펼쳐져 있다. 남대문 앞에 열린 작은 시장에는 호객하는 상인들로 왁자지껄하다. 스튜어트는 뉴욕에서 가까이 알고 지냈던 한국의 지인들과 함께 사대문 안의 큰 시장 중 하나인 황학동으로 분주하게 발길을 옮긴다.
#Scene 3
“아, 이 귀걸이는 신라시대 때의 유물인데 당대에는 아마 왕족이나 귀족들만이 몸에 착용할 수 있었던 물건입죠. 여기에 보이는 이 도드라진 세밀한 장식들은 다 하나하나 작은 금구슬을 붙여서 만든 것이죠.”
“놀랍군요.”
돋보기로 금빛이 영롱한 귀걸이 하나를 이리저리 돌려보던 스튜어트. 두텁게 원형으로 말려있는 귀걸이 몸통 윗부분의 거미줄 모양의 장식에 눈길이 멎는다. 6세기 무렵에 한국의 신라에 이토록 아름다우면서도 세밀한 금속세공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정교하게 양각으로 모래알 크기의 금장식을 붙이는 방식은 당시 지중해의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던 세공 양식을 따르고 있다. 아마 실크로드를 통해서 서양의 그 방식이 전해졌으리라. 이 귀걸이에서 동양과 서양의 두 정신이 조우하
고 감응하고 있었다.
“이 가게에 있는 고려청자들을 좀 보여줄 수 있습니까?”
“가격이 꽤 나가는데…….”
“일단 물건을 보여줘요.”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연신 부채질을 하던 주인이 가게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며 안내를 한다. 가게 뒤편으로 나와 어두운 뒷골목에 위치한 첫 번째 창고를 지나 두 번째 창고에 다다른 일행. 무거운 자물쇠가 철컹하며 열린다. 등불을 켜자 그간 잠들어 있던 영롱한 빛의 도자기들이 기지개를 켠다. 스튜어트의 눈길이 연꽃 모양의 뚜껑이 덮인 비취색의 물주전자에 멈춘다.
“아, 이런!”
한국관 입구
한국관 전경
창고 안에는 고려청자뿐 아니라 새하얀 조선 시대의 도자기도 수십 점 늘어서 있었다. 자유로운 붓질의 그림이 인상적인 분청사기도 두 점이나 놓여 있었다. 일본 도쿄 긴자의 골동품 가게에서도 보지 못했던 조선의 단아하면서도 아름다운 자기를 보자 스튜어트의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브룩클린 미술관에 전시가 되어있을 신라의 금 귀걸이, 조선의 분청사기. 이 아름답고 황홀한 유물들이 미국인들과 조우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자 빙그레 미소가 떠올랐다. 무심코 고국의 풍경이 스쳐지나간다. 마차와 차들로 가득찬 브로드웨이의 화려한 네온사인에 서서히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해가 서서히 져가는 뉴욕 맨해튼의 미드타운의 마천루 사이로 커다란 구름이 드리워있다. 플랫아이언 빌딩 앞의 가로등에도 하나둘 붉은 빛이 솟아난다.
<2017년 12월 21일 브룩클린 미술관>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지난 12월 21일 오후 김형근 발행인님과 함께 브룩클린 미술관으로 향했다. 맨해튼 미드타운의 전철역에서 2번이나 3번 라인을 타고 다운타운으로 향하면 30분 남짓이면 브룩클린 미술관(Brooklyn Museum)에 도착할 수 있다. 역에서 바로 올라오면 19세기의 건축물과 20세기의 건축물이 만나 독특한 조화를 이루어 내고 있는 미술관 건물을 만날 수 있다. 1층 로비는 브룩클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색 벽돌로 지은 창고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느낌이다. 이곳의 아시아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인 조앤 커민스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다. 짧은 인사 후 한국관이 있는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 9월 15일 새롭게 확장해서 2층에 개관한 한국 미술 전시실에는 귀중한 미술품과 유물들이 새하얀 전시관 안에서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관람객들의 눈길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이곳의 한국 미술 소장과 전시의 개척자는 바로 민족학자이자 큐레이터였던 스튜어트 큘린(Stewart Culin, 1858-1929)이다. 그는 1913년에 당시 일제 치하의 한국의 서울로 여행을 갔고, 당시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한국의 미술품들을 직접 한국에서 수집을 했다. 100여 년 전 미국에서 아무도 주목하고 있지 않던 이른 시기에 한국 미술에 전념하여 수년 간 기증품을 수집했다. 그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최고의 한국 미술품들을 경매를 통해 구입을 하고 뜻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기부를 받으며 컬렉션의 규모를 키워나갔다. 그 덕분에 브룩클린 미술관은 한국 미술 전시관을 영구적으로 설치한 미국 최초의 미술관이 될 수 있었다. 현재는 약 750여 점에 달하는 한국 미술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그 중 엄선된 80점의 미술품을 새롭게 단장한 이 전시관에 공개하고 있다.
신부 예복
관모
“브룩클린 미술관은 미국에서는 최초로 한국 미술의 중요성을 인정한 미술관이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한참 선배이신 스튜어트 큘린의 지치지 않는 열정과 한국 미술에 대한 사랑 덕분에 오늘의 미술품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죠. 전보다 훨씬 규모가 커진 미술 전시관에 이처럼 방대하고 깊이 있는 소장품을 전시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리사 & 버나드 셀즈 아시아 미술관(Lisa and Bernard Selz Gallery of Asian Arts) 수석 큐레이터인 조앤 커민스(Joan Cummins)는 새롭게 단장한 한국 미술관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조앤은 인도 미술을 전공으로 한 베테랑 큐레이터로 지난 11년 간 브룩클린 미술관에 몸담고 있다. 현재 아시아 미술관 전체를 관장하고 있고 한국에 대한 미술에도 관심이 지대하여 한국으로 초청을 받아 한국 미술에 대한 교육을 받았으며 이번 한국 미술관 확장에 큰 역할을 했다.
한국 미술전에서는 1,800여 년 전에 제작된 예술품을 비롯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다양하고 독특한 미술품을 공개하고 있다. 미술품 중에는 섬세한 모양과 절제된 장식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한국의 도자기들 중 하나로 인정을 받은 연꽃 모양의 주전자, 소장품이 있는 창고를 정리하다가 큐레이터가 발견한 극히 드문 19세기 초의 차양이 넓은 의례 행사용 관모(불필요한 크기 때문에 후기에 금지되었음), 그리고 동양과 서양을 연결한 실크로드 교역로를 통해서 미술품 제작 기법이 확산되었음을 보여주는 6세기의 정교한 한 쌍의 금귀고리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활옷으로 불리는 19세기 한국의 신부가 입었던 화려하게 수를 놓은 예복은 1927년에 취득한 이후 한국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복원처리를 해서 최초로 공개를 하고 있다. 불교미술품으로는 조선시대의 불화 1
점, 고려시대 불화 1점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의 아미타불이 그려진 불화가 브룩클린 미술관이 자랑하는 작품이다. 이 그림에는 아미타불이 6명의 보살, 2명의 아라한과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고려 시대 불화로는 아미타불이 두 명의 보살과 함께 연꽃위에 서있는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 이 그림은 고려시대 초기인 14세기경의 작품으로 세월의 흔적으로 전체적인 톤이 어두워졌지만 여전히 영적인 빛을 발하고 있다. 내년에 불교 미술품들을 전시할 때 함께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에 공개된 미술품 중의 일부는 수십 년 동안 창고에서 보관되어 오다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들이다. 한국의 국립 중앙박물관으로부터 온 학예사, 큐레이터, 복원전문가들의 도움이 컸다. 브룩클린 미술관은 2012년부터 3년에 걸쳐 한국의 국립 중앙박물관으로부터 후원을 받고 전문가 그룹의 도움을 받아 한국관 확장을 기획했다. 재정비된 한국 미술 전시실은 처음에 있었던 것보다 3배가 확장이 되었고, 이와 더불어 전시하게 될 미술품과 유물의 규모도 3배가 늘어났다.
관람객들은 새롭게 확장된 2층의 전시실에서 한국 미술뿐만 아니라 아시아 및 중동의 미술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아시 아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걸작 중에는 중국의 상 왕조 시대(기원전 13세기-11세기)에 제작한 정교한 동물 모양의 청동 술 그릇, 캄보디아에서 6세기에 제작한 사암 머리, 머리가 실물보다 크고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는 일본의 수호자상, 13세기경에 티베트에서 제작된 놀랄 만큼 잘 보존된 미륵불 좌상, 카자르 왕조 시대에 제작된 이란 왕자의 대형 초상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조선 불화
고려 불화
이처럼 다양한 문화권의 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브룩클린 미술관은 300여 명의 직원들이 분주하게 일하는 큰 규모의 미술관이다. 미술관이 크게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우선 소장고에서 잠들어 있는 걸작들이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외부에서 전문가들을 정기적으로 영입해 복원 작업, 분류 작업, 디지털 아카이빙 작업, 연구를 진행한다. 미술관이 단지 미술품을 보관하는 창고로 전락해서는 안되고 항상 미술품을 순환시켜 관객들에게 공개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 생각하고 있다. 두 번째로 관람객에 대한 교육이다. 유교 문화권에서 온 미술품, 힌두문명에서 온 미술품, 히말라야 지역에서 전해져 오는 미술품등 각 작품은 그 연원이 다양하기에 관객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 작품들에 대한 설명과 교육이 보다 상세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작품별로 상세하면서도 전문적인 설명과 주석을 달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각 전시관별로 정기적으로 관객들을 위한 세미나와 워크숍을 개최하고 있으며, ‘미술의 이해’, ‘사진의 이해’, ‘초급 그림 그리기’ 등 미술관 내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을 하면서 대중들에게 보다 친근감 있게 다가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저희 미술관에는 복원전문가나 학예사와 같이 한국과 관련한 미술 전문가가 상주를 하지는 않지만 아시아 미술 수석 담당관인 제가 외부에 의뢰를 해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의 전시회를 위해서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의 전문가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학예사분들과 소장고를 둘러보던 중에 이 거대한 갓을 보관하는 상자를 발견했죠. 그 분이 그 상자를 열어보고 소리를 질렀죠! 완벽한 보존 상태의 자줏빛 의례 행사용 관모가 처음으로 햇빛을 보는 순간이었어요. 이 신부의 예복 역시 한국의 의복 전문가들이 찢어지고 헤진 부분들을 한 땀 한 땀 꿰매서 지금 보시는 것과 같이 완벽하게 복원을 해낸 것이죠.” 큐레이터인 조앤은 이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오늘과 같은 전시회가 불가능했다고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의 전문가들의 손길로 이번의 전시회는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수십 년간 창고에 고이 잠들어 있었던 조선시대 의례용 관모와 신부의 예복이 다시금 살아나 관람객들을 만나게 되었다. 한국의 연구자, 미술전문가들이 그 예술성을 인정한 신라의 금귀고리, 연꽃 모양 청자주전자, 의례 행사용 관모, 그리고 한국 신부의 예복은 이번 전시회에서도 영혼의 빛을 발하고 있는 이 미술관이 자랑하는 걸작들이다. 이 전시회는 내년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2019년에는 확장된 공간
에 한국 미술품들을 추가로 전시할 예정이고 아시아 미술관의 전면을 모두 터서 열린 공간에서 관람을 할 수 있게 추가 공사를 할 예정이다. 최근의 변화를 직접 보고 앞으로 이뤄질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니 이 미술관은 박제화 되어있는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시대와 호흡하고 관객과 조응하며 살아 꿈틀거리는 미술관임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이 살아있는 열린 공간에서 수 백 년, 수 십 년간 잠들어 있던 예술혼들이 해방되어 관객의 눈길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