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가 전문 음악가들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연주되기 시작한 시기는 20세기에 들어서서 뉴 올리안즈(New Orleans)에서부터라고 알려져있다. 그 이전에는 노예들 사이에서 넓게 퍼져 불려지면 백인들이 배워부르기도 하였으며, 음악적인 형태는 대개 단순한 가창곡이었다.
예를 들면 흑인 영가 (Negro Spiritual과 Gospelsong), 블루스 (Blues), 그리고 노동요(Worksong)등이 있으며, 이 들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음악형식과 감정표현이 내포되어 있어서 좋은 곡들은 후에 재즈 음악가들에 의해서 다시 불리워져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기도 하였다. 재즈 초기의 음악형식과 감정표현 방식은 재즈 음악의 기본을 이루고 있어, 시대의 변천에 따라 재즈의 스타일이 다양하게 변하여도 항상 밑바닥에 흐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재즈를 이해하기 위해서 위에 소개한 영가, 블루스, 노동요와 초기 재즈 기악곡 형태인 랙타임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1) 흑인 영가 (Negro Spiritual과 Gospelsong)
아프리카에서는 종교와 주민의 생활이 대단히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사회적인 행사는 거의 종교적인 행사와 관계를 맺고 치뤄지며, 여기에는 또한 음악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제의를 맡고 있는 주술사는 음악가이며, 주민들 역시 노래하고 춤추면서 진지하게 진행된다. 이와 같은 종교적, 음악적 전통을 갖고 미국에 도착한 흑인들은 새로운 백인 주인의 종교에 따라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고 종파도 결정되게 된다. 그리하여 이들은 서양의 교회음악에 접하게 되어, 새로운 형태의 찬송가라고 할 수있는 영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Spiritual의 가사는 대부분 구약이나 신약 성서에서 자신들의 처지와 비슷한 대목을 골라 종교를 자신들의 세속적인 생활과 연결시키는 내용인데, 신앙심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으리라고 희망을 품는 방향으로 나타난다. 예로써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Deep river, my home is over Jordan"은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인을 자신들의 처지와 연결시킨 내용이며, 이런식으로 "Swing low, sweat chariot", "Nobody knows", "When the saints" 등등의 주옥같은 곡들을 들 수 있다. Spiritual의 음악적 특징은 대개 5음음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끝까지 부르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 Fine이라고 쓴 곳까지 부르는다-카토 형식으로 되어있다.
영가의 한 종류인 Gospelsong은 Spiritual보다 훨씬 활기차고, 현대의 댄스리듬이 섞이기도 하며, 즉흥성이 더욱 살려져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Spiritual은 노예제도하에서 부터 흑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불리웠는데, 1880년 경부터는 차차 백인들이 모아 부르기 시작하였다. 영가 가수로는 루이 암스트롱(Louis Amstrong), 마할리아 잭슨(Mahalia Jackson), 비숍 켈시(Bishop Kelsey) , 골든 게이트 4중주단 (Golden Gate Quartet)등이 우리에게 친숙하다.
2) 블루스 (Blues)
블루스는 영가가 종교적이며 희망적인데 비해 세속적이며 비관적이다. 흑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비애를 노래한 것으로 Blue란 색깔이 암시하는 것처럼 우울한 노래이다. 그러나 블루스에는 재즈의 음악적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 있다. 블루스는 우선 특이한 음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블루노트'(Blue Note)라고 한다. 보통의 장조 서양 음계와 비교해볼 때 3 음, 5음 그리고 7음이 반음씩 내려가 있다. 그러나 이 음계는 멜로디를 이끄는 데에만 사용되고, 화음으로 반주하는 데에는 서양의 장조 화음을 사용한다. 따라서 블루 멜로디와 화음반주가 묘한 불협화음을 내는데, 이 음향이 재즈란 인상을 강하게 심어준다.
블루스의 두번째 특징은 리듬에 있다. 싱코페이션과 삼련음표를 사용하여 독특한 느낌을 안겨 주는데, 약박에 악센트가 들어감으로 인하여 쇼크를 받는 순간과 같은 매우 강한 심리적인 반응상태에서 출발하며 인간은 그에 육체적으로 움직임으로써 보상하 는 상태를 불러 일으킨다. 즉 블루스의 리듬은 자동적으로 율동을 부른다. 이와 같은 블루스의 리듬은 역시 흑인 특유의 감정에서 유발된 것이라고 하겠다.
블루스의 세번째 특징으로 블루스 노래는 각 행이 4마디씩으로 구성되어있고 모두 3행이 모여 1절을 이룬다. 즉 도합 12마디이며, 화음이 정해져 있다. 노래할 때는 12마디를 모두 빽빽히 노래하지 않고, 반정도만 노래하고 나머지 부분은 악기 반주로 채워지는데 대개 노래 음성 표현을 그대로 모방하는 형식이라서 매우 재미있다. 블루스는 노예시대부터 널리 퍼져 있었으며, 1870년대부터는 지방과 도시 블루스로 분류되어 발전된다. 블루스의 최성기는 1920 ~1930년경 이라고 할 수 있고, 유명한 가수로는 마 레이니 (Ma Rainey), 베씨스미스 (Bessie Smith), 루이 암스트롱 (Louis Amstrong), 빅 빌 브론치 (Big Bill Broonzy)등이 있다.
블루스는 20~30년대에 피아노곡으로 사랑을 받기도 하였는데, 멜로디의 특징은 블루스와 같고 왼손 반주는 구르는 듯한 리듬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형태가 보편적이다. 이와 같은 블루스 피아노 곡을 가리켜 '부기 우기 (Boogie Woogie)'라고 부른다.
3) 노동요 (Worksong)
아프리카인들은 일을 할 때 반드시 노래를 부르는 관습이 있다. 노래를 함께 리듬에 맞추어 함으로써 일의 능률을 올리기도 하 고, 노래가사에 뉴스를 전하기도 한다. 이런 전통은 미국의 흑인들에게로 이어져서 도로를 닦을 때, 철로를 놓을 때, 노를 저을 때, 나무를 벨 때 등등의 일을 하며 노동요를 불렀다. 노래 형식은 선창자가 노래하면 합창으로 대답하는 형식이다.
4) 랙타임 (Rag time)
Rag이란 "이그러졌다"라는 뜻이며, time이란 악보의 한 마디를 것이다. 즉 리듬이 엉망이라는 뜻이다. 래그타임은 쉽게 이야기 하여 완전히 작곡된 피아노 음악을 말하는데, 재즈의 특징인 즉흥연주가 빠져있는 형태이다. 19세기 후반에 유럽에서도 유행하였으며, 왼손으로는 정확한 박자를 짚고, 오른손은 싱코페이션이나 부점음표들이 등장하여 리듬이 매우 어긋나있는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스콧 조플린 (Scott Joplin)과 젤리 롤 모턴 (Jelly Roll Morton)등이 있으며, 예로써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스팅의 주제가 "The Entertainer"를 들 수 있다.
이번 순서에서는 재즈의 발생 배경과 재즈가 본격적으로 발전되기 이전의 초기 형식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재즈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미국에서의 흑인의 위치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그들 특유의 음악적 표현과 즉흥연주 능력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비교 비평할 수 있을 만한 안목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되려면 재즈의 역사, 이론과 함께 실지의 음 악을 레코드나 녹음으로 많이 듣는 것이 필수 조건이라 하겠다.
*이곳에 올라간 글은 <레코드 음악> '89년 겨울호 - '90년 겨울호에서 발췌한겁니다...
재즈의 변천사
1. 뉴 올리안즈 재즈 (New Orleans-Jazz)
1). 재즈의 정의 및 뉴 올리안즈 재즈의 발생
재즈의 발생지를 루이지애나주에 위치해 있는 도시 뉴 올리안즈로 보는 것은 재즈가 초기에 가장 활발히 연주되던 대표적인 곳 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시말하여 재즈란 어느 시기, 어느 곳에서 발생한 음악이라고 단정짓기 보다는 흑인 노예제도가 성행한 이래로 수십년 동안 점차적으로 발전된 음악이다. 재즈란 이름을 갖게 된 시기나 그 어원도 정확히 알수가 없으나 흑인 영 가, 블루스, 노동요 등은 미국적 민요에다 유럽의 민요나 오락음악, 군악대 음악의 기법을 첨가하여 전문 음악가들이 연주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재즈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남북전쟁 (Civil War,1861-1865)이후에 군대에서 악기를 불하하여 악기가 시중에 많이 퍼지게 되었고, 프랑스인과 흑인 노예의 혼혈인 크레올(Creole)이 대거 참가하여 많은 악단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크레올은 피부가 흑인보다 밝고, 교육을 받았으며, 프랑스어로 말을 하였다고 하는데, 경제나 사회적으로 흑인보다 우세하였으므로 노예해방 이후(1865) 흑인들에게서 존경을 받았다. 그리하여 흑인의 단순한 형태의 음악에 유럽적인 기법이 침투하게 되었으며, 악기편성은 군악대편성에서 차차 소편성 의 밴드중심으로 나아가긴 하였으나 여전히 취주악기가 그 주류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재즈의 특징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크레올과 흑인들은 길거리나 공원, 결혼식, 장례식, 피크닉, 카니발 등에서 연주를 하였으며, 1900년 경에는 댄스홀이나 술집에 고용되어 연주하였다. 특히 뉴 올리안즈의 홍등가인 스토리빌 (Storyville)에서는 랙타임 피아니스트와 소편성 밴드를 고용하여 손님을 접대하였으므로 흑인 음악가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초기에는 재즈란 이름으로 연주한 것이 아니나 , 최초의 재즈밴드로 알려진 것은 버디 볼든(Buddy Bolden- 트럼펫, 코르넷)의 밴드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곧 백인들이 모방하여 댄스음악으로 연주하는 악단이 성행하기 시작하였는데(1910년 경부터) 이들 중에서 니크 라로카( Nick LaRocca,트럼펫)가 이끄는 "오리지날 딕시랜드 밴드(Original Dixieland Band)"가 1917년 최초로 레코드 취입을 하여 재즈가 드디어 미국 전역으로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2). 뉴 올리안즈 재즈의 음악적 특징
뉴 올리안즈 재즈는 1900년에서 1925년 사이가 전성기이고,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버디 볼든(Buddy Bolden, 트럼펫), 벙크 존슨(Bunk Johnson, 트럼펫), 죠 킹 올리버(Joe King Oliver, 트럼펫),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트럼펫), 키드 오리(Kid Ory, 트럼본), 젤리롤 모튼(Jelly Roll Morton, 피아노), 그리고 백인 밴드로 "오리지날 딕시랜드 재즈 밴드(Original Dixieland Jazz Band)"와 "뉴 올리안즈 리듬킹즈(New Orleans Rhythm Kings)"등이 있다. 악기 편성은 백인의 군악대를 본따왔기 때문에 멜로디 악기로 트럼펫, 클라리넷, 트럼본 등의 관악기를 편성하고, 리듬악기로 드럼, 벤조, 기타, 튜바, 그리고 피아노, 콘트라베이스가 추가되어 구성되었다. 연주 형태는 흑인 음악가들이 악보를 읽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순전히 청력에 의해 연주하는 경향이었다.
이들은 12마디의 블루스나 32마디의 노래나 랙타임을 주제 로하여 각 구성원이 제작기 동시에 즉흥적으로 연주하였으며 이를 가르켜 "집단즉흥 연주(Collective improvisation)"라고 일컫는다. 리듬 형태는 단순한 2박자(한 마디에 2박이 들어가고 첫박에 악센트가 있다) 재즈가 성행하였다. 이 시기의 재즈 특징은 시대가 변하여도 영원한 재즈의 특징으로 전승되게 된 요소들이 많은데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1) 블루음표 (Blue Notes)
(2) 거칠은 음색 (dirty tones)
(3) 억세고 폭발적인 억양법 (hot-Intonation)
(4) 기본 박자를 무시한 리듬과 악센트 (off beat, swing)
(5) 주어진 테마로 즉흥연주 (Improvisation)
시카고 재즈 (Chicago-Jazz)
1). 시카고 재즈의 발생 및 발전
1917년 세계 제1차 대전이 발발하자 뉴 올리안즈가 중요 해군기지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스토리빌의 향락업소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 따라서 이곳에서 일하던 많은 음악가들이 해고를 당하여 이들 중에는 미시시피강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 세인트 루이스(S t. Louis), 캔자스(Kansas), 시카고(Chicago)등 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꽤 되었다. 이 도시들 중에서 시카고는 특히 1920년대부터 재즈가 활발히 꽃피기 시작한 도시로서, 루이 암스트롱, 죠 킹 올리버, 키드 오리, 젤리 롤 모튼 같은 이들이 뉴올리안즈에서 시카고로 이주하여 활동한 대표적인 음악가들이다. 이들은 시카고에서 새로운 연주법을 구사하여 "시카고/ 뉴올리언즈 -재즈" 스타일을 구축하였다. 예를 들면 루이 암스트롱은 시카고에서 20년대에 "핫 파이브(Hot Five)"와 "핫 세븐(Hot Seven)"밴드를 조직하여 뉴 올리안즈 스타일로 연주하다가, 30년대에는 그 당시 시카고의 유행대로 자신의 트럼펫 솔로 연주와 노래가 큰 역할을 맡고 그의 밴드는 뒤에서 반주만 하는 스타일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그는 "스타"와 "쇼맨"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40년대에는 "올 스타즈(all Stars)"악단을 조직하여 다시 뉴 올리안즈 스타일로 되돌아갔다. 루이 암스트롱과 버금가는 유명한 음악가는 피아니스트 젤리 롤 모튼 이다. 그는 크레올 출신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으므로, 테마를 작곡하고 또한 이를 편곡하여 그의 밴드를 연습시켰다. 그의 악단의 특징은 그러므로 즉흥연주의 폭이 훨씬 적었으므로 재즈 동료들에게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고 한다.
시카고에서는 재즈의 세계에 백인이 진지하게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 또한 획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 백인 고교생과 대학생들 사이에 재즈는 신선한 음악으로 받아들여져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으며, 이들 가운데 "어스틴 하이스쿨 갱(Austin High School Gang)"과 같은 모교 이름을 본딴 유명한 밴드라든가 빅스 바이더벡(Bix Beiderbecke, 트럼펫)같은 훌륭한 연주가가 속출하였다. 이들은 과거의 딕시랜드와는 달리 진정한 재즈세계를 탐구하여 그 당시 백인의 취향인 "스위트 뮤직(Sweet Music) "을 침투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이들 음악의 특징은 테마작곡과 편곡을 역시 오선지에 철저하게 적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므로 흑인악단보다 즉흥연주가 적으며, 솔리스트의 활약이 전체적인 밴드연주보다 대단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음악은 흑인의 것보다 약간 가라앉은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2). 시카고 재즈의 음악적 특징
시카고 재즈의 전성기는 대략 1925년에서 1930년까지로 추정되며, 뉴 올리안즈 출신의 흑인 음악가들은 시카고에서 좀더 고상하고 세련되고 노련하게 스타일을 바꾸어 나갔다. 이들은 또한 뉴 올리안즈 재즈음반 제작을 이곳에서 실행하였다.(1923-1928) 시카고 재즈는 그 유래로 말미암아 뉴 올리안즈 스타일과 흡사한 점이 많으나 특징을 끄집어 내자면 다음과 같다.
(1) 합주에 대응하는 솔로의 즉흥연주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집단 즉흥연주는 쇠퇴되었다.
(2) 멜로디 악기들이 제각기 횡적으로 즉흥연주를 하기보다는 화성적으로 맞추게 되었다.
(3) 벤죠와 튜바보다 기타와 콘트라베이스를 즐겨 연주하였다.
(4) 악센트를 제2박, 제4박에 두어 스윙감을 더했다.
(뉴 올리안즈 시대의 2박자 재즈에서 4박자 재즈로 옮겨와 약동감이 더해지 는데이를 '스윙'이라고 한다.)
(4박자 재즈의 최초의 공로자는 루이 암스트롱이다)
이번 순서에서는 재즈 음악가들에 의해서 재즈가 본격적으로 출발하기 시작한 뉴 올리안즈 시대에서부터 시카고 시대까지 살펴 보았다.재즈는 시카고 시대 이후부터 전술한대로 흑,백인 재즈 음악가는 물론 백인 클래식 음악가들의 주의를 끌기 시작하여 스트라빈스키(Strawinsky), 거쉬인(Gershwin), 밀하우드(Milhaud), 크레넥(Krenek), 힌데미트(Hindemith) 등의 작품 속에서 재즈 기법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하여 재즈는 1920년대 이후부터 음반제작이 활발하여짐과 동시에 전인류의 음악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스윙 재즈 (Swing-Jazz)
1). 스윙 재즈의 발생 및 발전
스윙(Swing)이란 단어에는 "흔들리다, 흔들거리다" 라는 뜻이 있듯이, 스윙 재즈는 율동감이 강하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스윙 재즈의 음악적인 요소들은 시카고 시대부터 있었던 것들이지만, 스윙 시대에 들어와서 더욱 확대되고 발전되어 완성 되었다.
스윙감을 주는 제일 큰 원인은 박자에서 온다고 보겠는데, 2박자에서 4박자 재즈로 발전된 점이다. 4박자는 보통 때 박자를 세는 식으로 "하나, 둘, 셋, 넷"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 그리고 둘 그리고 셋 그리고 넷 그리고"하면서 "그리고(and)"에 악센트를 탄력있게 줌으로써 강한 율동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런 박자를 "Off-beat"라고 부르며, 스윙 시대에 있어서 재즈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고 한다.
스윙 재즈가 나타난 시기는 1920년대 말 경이었다. 세계 공황이 1929년에 일어났으므로, 이 당시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때 였기 때문에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해고를 당한 재즈 음악가들은 큰 밴드에(Big Band) 흡수되는 경향을 보이고, 밴드가 커짐에 따라 즉흥연주의 영역이 점점 줄어들어 즉흥연주보다는 바레이션 형태로 연주하게 되었다. 스윙 오케스트라에는 흔히 백인과 흑인이 함께 섞여서 연주하는 모습이 보였으며, 이들은 음악교육을 받은 자들로서 악보를 볼 수 있었으므로 미리 정확하게 편곡을 하여 연주하였다.
경제적인 이유 및 그 당시 유행하던 댄스음악 계통인 "스위트 뮤직(Sweet-Music)"으로 인하여 계속 빛을 못보던 스윙 재즈는, 드디어 백인 클라리넷 주자인 베니 굿맨(Benny Goodman)이 로스엔젤레스의 팔로마 볼룸에서 성공을 거둔 것을 계기로 하여 (1935) 본격적인 스윙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어서 그가 1983년 1월에는 클래식만을 공연해 오던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연주회를 열어 성공을 거둠으로써 재즈가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을 증명한다.
2). 스윙 재즈의 음악적 특징
스윙 재즈는 율동감이 대단하며 큰 밴드(Big Band) 중심으로 화려하지만, 재즈 본래의 특색이 매우 제약받은 상태의 재즈이다. 즉 밴드 인원이 많았으므로 전체가 행하는 즉흥연주는 편곡으로 대체되어 미리 연습하여, 즉흥연주는 솔로주자나 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위법적으로 멜로디를 충실하여 즉흥연주를 하던 것이 화성적으로 맞추어 진행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결론적으로 보아 스윙 재즈는 유럽적인 냄새가 짙은 재즈였다고 말할 수 있다.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베니 굿맨(Benny Goodman,클라리넷),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피아노), 카운트 베씨(Count Basie ,피아노), 엘라 핏츠제랄드(Ella Fitzgerald,가수)와 빌리 홀리데이(Billy Holyday,가수), 해리 제임스(Harry James,트럼펫)와 로이엘드리지(Roy Eldridge,트럼펫), 콜맨 호킨스(Coleman Hawkins,색소폰)와 레스터 영(Lester Young,색소폰), 글렌 밀러(Glenn Miller,트롬본), 테디 윌슨(Teddy Wilson,피아노)과 아트 타툼(Art Tatum,피아노), 진 쿠르파(Gene Krupa,드럼)등이고 시기는 대략 1930년에서 1945년 사이로 본다.
모던 재즈-1
밥 (Bop, Bebop) 시대
1). 비밥 재즈의 발생
"밥"또는 "비밥"이란 단어의 어원은 밥(Bop) 재즈를 노래 부를 때 사람들이 "비비비비 밥밥밥" 또는 "비밥 비밥"하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즉 "라라라"와 같이 뜻없이 곡조에 맞추어 부르는 음절이 었다. 비밥의 탄생은 흑인 음악가들이 스윙 재즈에서 재즈 특유의 특징이 엷어진 것에 불 만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재즈를 구축한 것으로서 종래의 그 어느 재즈보다도 아프리카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보겠다.
밥 재즈 시대를 연 음악가로는 찰리 파커(Charlie Parker,색소폰)를 대표자로 들 수 있으며, 밥 재즈는 초기부터 매우 특이하고 독창적인 성격이 강하여 대중의 호응을 받지 못하였다. 즉 음색이 대단히 강하고 자극적으며, 화음에 있어서도 감화음이라든가 7도, 9도, 11도 화음을 사용하였고, 템포는 바른편이며, 율동감이 별로 없다. 이와 같이 난해하고 충격적인 비밥 재즈는 예 술성이 강하여 예술 음악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비밥 이전의 재즈를 비밥에 대칭된다는 의미에서 전통 재즈 혹은 고전 재즈 (Traditional Jazz, Classical Jazz)라고 부른다.
비밥 재즈는 예술성은 강하지만 대중에게는 물론이고 재즈 음악가들 사이에도 외면하는 이가 많았다. 따라서 방송출연은 하기도 어려웠고, 레코드 취입은 뒤늦게 1945년에야 이루어졌다고 한다. 비밥이 이렇듯 인기가 없었으므로, 한편으로 전통 재즈인 뉴 올리안즈 재즈를 비롯하여 딕시랜드 등이 리바이벌 붐을 일으켰으며, 블루스, 스윙에서 파생된 부기우기 등이 그 당시에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BOB은 재즈에서의 그 확고 부동한 위치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 뒤 모든 재즈의 유형이 밥에서 나왔다는 건 거짓이 아니다. 현재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것들은 재즈록과 퓨전재즈 그리고 팝재즈 정도라고 해도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도 밥의 격렬함과 생동감있는 훌륭한 improvisation과 는 견줄수 없을 만큼 밥이란 쟝르는 훌륭하다. 30년대 말 쯤의 BennyGoodman 과 Glenn Miller 그리고 Tommy Dorsey을 앞세워 많은 연주자들은 특히 백인 음악인들 뜨거운 스윙의 인기를 통해 명예와 부를 가졌다. 그 후에 다른 뮤지션들이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 듣기 쉬운 음악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Lester Young , Coleman Hawkins, Roy Eldridge 등은 스윙 시대의 선구자 였고 이들로 인해 새로운 음악들이 태어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1940년경 일부 깨어 있는 젊은 뮤지션들이 그 전과
다른 음악을 하기 시작 했는데 이것이 밥이다. 세션 형태로 연주 되는 이 음악에서는 재즈의 본질인 즉흥성이 강조 되었고 리듬 파트가 보다 부각되었다. 이 전까는 단순한 타임 키퍼 역할만 했던 드럼이 멜로디 악기와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또 밥 스타일의 즉흥 연주는 속도가 빠르고 자유스러움이 풍부 했다. 멜로디 흐름도 그리 순조 롭고 감미롭지 않으며 잦은 싱코페이션을 사용했다. 밥 연주자들은 즉흥연주를 위해서 멜로디 보다는 코드 진행에 대해 더욱 신경을 썼다.
Charile parker- 앨토 섹소폰, Dizzy Gillespie- 트럼펫,Thelonious Monk-피아노, Kenny
Clark- 드럼 으로 대변 되는 밥은 마일스 데이비스의 70년 Bitch`s blew 가 발표 되기 전까지의 모든 재즈의 유형이라 볼 수있다. 그렇다고 빅 밴드의 음악이나 스윙이 모두 사라져 버린것은 절대 아니다. 빅밴드가 40년대 중반 부터는 쇠퇴의 일로를 걸은것은 사실이나 항상 대중에게 인기 있는 음악으로 별개의 존속 형태로 본다면
무난할 것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재정 상태가 곤란하게 된 빅 밴드들은 잦은 해체가 카보 형태의 재즈를 형성하게 하였고 밥이란 새로운 자조가 탄생하게 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생각도 무리는 아닐것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밥이란 음악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40년대에 비로소 모던재즈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전의 스윙은 댄스 음악으로서 대중들에게는 환영을 받았으나 음악적으로는 전체의 조화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즉흥 연주를 잘하는 실력있는 음악인들에게는 불만 스러웠다. 그런 그들의 정열을 만족시킨 것이 일을 마치고 몇몇이서 했던 잼 세션이었다. 잼 세션은 캔사스 시티의 흑인뮤지션들이 많이 했는데 그들 대부분이 뉴욕으로 진출함에 따라 더욱 성행 되었다. 이 잼 세션의 역량있는 음악인이 바로 스윙과 모던을 이어주는 레스터 영과 찰리 크리스찬이다. 그뒤 밤마다 클럽에서 연주되는 잼 세션은 비밥이란 독특한 스타일을 창조하게 되었다. 그리고 델로니우스 몽크,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등은 이 새로운 음악을 새로운 사조로 재즈의 흐름을 이끌게 되었다. 40년대 초에 비밥스타일이 출현된 후 45년에 대전이 끝난후 본격적으로 비밥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캄보형태의 악단 구성이 정착된것은 바로 이때 부터이다. 경제의 불황으로 빅 밴드가 거의 자취를 감추어 버렸으나 비밥은 빅밴드의 팬들을 흡수하지 못하였다. 사실 밥이 대중들에게 인기가 없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전의 스윙과는 달리 춤을 출수 없다는 것이 그렇고 그로 인한 보컬의 부족현상으로 빅 밴드재즈에 익숙해진 그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한 것이다. 즉흥연주의 멜로디와 원래 곡과의 비교도 리스너들에겐 어려운 문제여서 리스너들이 즐길 여유가 없었다. 밥이 아무리 수준이 높고 훌륭한 연주를 추구 해도 일반적인 리스너들에겐 그저 황당하고 어려운 음악이었다.
그래서 비밥은 퓨전이 나오기 전까지 미국음악에서 특별한 음악으로 인식되었다.
찰리 파커가 정상이 있을 무렵, 비밥을 익힌 백인 음악인들 아시에서 또다른 스타일이 생성되고 있었다. 당시 상황에서는 드물게도 찰리 파커의 영향을 받지 않은,60년대 보사 노바의 대중화에 앞장 섰지만 전에는 라 코나츠와 같은 쉽고 가벼운 톤으로 연주햇돈 스탄 게츠와 천재 맹인 피아니스트 레니 트리스타노, 그리고 그들 따랐던 리 코니츠, 빌리 바우워등이 바로 그들이다.
50년 대에는 재즈사에선 제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초반의 쿨의 탄생과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의 형성등... 재즈분야의 르네상스라고 표현해도 걸맞다.
어쨌든 비밥 재즈가 예술 재즈로 등장하게 됨으로써 1945년 경부터는 재즈의 세계도 민요 (지방 블루스<Land-Blues> , 도시 블루스<City-Blues>, 대도시의 흑인을 중심으로 하는 리듬과 블루스<Rhythm and Blues>, 뉴올리안즈 재즈), 춤과 오락음악 (딕시랜드<Dixieland>, 스윙<Swing>), 예술음악 (비밥<Bebop>)등등으로 분류되게 되었고 각각 그 특징을 살려 계속 발전하게 된다.
2). 비밥 재즈의 음악적 특징
비밥 재즈는 전술한 바와 같이 매우 혁신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우선 즉흥성이 매우 강하므로 솔로들이 몇명만 모여 만들어진 캄보 밴드(Combo Band) 형태를 취하고 있다. (색소폰, 트럼펫,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드럼). 비밥 재즈에서 특이한 점은 피아노 가 리듬악기로 등장하여 화음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드럼은 박자를 짚어주는 리듬악기로서가 아니고 독자적인 리듬형태를 보유하여 기교적인 면을 강조함으로써 멜로디 악기와 동등한 관계를 보여준다. 거칠은 음색, 현대적인 화음구성과 함께 8분음 표 또는 16분음표로 계속되는 빠른 리듬은 광포하며 전율적이다.
이번 순서에는 재즈 발전사 중에서 중기시대에 해당하는 스윙과 밥 재즈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재즈는 스윙과 밥 시대를 지나 면서 음악면에 있어서 재즈의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여 구축함으로써 클래식 음악과 어깨를 겨루는 음악의 한 장르로서 사회적 으로 인정받게 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것은 재즈 음악가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재즈로 도전함으로써 이루어진 노력의 댓가임을 느낄 수 있다.
모던재즈-2
쿨 재즈 (Cool-Jazz)
1). 쿨 재즈의 발생
"쿨(Cool)"이란 단어에는 "시원하다"라는 뜻이 있듯이, 쿨이란 전통재즈의 표징인 "핫(Hot)"에 대칭되는 개념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전쟁중에 견디기 어려울 만큼 팽배했던 긴장감이 완화되면서, 미국 사회에는 인종문제등이 아직도 해결안된 불쾌한 현실로 부상되어 사람들은 허탈감과 울적함에 젖어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전후의 혼란한 시기를 거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진정하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 모든 허탈감, 울적함,심기일전 등의 시대감정은 종래의 신경질적이고 불안하며 강렬함에서 탈출하여 시원하고 미끈하며, 고상한 휴식을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950년 이후의 유행을 살펴보면 남성과 여성의 짧은 머리, 드레시한 옷, 형광등의 출현으로 인한 파리한 색채를 대표적으로 손꼽을 수 있으므로 한마디로 말하여 이 시대의 시대감정을 표현하자면 바로 "쿨"인 것이다.
위와 같은 현상은 재즈계에도 여실히 나타난다. 전통재즈는 비브라토를 수반한 강렬한 음향과 더불어 춤과 연결되는 율동적인 리듬이 필수적이었으며, 사람들은 춤을 추면서 그리고 술을 마시면서 재즈를 즐기는 형태가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쿨 "시대에 접어들면서 재즈는 정반대되는 새로운 현상을 보여준다. 195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재즈 음악계에는 정식으로 음악수업을 받은 음악가들이 점점 많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들은 재즈에 클래식 음악기법인 화성법, 나아가서 12음 기법등을 결합시키면서 재즈와 클래식의 접합을 시도하였고, 그들은 또한 재즈를 클래 식과 동등한 위치로 끌어올려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자신들의 활동을 정식으로 인정하게 되기를 원했다. 이들은 연미복을 입고 음악회장에서 정식으로 격식을 차려 연주를 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이 추구하는 음향은 비브라토가 없이 부드러우며, 자극이 없고, 서정미가 있는 현대적인 음향이었다. 이로써 사람들은 드디어 재즈를 춤과 술과 혼합하여 생각하지 않고, 재즈를 조용히 앉아서 진지하게 감상하는 음악으로 인식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 쿨 재즈의 음악적 특징
쿨 재즈는 위에서 잠시 언급한 바있지만 클래식 음악의 형식에서 화성법, 대위법, 목조성(Polytonal), 무조성주의 등을 차용하여 음악적 으로 수준이 한결 높아짐과 동시에 음악회용 음악 즉 감상음악으로 대두되게 되었다. 쿨 재즈의 음향적 특색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비브라토와 다이너믹이 절제되었으며 부드러운 음색이다.
(2) 멜로디의 움직임이 이완되어있어 매끄럽고 스마트한 느낌을 준다.
(3) 서정성과 함께 멜랑콜리한 표현이 많다. 그러나 리듬은 핫-재즈나 마찬가지로 강렬하다.
(4) 엄격한 음악형식 때문에 (클래식에서 받아온) 즉흥적인 면이 감소됨을 보여준다.
(5) 캄보밴드 스타일이 지배적이다 (트럼펫, 색소폰, 피아노, 기타,콘트라베이스, 드럼).
이와 같은 특징을 지닌 쿨재즈의 전성시기는 1950년 경부터 1960 년 사이로 보여지며,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마일스 데이비스(Mi les Davis,트럼펫)를 기수로하여 리 코니츠(Lee Konitz,앨토-색소폰), 레니트리스타노 (Lennie Tristano,피아노), 데이브 브루백 (Dave Brubeck,피아노) 그리고 모던 재즈 4중주단 (Modern Jazz Quartet)등을 들 수 있다.
쿨한 감각이라든가 음악형식면에서 클래식을 접합시키는 방법은같으나 음악적 표현이 종래의 비밥(Bebop)을 이어받아 좀 거치른 재즈의 형태로 하드밥(Hard-Bop)이 있다. 하드 밥은 1950년 이후에 출연하여 순수 쿨 재즈와 공존하였는데, 50년대 말경에는 하드밥과 쿨의 경계선을 알아보기 힘들 게 되었고 60년대를 넘어 가면서는 음악 형식에있어서 클래식 형식뿐 아니라 스페인과 남아메리카의 리듬, 아랍이나 인도의 음계와 리듬 등을 받아와 재즈는 음악적으로 더욱 다양하고 표현영역이 넓혀지는 현상을 보여준다.
하드밥은 백인에 의해서 미국 서부 해안에서 시작된 웨스트코스트 재즈(West-Coast-Jazz)와 뉴욕의 젊은 흑인들에 의해서 시작 된 이스트코스트 재즈(East-Coast-Jazz)를 합쳐서 일컫는 말이다. 하드 밥은 비밥처럼 재즈에 있어서 흑인적인 요소를 더욱 강조함으로써 음향이 거칠고 폭발적이며, 타악기를 강조하고, 표현력이 강하며 단순하다. 따라서 활력이 넘치며 블루스와 흑인영가를 떠오르게 하는데, 여기에서는블루스가 체념하는 형태가 아니라 폭발하는 형태이다. 이런 연주형태를 특히 "펑크(Funk)"라고 부르기도 한다.
혹자는 흑백문제가 계속 투쟁을 거듭하면서 흑인들은 끊임없이 도시에서 평등권을 얻기를 원했는데, 이에 대한 신경질적인 기대감이 비밥으로 표현된 것이라면 하드 밥은 반항하고 데모를 일으키는 상태가 표현된 것이라고도 한다. 하드 밥의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아트 블레키(Art Blakey, 드럼)와 그 일행, 캐논볼아델리(Cannonball Adderley, 색소폰), 소니 롤린스(Sonny Rolins, 색소폰), 맥스 로흐(Max Roach, 드럼),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 피아노)등이 있다.
-COOL JAZZ
쿨 재즈가 연주 되었던 시기는 원래 46년 부터 레니 트리스타노와 함께 했던 연주자들이 었다. 50년 마일즈에 의해 녹음된
쿨의 탄생(BIRTH OF COOL)에도 참여했던 리 코나츠는 트리스타노를 따르는 열렬한 추종자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쿨을 마일즈의 산유물로 생각하고 았지만 마일즈가 트리스타노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는 추측은 그리 어려운 생각이 아니다. 쿨 사운드는 가볍고 드라이한 비브라토가 들어있는 톤이 기초가 된다. 50년에 녹음한 마일즈 9중주단의 쿨의 탄생은 밥의 연주 형식에 그리 강조되지 않았던 편곡이 곳곳에 섞여있는 독특한 음악이었다. 40년대 후반에서 50년대 초에 걸쳐 쿨은 전성기를 누렸다.
1.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의 형성
콜 재즈는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한국전쟁으로 침채된 동부와 대조적으로 활기있던 서부 헐리우드의 스튜디오 뮤지션들에 의해 형성된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은 부드럽고 건조한 캄촉의 경쾌하고 가벼운 음색이 주류를 이루었다. 초기 밥보다 더욱 매끄럽고 릴랙스한 사운드를 연주했던 음악인들은 제리 멀리건, 쳇 베이커, 데이브 부루백, 폴 데스 몬드를 중심으로 한 백인 플에이어들이 많았다. 치코 해밀튼, 쇼티 로저스, 침 홀, 밥 브룩 마이어, 멜 루이스, 아크 페퍼 모두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을 했던 이들이다.
2. 하드 밥의 출현
50년대엔 웨스트 코스트와 하드 밥의 두 개의 재즈 스타일이 압도적이었다. 하드 밥은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 보다는 약간 늦게 발생하여서 오래 존속 되었다. 웨스트 코스트와 하드 밥의 차이점을 알아내기는 쉬운 일이다. 쿨에 영향을 받은 웨스트 코스트는 가볍고 맑은 연주에 단순한 임프로바이제이션을 사용했었지만 초기 밥에 직접 발전한 하드 밥은 어둡고 무거운 음색과 어려운 주법에 격결하고 힘든 임프로바이제이션을 사용했다. 흑인이 주류를 이룬 하드 밥은 흑인 가스펠의 요소를 찾추고 있었고 디트로이트나 뉴욕에서 인기를 끌었다. 하드 밥 플레이어로서는 피아노의 호레이스 실버, 토미 프래나간, 윈턴 캘리, 조 자비눌 등이고 색스폰의 캐논볼 에덜리, 웨인 쇼티, 소니 롤린즈, 존 콜트레인. 클리포드 조단이 호라약 햇으며 트럼헷에서는 케니 도햄, 클리포드 브라운, 아트 파머가 명성이 높았다. 하드 밥의 견인차 역할을 한 아트 블레키느 약박이 강박보다 선행되는 싱커페이션을 원시적인 아프리카 리듬에서 분석하여 밥에 적용시켰다. 재즈사의 핵이라 볼 수있는 50년대의 음악은 재즈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 뚜렷이 나타났다.
60년이 되기전 , 웨스트 코스트와 하드 밥이 장악하고 있던 50년대말엔 새로운 움직이 일어나고 있었다. 모든 재즈인들이 도달하고 싶어했던 클래식의 접근이 바로 그것이었다.
크래식 연주인들이 도달해야 할 평생의 과제인 클라니넷의 황제 배니 굿맨은 우리나에서도 그의 재즈음반모다는 클래식 음반이 더 눈이 많이 뛴다. 비제의 칼멘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요절한 버드는 그의 임프로바이제이션에 상당부분 클래식석인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하드 밥의 기수의 하나였던 모던 재즈 퀘텟도 50년대 후반에는 크래식의 접근에 시도하여 'TOCCATA FOR TRUMPET AND ORCHESTRA '같은 수준 높은 곡들을 남겼다. 뒤에도 많은 크래식컬한 작품을 남긴 모던 재즈 퀘텟과 써드 스트림과 아방가르드를 연결시켜주는 찰스 밍거스는 일반 캄보 형태에 첼로등을 넣어 보다 클래식컬하고 약간은 난해한 아방가르드 재즈의 선두 주자로 60년대 프리재즈가 발생하게 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60년대 초까지의 모든 재즈인의 무대였었던 뉴포트 재즈 페스티발에 반발하는 일련의 음악인들은 좀 더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연주 형태를 우너하고 있었다. 오넷 콜맨과 에릭 돌피로 대변되는 프리 재즈는 코드 진행에 중점을 두는 이전의 주법에 상응되는 무조에 의한 연주형태를 취했다. 하지만, 프리는 말 그대로 음조의 완전한 자유와 템포와 강약의 완전한 자유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 연주에 대등하는 즉흥적인 자신의 임프로비제이션을 함으로써 집단 즉흥연주를 하는 음악의 형태인 것이다. 그래서 상당한 실력이 아니면 프리를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오넷 콜맨과 돈 체리는 프리재즈의 환상의 파트너로 항상 흠 잡을데 없는 앙상블을 만들어 냈다.
60년대의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 존 콜트레인은 마일즈 5중주단에서 나와 자신의 퀘텟을 결성한 뒤, 60년이 되기전까지는 레드 갈란드와 윈턴 켈리와 연주하면서 자신의 낭만주의를 펼쳤다. 그러나 피아노의 멕코이 타이너가 들어온 뒤부터 콜트레인은 아프리카 음악과 접속시키는 실험적인 연주들을 했고, 결코 음조에 연연하지 않는 강하고 정열적인 연주로 그가67년에 죽을때 까지 많은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다.
한편, 호기기적인 모드 주법의 KIND OF BLUE 를 발표한 이후 마일즈는 길 에반스의 빅 밴드에서 편곡일을 했고 빅 밴드를 나와 68년에 자신의 새로운 그룹을 만들었다. 마일즈의 새로운 동료로 건반에 허비 행콕, 조 자비눌, 칙 코리아, 키스 자렛이, 베이스로 론 카터, 데이브 홀랜드, 마이클 핸더슨이 그리고 드럼과 퍼커션에는 잭 디조넷, 빌리 코햄, 토니 윌리암스, 에이토 모레이라가 새로 들어와 마일즈와 걸맞는 막강한 리듬 섹견의 철옹성을 갖추게 되었다. 새로운 동료들과 함께 일렉사운드의 접근을 시도하면서 드디어 70년에 그 유명한 BITHCHES BLEW 가 나오고 나중에 그의 사이드맨들은 퓨전의 기수로써 확약하게 된다.
상업적인 실패에서 벗어나지 못한 밥이란 음악은 댄스 뮤직이었던 스윙이 예술로서 감상의 대상으로 올라서게 하는 그 의미를 둘 수 있겠다. 즉흥연주라는 것은 엄청난 실력을 필요로 한다. 재즈를 해서 유명해지고 돈을 버는 이들은 전체 재즈인들의 극히 일부분이다. 사실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이들도 다들 훌룡한 실력자들인 것이다. 지적이고 세련된 곡을 만드는데 클래식 작곡가들은 1년이 걸리지만 재즈 음악가는 3분이면 족하다고 밥 재임스는 주저 없이 말한다. 퓨전이 득세하는 요즘 한곡의 밥 스탠다는 듣는이의 가슴을 싰어 줄것이다.
프리 재즈 (Free-Jazz)
1). 프리 재즈의 발생
프리 재즈의 본격적인 출발은 1950년대의 말 경에 젊은 흑인 재즈음악가들인 오넷 콜맨 (Ornette Coleman)과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에 의해서라고 보지만, 이런 움직임은 이미 10년 전인 1949년에 쿨 피아니스트인 레니 트리스타노(Lennie Tristano)와 그의 6중주일행에서 나타나므로 프리 재즈의 출현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트리 재즈의 출현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트리 스타노와 그의 일행은 여러 개의 독립된 멜로디선이 빚는 불협화음으로 복조성적인 음악을 캐피틀(Capitol)레코드사에서 레코딩 함으로써 처음으로 조성의 기틀을 벗어난 혁신적인 음악을 발표하였던 것이다.
60년대에 들어서면서도 계속 악화되고 있는 흑백문제는 젊은 흑인들을 더욱 자극시키고 있었는데, 이런 불만이 젊은 흑인 음악가들에 의해서 격하고 공격적인 음악으로 표현되었다. 즉 매우 높은 음역이나 매우 낮은 음역으로 악기소리를 냄으로써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음향을 내기도 하고, 음악에서 사용하는 음 뿐만 아니라 소음까지를 포용하며, 서양 세계 밖에서 온 이 국적인 악기를 사용하고, 즉흥적이며 도취적인 야성미를 지닌 아프리카 음악의 요소를 받아들인 여지껏 들어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연구기법과 음향이 나타난 것이다.
2). 프리 재즈의 음악적 특징
프리재즈는 한 마디로 말하여 모든 전통적인 규칙과 원칙이 파괴된, 단어 그대로 매우 자유롭고 우연적인 음악이라고 하겠다. 연주가들은 개별적인 표현욕구를 구속없이 주관적으로 즉흥연주를 함으로써 이루어지므로 조성도, 박자도, 형식도 없다. 여기서 무조성이란 뜻은 서양의 음열을 기초로 하는 12음 기법이라든가 하는 무조성을 뜻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아무런 내부적인 규칙이 없는 것을 뜻하는데 흑인노예의 노동요와 같은 아프리카적인 무조성에 접근한다. 프리 재즈는 연주 중에 연주자 각자가 차례로 듣고 연주하고 하는 새로운 연주방법을 도입하였는데, 이 잇달아 나오는 내부적인 반응도를 보는 것이 프리 재즈의 묘미이다.
프리재즈의 전성기는 1960년대 이후라고 보며,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레니 트리스타노(Lennie Tristano, 피아노), 오넷 콜맨(Ornette Coleman, 색소폰),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색소폰), 에릭 돌피(Eric Dolphy, 플룻, 바리톤색소폰), 돈 케리(Don Cherry, 트럼펫) 챨리 밍구스(Charlie Mingus, 베이스), 아키 세프(Archic Shepp, 색소폰) 등이 있다. 프리 재즈는 유럽에서도 유행하였는데, 이들은 미국 재즈보다 유럽 예술음악의 갈래인 전위음악과 가깝다.
-THE NEW GROVE DICTIONARY OF JAZZ
프리재즈란 용어는 1960년대 아방가르드 재즈들 특히 오넷 콜맨, 세실 테일러, 앨버트 아일러, 후기 존 콜트레인 같은 이들의 작품들에 처음으로 붙혀졌다. 이 이름은 콜맨의 음반'프리재즈'(1960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음반에는 자유형식의 즉흥연주가 확장되어 나타나는데, 다시말해 피아노가 없는 두 개의 4중주단이 함께 연주하였다. (자유형식*free-form*은 전통에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형식의 연주를 말해요, 이전엔 4중주라면 으레히 화음을 넣는 피아노가 들어가기 마련인데 콜맨은 이 형식을 깨어 버린것이겠져) 이 연주는 이후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곳에서 재즈 선구자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한편 이들 음악을 아방가르드(전위) 혹은 새로운 것 (the new thing) 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런 말들은 이 음악이 메인 스트림 재즈흐름과 거리를 두고 있음을 강조해 주고 있다. 또 다른 이름으로 "행동재즈(ACTION JAZZ)가 있는데, 이것은 재즈 비평가 돈 핵크만이 제시한 것이다. 핵크만은 새로운 음악의 본 바탕이 되는 특성을 이 음악이 지닌 에너지로 여겼던 것이다. 한편 유럽(특히 영국)에서 프리재즈가 그저 즉흥연주된 음악을 뜻했다.
프리재즈는 아주 넓은 영역에 걸쳐있는 여러가지 형식의 음악들을 각각 가리키고 이들을 아우르는 일종의 집합용어라고 할수 있다. 이 음악을 가장 잘 규정하려면 여러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여기는 특징들을 잘 살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물론 이들 특성으로만 연주를 파악하려고 해서는 안되지만 말이다. 그 특징이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조성(tonality)이 없다.
미리 결정한 코드진행이 없다.
재즈만의 화음구조를 버렸다.
미리 규정한 신호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느슨한 구상속에서 집단연주를 펼친다.
이른바 쿨(cool) 한 음빛깔을 지닌 악기를 피하고, 사람목소리 같은 소리를 더 좋아 한다.
표준으로 여겨온 박자밫추기(time-keping)의 유형들을 그만 두고 자유롭게 루바토를 따랐다.(루바토란 연주하는 사람 내키는대로 음길이나 빠르기를 바꾸어 버리는 것을 얘기하져)
이 음악에서 새로운 빛깔들은 대개 다음 두가지 방식으로 얻으려 하였다.
첫째, 전통재즈악기의 소리를 뒤틀어 내었다. 이 방법은 존 길모어와 파라오 샌더스가 즐겨 섰는데, 이들은 색소폰으로 날카로운 비명소리(shrieking)를 내는 연주양식을 끌여들였다.
둘째, 낯설거나 새로 고안한 악기들을 끌어 들이는 것이다. 이런 일은 아트 앙상블 오브 시카고의 구성원들이 많이 했다. 그러나 이 때 일렉계열의 악기를 쓰는것 소리를 일렉장치로 조작하는것과 같은 일은 대개 피하였다.(역시 언플러그드가 최고져?후후)
프리재즈 드럼연주자들은 이른바 다방향(multidrectional)리듬이라는 것을 탐구해 갔는데, 이는 동시에 여러가지 박자를 진행해 나가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일정한 박동만을 매기는 일에서 벗어나, 타악기 소리에 색깔과 질감을 더함으로써 다른 연주자와 서로 활발히 주고 받는 연주를 해나갔다. 연주의형식은 종종 연주자가 지닌 힘이 얼마나 버티어 내는지에 따라 결정되었는데, 즉 그들의 에너지가 사그라들 떄가 되어서야 연주곡이 끝을 맺게 되었던 것이다. 또 선율(멜로디)은 훨씬 더 많이 변형 되었고, 파편처럼 흩어 졌다. 지속음을 연주할 때는 탬버린을 흔드는 것처럼 또는 돌풍이 빠르게 변화하는 것처럼 소리를 움직여 내었다. 많은 연주자들은 선율보다는 곡 전체의 질감을 만들어 내는 데에 집중했다. 한편 어떤 이들은 연주하면서 속마음 사이의 대화를 창조해 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음역속에서 한 사람이 부르면 다은 이는 여기에 반응하는 식의 연주를 하기도 하였다. 또한 연주자들은 어떤 순간에서도 독주를 할수있어야 했지만 강조점은 무억보다도 집단 즉흥연주에 두었다. 어떤 그룹들은 연주에 연극의 요소를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선 라 아케스트라가 보여준 천진난만한 이국적 분위기나, 아트 앙상블 오브 시카고나 칼라 블레이가 재치있게 본뜬 짤막한 풍자극을 연주에 끼어넣은 것은 그 좋은 보기이다.
엘시드 재즈에 대하여 알아 보겠읍니다. 이 글은 JAZZ JAM 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뉴욕의 birdland는 찰리파커가 전세계 재즈의 길코퉁이라고 부른 이후 수많은 재즈뮤지션들이
거쳐갔다. 버드랜드에서는 그동안 유명한 뮤지션들에서 부터 신에 뮤지션들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장르의 연주자들이 연주를 해왔고 올해 추웠던 어느 겨울 월요일밤도 예외는 아니어서 윈튼
마샬리스나 올리브레이크등과 함께 연주한 경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트럼펫 Russel Gunn 이 그의 힙합재즈
6중주단을 이끌고 연주를 했다. 그의 밴드는 세대의 혼악기와 피아노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되었다. 그들의
앨범은 힛트를 쳤지만 실린곡들은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Lee Morgan의 Live at the Lighthouse와
KRS-ONE 의 BY any Means nessary를 뒤섞은 것이었다. 강한 백비트 속에 혼은 작열하는 솔로를 연주한다.
"힙한은 제개는 첫음악이었습니다. 트럼펫트가 되기전에는 래퍼 였습니다". Gunn 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또한 클리포트 브라운, 마일스 데이비스, 부크리틀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재즈와 힙합을 그의 음악에
혼합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다.
"우리들은 양음악의 진수들을 얻을려고 노력합니다.여러분들의 감정은 우리가 한쪽(재즈)에서 나머지 한쪽(힙합)
으로 옮겨 다니듯이 움직이지는 못할겁니다" 삼년전 힙합과 재즈간의 융화는 매스메디아에서는 온라인 서비스, 슈퍼모델등
과 함께 가장 산뜻한 화제 거리였으며 궁극적으로는 90년대 초 중반을 특징지을 수있는 사건이였다. 엘시드 재즈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는 젊고 다양한 지지자들을 확보하였으며 재즈장르중에서도 가장빨리 성장한 분야가 되었다.
Buckshot LeFonque, US 3, Jamiroquai, Incognito 등은 이제는 대중성을 확보하여 대규모 레코드 레이블뿐 아니라 소규모의 독립적
인 레이블에서도 새로운 팬들을 위해서 그들의 앨범을 재발매 하게 되었다.
애시드 재즈
에시드 재즈란 단어는 80년대 후반 영국의 DJ 였던 Giles Peterson(현재는 레코드 재작자)이 장난삼아 한말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그는 에시드란 용어를 그의 프로그램에서 소울-재즈, 재지한 힙합, 70년대 소울 클래식, 재즈-펑키와 그러한 음악들에
서 영향을 받은 새로운 음악들을 설명하면서 사용했다. 그런 일련의 일들은 현재에도 음악들을 정의하는데 유용하다. 사람들
이 재즈라고 부르는 음악들 고전적인 의미로 지미스미스, 리모건, 웨스몽고메리등의 앨범들같은 음악과 아직 광범위하게 재
즈라고 정의받지 못하는 영구 출신의 street-소울의 Brand new Heavies나 Raw Stylus, Young Disciples 같은 펑키밴드 음악들,
물론 그런것들도 기억해야할만한 가치가 있으며 우리들은 모든 장르의 음악들을 들려주며 샤데이나 바네사 윌리암 혹은
캐니지등도 재즈라고 말하는 라디오 방송국 시대에 살고있다. 편협한 태도는 좋지않은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엘시드재즈
가 엘링톤과는 거리감이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스무스 재즈보다는 명백하게 휠신더 스윙감이 있다.
엘시드재즈에서 가장 고무 적인 일이란 아마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재즈음악을 전파한 일이다. 이 엘시드 주자들은 찰리 헌
터, Medeski Martin& Wood, Cassandra Wilson 등이 재즈 아티스트로서 기록한 믿기지 않은 놀라운 앨범 판매량에 결과적으로
많은 후원을 한 셈이엇다. 메인스트림의 팬들 보다는 젊고 단정치 못한 복장을 한 이 새로운 팬들은 새로운곳.... 클럽에서
음악을 듣는다. 90년대의 클럽이란 더이상 뉴욕의 블루노트나 시카고의 재즈 쇼케이스 같은 규모가 있는 나이트 클럽을
말하지 않는다. 재능있는 DJ가 있는 캐주얼한 그들만의 소굴을 말한다. 이쯤에서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를 상상한다면
당신은 음악적 스타일면에서는 낙제점이다. 하지만 동기부여적인 측면에서는 옳다.
오늘날 25년을 맞이한 미국의 후기자본주의는 가능성을 축소시키는 시대인것 같다. 경제적인 불확실성은 음악을 신경안정
제로 단순하게 생각하는 수무스재즈 팬들 보다는 훨씬더 많은 시간을 링컨센터 (뉴욕의 공연장)의 영향과 앨범 Bitches Brew
의 충격에 대해서 정기적인 논쟁을 할 정통 재즈의 팬들에게 음악적 충성심을 양보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재즈의 후우너자들은 그들이 팝음악을 통해서 얻어진 일정에 따라서 여기 파티장에 와있는 것이며 그들의 취향을
버릴 어떤 다른 의도도 없어 보인다. 그들에세 클럽은 현실의 차가운 경제 상황을 벗어 날수있는 피난처이다.
또한 클럽은 Jennifer Aniston (미국의 탈렌트)과 그녀의 꼭보아야만 하는 TV 를 보기 싫어하는 사람들끼리 어울릴수 있는 결
정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모든 인텔리적인 행동양식은 서로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재즈후원자들과 고전적인
재즈팬들의 차이는 고전적인 재즈팬들은 현재유행하는 모든 팝적인 흐름들을 경멸한다는 점에서 서로 확연히 다르게
구분이 된다. 이러한 작고 친말한 클럽들은 카페나 에스프레소 바등등의 이름을 달고 급성장하고 있다. 들려주는 음악들은
Cannonball Adderley 부터 Reuben Wilson 까지 엘시드 재즈에서 월드 뮤직까지 무척이나 다양하다 물론 춤추기 좋은 비트가
있는 댄스 음악 스타일도 섞어서..
ACID JAZZ PART-II
Maurice Bernstein 과 Jonathan Rudnick은 1990년도에 미국 뉴욕에서 Giant Step이라는 클럽을 운영하면서 엘시드 재즈나 클럽 재즈의 발판을 처음으로 마련했다. "저희들은 새로운 세대들이 그들 선배들에 의해서 규정되어지는 음악이 아닌 그들만의 재즈를 창조하기 바랬습니다" Berstein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힙합뮤직과 DJ, 때로 라이브 음악이 있는 이동하는 파티장인것이다. 그곳에서 뮤지션들은 그들 동년배 팬들 앞에서 연주를 한다. 그러한 파티들은 빠른 속도로 주요한 비지니스로 성장했고 두사람은 자신들 소유의 매니지먼트사와 에이전시로 많은 밴드들(밴드중 일부는 그들 클럽에서 성장했다)과 GRP산하의 'GIANT STEP'이라는 마이너 레코드 레이블도 있었다. 그들의 기반은
GROOVE COLLECTIVE 라는 밴드인데 이미 두장의 멋진 레코드를 발매한적이 있고 뉴욕의 뮤직신에서는 인정을 받고 있는 그룹이다. 이 두사람의 선구자적인 노력은 십여년전부터 재즈음악과 다른음악들을 융화시키는테 많은 노력을 해온 재즈신의 우상파괴주의자 스티브 콜맨과 재즈와 힙합연주를 두장의 CD에 함께 발매해온 EMI 레코드사의 GURU의 재즈마스타 프로젝트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블루노트사의 재발매 담당 프로듀서인 MICHEL -CUSCUNA 와 버브사의 재발매 담당 프로듀서인 ARICH MORRISON은 이러한 클럽 감각을 이미 인식하고 그들 레이블에서 각각 발매해온 RARE GROOVE 시리즈와 TALKIN` VERVE시리즈 발매에 많은 참고를 했다.
"인기 클럽 DJ들에 의해서 비로서 인기가 있어지기 전까지는 재발매를 생각하지도 못한 멋진곡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CUSCUNA는 이렇게 말한다.
"JOHN PATTON과 REUBAEN WILSON이 아직도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멋집니다"
CUSCUNA는 이시대가 요구하는 스타일의 다양함에서 특별히 찬사를 받았다.
"약간의 하드밥도 있고 소울재즈도 있고 간혹재즈펑키도 있습니다"
클럽의 영향은 재즈에다 90년대 필수품인 팝문화를 장식한 것이다. 셀린느 디온,U2, 머라이커 캐리, 보이즈 투맨 같은 대스타들이 시간마다 엄청난 앨범을 팔아치우며 고수익을 올리는 동안에도 지난 6~7년 사이(빌보드 챠트에 SOUND SCAN개념이 도입되어 보다 정확하게 판매에 관한 정보를 알수있게 되었다) 팝챠트의 윗쪽의 배치도는 항상 재즈메인스트림 주변의 추종자인 크로스오버적인 레코드를 만든 그룹에 의해서 지배당해 왔다. 작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지적인 전자음악의 락커인 BECK와 산뜻하고 특이한 레퍼들인 FUGEES 가 바로 그들이다. 94년도에 US3의
'Cantaloup Island'등도 톰20안에 들어간것도 같은 맥락이다. 엘시드 재즈의 유행은 재즈가 댄스 뮤직에서도 중요한 특성을 배우기도 했다. 댄스음악은 더이상 디스코 시대의 Boom-Boom-Boom이 아닌 것이다. 댄스음악도 매우 다양화 되었다. 음조는 낮아지면서 뉘앙스는 많아졌다. 댄스음악에도 많은 종류의 하위 장르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Ambient groove, Drum`n`bass, Trip-hop ...
이모든 것들이 쉽게 재즈로 흘러들었다. 현재 상태로는 댄스음악이 재즈로 향하기는 매우 쉬운일이다. 젊은 새로운 재즈 후원자들이 클럽에서 듣는 그런 곡들을 편집해서 만들어 내는일은 레코드가게의 재즈코너를 해매고 다니면서 마일스데이비스의 좋은 레코드를 고르는 일보다 후러신더 유혹적이다. 하지만 97년도의 엘시드 재즈의 상황은 어떠할까? 인코그니토, 자미로콰이, Us3 이들은 올해 더더욱 크로스 오버 적인것이 었다. 각각은 이미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들이 클럽 재즈에 접근하는 방법은 서로 다르다. 인코그니토는 펑키재즈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Bluey
Maunick는 소울과 R&B로 그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US3는 블루노트사의 창고에서 구한 , 아트블래키, 호레이스 실버, 허비행콕, 루 도날드슨과 그랜트그린의 곡같은 클래식한 샘플들을 그들의 방식대로 편집하는 영리함을 보였다. 그들은 이러한 클래식 재즈에 뿌리를 둔 밴드로 바전한것이다. 자미로 콰이는 고전적인 소울명곡과 70년대초 사랑받던 재즈곡들을 혼합하여 재즈풍의 빠른 펑키를 선보였다. 그리고 Buckshot LeFonque는 브랜포드 마샬리스와 그룹 Gangstarr의 DJ. Premier와 함께 스튜디오에서 곡을 만들었지만 실제 공연에서는 재즈의 잡종같은 캐주얼한 힙합 그 이상을 연주했다.
Bluey Maunick 은 런던에서 16년전에 Incognito 를 경성했다. 그는 그룹의 이름 Incognito(익명의 알려지지 않은)가 쉽게 분류가 되지 않았음에 힌트를 얻어서 아주 신중하게 선택을 했었다. 하지만 몇년이 지난후, 특히 최근에 그의 밴드는 10명의 맴버와 3명, 어떤때는 4명의 보컬리스트가 있는 에너지감 넘치는 라이브 공연으로 오히려 더 유명해 졌다. Incognito의 지난 두 앨범들, Beneath the surfface와 Remix는 그들의 스타일과 관심사가 무한정임을 보여주는 앨범들이다.
새로 발견한 사람에 관한 쉽고 부드러운 노래의 모음곡인 Beneath the surfface 는 최근의 R&B의 유행인
어두운 사운드와 함께 하이라이트격인 여성보컬리스트 Maysa Leek (개인 레코드를 만든다고 팀을 이탈한뒤
최근에 다시 합류함)의 크림같은 보컬로 윤이난다. Remixed앨범은 클럽의 죽돌이들을 자리에서 벌떡일어서게 만들만한 여러가지 댄스음악스타일을 섞은 70분짜리 뛰어 놀수 있는 음악이다. Maunick은 그들 밴드가 세계공연을
할때 많은 DJ들이 끊임없이 그들의 곡을 새롭게 해석하는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저희들은 그런것들이 우리음악에다 새로운 면을 보태었다고 생각합니다"
"클럽같은 분위기에서는 우리들의 음악이 어떻게 들리는지를 알려주는 것이죠"
이런 마음으로 Maunick은 그가 좋아하는것들을 모아서 앨범을 발매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앨범 Remixed는 Drum`n`bass이며 하우스뮤직이고 힙합이다.
많은 영국의 Retro-funkster (*다시 예전의 펑키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음악인들)들의 사운드는 그들의 목소리를
Philly International이나 Stax혹은 지난시절의 Motown류의 곡에서 찾지않고 마치 소울의 신-고전주의자들이 실패한
듯한 소리를 낸다.
자미로콰이 (Jamiroquai)는 그들의 세번째 앨범 'Travelling without moving'에 이르기까지 그들만의 특유한 개성을
고집해 왔다. 그 밴드는 완년의 재즈싱어이자 댄스였던 Karen Kay가 리드하고 있는 그룹이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스티비 원더를 생각나게 하지만 그들의 첫 두장의 앨범 'Emergency on planet earth' 와 'Return of the space cowboy'는
그들 밴드들만이 유일하게 70년대 초반의 소울을 그럴듯하게 복사해낼 수있음을 증명했다.
"저희들은 더 강한 곡들을 원합니다" Kay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우리들의 앨범들이 여러분의 기억에 남는 코러스가 되며 깊은 인상을 가슴에 남기는 곡이 되길 원합니다"
그 밴드는 빠른 사운드를 또렷하게 표현함으로써 그들 음악들의 유동성을 잡아 버린다. 하지만 음악에는 강한
긴장감이 넘친다.
미국의 두 4중주단이 훨씬더 힙합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은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Buckshot Lefonque 와 Us3는 둘다 스튜디오에서 프로젝트 그룹으로 시작하여 나중에 밴드로 발전한 경우이다.
두 그룹은 첫번째 앨범을 만들어 내고 밴드로 성공하기 까지 많은 시간을 거리에서 보냈다. 이런 사실은 각각의
앨범, 'Broadway & 52nd' (Us3), 'Music Evolution(Buckshot Lefonque)에서 잘나타나고 있다. 브랜포드 마샬리스는 다양한 종류의 음악들을 한곳으로 집중시키는 Buckshot Lefonque밴드의 능력에 많은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마지막 입니다.
"친숙하지 못한 음악이라도 자신을 적응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먀샬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마샬리스는
BUCKSHOT LEFONQUE밴드 최초의 'pop'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요청을 받았다. 하지막 이번에는 레벨을 같이
하는 것을 피했다. "그런 게임에서는 연주하고 싶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Soundgarden이나 pear I Jam ,Bu
sta Rhymes같은 그룹의 음악을 들어보고나니 제귀를 바꿀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았
다는 뜻인거 같음)" 마샬리스는 그의 밴드의 전자음악적인 접근법은 항상 사람들이 낯선 음악에 대한 두려움을 없
애주는데 도움을 주는 방향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우리들은 계급,인종,종교, 그리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모든
환경에 의해서 나누어져있습니다" 그룹의 창설 멤버인 Geoff Wilkinson은 애초에 Us3를 그룹으로 발전시킬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단순이 그의 옛날 파트너였던 Mel Simpson과 함께 여러레퍼들과 연주자들이 함께한 한
시적인 스튜디오용 프로젝트그룹이 었다. Winkinson은 이런 프로젝트를 영국이 클럽신에서 Jazz DJ로 일할때 부터
마음 먹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당신 Lee Morgan이나 Art Blakey의 곡들을 자주들었다고 했다.
"그들의 음악은 매우 소울적입니다, 레코드의 틀이나 정열, 감정적인 강렬함은 다른 어떤 앨범들도 따라오지 못할겁
니다. 제가 처음으로 구입한 불루노트사의 앨범은 바로 Art Blakey의 'Mosaic'이였습니다. 앨범타이틀곡은 일단 여
러분들에게 충격을 주고 그리고 얼굴을 강타하게 도리겁니다. 그런 종류의 음악에 정말 감동을 받습니다"
Wilkinson은 새앨범 'Broadway & 52nd'가 블루노트사의 Blue Note`s Greatest Hit Volome2가 되지 않을려고 의도적
인 시도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이 팔리는 샘플링에도 의존하지 않고 혼솔로를 더 많이 집어 넣었다. 그런것들은
그들의 대규모 공연을 통해서 더욱더 완성될것 같다. 새로운 앨범에는 새로운 두사람의 레퍼들을 채용했는데 KCB와
Shadeeq가 그들인데 Wilkinson의 말에 의하자면 이전의 레퍼들보다ㅣ 훨씬더 리드미컬한 정밀성과 뛰어난 작가들
이라고 한다.
비록 이러한 음반들이 새로운 재즈세계의 날개를 다는일이지만 편집을 하는것도 이런 음반들의 가장 좋은 출발점이
될수도 있을것이다. This is Acid Jazz 씨리즈나 Best of Acid Jazz 시리즈들은 이러한 좋은 본보기이며 영국의
Island레코드사의 4th & B`way 레이블에서 발매한 Rebirth of cool 시리즈는 재즈와 Trip-hop, Drum`n`bass와 다른
유사한 사운드를 재즈와 함께 담아내고 있다. 역으로 New Breed레이블의 Fat Jazzy Grooves시리즈는 느긋하고
낮은 음으로 이루어진 엘시드재즈를 선보이고 있다. 불루노트사의 The New Groove시리즈는 힙합과 클래식재즈의
력신적인 콜렉션들이다. 이 시리즈들은 Us3의 첫번재 앨범의 성곡의 힘입어 발매가 되기 시작 했다. 또한 블루노트사
의 Rare Groove 시리즈는 reube wilson, John Patton, Donald Byrd등등과 기타 다른 여러 아티스트들의 앨범들을
재발매에 중점을 두고 있다. 버브사의 시리즈들은Cal Tjader ,Jimmy Smith등등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다양한 아티스
트들의 콜렉션앨범들의 편집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Fatasy레코드 사는 지난 수년동안 Luv N Haight같은 Bay Area의
독립적인 프로덕션에 자신들의 카달로그를 라이센스를 주어 왔는데 최근에 Gene Ammons, Sonny Sitt, Bernard Purdie, Idris Muhammad같은 아티스트들의 앨범들을 편집하여 Legend og Acid Jazz라는 시리즈를 만들기 시작 했다.
우리들은 재즈의 메인스트림이 독점적이었고 또 음악사에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지난 80년대 후반 이후부터 먼길을
걸어왓다. 여기에 언급한 밴드들은 모두 성공을 하였고 이러한 밴드들은 계속만들어질것이다.시카고의 밴드 Liquid Soul
은 지금 한창 불이 붙어있다. 토론토의 밴드인 Jacksoul은 북쪽지방 ,많은 엘시드 재즈팬들이 계속해서 생기고 있는 밴쿠버
에서 특히 인기가 많다. 센프란시스코는 Ubiquity 레이블과 UP & DOWN 이라는 클럽으로 엘시드 재즈가 무르익어가고 있
다. 아틀란타에서는 최근 지역 까페를 종심으로 엘지드재즈의 밤같은 행사가 자주 열리고 있다. Telarc 레코드사에서는
최근 'Blueaeum'을 발매했는데 캘리포니아에 기반들 두고 있는 아티스트들의 힙합재즈 프로젝트이다.
클리포드 브라운이 살아있다해도 팝 톱10차트 안에는 결코 진입하지 못할것이라는 사실(클리포드는 절대 팝은 연주 안한다) 과 재즈팬들에게는 이방인으로 변하지 않을것이라는 사실은 우리들이 더 원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Charlie Hunter는 할지도 모른다 그의 예상과 현재 많은 엘시드 그룹들이 활발함은 5년전 Browine가 예측한 것과는
많은 거리감이 있다. 이제 그들이 내기를 걸때이다.
록 재즈 (Rock-Jazz)
1). 록 재즈의 발생
록 재즈는 가장 최근에 출현한 재즈로서(70년대) 프리 재즈와 함께 현재까지도 연주되고 있는 형태이다. 록(Rock)이란 유럽에서 대중적인 댄스 음악으로 출발한 것으로 블루스의 특징을 많이 지니고 있으며, 로큰 롤(Rock'n Roll)의 준말이다. 록은 1960년도 중반에 나타나 가사의 예술적 표현에 보다 치중하여 즉흥 연주 등은 그리 강하게 다루지않았다. 비틀즈(Beatles)를 위시한 많은 그룹들은 조곡형식(Suite)의 대편성 심포니 곡을 만들기도 하였고, 또 어떤 부류들은 종래의 록을고수하여 하드 록(Hard Rock) 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초기의 록 그룹들은 블루스를 기초로 하였으나, 재즈와 록이 완전히 융합된 상태가 아니 라 서로 엮어 놓은 상태에 불과하였고, 예술적인 면의 추구보다는 상업적인 냄새가 짙은 감을 준다.
재즈와 록이 참으로 융화되어(Fusion) 예술적인 형태를 띠면서 재즈의 발전에 기여하게 되는 것은 1960년대 말부터 이다. 체이스(Chase), 블러드(Blood), 스웨트 앤 티얼스 (Sweat &Tears) 등의 그룹의 활동으로 시작되었는데, 이들의 음악을 스윙 록 (Swing Rock)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70년대 초에는 재즈의 대가인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가 록과 전자악기에 관심을 두어 <비취스 브루(Bitches Brew)>란 음반을 내놓음으로써 본격적인 록 재즈의 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혁신적인 점은 전자악기를 일반 재즈악기와 함께 섞거나, 전체를 전자악기로 대체하고 연주하여 음향을 더욱 강하게 확대시킨 면과 예술적인 즉흥성을 강조한 점이다. (전기기타, 전기콘트라베이스, 전자피아노, 신디사이저 등을 사용)
2). 록 재즈의 음악적 특징
위에서 일컬은 바와 같이 록 재즈는 전자악기 연주로 인한 강한 음향을 특징으로 하며, 음악적인 기법을 프리 재즈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리하여 매우 지적이고 전문적인 형태를 띠고 있으나, 리듬에 있어서는 모던 재즈(비밥, 쿨, 프리 재즈)에 비하여 단순한 형태를 보여 스윙(Swing)과 비슷하나 약간 더 강하고(예를 들면 동양에서 온 순환하는 박자사용), 음향에 있어서는 전위적인 불협화음보다는 특정한 음계를 바탕으로 한 섭법을 중심으로 연주하므로 전통적인 협화음쪽으로 흐른다. 그리고 어법에 있어서 옛 두박자 재즈부터 프리 재즈까지의 요소들을 도입하므로 연주자 모두가 각자 멋대로 즉흥연주를 하는 것보다 부드럽다고 하겠다.
록 재즈의 대표자로는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트럼펫), 죤 멕로린(John Mc Laughlin, 전기기타)과 그의 오케스트라, 칙 코리아(Chick Corea), 허비 행콕(Herbie Hancock)와 죠 채위눌(Joe Zawinul), 웨더 리포트와 유나이티드 재즈 록 앙상블 (Weather Report & United Jazz Rock Ensemble)등이 있다.록 재즈는 일렉트릭 재즈(Electric Jazz), 퓨젼 재즈(Fusion Jazz), 크로스오버 뮤직(Crossover Music)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독창적인 명칭은 록 재즈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 순서에서는 재즈 발전사 중에서 후기 시대에 해당하는 쿨,프리, 록 재즈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재즈는 후세에도 계속 발전하여 나갈것이므로 후기란 단어가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니나 중기 시대와 구분하는 개념으로 이해해주기 바란다. 중기시대의 스윙과 밥 재즈가 클래식 음악과 어깨를 겨룰만큼 음악적으로 성장함을 보여 주었다면, 후기 시대의 쿨, 프리, 록재즈에서는 예술적인 발전을 더욱 거듭하여 현시대 음악의 한 장르로서 클래식 음악사에 당당하게 편입됨을 보여주었다. 즉 재즈는 더이상 좁은 의미의 오락음악이나 민속적인 음악으로서가 아니라, 서양 예술음악의 한 갈래로서 인정받는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1970년대 초 ~ 현재
음악적인 특징
재즈와 다른 장르의 혼합을 통해 생겨난 음악. 록 과의 융합을 시도한 마일즈 데이비스의 음악이 선구자적인 역할. 이어서 라틴 리듬의 도입 등 활발한 활동이 펼쳐졌다.
록-재즈의 경우 음악적 기법의 기초를 프리 재즈에 두고 있어 매우 지적이고 전문적인 형태를 띠고 있으나, 리듬에 있어서는 모던 재즈(비밥, 쿨, 프리 재즈)에 비하여 단순한 형태를 보임.
음향에 있어서는 전위적인 불협화음보다는 특정한 음계를 바탕으로 한 선법을 중심으로 연주하므로 전통적인 협화음쪽으로 흐름.
록-재즈(Rock-Jazz), 일렉트릭 재즈(Electric Jazz), 크로스오버 뮤직(Crossover Music) 등으로도 불림.
주요 음악인
Musician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트럼펫), 존 맥클러플린(John McLaughlin,기타), 칙 코리아(Chick Corea,피아노), 웨인 쇼터(색소폰), 허비 행콕(Herbie Hancock,피아노), 조 자비눌(Joe Zawinul,키보드), 펫 메스니(Pat Metheny,기타), 자코 파스토리우스(베이스), 데이빗 샌본(색소폰)
Group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 카시오페아(Casiopea)
첫댓글 길다.. ㅡㅡ;;
기네
인쇄하면 16장..
너무 길다....
관심있는 내용인데 퍼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