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우에 독서라고 하면 무엇이든지 나의 휴양이다. 독서는 나를 자신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나를 신기한 학문과 영혼들 사이에서 산보하도록 해준다.
----니체, {이 사람을 보라}에서
내 경우에 독서라고 하면 그 무엇이든지 삶의 의지이며, 삶의 찬가와도 같다.
어떠한 책들은 울창한 숲속의 새소리와도 같고, 어떤 책들은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다. 어떤 책들은 그립고 정다운 죽음과도 같고, 어떤 책들은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는 성자의 삶과도 같다. 어떤 책들은 하나님도 감동할 진주의 눈물과도 같고, 어떤 책들은 백만 분의 일의 가능성에 매달린 천재의 삶과도 같다.
나는 일찍이 이 불멸의 저자들과 사귀며, 다음과 같은 짧은 촌평을 기록해둔 바가 있다.
호머 전지 전능한 신들을 창조하고 그 신들과의 싸움을 통해 우리 인간들의 삶을 찬양하고 옹호했던 휴머니스트.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최초의 시인이자 최후의 시인.
소크라테스한 마리의 등에처럼, 아테네 사회의 제일급의 인사들의 ‘무지無知’를 일깨워주고 ‘너 자신을 알라’라는 철학적 명제를 양식화시켰던 인물. 그의 앎과 행동이 일치된 ‘애지愛知’의 철학을 배우되, 언제나 내가 논쟁을 해보고 싶은 위대한 스승.
플라톤 그의 이상국가를 방문하고, 내가 시와 예술의 진수를 가르쳐 주고 싶은 인간.
아리스토텔레스그와 함께 시와 예술을 논하고 그의 중용의 미덕을 배워보고 싶은 인간, 그러나 내가 중용의 미덕의 약점을 지적하고 혁명가의 날쌘 검술을 가르쳐 주고 싶은 위대한 스승.
셰익스피어아직도 그의 언어와 문체 속에서, 마냥, 그대로 행복하게 살아 보고 싶은 세계적인 대작가. 내가 더없이 초라해 지고 더없이 행복해 지는 위대한 스승.
쇼펜하우어나에게 최초로 염세주의를 가르쳐 주고 염세주의자도 그처럼 학문과 예술을 사랑할 수가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 준 위대한 스승. 니체에게 철학적인 진실과 명랑함과 항상성을 가르쳐 준 위대한 스승. 그러나 내가 나의 ‘낙천주의’를 꼭 가르쳐 주고 싶은 위대한 스승.
니체 좀 더 강력하고 위대한 적을 찾아서 언제나 호전적이고 전투적인 정신을 가다듬었던 디오니소스 유형의 철학자. 그러나 내가 나의 ‘낙천주의’를 꼭 가르쳐 주고 싶은,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최초의 스승이자 모든 인류의 영원한 스승.
프로이트 ‘만인 대 일인의 싸움’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운 집중력으로 그의 학문에 정진했던 유태인. 내가 그의 외디프스콤플렉스의 망령을 잠재우고 시와 예술의 진수를 가르쳐 주고 싶은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괴테 그토록 오만방자하고 시건방진 니체와 쇼펜하우어가 수십 번씩, 수백 번씩 인용을 해먹고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던 세계적인 대작가. 내가 그의 {파우스트}를 수십 번씩 되풀이 읽어가면서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인용한 구절들을 체크해 보기도 했지만, 아직도 내 스스로 분석을 하고 판단을 내릴 수가 없는 세계적인 대작가. 내가 다시 태어나면 독일어와 라틴어를 공부하고 {파우스트}의 원전을 다시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세계적인 대작가.
오딧세우스그의 뛰어난 지혜와 강인한 정신을 배워보고 싶은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
헤라클레스건강, 힘, 용기, 그의 열두 가지 노역을 마다하지 않던 대담성과 용기를 배워보고 싶은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
보들레르, 랭보그들의 저주받은 운명을 배워보고 싶은 시인들.
반 고호, 폴 고갱가난, 광기, 백만 분의 일의 가능성에 매달렸던 위대한 예술가들.
김수영건강, 정직, 성실, 용기, 그리고 호전적이고 전투적인 정신의 소유자. 그 미완의 가능성 앞에서, 아아!라는 탄식의 말로 대신할 수밖에 없는 내가 존경하는 최초의 한국인이자 최후의 한국인.
----반경환, [우정에 대하여]({행복의 깊이} 제3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