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점심 식사 시간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하기 위해 식탁에 모였습니다. 참, 우리 가족 소개를 안했네요? 아빠, 엄마, 중학교 1학년생인 형 근우,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생인 나, 성우입니다.
형이 밥을 먹다 말고 아빠께 이렇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아빠! 요즘도 알레르기성 비염이 심하세요?”
“응, 그런데 왜?”
“어쩌면 해부용으로 산 우리 토끼는 해부를 안 할지도 모르겠어요. 월요일이면 확실히 알게 되겠지만요. 그런데 만일 해부를 안한다면 며칠 전 동네 장에서 엄마랑 사온 저 해부용 토끼는 어떻게 하죠?”
“일단 모레까지 기다려보고 결정을 하자꾸나. 그런데 토끼가 집에 온 뒤로 내 비염이 조금씩 더 심해지는 것 같기도 하네, 에취!”
우리 집은 아빠의 동물 털 알레르기 때문에 털 난 짐승은 어떤 짐승도 키우지 못합니다.
그러나 엄마와 형과 내가 동물을 무척이나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아빠도 잘 아시면서도 짐짓 모르는 체 하고 계신답니다. 이럴 땐 아빠가 참 야속하기도 해요.
월요일 저녁입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과일을 함께 먹으며, 토끼에게는 사료인 알파파를 주었습니다. 녀석은 죽을 뻔 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열심히 풀을 뜯었습니다. 입을 오물거리며 먹는 모습이 참 귀여웠어요. 잠시 후 아빠가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일단 우리 토끼는 죽음은 면한 것 같구나. 문제는 아빠의 비염인데, 이비인후과 의사인 아빠 친구와 상의를 했더니 새로운 수술법과 약이 나와 예전보다는 훨씬 효과가 좋다고 하더라. 그러니 아빠가 가능한 한 빨리 수술을 받을게. 그리고 이제 토끼도 한 식구가 되었으니 이름을 지어줘야지?“
내가 제일 먼저 손을 들었어요.
“‘토토’라고 하면 어떨까요? ‘토끼 중의 토끼’라는 뜻이에요.”
모두들 박수로 찬성했어요. 이제 토끼는 정식으로 우리 식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전선만 보면 다 물어뜯어 버리고, 다음은 나무나 책만 보면 다 쏠아버리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다 아빠에게는 큰 골칫거리가 되는 것이었죠. 특히 전선은 화재의 위험도 있고요. 결국 우리는 토끼집이 있는 베란다로 통하는 모든 문을 닫아야 했어요. 그러자 우리와 토끼 사이의 거리가 한결 멀어지게 되었죠. 나는 토끼가 보고프면 베란다로 나가는 큰 유리창을 통해 본답니다. 어느 날 나는 퇴근하고 돌아오신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죠.
“아빠! 베란다로 통하는 모든 문을 다 막아 놓으니 답답해 죽겠어요. 토끼털도 쓰다듬을 수 없고요, 아빠가 토끼가 사는 공간을 다시 만들어 주세요.“
“그래, 네 마음도 이해하겠다. 내가 다시 튼튼하게 만들어보마.”
아빠는 집에 남아 있던 벽돌로 높고 넓게 토끼집을 만드셨지요. 집이 완성되자 아빠가 나를 부르셨어요.
“토끼집이 성우 마음에 들지 모르겠구나. 벽돌을 높게 쌓았으니 뛰쳐나오는 일은 없겠지. 그리고 넓게 만들었으니 어지간한 운동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또 보충해야할 것이 있으면 이야기하렴.“
“아참, 이왕이면 갉아먹을 나무토막과 못 쓰는 전선도 넣어주세요.”
“그래, 네가 주문한대로 다 해줄게. 에취!”
작업이 다 끝난 후 엄마와 형이 토끼집을 보러 왔어요. 두 사람 다 교도소 같다고 놀리면서도 넓고 높아서 뛰쳐나갈 염려는 없겠다고 하더군요. 이 모든 것은 우리 집 베란다가 워낙 길고 넓어서 가능한 일이었죠.
7월이 막 끝나갈 무렵 아빠가 J시에서 서울로 전근을 가시게 되었어요. 우리 식구가 살 집을 구했기 때문에 아침 이른 시간에 이사를 시작했는데 물론 토토도 함께 이동했지요. 그런데 아무리 7개월이 넘은 다 큰 토끼라 해도 5시간 이상을 승용차로 가야 하는데 토토가 멀미를 하거나 탈진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그리고 행여 철망이 움직일까봐 바닥을 푹신하게 하고 꼭 잡았죠. 또한 차가 달리는 내내 철망 안을 수시로 들여다보았습니다.
저녁 무렵 드디어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얼른 토토를 살펴보았습니다. 다행히도 토토는 끄떡없이 잘 버티고 있었습니다. 나는 먼 길을 잘 견디어준 토토가 너무나 기특했습니다!
아빠는 또다시 토끼집을 지으셨는데, 베란다가 옛날 집 보다 훨씬 좁아서 옹색스럽기만 했어요. 그렇다고 베란다에 풀어 놓을 수도 없었지요. 베란다에는 아직 풀지도 않은 책 박스들이 가득 쌓여있기 때문이지요. 결국 우리 가족은 토토 문제를 가지고 또다시 의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빠 생각에 이 좁은 집에서 저렇게 몸집이 커진 토끼를 키운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아빠가 얼마 전 비염수술도 받아보았지만 아직까지는 뚜렷한 효과가 없는
것 같고. 각자 좋은 의견이 있으면 이야기해봐.“
그러자 엄마가 또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전에 살았던 J시의 박 선생님 댁에서 맡아주기로 했어요. 오늘 낮에 서로 의논했답니다. 서운하기는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방법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나는 토토와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약을 써도 나아지지 않는 아빠의 비염, 온 집안을 날아다니는 토토의 털, 그리고 이빨로 갉아놓은 전선들.........
며칠 후 나는 엄마와 함께 토토를 데리고 J시로 향했어요. 시간이 참으로 빠르게 가는 것 같았습니다. 박 선생님께 철망 채 토토를 전해드리고 돌아서려는데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엄마가 가만히 손수건을 꺼내 내 눈물을 닦아 주셨지요. 엄마도 코끝이 빨개지셨습니다.
토토가 새집으로 간지 15일쯤 되었을 때 박 선생님이 아빠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피서철이니 한번 놀러 오시라는 전화였어요. 우리 가족은 피서도 피서지만 토토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가급적 빠른 날을 잡아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이번에는 저번과 달리 시간이 더디기만 했습니다. 마침내 박 선생님 댁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그 분께 토토가 어디 있는지 물었더니 건물 반지하에 있다고 일러주셨습니다. 나는 큰소리로 “토토야, 토토야”하고 불렀습니다. 그러자 토토가 반지하의 턱을 가뿐히 넘어 ‘꾹꾹’ 콧소리를 내며 내 주위를 빙빙 도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리와 동작은 토토가 기분이 최고로 좋을 때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토토가 내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나는 너무나도 기뻤지요.
이 광경을 본 아빠가 박 선생님과 무언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형과 나는 번갈아 가며 토토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이틀 동안 우리는 피서를 하는 대신 토끼와 함께 넓은 뜰에서 뛰어놀면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다시 서울로 올라오기로 했을 때 뜻밖에도 박 선생님은 내게 토토의 철망을 건네주셨습니다. 내가 철망의 문을 열자 토토는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서울을 향해 차를 타고 달리는 동안 엄마가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엊그제 박 선생님과 무슨 이야기 나누셨어요?”
“토토가 우리 아이들을 알아보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고 했지. 그리고 아이들도, 당신도 모두 토토를 너무도 좋아하는데 결국 함께 살도록 해주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결론을 내렸어.“
“당신 비염은 어쩌구요?”
“이번 기회에 사람과 동물이 함께 마음껏 놀 수 있는 잔디가 깔린 비교적 넓은 단독주택을 알아보려고.”
“아빠 파이팅! 토토 화이팅!”
우리 가족 모두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차안에 가득 했습니다.
(끝)
첫댓글 요즘 애완용 동물 키우는 사람들이 많지요.
가족간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할 겁니다.
예 맞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