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뿐인 인생 주님께 멋지게 쓰임 받고 싶다면(행 2:1-4)
2022.6.5 성령강림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이 세상 모든 일에는 보이는 것이 있고,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실수나 실패는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응답과 약속은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발레리나들의 우아한 춤이나 의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보아야할 것은 신발 속에 숨겨진 상처 난 발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상치 못한 고난이나 실패처럼 보이는 수많은 상황들은 사실은 끝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라”는 하나님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보이는 것과 보아야할 것을 구분하려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스누커(snooker) 선수로 인정받고 있으며, 대영제국의 훈장을 두 번이나 수여 받은 스티브 데이비스(Steve Davis)가 이런 말을 했다.
“넘어지는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일어서지 않는 것은 당신의 잘못이다”
이것은 영적으로도 유사하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행전에 나타난 오순절 이후의 초대교회의 부흥과 아름다웠던 성도들의 모습을 사모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임진행의 방식이나 전도방법 그리고 사람들에게 칭송받았던 생활방법 등을 연구한다. 이런 것들은 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보다 진짜 우리들이 보아야할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성령충만이다.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모습들은 오순절 성령충만의 결과였다. 오늘이 오순절 성령강림주일이다. 구약에서 오순절(五旬節, 다섯 오, 열 순)은 유월절이 지난 후 50일째 되는 날로서 첫 곡식을 수확하는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신약에서는 주님이 부활하신 후 50일이 되었을 때, 성령님이 강림하신 것을 기념한다(행2:1-4). 다시 말하면 초대교회의 부흥이나 칭송 받은 것은 눈에 보이는 방법이나 시스템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성령님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가셨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도 부른다.
오순절에 성령충만을 받아서 완전히 변화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단연 사도 베드로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기 전까지의 베드로의 영적인 상태는 완전히 방전된 밧데리 같았다. 그러나 “애벌레가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나비로 변했다”는 속담처럼 성령충만을 받은 순간부터 그는 가장 강력한 복음의 자석으로 변했다.
특히 성령님은 가장 먼저 제자들의 말을 변화시켰다. 이 점을 이 시간 우리들이 눈여겨봐야 한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그렇다면 왜 성령님은 하필이면 가장 먼저 말이 변하게 하셨을까? 그것은 늘 입이 축복과 저주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성도로서 전도자로서 남은 인생의 이모작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자 할 때, 가장 첫 번째로 변해야할 것이 바로 말이다. 성령충만 받으면 말이 변하고, 말이 변하면 인생도 변한다.
사복음서에 기록된 사도 베드로의 성품을 보면, 그는 본래 목소리도 컸고, 혈기도 상당했고, 말도 거칠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람의 입을 스피커에 비유하자면, 베드로의 입은 마치 출력 좋은 스피커와도 같았다. 그런데 그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들은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말들이 많았다. 스피커의 출력이 좋은 것과 좋은 음악이 나오는 것은 때로 별개 문제일 수 있다.
예전에 악어가 사다리 사이에 입이 걸려서 올라가지 못하는 그림을 본 적이 있다(사진). 그림에 옆에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당신의 입이 문제일 수도 있다(Your mouth might be the problem)”
이처럼 거칠고 혈기 충만했던 입이 오순절 성령님이 강림한 후에는 사람의 심령을 움직이는 은혜롭고 능력있는 성령의 도구로 완전히 변했다. 이것은 본래 그가 말을 잘해서가 아니라, 성령님이 그렇게 만드셨다.
이것은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스피커 성능이 좋아도 성령의 불이 그 속에서 약해지면, 그 스피커에서 나오는 말이나 소리들은 은혜와는 거리가 멀 수 있다. 은혜는커녕 자신의 마음과 전혀 상관없는 거친 말이나 동작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긁어 놓을 수 있다. 심지어 성령충령하지 않으면, 사랑의 조언도 공격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성령충만하면 비록 말솜씨가 약하고 표현이 서툴러도 듣는 사람에게는 은혜롭게 들린다. 심지어 상대방의 공격도 양약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화려한 말솜씨나 전도방법 또는 장비나 노래솜씨 이전에, 어떻게 하면 성령충만한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어떻게 성령충만해 질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들이 다함께 모여서 주님이 약속하는 말씀을 붙잡고(눅24:49), 간절히 기도했던 결과였다(행1:14, 행2;1).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 1: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행2:1)
또한 누가복음 11장 13절 말씀에서 주님은 어떤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11:13)
이 말씀을 잘 보라. 누구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하셨는가? “구하는 자”이다. 목사님이나 장로님 또는 교회 오래 다닌 사람에게만 성령을 주신다고 말하지 않았다.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셨다. 성령충만을 받으면 남녀노소 할 것이 그 순간부터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사도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령충만을 간구해야 한다. 만약 여러분이 베드로처럼 자신의 삶을 바꾸고 싶다면, 거름더미 같은 상황 속에서 다시 일어나서 한번 뿐인 나의 인생을 하나님의 도구로 멋지게 쓰임받기 원하면, 성령의 사람이 되게해 달라고 결사적으로 간구해야 한다.
19세기 세계적인 대부흥사였던 무디(Moody)는 어린시절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구두 수선방의 점원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성령님의 스피커가 되었을 때, 성령님은 그의 입을 통해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주님께 돌아오게 하셨다.
KFC(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의 창시자인 커넬 샌더스(C. H. Sanders)는 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65세가 될 때가지 극히 어렵게 생활했다. 그러나 65세에 설교 말씀을 듣는 중에 큰 감동을 받고, 기도하면서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여 치킨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샌더스는 KFC를 창업하여 90이 넘어서까지 82개국에서 1만1천여 개 이상의 점포를 운영했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하나님의 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지금도 KFC매장 입구에 샌더스 할아버지 인형이 있다(사진). 지금도 성령은 아무리 실패자라 해도, 흙수저라 해도, 우리를 훌륭한 존재로, 훌륭한 삶으로 만들어 가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세상을 바꾸기 전에 먼저 자신을 바꿔야 한다. 사도 베드로가 그러했고, 성경과 기독교 역사에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자신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령충만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충만을 받는 방법은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것이다. 성령님이 우리를 훌륭한 이모작 인생으로 바꾸신다. 그러므로 우리를 이를 위해 더욱 간절히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자. 베드로를 변화시킨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지 않을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