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월간조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던 이번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캠프의 핵심 관계자 중 한 명이 매일 일지(日誌) 형식의 메모를 작성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박근혜 캠프 안에서 실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기자들이 일일이 알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그 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관계자를 설득, 일지를 얻어 재정리했다. 신문·방송 등에 이미 보도된 내용도 있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 그 사람들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 그 일단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월간조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던 이번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캠프의 핵심 관계자 중 한 명이 매일 일지(日誌) 형식의 메모를 작성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박근혜 캠프 안에서 실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기자들이 일일이 알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그 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관계자를 설득, 일지를 얻어 재정리했다. 신문·방송 등에 이미 보도된 내용도 있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 그 사람들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 그 일단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당선자가 2012년 12월 20일 광화문에서 당선 소감 및 대국민 메시지를 밝히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모두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국민 행복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말했다. |
민주통합당 문재인(文在寅)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安哲秀) 후보 간의 야권 단일화에 대비하기 위해 ‘러닝메이트 총리’를 미리 지명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다. 야권 단일화는 어떤 식이 됐든 권력 핵심을 PK(부산·경남)가 독식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박근혜(朴槿惠) 후보가 호남 출신 총리감을 지명, 야권의 ‘독식(獨食)’ 대(對) 박 후보의 ‘탕평’으로 맞서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닝메이트 총리’ 사전지명과 관련해서는 내부에서 찬반논쟁이 뜨거웠다. “문 후보와 안 후보 중 누구로 단일화되든 간에 두 사람이 함께 손 맞잡고 유세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찬성의견이 우세했다. 하지만 “러닝메이트 영입은 결국 야권 후보 단일화를 합리화시킨다”, “야권 후보 단일화를 민생과 관계없는 정치쇼로 몰아세우는 마당에 우리 쪽에서 맞불을 놓는 것은 잘못된 그림”이라는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부산이 흔들린다” 급보에 의원 총동원령
11/2(금·D–47)
새누리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부산·경남이 흔들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달아 발표되었다. PK 지지율이 50% 선에서 정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두 사람이 다 부산 출신이라는 것도 부담이었다. 캠프에 긴장감이 흘렀다. 분위기도 다급해졌다. 부산 출신의 몇몇 선후배들에게 전화를 돌려봤다. 전반적으로 박 후보 우세를 점치는 이들이 많았지만 젊은 층에선 야권 지지가 역력했다. 캠프는 비상체제에 돌입, PK 지역 의원들에게 하방(下放·정치인이 연고지나 지역구로 내려가는 것)을 명했다.
후보도 적극 나섰다. 박 후보는 이날 부산 지역구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들을 서울시내 음식점으로 초대해 저녁을 내며 격려했다. 박 후보는 “국정감사 전에 자리를 가지려고 했는데 국감으로 인해 늦어졌다”며 “국감이 끝났으니 열심히 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부산 의원들은 “가덕도 신공항과 해양수산부 부활 같은 맞춤형 정책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는데 박 후보는 즉석 답변보다는 공약위원회에서 심도 있게 논의하겠다고 했다. 조금 답답했다. 한 표가 아쉬운 마당에. 박 후보는 원조 텃밭인 TK 지역이 신공항 문제로 흔들릴까 봐 걱정하는 듯했다.
11/3(토·D–46)
후보등록 일자는 점점 다가오는데 판세는 여전히 안갯속이었다. 야권 단일화 문제는 아무런 진전도 없이 각자의 세 불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당장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대선 TV 토론에서 누구와 진검승부를 겨룰 것인가도 불투명했다.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얼마 전 캠프 내에 비공개로 ‘방송토론기획단’이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날 구성원의 전문성과 참신성을 둘러싸고 내부적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대선에서 TV 토론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엄청나기에 권력의 갈등이 아닌 실력의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11/4(일·D–45)
김종인(金鍾仁) 위원장이 직접 국민행복추진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며 ‘주요경제사범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의무화’, ‘대기업 기존출자 의결권 제한’ 등의 내용을 담은 경제민주화 공약을 잠정 발표했다. 문제는 신규순환출자금지에 이어 기존순환출자에 대해서도 의결권을 제한한다거나 주요 경제범죄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국민참여재판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이 정책은 박근혜 후보와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것들이었다. 따라서 자칫하면 김종인 위원장이 박 후보에게 경제민주화 공약을 압박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었고, 박 후보 역시 후보와 사전교감 없이 서둘러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한 것에 불쾌해한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실제 박 후보는 자기 생각과는 다른 내용이 상당히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기업 순환출자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은 박 후보가 평소 “기존 순환출자는 그대로 두고 신규 순환출자만 규제하겠다”고 말해온 것과 차이가 있었다.
사실 이날 김 위원장의 섣부른 발표 로 정치쇄신특별위원회에서 준비 중이던 정치쇄신공약 일부가 사장(死藏)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정치쇄신위에서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재벌총수 등의 비리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의무화를 준비 중이었는데, 경제사범에 한정된 국민참여재판 의무화 발표로 정치쇄신위는 공약 수정이 불가피했다. 내부에서 공약조율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아쉬움을 남긴 대목이다.
“ 문재인이 편하다” 안철수 검증론 힘 받아
11/5(월·D–44)
박근혜 후보는 ‘신뢰외교와 새로운 한반도’를 주제로 한 외교·안보통일정책을 발표하며 정책 행보를 이어나갔다. 여기서 박 후보는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다양한 대화채널이 열려 있어야 한다”며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라면 북한의 지도자와도 만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 인물은 거론하지 않았지만, 김정은과 남북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의지를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은 안철수 후보의 전남대 강연에 집중돼 있었다. 이날 단일화에 대한 입장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기 때문이다. 안 후보 측 금태섭(琴泰燮) 상황실장은 “오늘 전남대 강연을 들어보라”고 분위기를 띄웠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곧바로 두 후보의 비서실장 만남에서 다음 날 저녁 6시 백범기념관에서 회담을 여는 것으로 확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캠프의 대응도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래도 ‘단일화’는 무시할 수 없는 변수였다. 내부적으로 안 후보 검증에 박차를 가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안 후보보다는 문 후보가 상대하기 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11/6(화·D–43)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2012년 11월 6일 여의도 당사에서 정치쇄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안대희 정치쇄신위원장이 배석했다. |
11/7(수·D–42)
박근혜 후보와 캠프는 문·안 단일화 추진에 대응하기 위해 연일 두 후보 간의 단일화 추진은 권력을 위한 이질세력 간의 야합임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한편, 여성유권자연맹 해피 바이러스 콘서트, 걸 투(Girl Two) 콘서트를 통해 첫 여성 대통령의 탄생이야말로 가장 큰 변화이자 놀라운 쇄신이라며 여성 대통령 이미지 강화에 집중했다.
특히 박 후보는 김성주(金聖株) 공동선대위원장과 가진 걸 투 콘서트에서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브라우니’ 인형을 들고 나타나 “제가 결혼했으면 여기 학생들이 전부 딸 정도 된다. 그래도 큰언니와 동생으로 좋은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 후보가 농담을 섞어 이야기한 것은 편안한 ‘언니·여동생’ 이미지를 부각시켜야 한다는 (캠프 내) 의견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캠프 실력자들의 보이지 않는 암투
11/8(목·D–41)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2012년 10월 19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경찰 관련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하지만 언론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날 오후 박 후보가 경제단체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 제한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발언을 한 것이 발단이었다.
언론은 박근혜 후보와 김종인 위원장 간의 갈등이 본격화됐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박 후보와 김 위원장 간에 경제민주화 정책을 놓고 관점의 차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후보와 최종 합의도 없이 서둘러 공약을 언론에 공표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언론보도와 같이 박 후보와 김 위원장 간의 관계가 완전히 소원해진 것은 아니었다. 이 같은 갈등의 원인에는 주변의 메신저가 그 뜻을 잘못 전달하거나 왜곡한 탓도 컸다고 본다.
11/9(금·D–40)
지역민심은 하루가 다르게 불리하게 가고 있는데, 중앙에서는 근거 없는 낙관론에 휩싸여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 선대위의 핵심 관계자는 “지난 주말에 이어 이번 주말에도 후보의 외부 일정이 없다”며 “이기는 후보도 이런 식으로는 안 할 텐데 (박 후보에게서) 위기의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고 했다.
사실이 너무 과장된 부분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특정세력이 일부러 비관론을 퍼뜨리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당시 캠프에서는 김무성(金武星) 총괄본부장, 서병수(徐秉洙) 사무총장은 업무가 겹치는 일이 많아 서로 불편한 관계이고, 제각각 여러 조직 분야를 나눠 맡는 서 사무총장과 홍문종(洪文鐘) 조직본부장, 유정복(劉正福) 직능본부장은 서로 업무 영역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일부는 사실이기도 했다.
11/10(토·D–39)
박 후보는 토요일인 이날 특별한 일정을 잡지 않았다. 전날에 이어 이날도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자성과 위기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캠프는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후보에게도 이러한 소식과 대책이 전달되면서 곧 후보가 변화를 꾀할 거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후보는 어떤 결단을 내릴까. 나도 궁금하다. 불안하기도 하다.
위기의식에 민생투어 시작
11/11(일·D–38)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2012년 12월 3일 유세 수행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고(故) 이춘상 보좌관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을 찾아가 부인과 아들 등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
선대위도 조직을 현장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며 국회의원들은 최소한의 인원만 남고 모두 현장으로 가라는 지시를 내렸다. 위기론이 공식적으로 제기된 지 이틀여 만에 이루어진 발 빠른 대응이었다. 어느새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11/12(월·D–37)
박근혜 후보는 제2차 지방민생투어의 첫 시작으로 익산과 광주를 방문했다. 광주역 광장에서 트럭에 올라 연설을 하고, 충장로에서는 젊은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스킨십을 강화했다. 다친 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특히 이날 박 후보는 전남 담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대통령 후보가 되고 나서 최초의 1박이라 의미가 남달랐다. 박 후보가 민생투어의 목적으로 지역에서 숙박한 것은 4·11총선 이후 일곱 달 만이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박 후보가 1박 장소로 선택한 곳이 ‘담양리조트’였는데 이곳은 고(故)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생전 휴양차 즐겨 찾던 곳이다. 담양리조트가 함께 운영하는 온천에는 고 김 전 대통령이 쓴 대형 친필 휘호가 걸려 있다. 이 아이디어는 최근 캠프에 합류한 DJ 참모 출신 김경재(金景梓) 기획담당특보가 낸 것으로 알고 있다.
호남 출신 총리감을 찾아라
11/13(화·D–36)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2012년 12월 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대선 후보 TV 토론에 참가, 토론을 시작하기 전 이정희, 문재인 후보와 인사하고 있다. |
11/14(수·D–35)
문·안 단일화 협상이 계속해서 진행 중이던 이날 안철수 후보가 돌연 협상 보이콧을 선언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캠프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안 후보 측은 문 후보 측이 조직적으로 안철수 후보를 비방하고 안철수 양보론 문자를 대량 살포하는 등 마타도어가 극에 달하고 있다며 발끈했다. 우리도 민주당 지구당을 중심으로 ‘안 후보가 양보하기로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 때문에 안 후보의 보이콧은 단일화 여론 흐름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극약처방을 쓴 것으로 분석했다. 솔직히 우리 측은 이미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협상에 나섰을 때부터 단일화 경험과 조직을 가진 문재인 후보가 단일화에서 승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안철수 후보는 단일화 협상에 나서는 순간 이미 승기를 잃었던 것이다. 이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사람의 모습이었다.
11/15(목·D–34)
박근혜 후보는 이날 모교인 성심여중·고를 방문해 ‘성심 가족의 날’ 행사에 참석하며 문재인(경남고)-안철수(부산고) 후보에 맞서 동문 스킨십 강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날도 모든 관심은 문·안 단일화 과정에 집중됐다. 안철수 후보의 보이콧으로 속이 타는 문 후보는 안 후보에게 3번이나 사과를 하며 달래기에 나섰지만, 안 후보는 “후보 양보는 절대 없다”며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안 후보가 민주당 의원 30여 명에게 릴레이 전화를 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우리는 내심 단일화가 결렬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결렬될 가능성은 많지 않았다. 안 후보가 몽니를 부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안철수, 단일화 제의로 勝機 놓쳤다 판단
11/16(금·D–33)
박 후보는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했다. 경제민주화가 “경제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박 후보의 강한 의지와 경제민주화는 공정한 시장질서를 확립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생각에 따라 김종인 위원장이 요구한 ‘대규모기업집단 법’,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경제사범 국민참여재판 의무화’ 등 3개 공약은 결국 빠지게 됐다.
야권의 분위기도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었다. 단일화 협상 중단의 책임을 두고 문·안 후보가 정면충돌하는 양상이었다. 안 후보 측이 친노 패권주의를 비판하면서 문 후보 측이 발끈하는 등 점점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나 마냥 여유로울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단일화 협상을 재개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11/17(토·D–32)
박 후보는 영양사 전진대회와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해 표심 관리에 집중했다. 우리는 다음 날 재개될 것으로 알려진 문·안 단일화 협상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결국 안철수 후보가 시간상 노련한 민주당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우리의 시선도 문 후보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11/18(일·D–31)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2012년 12월 4일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 TV 토론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기조발언을 준비하고 있다. 왼쪽부터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 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
11/19(월·D–30)
대통령 선거일이 30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아직 상대후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깜깜이 선거가 진행되고 있었다. 코너에 몰린 안 후보는 TV 토론 이후 각 후보 지지자를 동수로 배심원단을 구성해 단일후보를 선택하도록 하는 ‘공론조사식 배심원제’를 회심의 카드로 내세웠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 측은 안 후보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어찌되었든 두 후보 간 단일화 방식에 대한 접점을 찾아가고 있었다. 우리도 급해졌다. 우리는 두 후보 간의 협상은 단일화가 아닌 한 후보의 사퇴를 위한 후보사퇴 협상이라며 단일화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쪽으로 초점을 맞췄다.
과거사 프레임에 가두려는 야권의 전략 오류
11/20(화·D–29)
후보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전국기초광역의원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기초의원·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를 통해 기초의회·단체가 중앙정치의 간섭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지방정치를 펼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지방세 비중을 높여가겠다는 공약도 했다. 반응은 좋았다. 그간 공천제 폐지는 대선 후보들이 내놓는 단골 공약이었지만 국세를 지방세로 대폭 넘기겠다는 주장은 자신의 자치 관(觀)을 보여주기 충분했다. 다만 박 후보와 함께 결의대회에 참석한 안 후보는 “1971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가 지방자치를 공약으로 삼았는데 중앙에 집중된 행정과 세금을 대폭 이양하고 수도권 비대화 해소를 위한 행정기구 분산을 내걸었다. 지금 봐도 놀라운 내용이다”며 “그러나 1년 후 유신 개헌이 단행됐고 당시 유신헌법에 ‘지방의회는 조국통일이 될 때까지 구성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고 말했다. 캠프 내부에서는 안 후보가 박 후보를 향해 ‘돌 직구’를 던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안 후보는 생각보다 약하지 않은 상대임이 분명했다.
11/21(수·D–28)
당 차원에서 문·안 협상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이는 동안 박근혜 후보는 교육정책을 발표하는 등 정책 행보 강화를 통해 차별화를 시도했다.
박 후보가 발표한 교육정책의 골자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대학 등록금 부담을 덜기 위해 집권 시 오는 2014년까지 ‘맞춤형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박 후보는 ▲국가장학금 지원 대상을 소득 하위 8분위 계층까지 확대하고 ▲소득 수준에 연계한 맞춤형 등록금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소득 1~2분위는 등록금 전액(100%)을 ▲3~4분위는 등록금의 75% ▲5~7분위는 50% ▲8분위는 25%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11/22(목·D–27)
방송기자클럽토론회가 있는 날이었다. 이 자리에서 정수장학회와 과거사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정수장학회와 관련해서는 “난 10월 기자회견에서, 정수장학회가 정쟁의 중심에 서는 게 안타까워 명칭 변경을 포함해 의혹을 해소할 방안을 장학회 스스로 내놓아달라 요청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려서 요청을 거듭 정수장학회에 하겠다”고 했다. 과거사 사과에도 불구, 국민이 수용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과거 잘못된 것들을 인정하고 고초 겪으신 분들에 대해 거듭 사과를 드렸고, 통합해서 새로운 미래를 열자고 호소했다”며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집권 후에도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임기 내 지속하면서 그런 노력을 일관되게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나는 예전부터 5·16 쿠데타, 정수장학회 등의 문제로 ‘과거사 프레임’에 가두려 한 야권의 전략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야권 단일 후보도 이런 전략을 세울지 궁금했다.
안철수의 떨떠름한 후보 포기로 캠프에 다시 활기
11/23(금·D–26)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2012년 11월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증권거래소 내 KRX 푸르니 어린이집을 방문해 ‘You are my sunshine’을 직접 전자키보드로 연주하며 어린이들과 함께 합창하고 있다. |
11/24(토·D–25)
안 후보 사퇴 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오차범위 안에서 접전이었다. 비상이었다. 위안이었다면 안 후보의 지지층이 문 후보 쪽으로 그대로 흡수되지는 않은 점이었다. 늘어난 부동층을 어떻게 흡수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안 후보의 정책 중 일부를 대선공약으로 수용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국민행복추진위에서는 “안 후보 정책이 우리와 상당히 비슷하고 일부 좋은 아이디어는 박 후보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실제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은 안 전 후보의 정치쇄신안에 대해 “(박 후보와) 70~80%가 비슷한 방향”이라며 “국회의원 세비 심의회나 국회 감사원 감사 청구 등은 충분히 받아들일 문제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11/25(일·D–24)
박 후보는 이날 대선 후보 등록에 맞춰 입장을 발표했다. 박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저의 정치 여정을 마감하려고 한다”고 승부수를 던졌다. 박 후보는 입장 발표문에 “반세기 동안 이루지 못한 국민대통합과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를 담으려 애썼다. 이날 발표문에서는 ‘국민’이라는 단어를 20번이나 사용했다. 다만 발표문을 읽어가던 중 ‘국회의원직 사퇴’를 ‘대통령직 사퇴’라고 말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옥에 티’였다. 박 후보는 이날 오후 선대위 회의에서 웃으며 “(이번에) 선택을 못 받으면 정치를 마감한다는 이런 소회가 굉장히 깊다 보니 너무 감정이 북받쳐 실수했다”고 말했다. 박 후보에게서 여유가 느껴졌다.
새로운 텃밭 충청을 첫 번째 방문지로
11/26(월·D–23)
박 후보는 ‘국민면접 박근혜’라는 제목으로 첫 TV 토론을 가졌다. 구직자 신분으로 면접관 앞에서 박 후보가 직접 의견을 전하는 형식을 빌렸다. 캠프 식구들과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봤다. 순간순간 날카로운 패널들의 질문에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박근혜 후보가 잘 준비된 경륜 있는 후보, 진정성 있는 후보의 면모를 잘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앞서 문 후보 측은 박 후보의 TV 토론 진행 대본과 질문·답변지가 사전 유출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네거티브가 너무 심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도 우리 캠프에서는 네거티브를 최대한 자제했다고 생각한다.
11/27(화·D–22)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미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모델로 등장했다. 《타임》은 12월 17일자 최신호에서 ‘실력자의 딸’이라는 제하의 커버스토리를 통해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 당선자의 살아온 역정과 주변 인사들의 평가, 정치비전 등을 소개했다. 2012.12.17 타임 홈페이지 캡처. |
그동안 상대 후보 비판에 미온적이던 박 후보는 이날 문 후보를 향해 작심한 듯 “지금 야당 후보는 스스로를 폐족이라 불렀던 실패한 정권의 최고 핵심 실세였다”고 칼을 들었다.
박 후보는 대전역 출정식에서 LTE(롱텀에볼루션) 통신망으로 대전과 서울·부산·광주광역시를 실시간 네트워크로 연결해 생방송 유세 행사를 진행했다. 필리핀 출신의 이자스민(비례대표) 의원이 광주에서, 이준석 전 비상대책위원과 4·11총선 때 문재인 후보와 맞붙었던 손수조 부산 사상 당협위원장이 각각 서울과 부산에서 사회를 맡았다. 이자스민 의원이 광주에 간 건 결혼 이주여성이 호남에 많다는 게 고려됐다.
11/28(수·D–21)
오늘 언론에는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가 박 후보 지지를 고심하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사실 박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이달 초 회동을 갖고 국민통합, 남북문제, 유신체제 정리, 정당개혁, 호남발전계획 등에 대해 의견 일치를 봤다. 사실상 한 전 대표의 박 후보 지지는 거의 한 달 전부터 예정돼 있었던 일이었다. 다만 한 전 대표는 지지 선언 시기를 놓고 고심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11/29(목·D–20)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서울·경인 지역 15군데를 돌며 유세를 벌였다. 박 후보가 유권자들에게 강조한 핵심 메시지는 역시 ‘민생’이었다. 박 후보는 오전 9시30분 여의도 증권거래소 직장어린이집을 방문해 어린이집 원장, 학부모, 어린이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직장과 가정이 잘 양립할 수 있는 그런 정책을 마련했다”며 “여성들이 일과 가정을 행복하고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반드시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5년 전 失政 잊었나” 문 후보에 직격탄
11/30(금·D–19)
박 후보는 부산 사상구 서부버스터미널 유세를 시작으로 이날만 11곳에서 집중유세를 벌였다. 이날 처음으로 현 정부인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 문 후보가 전날 공세의 초점을 ‘박정희 유신정권’에서 ‘이명박근혜’로 바꾸며 현 정부의 민생 실패에 공동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쪽으로 옮긴 데 대한 즉각 대응이었다. 문 후보에 대한 공세 수위도 한껏 높였다. “문 후보는 첫날부터 부산에 와서 미래는 얘기하지 않고 저의 과거사 공격만 늘어놓았다. 바로 5년 전 자신들의 엄청난 실정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30년이 더 지난 과거를 끄집어내 선동했다”며 “무책임한 선동만 하니까 정치가 과거로 돌아가고 국민 삶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12/1(토·D–18)
이번 대선의 가장 큰 격전지인 부산과 경남을 방문했다. 부산·경남의 민심을 돌릴 대책은 그전부터 강구해 왔다. 박 후보는 그것, 즉 해양수산부 부활, 신공항 건설 등을 강조했다. 당협위원장들을 통한 집중적 활동과 후보의 약속으로 냉담했던 PK 민심이 “우리가 남이가”라는 식으로 바뀌고 있음을 감지했다.
12/2(일·D–17)
서울고검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사건과 초임검사의 성추문 사건으로 인해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요구가 거세짐에 따라 박근혜 후보는 이날 오전 9시 강릉시청에서 검찰개혁안 발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후 강릉, 속초, 인제를 잇는 강원 유세전이 펼쳐졌다. 그때였다. 인제 유세를 마치고 춘천으로 향하던 중 홍천군 44번 국도에서 일어난 불운의 교통사고로 인해 박근혜 후보를 14년간 보좌해 온 이춘상 보좌관이 유명을 달리하고야 말았다. 박 후보는 사고 직후 고 이춘상 보좌관의 시신이 옮겨진 홍천아산병원에 도착해 20분간 통한의 눈물을 흘렸고,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 울었다. 캠프와 당은 물론이고 출입기자들까지 침통한 분위기 속에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다들 “우리 마음이 이런데 박 후보 마음은 어떻겠느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운명이란 무엇일까. 원래 이춘상 보좌관은 캠프에 상주하며 SNS 등 홍보 분야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이날따라 박 후보와 함께 강원도를 방문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검찰개혁안 발표 때문이었다. 이를 두고 캠프의 한 국회의원들은 “검찰이 여러 사람 죽인다”고 수군댔다.
12/3(월·D–16)
예비후보 사퇴 후 지방에서 휴식을 취하던 안철수 후보가 서울 종로구 공평동 사무실의 캠프 해단식에 참석했지만, 사퇴 기자회견 때와 다름없이 문재인 후보에 대한 간접적 지지 선언만 했을 뿐 적극적인 지지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문 후보 측은 속이 타들어갔겠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었다.
은지원 선거지원 나서자 ‘얼간이들’의 총체적 공격 시작
12/4(화·D–15)
첫 대선 후보 TV 토론이 있었던 날이다. 후보는 오전에 이춘상 보좌관 영결식에 참석해 그를 ‘눈물’로 보냈다. 1998년 국회 등원 이후 14년간 같이 일한 이 보좌관을 잃은 충격과 그를 떠나 보낸 슬픔으로 박 후보의 컨디션은 말이 아니었다. 캠프 내에서는 후보가 토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첫 TV 토론인 만큼 부담감도 컸다. 하지만 토론이 끝나고 여론은 박근혜, 문재인 후보가 아닌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에게 쏠렸다.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려 나왔다”는 이 후보는 토론 내내 박 후보에 대한 막말 공세를 펼쳤다. 그럼에도 박 후보는 침착하게 대응하며 문 후보의 모호한 안보관을 지적했다. 그는 “참여정부는 5년 동안 한 건의 충돌도 북한과 없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한 문 후보에게 “진짜 평화와 가짜 평화는 구분해야 한다”면서 “퍼주기를 통해서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고 반박하면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든든했다.
12/5(수·D–14)
이춘상 보좌관 사고 이후 중단했던 유세를 재개하면서 호남을 찾았다. 박 후보는 광주, 전남 순천·여수·목포 등 모두 4곳 일정을 소화했다. 그동안 하루 평균 10여 곳에서 유세를 했던 것과 비교해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이 보좌관 사고 이후 일정을 무리하지 않게 조절한 측면도 있지만, 주요 도시를 거점으로 지역민심을 잡겠다는 전략적 판단도 작용했던 까닭이다. 새누리당 불모지에서 “호남의 상처와 눈물을 짊어지고 여러분의 눈물을 닦아드리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대탕평인사, 지역균형 발전을 약속했다.
12/6(목·D–13)
젝스키스 출신 가수 은지원씨가 2012년 12월 6일 경기도 안산 중앙역 앞에서 열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유세에 함께하고 있다. |
실제 지원유세 이후 SNS상에서는 은씨가 MBC <놀러와>와 tvN <세얼간이>에서 하차해야 한다는 공격성 글이 속속 올라왔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정말 우리 사회엔 ‘얼간이들’이 많다.
문재인 첫 부산 유세에 대한 관심 저조로 쾌재
12/7(금·D–12)
문·안이 부산에서 첫 합동 유세에 나섰다. 부산을 선택한 문 후보 측 전략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항이었다. 안테나를 세우고 상황을 파악해 보니 문 후보 측 계산과 달리 부산 시민의 관심이 저조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 자체 여론조사에서도 박 후보와 문 후보 간의 지지율 격차가 줄긴 했지만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이렇게만 가면 된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12/8(토·D–11)
‘광화문 대첩’이 벌어졌다. 사실 ‘광화문 대첩’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당초 박 후보는 주말에 대구·경북 등 지방을 방문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박 후보는 안 전 후보가 문 후보를 전폭 지원하고 나섬에 따라 유권자 수가 가장 많은 서울로 일정을 수정했다.
경찰이 추산한 유세 참여 인원만 놓고 본다면 박 후보가 문 후보에 앞섰다. 박 후보의 유세에는 1만5000명, 문 후보의 유세에는 1만1000명이 운집한 것으로 추산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문 후보의 광화문 광장 유세에 맞불을 놓자는 전략이 나름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 서울로 일정을 수정하긴 했지만, 박 후보는 당초엔 서울광장에서 유세할 계획이었다. ‘정공법’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돼 광화문 광장으로 바꾼 것이다. 잘한 것 같다.
12/9(일·D–10)
특별한 유세일정 없이 다음 날(10일)로 예정된 경제 분야 TV 토론 준비에 전념했다. 캠프에서는 1차 토론회에서 박 후보에게 폭언을 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어떤 식으로 공격할까에 대해 논의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이 후보가 박 후보의 ‘셋째 아이에 대해 대학교 등록금 전액 지원’ 공약에 대해 아이 한 명을 키우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셋째 가지느냐라고 트집을 잡는다면 어떻게 대응하겠느냐는 한 선배의 이야기였다. 참 기발했다. 박 후보는 수치까지 모두 숙지하는 등 토론회 준비를 철저히 했다.
12/10(월·D–9)
경제 분야 TV 토론이 진행됐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다소 누그러진 모습으로 토론을 진행했으나, 독설은 여전했다. 캠프 내부에서는 2대 1의 승부였으나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 후보가 이정희 후보의 공격에 재반격하거나 27억원 먹튀 발언 등 강공을 펼치기도 했기 때문이다.
문 후보의 ‘국정원’ 헛발질로 고비 넘겼다 판단
12/11(화·D–8)
민주당과 문 후보 측은 국정원 심리정보국이 직원들을 동원해 문재인 후보 비판 댓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국정원 여직원의 숙소 앞에 진을 치고 그녀를 감금했다. 깜짝 놀란 캠프에서는 사실 여부 확인에 나섰지만, 허위 사실인 것으로 파악돼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문 후보 측은 정운찬, 고건, 이수성 전 총리가 문 후보를 지지한다고 발표했다가 고건 총리가 “나는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망신을 당했다. 또 캠프에서는 문 후보 측의 정운찬 전 총리 영입이 큰 패착이라고 분석했다. 정 전 총리는 이명박 정부에서 충청의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에 대한 수정을 주도하며 박 후보와 대척점에 섰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충청에서 박 후보에게 밀리고 있던 문 후보가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 원칙도 없이 정 전 총리를 영입하면서 충청의 표심이 문 후보로부터 돌아서게 하였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이날은 북한이 미사일을 기습발사한 날이기도 한데 이명박 정부의 안보 무능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컸으나, 북한의 도발은 보수층이 결집하는 효과를 낳게 했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12/12(수·D–7)
선거 일주일을 앞두고 SNS와 인터넷을 중심으로 박근혜 후보를 음해 비방하는 각종 마타도어가 난무했다. ‘나꼼수’는 “박근혜 후보가 정수장학회 문제 해결을 위해 1억5000만원짜리 굿판을 벌였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과 함께 사진을 퍼뜨렸다. 이 사진은 2009년 충북 옥천에서 개최된 육영사 여사 탄신제 행사 사진이었으며, 박 후보는 전혀 굿을 한 사실이 없었다. 나꼼수를 중심으로 한 마타도어가 시작되면서 캠프에도 비상이 걸렸다. 종합상황실을 중심으로 실시간 검색과 함께 대응전략 마련, 고발 등 법률대응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12/13(목·D–6)
민주당이 이틀째 국정원 여직원을 감금하면서도 아무런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민주당이 정확한 근거도 없이 무리한 공작을 벌였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결국 자신들이 친 덫에 스스로 걸려들고 만 것이다. 속으로 이제 승기(勝機)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아군이 잘해서가 아니라 적군의 실수 때문이었다. 민주당 그렇게만 해라. 총선 때도 민주당의 실수가 많았는데 이번에도 결국 우리를 도와주는구나 생각했다.
12/14(금·D–5)
SNS를 통한 흑색선전이 난무했다. “TV 토론 때 커닝을 했다”, “박근혜 당선되면 초등학생 밤 10시까지 학교 남는다”, “박근혜 숨겨놓은 사생아 전격공개”, “박근혜 당선되면 여론조사회사 사장에게 5억 주기로 했다”는 음해성 글이 엄청났다.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음해와 비방으로 제때 대응할 틈도 없이 허위사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퍼져나갔다. 그제야 캠프 내에서 “우리가 너무 안주했다. 몸을 사린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우리 캠프에는 흑색선전이나 네거티브가 아닌 정확한 근거에 기반을 둔 문 후보 검증자료가 있었지만, “네거티브를 자제해 달라”는 안대희 정치쇄신위원장과 지도부의 뜻에 따라 미처 써보지도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흑색 네거티브를 올라타고 문 후보의 지지추세가 상승하면서 이러다가 역전당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도 팽배했다.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나왔지만 후보와 안대희 위원장이 워낙 확고한 입장이어서 아무도 “써먹자”는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생애 제일 많은 눈물을 흘린 12·19
12/15(토·D–4)
오후 3시 삼성동 코엑스몰 피아노 광장에서 서울 지역 합동 유세를 펼쳤다. 문 후보는 광화문에서 유세했다. 문 후보 유세에서는 안철수가 ‘깜짝 등장’했다. 안철수는 민주당을 상징하는 노란색 목도리를 두르고 나왔다. 그는 연단에서 마이크를 잡고 “제가 왜 여기 왔는지 아십니까,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지 아십니까?”라고 물었다. 지지자들이 “문재인”이라고 하자 “여러분을 믿겠다”고 말했다. 표심이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데, 초조했다. 캠프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고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12/16(일·D–3)
나꼼수는 어이없는 마타도어로 대선판을 저질스럽게 끌고 갔다. 2012년 3월 13일 오전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패널 김용민씨가 중앙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
12/17(월·D–2)
경찰 중간 수사결과 국정원 여직원이 문 후보의 댓글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안철수 ‘깜짝 등장’ 효과를 충분히 상쇄시켜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됐다. 희망의 빛이 보였다. 여론조사 결과가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불안이 가중된 가운데, 숨은 표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12/18(화·D–1)
후보는 최대 격전지인 경남 창원과 부산을 시작으로 대전에서 서울로 향하는 경부선 상행선 유세를 가졌고, 문재인 후보는 경부선 하행선을 선택했다. 캠프 내부에서는 “후보는 부산의 지지를 시작으로 청와대로 향하는 코스를 선택한 반면, 문 후보는 서울에서 패배인사를 하고 고향으로 향하는구나”하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운동 마지막 날 박 후보의 유세장에 모인 인파는 실로 엄청났다. 오후 3시임에도 부산역 광장에는 경찰 추산 2만4000명의 인파가 모여들었고, 한 노모는 박 후보의 유세버스에 당선기원 엿을 붙이고 기도를 하는 모습까지 사진에 찍혔다. 광화문 광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지자들이 보여준 열정이 투표에서 그대로 이어지리라, 기도했다.
12/19(수·D–Day)
아침에 투표장으로 갔다.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분들이 좀 더 많았다. 괜한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오전 출구조사 결과 1.5%p 가량 박 후보가 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에서는 “허위사실”이라고 단속에 들어갔지만, 충격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출구조사 발표 직전인 오후 5시40분쯤 50.1대 48.9로 박 후보가 앞선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개표가 끝나기 전까지 확신할 수 없는 수치였다. 불안했다. 3시간쯤 지났을까. KBS의 당선 예측시스템인 ‘디시전 K’를 통해 처음으로 ‘박근혜 당선 유력’이란 글귀가 화면에 나타났다. 8부 능선을 넘었다는 판단이 섰다. 오후 11시51분 광화문 광장에서 박 후보는 당선인사를 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이란 말이 떠올랐다. 난 TV를 보다가 돌아섰다. 쏟아지는 눈물, 눈물…. 왜 울지. 바보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