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한국의 경찰관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희대의 살인마. 통칭 우순경으로도 불리며,
그가 저지른 사건을 우순경 사건이라고도 한다.
*부산시 동구 초량동에서 경찰관의 네 아들중 셋째로 태어난 우범곤은 어린 시절은 별 다른 말썽없이 평범하게 보냈다.
경찰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장차 경찰관이 되어 아버지처럼 권총을 차고 일하겠다고 뽐내기도 했다고.
*고교 3학년때 아버지가 진급을 앞두고 대장암으로 병사하면서 가세가 기울자 우범곤은 성격 자체가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우범곤은 경찰관이 되어 초임지인 부산 남부경찰서 감만2 파출소에서 근무할때 부터 피의자들을 함부로 다루거나 윽박지르는등
포악한 성격을 드러냈다고 하며, 당시 함께 근무한 파출소 순경에 따르면 평소 유순하다가도 술만 마시만
성격이 난폭해져 꼭 무슨 사고를 내고야말 사람 같았다고 한다.
*서울시에서 근무하다가 경상남도 의령의 궁유 지서로 전출된 것도 성격이 거칠어 근무 부적격자의 판단을 받았던 탓이며, 전출된 후에도 술만 마시면 행패가 심해 '미친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궁유 지서로 전근온 뒤 2월부터 하숙을 하던 우범곤은 이웃집에 살던 전(田)양과 사귀게 되었고
3월초부터 전양의 집에서 동거생활을 한다. 동거에 들어”� 전에 전양의 부모는 결혼한뒤 함께 살라며 만류했지만
우범곤이 결혼비용이 없다며 가을에 식을 올리기로 하고 당장 혼인신고부터 하겠다고 고집했다.
가뜩이나 집안이 가난해 늘 열등의식에 젖어있던 우범곤은 식도 올리기전에 여자집에 얹혀살게되면서
자신의 무능함에 심각한 컴플렉스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1982년 4월 26일, 우범곤은 그날 저녁시간 근무를 위해 낮 12시경 집에 들어와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동거녀가 몸에 붙은 파리를 잡아주기 위해 손바닥으로 가슴을 치자 이를 계기로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오후 4시경 지서로 간 후 저녁 7시 반경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왔다.
만취한 그는 주먹으로 코피가 날 정도로 동거녀를 폭행했고 같은 집에서 살고 있던
동거녀의 친척언니가 뛰어와 말리자 친척언니의 뺨마저 때리며 닥치는대로 두들겨 부수는 등 난폭하게 굴었다.
이때 동네사람들이 몰려들어 동거녀를 두둔하자 우범곤은 다시 집을 나갔다.
*지서로 향한 우범곤은 예비군 무기고에 보관되어 있던 카빈 소총 2개, 실탄 180발, 수류탄 7개 등을 탈취했다.
[사건일지]
· 밤 9시 40분 - 지서를 나온 우범곤은 마침 앞을 지나던 20대 남자에게 총을 쏜 것을 시작으로 궁유면 토곡리 시장으로
달려가 총을 난사하여 장을 보러온 마을주민 3명을 살해했다.
· 밤 9시 45분 - 마을의 통신을 차단하기 위해 궁유 우체국으로 가서 교환원 2명[1]과 숙직 중이던 집배원 1명을 살해.
· 밤 10시 - 압곡리 매실부락으로 가서 10여 분간 총기를 마구 난사, 주민 6명을 살해했다.
· 밤 10시 10분 - 운계리 시장으로 달려가 주민 7명을 살해했다.
· 밤 10시 50분 - 상갓집에 난입하여 “비상이 걸렸다”고 말하고
문상객들과 어울려 10여 분간 술을 마신 뒤 갑자기 총을 난사,
12명을 순식간에 살해하고, 불 켜진 집을 찾아다니며 총을 난사하여 이곳에서만 무려 23명을 살해했다.
· 다음날인 27일 새벽 5시 35분 - 평촌리 마을에 다시 나타나 한 민가에 침입,
일가족 5명을 깨운 뒤 갖고 있던 수류탄 2발을 한꺼번에 터뜨려 그 자리에서 우범곤을 포함해 4명이 폭사했다.
*사건이 나고 40분 뒤에 신고를 받은 경찰은 26일 밤 10시 넘어서부터 우범곤을 뒤쫓았으며
마을주민들을 대피하도록 하는 한편, 범인 우범곤은 발견 즉시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범행을 저지시키지도 못 했고 인질을 데리고 자폭할때까지 속수무책 상태였다.
*이처럼 의령군 일대 4개 마을을 거의 쓸다시피 살인을 저지르다보니 조상대대로 친척 일가가 모여 사는
산골마을의 특성상 상당수의 집안이 줄초상이 났으며 일가족이 사망하거나 혼자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나머지 가족은 변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우체국에서 숙직하다 참변을 당한 집배원의 경우에는 부인마저 집에서 우범곤에게 살해당하는 바람에
이 집의 세 남매는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되는 비극이 생겼으며,
가장 처음으로 살해당한 청년과 우체국에서 살해당한 교환원 아가씨는 미혼으로 사망한 것을 비통하게 여겨
유족들끼리 합의하에 영혼결혼식을 올리는 등 안타까운 사연이 생기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주민 62명이 사망했고 부상자도 33명이 나왔다.
*우범곤은 사법기관에 의해 기록된 최단시간 최다살상의 살인마로 기네스북에 올라가 있다.
*당시 사건 진압이 미흡했단 이유로 전두환 정부에 대한 내각 사퇴 압력이 있었으며
이 사건으로 노태우가 내무부 장관에 오를 기회를 잡기도 했다.
우범곤 사건으로 경찰쪽 높으신 분들은 대부분 사퇴했고, 내무부 장관이던 서정화도 경질됨.
첫댓글 난 건망증이 있나봐 생각이 안나서
메스컴에 떠들석 했을 텐데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아구무시라 이런사람 볼가봐 겁나네
여러사람이 희생 당했나봐 경찰 들은
무얼하고 잇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