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축제인가
최 화 웅
우리가 무심코 쓰는 일상의 말과 글에 일본말 찌꺼기가 많다. 우리네 전통과 역사, 문화를 반영하는 잔치를 축제라고 잘못 쓰는 일부터 살펴보자. 그것도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더욱 심하고 학계와 문학계는 입을 다물고 있다. 겨레의 오늘이 있게 한 나라말이 수난을 당하는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왜 그토록 무심한 것일까? 나라말을 지킨 민족이라야 영원히 살아남았다는 역사의 가르침을 되새길 때다. 이 문제는 한글학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온 국민의 과제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통해 평화통일을 꾀하고 일본제국주의의 상징, 욱일기를 배척 배격한 현상과『친일인명사전』을 만드는 노력 못지않게 우리가 나라의 근본을 반듯하게 세우는 길은 겨레의 말과 언어를 지키려는 의지와 노력이다. 나라말이 살아야 겨레의 얼이 제대로 꽃피지 않을까?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지역과 마을 마다 계절 따라 다양한 행사와 잔치가 경쟁적으로 열리고 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축제로 마을은 온통 시끌벅적하다. 그런 현상을 두고 한편에서는 경제에 활력을 주고 삶의 의욕을 북돋운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그러나 행사와 잔치의 이름이 우리의 삶과 생각과 너무나 먼 거리에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축제’다. ‘축제’는 계절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열린다. 부산의 경우 해마다 해맞이 축제를 시작으로 봄이면 낙동강 유채꽃 축제와 부산항 축제, 기장의 멸치와 골목길 축제가 열리고 여름에는 자갈치 축제와 해운대 모래 축제, 공설해수욕장을 무대로 바다 축제와 내사랑 부산 축제, 가을에는 기장 파전 축제와 정관 생태하천 학습문화축제, 부산 예술제와 부산국제영화제, 부산불꽃축제가 이어져 바다로부터 하늘까지 폭넓게 펼쳐진다. 그밖에 무용제와 가요제에 요산 문학제와 향파 이주홍 문학제와 대학가의 다양한 축제가 쉼 없이 이어진다. 이에 따라 부산시에는 부산문화관광축제조직위원회가 결성되고 대선주조가 이번 부산불꽃축제에 3억 천오백만 원을 후원했다는 뉴스가 나돌고 있다.
‘축제’는 우리말이 아니다. 국립국어원의『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축제’는 “축하해서 벌이는 큰 규모의 행사.”로 풀이하고 “‘축제’를 ‘잔치’, ‘축전’으로 순화”해 써야 한다고 권하고 있다. ‘축제’의 사전적 의미는 “축하와 제사를 통 털어 이르는 말”이다. 서울대학교 출판부가 펴낸 박용수의『겨레말 갈래 큰사전』에는 9만여 개가 넘는 우리 고유어를 수록하고 있으나 ‘축제’는 찾아볼 수 없다. 고유한 우리말에 ‘축제’라는 말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일 년에 1,000여 건이 넘는 각종 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 국적 불명의 ‘축제’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그 뿌리는 일본식민지배의 잔재를 깔끔하게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 그 텃밭이다. 올해로 스물한 번째 열린 요산문학축전을 비롯한 향파 이주홍문학제가 축전으로 이름을 바꿨다. 다행한 일이다. 부산의 큰 연례행사인 부산불꽃축제는 올해 열네 번째를 맞고도 아직껏 축제 타령이다.
‘부산불꽃축제’는 우선 이름이 행사의 의미와 다른 말이다. ‘부산불꽃축제’을 계속하려면 이름부터 ‘부산꽃불잔치’로 바꿔야한다.『겨레말 갈래 큰사전』을 찾아보면 ‘축제’라는 말은 아예 없고 ‘불꽃’은 “방전할 때 일어나는 불꽃(스파크)”이나 “촛불이나 등잔불 같은 것이 탈 때 일어나는 불빛을 띤 것”이라고 풀이했다. 꽃불은 “밤하늘에 흩어져 날리게 한 여러 색깔의 무수한 불덩어리”라고 하고 “축하의 뜻으로 밤하늘에 쏘아 올려 흩어져 날리게 하는 여러 색깔의 무수한 덩어리‘라고 풀이하고 있다. 제사 ’제(祭)‘자는 일본에서 이름씨(명사)에 붙어 의식, 축전의 의미를 더하는 뜻으로 흔히 ’festival'의 의미나 ’축제‘나 ’사육제‘로 쓴다. ’제‘자를 외래어로 기어이 써야겠다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인(義人)을 기리는 행사면 모를 일이나 제사를 받을 주체도 없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문화예술행사에서 ’축제‘를 가져다 쓴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는 일이다. ’잔치‘나 ’향연‘, ’한마당‘으로 고쳐 써야할 것이다.
나아가서 나는 ‘부산불꽃축제’를 처음부터 반대했다. 그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하룻밤에 날려 보내는 국가예산과 기업지원금이 그 얼마이며 미세먼지에 다한 갖가지 발암물질로 나쁜 공기층을 형성하고 시끄러운 밤을 지내야 하는 말하지 않는 시민의 고통 때문이다. 계절 따라 마을마다 유령같이 떠도는 ‘축제’를 정리하고 ‘잔치’와 ‘한마당’으로 제 이름을 찾아주는 일이 시급하다.『겨레말 갈래 큰사전』에 ‘잔치’는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에 음식을 차리고 손님을 청하여 즐기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국어학자나 한글학자가 아니다. 그러나 말하고 글을 쓸 때 겨레말을 지키려는 정신으로 살아온 방송기자 출신이다. 우리의 일상생활, 산업, 기술, 법조계와 학술분야는 물론 심지어 학교 강단과 신문, 방송, 잡지 등 언론매체에서 알게 모르게 함부로 쓰고 있는 일본어가 국민정신을 좀먹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더럽힌다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한다. 독도문제나 욱일기를 내세운 일본에 대한 과거의 원한 못지않게 우리의 말과 글을 더럽히고 있는 일본어의 청소에 온 국민이 떨쳐나서야할 때다. 나는 평소 우리말 사랑에 전념하는 한글학자 류영남 동인에게 이 글을 먼저 전하고 싶다.
첫댓글 국장님 저는 모르고 따라 썼는데 쓰면 안되는 말이군요.
감사합니다.
따라 하다가는 큰 일 난답니다.
나의 선택이고 책임이지요. ㅋㅋㅋ
잔치, 한마당, 놀이.....참 좋은 우리 말들이 있는데
영어나 외래어도 너무 쓰는 것 같아요
식민지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