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23.
황금빛으로 출렁거리던 들녘은 미용실에서 바리캉(barikan)으로 머리를 밀듯
트랙터로 추수하는 농민들이 반듯한 무늬를 만들며 텅비어간다.
초록으로 꽉 찼던 산은 구린내 나는 사람들이 설치한 태양광 집열판으로 채웠고
한쪽은 캐다만 나무뿌리가 황토 사이로 흉물스런 모습을 보이며 배를 내밀었다.
세상과 자연의 법칙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우주 만물은 항상 생사와 인과가 끊임없이 윤회함으로 한 모양으로 머무르지
않고 변한다.
따라서 자연은 생육성쇠멸(生育盛衰滅)이란 과정에서 쇠(衰)를 향해 달려가고,
인간세상은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세상의 법칙을 모르는 자들이 태양광 사업의
이권에 악귀(惡鬼)같이 대들어 국민이 낸 세금을 빨아먹고 있으니 정권이 바뀌면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적폐청산 및 척결대상이 되어 감옥에 갈 것인가.
문득 '바다이야기'와 IT의 위장된 벤처로 사업자를 행세하며 온갖 세금을 빼먹다
감옥에 간 사람들이 생각난다.
11;00
금년엔 태풍이 많이 와 채소농사는 망쳤지만 대신 과일농사가 대풍이라고 한다.
사과는 현지에서 작년의 10/1~3/1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졌고,
대추·감·밤이 풍성하게 열렸으며 산에선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 요란하다.
감의 고장 정읍·장성으로 들어서며 주렁주렁 열린 감 냄새를 맡는다.
감은 명태와 같이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다.
덜 익었으면 땡감, 나무에서 익으면 홍시, 따서 익히면 연시, 소금물에 담가 익히면
침시, 말리면 곶감, 덜 말리면 반건시, 잘라 말리면 편시 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감이 땅바닥에 떨어지며 붉은 피를 흘렸다.
산이 비어가고 들판이 비어가면 나도 비어가야 하는데
나는 나 자신을 비우려 노력했던가, 나는 비어졌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여행 작가 '손미나'가 KBS TV 아침마당에 출연하여 담담하게 말한다.
어느 여행지에서 만난 가이드 할머니가 "Are you happy?"라고 묻는 바람에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가슴속 내면에 깊이 감춰 두었던 행복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하고 찾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행복에 대해서 나는 이 나이가 되었어도 정확히 말을 할 수가 없다.
예전에는 노년(老年)의 행복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
어느 때는 아무 근심걱정 없이 사는 게 행복이라 했고, 아프지 않고 신나게 지내는 것도
행복이라 했다.
젊은 시절 꿈을 제대로 쫒지 못하고 아등바등 살다보니 어느새 머리가 희끗한 황혼이
찾아왔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즈음이 되니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 이 이 순간에도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가고 한번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멈추지도 더디게 흘러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백두대간 금대봉~매봉산 구간을 종주할 때 친구가 '지금 이 시간이 내 생애 가장 젊고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는데, 방송에서 손미나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한 번 행복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요즘 행복의 타이밍(timing)을 고쳤다.
그동안 노년의 행복을 희원(希願)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살았는데,
이젠 현시점에서 행복을 찾고 현재의 행복을 누리려고 행동을 하는 거다.
물론 어느 게 맞는지 인생엔 정답이 없겠지.
11;20
따라서 지금의 행복을 찾으려 내장산 국립공원에 포함된 입암산(笠岩山)을 찾았다.
산행 기점이 남창골이라기에 문득 적상산 서창(西倉)이 생각나 관리소 직원에게
예전 창고가 어느 곳에 있어 남창(南倉)골이냐고 문의를 하니 우물쭈물하며 답변을
하지 못한다.
호남은 곡창지대임과 동시에 많은 산이 있다.
지난 10년 동안 덕유산, 지리산, 모악산, 진악산, 회문산, 장안산, 금원산, 기백산, 삿갓봉,
백아산, 무등산, 방장산, 백운산, 천관산, 조계산, 안수산, 강천산, 변산, 백암산, 내장산,
두륜산, 마이산엘 올랐다.
전라도 지방의 알려진 산 중에 웬만한 산은 거의 다 오른 셈인가.
나는 호남에 있는 산에 오를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한다.
호남은 강원도보다 더 험한 산세에 걸맞게 걸출한 인물이 많이 태어난 곳이다.
탁 트인 들판은 호남평야로 불리고 어쩌다 나오는 산은 기골이 장대하다.
이런 지세를 타고 호남에선 많은 인물이 나왔고, 사상도 나오고, 동학혁명도 나오고,
11·3 학생의거도, 계급투쟁도 나왔다.
예술혼이 뛰어난 고장이라 예로부터 예인(藝人)이 많이 태어났고,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을 때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뛰어나와 목숨 걸고 피로써
항거를 하고 나라를 지킨 곳이다.
전국 최대 규모의 의병을 일으켜 처절하게 구국항쟁을 했던 호남,
이들은 규모나 활동범위에서 다른 지역과는 큰 차이를 보여 주었다.
대부분의 의병이 자기고을을 기준으로 지키고자 활동한 반면 전라도 의병은 전라도뿐만
아니라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를 막론하고 국가방위를 목표로 하여 활동했는데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직전에 발생한 기묘사화와 정여립의 반역사건으로 '반역의 고장'이라는
오명을 낙인(洛印)받았는데 지금까지 그 영향이 남아있어 안타깝다.
인문학 강의에서 강사가 홍의장군 '곽재우' 의병장을 논한다.
일본이 쳐들어오자 의병들은 조총을 가진 일본병사의 기에 눌려 소극적으로 활동하였는데,
곽재우 장군이 본보기로 일본포로의 심장을 꺼내 구워먹으면서 일본병사도 똑같은 사람이라고
하며 용기를 준 사례를 보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용기를 낸 의병들이 봉기하기 시작하였다고
강사는 말한다.
이를 계기로 광주에서 태어난 고경명(高敬命) 의병장이 6천여 의병을 거느리고
전주를 지나 금산성에 주둔한 왜적을 공격하다 아들 고인후와 함께 순국하였으며,
나주 사람 김천일(金千鎰)은 수백의 의병을 이끌고 수원에서 강화도로 진군하였으며,
이후 진주성을 사수하다가 성이 함락되자 아들 상건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장렬히
순국하였다.
광주에서 출생한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은 담양에서 3천 의병을 일으켜 장문포, 의령
등에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나중에 동학란과 관련이 있었다는 충청도 관찰사 종사관
신경행의 밀고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사를 당했다가 현종 2년에 명예가 회복 되었다.
화순 출신 최경회(崔慶會) 의병장은 금산으로 달려가 고경명이 전사하자 나머지
의병을 수습하여 장수, 진주, 개령에서 왜적을 격퇴하였고, 이후 진주성을 사수하다
함락되자 김천일 장군과 같이 남강에 몸을 던졌다.
또한 고경명의 아들 고종후(高從厚)는 아버지와 동생이 금산성에서 순국하고 진주성이
함락되자 최경희와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순천 출신 장윤(張潤)은 300여 명의 의병으로 진주성에서 들어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순국하였으며,
남원 출신 황진(黃進)은 수원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고부 출신 김제민(金齊閔)은 정유재란 때 해남에 상륙하는 적을 무찔렀고,
보성 출신 임계영(任啓英)은 하동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남원 출신 변사정(邊士貞)은 순천에서,
나주 출신 임환은 순천에서 공을 세웠으나 무고로 파직되었다.
장성 출신 변이중(邊以中)은 의병 수천 명과 무기를 동원하여 수원, 경기도 지방, 양천에서
전과를 올렸으며 특히 화차 300량을 만들어 그중 권율 장군에게 40량을 보내 행주대첩에서
큰 공을 세울 수 있게 도왔다.
호남은 많은 인재와 호국의 장재(將材)를 배출한 고장이건만
기묘사화와 정여립의 반란으로 후세까지 반역의 땅으로 찍혀 보수정권에서 호남 인사들이
홀대를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현 정권의 요직은 다 차지했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죄인들은 평안도 강계가 아니면 으레껏 전라도로 귀양을 보냈다.
당시 죄를 지었던지, 사색당파 싸움에 모함을 당해 귀양을 갈 정도라면 우수한 인재임엔
틀림없다.
이들의 후손이 지금도 반골정신을 가졌음을 타 지역 사람들은 이해를 하여야 하나
타 지역과 여론조사 결과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때는 나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11;40
입암산은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내장산 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숨겨졌던 입암산의 존재를 2011년 2월 23일 백암산
(白巖山)을 등산할 때 처음 알았다.
꽤 오래전 어느 책에선가 내장산 단풍에 대해 평(評)을 쓴 글을 읽었다.
그 필자는 내장산 단풍은 인위적인 요소가 많고, 백암산은 식생구조가 가장 다양한 산이며,
자연스런 단풍은 입암산이 단연 뛰어나다고 평을 쓴 글로 기억된다.
지도상에서 우측 상단은 내장산이요, 중앙 하단은 몇 년 전 산행을 했던 백암산이고,
우리가 오늘 오를 입암산은 좌측상단이다.
입암산 정상인 갓바위까지 5.5km요, 하산길은 4.8km로 10.3km나 되는 긴 거리라
제법 발품을 팔아야겠다.
갓바위 코스 탐방인원을 하루 400명으로 제한하였으나, 오늘은 인원이 많지 않아
인적사항만 기재하고 통과를 시킨다.
산은 정적에 쌓였다.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까마귀가 까악 대자 직박구리가 덩달아 운다.
지난달에 올랐던 문경 황장산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침묵의 산'이라
표현했는데 오늘은 소리가 들린다.
그때는 조국 법무장관 임명 건으로 가슴속이 답답해서인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오늘 위선(僞善)의 천재인 부인 정교수가 구속되었다는 소식에 속이 후련해지며 이제
자연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동안 겉으로는 초연물외(超然物外)한 척을 했지만 국민이 양분되는 소동을 겪으며
멘탈(mental)이 붕괴되었기에 자연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진실이 낱낱이 파헤쳐지는 현실앞에서 불쑥 치밀어 오르는 화는 나쁜 것인가.
끊임없이 의심하고 옳고 그름을 따져야하는 내가 바보인지도 모르겠다.
이 길을 걷는 나는 누구인가 다리를 건너며 천천히 생각해본다.
나는 2.5cm짜리 뇌종양을 달고 산다.
물론 악성이 아니고 종양의 성장이 멈춘 상태에서 진행이 되지 않아 정상생활을 한다.
오늘 구속된 정경심이라는 교수가 정형외과에서 '뇌종양 진단서'를 발급받아 건강상의
이유를 댔다는데, 이를 북한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삶은 소대가리도 웃겠다.'
어느 정형외과 의사는 MRI를 찍어도 뇌종양 판독을 할 능력이 없다고 한다.
정말 정형외과에서 진단서를 발급 했다면 이 의사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의사이거나
아니면 전지전능한 슈퍼맨으로 신의 영역에 도전하였으니 분명 노벨의학상 수상감이다.
위선도 모자라 거짓으로 포장하여 언제까지 국민을 우롱할 것인가.
이런 뉴스를 안보려해도 전 매스컴이 보도를 하니 안볼 방법이 없다.
11;45
계곡 중간에 사각형 바위가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29년 산판일을 하던 일본인 '소심소삼랑'과 우편국장이던 '송정행삼랑'이
자신들의 공덕을 찬양하는 내용을 생긴 불망비(不忘碑)라는데 글을 확인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암행어사 박문수와 이건창을 기리는 불망비를 송파대로와 모도(矛島)에서 만났는데
뜻밖에도 일본인 불망비가 이 산속에 있다니 마음이 아프다.
굳이 읽으려 하면 못 읽을 리 없건만 불망비를 보면 스트레스를 받을 거 같아 그냥 산길을
오른다.
조선시대 암행어사 중 가장 인기를 끈 암행어사는 영조시대 박문수, 정조시대 정약용,
고종시대 이건창 등이 꼽히는데 불망비는 대개 백성들이 감동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뜻밖에도 일본인 스스로 만들고 새긴 불망비를 처음 접하니 다소 당황스럽다.
조국 부부의 행태를 보며 요즘 사람에 대해 혐오증이 생겼는데, 하늘을 찌르며 서있는
'삼나무'가 피튼치드를 내보내며 마음을 다스리게 한다.
장성은 편백나무가 많은 고장이다.
축령산의 편백나무, 방장산의 편백나무숲이 그리워진다.
일본은 자기네 나라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피톤치드를 많이 방출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측정해보니 대관령에서 자라는 소나무가 훨씬 더 많이 피톤치드를
뿜어낸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학자들은 입암산과 2011년에 올랐던 백암산의 식생구조가 매우 다양하다고 했다.
불과 20여분 오르며 서어나무, 산딸나무, 이팝나무, 느티나무, 물푸레나무, 말채나무,
검팽나무와 쭉쭉 뻗은 삼나무를 만났는데 계곡에 걸친 다리를 건너면 또 어떤 나무를 만날까.
태풍을 거치며 꽤 많은 비가 내렸는데도 계곡은 말라 물소리가 사라졌다.
산속에선 크고 작은 폭포수가 귓전을 어지럽게 해야 제격인데 물소리는 들리지 않고,
허공에서 들리는 까마귀 소리에 만족해야할 모양이다.
산에서 산의 소리는 특별한 게 아니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가 들리면 그게 바로 자연의 소리이다.
나는 요즘 하늘의 소리, 구름소리, 나무들의 소리, 가을꽃 피는 소리를 들으려 애쓴다.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는 나무의 소리요, 까마귀는 새소리요, 구름소리는 바람을 타고
내려와야 하는데 바람이 없는 날이라 천상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12;11
최근 조국 법무장관으로 인해 인간과 사람의 품위가 현격히 떨어졌다.
조선시대 3대 간신을 유자광, 임사홍 부자(임숭재), 김자점을 꼽는다.
주지훈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간신'을 OCN채널에서 최근 다시 보았다.
간신(奸臣)들에게 휘둘려 흥청망청하는 연산군을 시해(弑害)하려다 실패한 여인이
국청(鞠廳)에서 연산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