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을 더 어려워할 때가 있다.
잘못에는 이유를 붙이고, 실패에는 핑계를 찾으며, 불편한 현실 앞에서는 내일을 기약한다.
그렇게 자신을 이해시키는 동안 행동은 달라지지 않고, 변명만 점점 능숙해진다.
해야 할 일을 알면서도 미루고, 화가 날 때마다 상대에게 책임을 돌리며,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말한다.
남의 잘못은 쉽게 지적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에는 너그러운 이유를 붙인다.
이러한 태도가 반복되면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는 사라지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일만 익숙해진다.
습관의 무서움은 잘못을 반복하는 데만 있지 않다. 반복하는 동안 자신의 잘못을 더 이상 잘못으로 여기지 않게 되는 데 있다.
처음에는 마음에 걸렸던 행동도 거듭되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고,
마침내는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조차 돌아보지 않게 된다.
(법구경) 제21게송에서 말씀하셨다.
Appamādo amatapadaṃ, pamādo maccuno padaṃ.
아빠마도 아마따빠당, 빠마도 맛쭈노 빠당.
“불방일은 불사의 길이며, 방일은 죽음의 길이다.”
방일(放逸)은 단순히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살피지 않고, 해로운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태도와도 관련된다.
화가 난다고 화가 시키는 대로 말하고, 욕망이 일어난다고 욕망을 따라가며,
잘못을 알면서도 익숙하다는 이유로 되풀이한다면 그 마음은 점점 괴로움을 낳는 방향으로 기울게 된다.
물론 쉬는 것 자체가 방일은 아니다.
지친 몸을 쉬게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휴식이 회복을 위한 것인지, 해야 할 일을 피하기 위한 것인지 살피지 않는 데 있다.
화가 일어나는 것 역시 그 자체로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으로 옮긴다면,
순간의 감정은 오래가는 괴로움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눈앞의 편안함은 즉시 주어지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뒤늦게 찾아오곤 한다.
미루면 당장은 부담을 피할 수 있고,
남을 탓하면 자신의 책임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며,
분노를 쏟아내면 순간적으로 속이 시원할 수 있다.
그러나 피한 문제는 남아 있고, 상처 입은 관계에는 흔적이 남으며,
반복된 선택은 마침내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정진(精進)은 자신을 무조건 몰아붙이는 일이 아니다.
해로운 마음과 행동을 줄이고 선한 마음을 기르며,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려는 자신을 알아차려 바르게 돌리는 노력이다.
수행은 특별한 장소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변명하고 싶은 순간에 자신의 책임을 살피고,
화를 내기 전에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며,
미루고 싶은 일을 바르게 시작하는 데서도 수행은 이루어진다.
오래된 습관은 한 번의 결심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마음이 하던 대로 움직이려는 순간 알아차림이 일어나면, 그 습관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열린다.
방일은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멈춘 채 해로운 습관에 삶을 맡기는 것이고,
불방일은 지금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살피며 괴로움의 원인을 줄여 가는 것이다.
파멸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만이 아니다. 잘못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바꿀 수 있으면서도 미루며,
자신을 정당화하는 선택을 거듭하는 가운데 조금씩 길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 길을 멈추는 시작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정직하게 살피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반복해 온 잘못을 더 이상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모든 존재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모든 존재가 원한과 미움 없이 평안하기를!
모든 존재가 지혜와 자비를 기르며 참된 행복에 이르기를!
삽베 삿따 바완뚜 수키땃따.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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