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17. 성탄 특별 큐티
이사야 40:10 ~ 17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을 보라
관찰 :
1) 강력하게 다스리실 여호와를 보라
- 10절.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 백성을 위로하라 명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문제가 아닌 여호와 하나님을 묵상하고 바라볼 것을 명령하고 있다. 하나님은 강한 자로 임하실 분이시다. 하나님은 권능의 팔로 개인과 민족과 역사를 주관하실 분이시다. 오직 하나님이 선악간의 모든 일에 대한 상벌을 내리실 분이시다. 세상을 참으로 심판하실 하나님이시기에 그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위로를 얻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 11절.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 선한 목자로서의 하나님의 이미지는 목축을 삶의 주업으로 삼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중요한 이미지이다. 선한 목자는 양 떼를 위해서 목숨을 건다. 그것을 이스라엘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은 선한 목자와 같이 자신의 양 떼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서 풍성하게 먹이시는 분이시다. 날마다 양의 문으로 양들을 지나가게 하시며 자신의 양들을 품에 안아주시는 분이시다. 새끼들을 젖먹이는 암컷들을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선하게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와 같이 예민한 백성들일지라도 안전하게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그런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진정한 위로를 얻게 됨을 말씀하고 있다.
2)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을 보라
- 12절.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볼 것을 명하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해서 거론하고 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시냐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하나님으로 인해서 위로받고, 하나님의 장중에 속한 것이 얼마나 안전한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크심을 묵상하게 하고 있다. 바닷물을 측량하고, 하늘을 재는 것은 당시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땅의 무게를 재고, 산들과 언덕을 저울로 재는 것 역시 당시의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는 영역에 대해서 말하고자 함이다. 오늘날 비록 과학이 발달해서 바닷물을 척량하고, 하늘의 넓이를 재고, 산과 언덕의 무게를 측정할 수 있다고 해도, 여전히 할 수 없는 영역들이 존재한다. 이사야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크심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지, 바다를 척량하고, 하늘을 재고, 산과 언덕의 무게를 측량할 수 있다면, 그런 존재가 하나님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 13절.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 하나님을 가르칠 수 있는 존재가 없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상담자가 될 수 있는 존재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스승이 필요하고, 그 어떤 지혜자라 해도 모사가 필요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존재가 필요없으신 분이심을 말하고 있다. 완전한 지혜자이심을 고백하고 있다.
- 14절.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 => 하나님은 유일하신 자존자이시다. 하나님은 홀로 거룩하시고, 홀로 완전하신 분이시다. 다른 존재의 도움이나 가르침이 필요없으신 분이시다. 그런 하나님을 믿는 것이 복이고, 위로가 되는 것임을 이사야는 증언하고 있다.
- 15절.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 하나님 앞에서 열방이라 할지라도 얼마나 작은 존재이고, 이 세상이 얼마나 미미한가를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은 실로 이 지구 뿐만이 아니라, 태양계 뿐만이 아니라, 우리 은하 뿐만이 아니라, 온 우주를 지으신 분이시다. 그 하나님의 크심을 묵상하고 깨닫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위로받는 방편이 됨을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고 있다.
- 16절. “레바논은 땔감에도 부족하겠고 그 짐승들은 번제에도 부족할 것이라” => 레바논에서는 백향목이 나는 산지였다. 그곳에서 나는 백향목들은 거대하고 최고의 목재였기에 성전과 왕궁을 짓는데 부족함이 없는 나무가 깊은 숲을 이루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런 레바논의 백향목 숲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제사를 드리기에는 땔감이 부족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레바논의 모든 숲을 다 땔감으로 소비해야 하는 만큼의 짐승의 번제를 하나님께 드린다고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 17절.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 그런 하나님 앞에서 세상의 모든 나라가 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고, 남 유다도 바벨론에 망하게 되는 것을 예언하는 이사야는 그런 무서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지만, 백성을 위로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기에 아무 것도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다스리신다면 나라가 망해도 소망이 있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존재들이고, 그렇기에 인생에서 일어나는 환란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 것을 말씀하고 있는 내용이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그 백성을 이렇듯 위로해 주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가르침 :
1) 백성을 위로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이 사실이 얼마나 귀하고 놀랍고 위로가 되는 말씀인가!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강력하게 다스리실 것이다. 또한 그 강력으로 선한 목자의 보살핌을 베푸실 분이시다. 우리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언약하고 계시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백성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언제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진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언제나 소망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2) 하나님은 비교할 수 없으신 분이시다. 이사야는 당대에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으로 하나님은 비교불가의 존재이심을 증거했다. 오늘날은 과학의 발달로 하나님이 얼마나 더 크신 분이신가를 알 수 있게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현대의 과학으로도 하나님이 얼마나 크시고,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가에 대해서 다 알 수 없다. 다만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생각을 넘어서서 존재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심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묵상하고 알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으로 참된 위로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게 된다.
3)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최고의 위로가 임하게 되었다. 이 일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보라”는 명령을 따라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이다. 크리스마스의 핵심은 선물도 아니고, 문화적인 만족을 누리며 한 해를 마무리 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그 백성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적용 :
1) 하나님은 정말 크신 분이시다. 그리고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은 말로다 형용할 수 없다. 이렇듯 크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인해서 우리는 위로를 놓치게 된다. 하나님의 그 백성을 위로하심은 하나님에 대한 묵상을 통해서 시작된다. 하나님을 바라보자. 그리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위로를 경험하자.
2)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심의 극치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심의 완성이다. 성탄은 초림이 아닌 재림을 더욱 소망하는 절기가 되어야 한다.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기뻐하는 이유는 철장권세를 가지시고 이 땅을 강력하게 다스리시기 위해서 오시는 예수님이 곧 오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마라나타를 외치며 이 성탄의 절기를 맞이하자.
3)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이 나를 위로하시는 분이시며, 다시 오실 것이다. 그것이 참된 위로가 된다. 문제는 언제나 존재한다. 하나의 문제를 넘어서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모든 것들을 다스리시는 지극히 높으신 엘 엘리온의 하나님이 다시 오실 것이다. 이것이 참된 위로가 됨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