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세포인 미생물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크기와 모양도 비슷하다. 대부분이 동그랗거나(구균, cocci) 길쭉한 모양 (간균, bacilli), 간혹 초생달이나 나선형 같은 모양 (나선균, spirochete)도 있다. 물론 간혹 아주 특이한 모양의 미생물도 있다. 다세포 생물인 동물이나 식물은 유연관계가 가까울 수록 비슷한 모양을 하기 마련이고, 그런 녀석들을 한 그룹에 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생물들을 모양만으로 구분하다 보면 엉뚱한 녀석들이 한 그룹에 묶이게 된다.
그림 1. 대표적인 미생물의 모양
그래서 미생물을 분류하는 학자들은 미생물의 모양보다는 유전자 서열의 차이를 비교해서 유사한 유전형질을 가진 것들을 같은 그룹에 묶는 방식을 택했다. 이 방법은 칼 우즈 (Carl Woese) 라는 위대한 미생물학자께서 처음 도입하신 리보솜 유전자 서열 비교법 (16s rRNA sequencing)이라고 한다.
기본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아래 그림에 보는 것처럼 자연 상태에서 유전자가 복제될 때마다 대략 106개에 하나 꼴로 유전자를 구성하는 염기 서열에는 약간의 변이들이 일어난다. 처음에 일어난 변이가 있는 상태에서 다시 분열이 진행되면 그 위에 또다른 변이가 쌓이게 되고 반복되는 과정에서 다른 방향으로 시작된 변이를 따라서 종들이 갈라지게 되기도 한다.

그림 2. 세대 간 유전자 서열 변이 – 맨 위 공통 조상에서 아래로 갈수록 치환되는 염기 서열의 수가 늘어난다.
16s rRNA는 모든 생물이 가지고 있으면서 단백질을 합성하는 세포 소기관인 리보솜의 골격이 된다. 미생물에서부터 다세포 생물에 이르기까지, 리보솜의 기능은 아주 비슷하고, 리보솜 구조를 이루는 16s rRNA구조도 잘 보존되어 있다. 16s RNA 에 생긴 변이들은 이 유전자가 만드는 세포 소기관인 리보솜의 기능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유전자에 다르게 그려진 변이 패턴을 보고 우리는 미생물들의 유연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 [그림 2]에서 보는 것처럼 두 생물이 가까운 관계일 수록 유전자 서열이 더 비슷하고, 두 생물이 진화적으로 먼 관계라면 유전자 서열에 변이가 더 많아진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A와 B 라는 두 미생물의 16 s RNA 가 95 % 유사하고, B와 C 가 90% 유사하다면, B는 C보다 A와 유전적으로 더 가까운 관계가 된다. 만약 A와 C 가 80% 유사하다면, C는 A보다는 B와 더 유전적으로 가까운 관계가 된다. 물론 실제로는 이것보다 훨씬 복잡한 계산이 필요해서 컴퓨터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림 3. 아주 간단하게 그린 유전자 차이에 따른 유연관계 정리
이러한 변이는16 s RNA뿐 아니라 모든 유전자에서 무작위로 발생할 수 있다. 만약 이 변이가 미생물의 원래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유전자에 일어났다면, 작은 차이가 삶을 통째로 바꾸기도 한다.
“처음 시작은 아주 단순한 변이였을 뿐이다”
바실러스 (Bacillus)와 클로스트리듐 (Clostridium)이라는 두 종류의 미생물은 16s RNA서열이 유사하고, 모양과 생활 주기 등 많은 부분을 공유해서 후벽균 (firmicutes, 한국어 명칭이 훨씬 어렵다..ㅎㅎ) 이라는 그룹에 같이 묶여 있다. 둘 다 긴 막대 형태이고 빠르게 이분법으로 분열하다가 환경이 나빠지면 분열을 멈추고 살아남을 궁리를 한다. 그리고 세포 안에 겹겹이 막에 둘러싸인 포자 (endospore)를 만든다. 내생포자는 몇 겹의 두터운 외막으로 자신의 DNA와 극소량의 세포질을 감싼 형태가 된다. 그리고 모든 대사가 정지되는 휴면 상태로 후일을 기약하며 수 일 혹은 수 십, 수 백 년을 잠자는 듯 기다린다. 그러다가 좋은 환경을 만나면 포자에서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져 다시 활발하게 번식한다.
그런데 이 두 녀석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무척 다른 환경에서 살아간다. 바실러스는 산소가 있어야만 살 수 있는 호기성 (Aerobic) 세균이다. 건초더미에서 흔히 발견되기도 하고, 동물에게 탄저병 (anthrax)을 일으키기도 한다. 몇 년 전에 용산에서 미군이 탄저균 실험을 한 일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바로 그 탄저균이 바실러스의 한 종이다. 몸에 좋은 청국장을 발효시키는 균도 역시 바실러스이다.
반대로 클로스트리듐은 산소가 있으면 금세 죽어버린다. 바로 혐기성 (anaerobic) 세균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산소는 세포를 공격하는 치명적인 독이 된다. 그래서 클로스트리듐은 산소가 닿지 않는 곳에서만 살 수 있다. 파상풍을 일으키는 병원균은 클로스트리듐의 한 종류이다.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보톡스 시술에 쓰이는 약물 역시 클로스트리듐의 한 종류가 만들어내는 강력한 독소이다 (맹독도 아주 작은 양을 쓰면 약이 되는 좋은 (?) 예라고 해야 하나..).
비슷한 유전 조성을 가진 두 그룹은 어떻게 극과 극의 환경에서 살게 되었을까? 어쩌면 이들의 조상에서 일어난 작은 변이에서부터 삶을 가르는 변화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삶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어떤 유전자의 변화는 두 그룹을 아주 다른 길로 갈라 놓았을 것이다.
어떤 드라마에서 "처음 시작은 단순한 밥 한끼였을 뿐이었다" 라는 정치 검사의 독백을 들었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 비슷하게 공부를 하고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졸업하고 많은 생활을 공유했지만, 작은 변화에서 시작된 다른 길은 어떤 이를 약한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을 돌보게도 하고, 또 어떤 변화는 그들을 권력에 붙어서 약한 사람을 억압하게도 한다. 마치 유전자에 생긴 작은 돌연변이가 천양지차의 삶으로 미생물들을 이끌었던 것처럼 말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시작된 그 작은 변화가 걷잡을 수 없는 다른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나를 지금 서 있는 이 자리로 인도한 내 안의 작은 변화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