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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창시자의 길
---배기환의 {시간은 기억의 수레를 끌고}의 시세계
반경환
1.
배기환 시인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고, 1997년 월간『詩文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전생을 굽다 1}, ≪전생을 굽다 2≫, ≪바람의 화석≫, ≪견고한 생각≫, ≪젊음의 징비록≫ 등이 있고, 2010년 한국해양문학상 수상집 ≪불멸의 바다 詩篇≫과 2019년 한국해양문학상 수상시집 ≪윤슬의 푸른 수평선≫을 출간한 바가 있고, 계간『시와 사상』편집 동인을 거쳐서, 부산문인협회 시분과 위원장과 부산시문학시인회 회장 등을 역임한 바가 있으며, {시간은 기억의 수레를 끌고}는 그의 여섯 번째 시집이 된다.
시간은 서서히 기억의 수레를 끌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른다
과속방지턱을 겨우 넘어선 내 우주선 솔롱고스호*는 지금 광대무변한 블랙홀의 난간이 열리기를 기대하며 시동을 걸지만 시야가 그렇게 밝지 못하다
소란스럽던 바람이 우주의 문을 활짝 연다
우주 속에 펼쳐진 사막에서 낙타가
지평선을 물고 달려온다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아무래도 세상일들이 석연치가 않다
영혼과 영혼끼리 친숙하게 교미하여
수정된 광입자가 은밀하게 숨어서
지평선을 바라본다
가장 튼튼하고 건강한 지구와 가장 아름다운 별들을 사주하여 또 다른 우주 하나를 만들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우주 때문에 거대한 지진과 쓰나미를 동반한 천지개벽이 도래해 올지도 모르면서,
*필자의 iD
----배기환, [시간은 기억의 수례를 끌고] 전문
창創자에는 칼도刀자가 들어 있고, 가장 날카롭고 예리한 칼을 쓸 수 없는 자는 그 무엇을 하든 새로운 창조자가 될 수 없다. 새로운 신전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신전들이 파괴되지 않으면 안 되듯이, 오늘날의 자연과학은 모든 종교와 신앙을 대청소해버렸다. 전지전능한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어느 누구도 교회에 갈 필요가 없다는 무신론이 그것이며, 따라서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모든 일들이 다 가능해진 것이다. 만일, 오늘날의 성직자와 신도들에게 스마트 폰을 빼앗고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들은 모두가 다같이 미쳐버릴 것이고, 그들의 신앙이란 흑주술黑呪術이며, 사악한 돈벌이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곧바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자연과학의 칼날은 오늘날의 성직자와 그 신도들에게 더없이 무서운 흉기가 되었고, 오늘날의 경제인들에게는 더없이 고귀하고 훌륭한 문명의 이기利器가 되었다고 할 수가 있다. 성자와 범죄자, 또는 창조자와 파괴자는 천하제일의 검객이며, 동일한 인물의 두 얼굴에 지나지 않는다.
천지창조자, 또는 최초의 우주창시자는 배기환 시인의 [시간은 기억의 수레를 끌고]에서처럼 “거대한 지진과 쓰나미를 동반한 천지개벽”을 창출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간은 서서히 기억의 수레를 끌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른다”는 것은 역사와 전통을 중요시 한다는 것이고, “과속방지턱을 겨우 넘어선 내 우주선 솔롱고스호는 지금 광대무변한 블랙홀의 난간이 열리기를 기대하며 시동을 걸지만 시야가 그렇게 밝지 못하다”는 것은 그 우주창시자의 앞에는 매우 어렵고 힘든 고통의 가시밭길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과거의 역사와 전통을 중요시하며 머나먼 미래의 앞날을 향해 전진하는 자는 천하무적의 용기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 무엇보다도 한없이 나약하고 두려움에 벌벌벌, 떨고 있는 자기 자신부터 베어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두려운 싸움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싸움이고, 이 싸움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둔 자만이 천하무적의 우주창시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소란스럽던 바람이 우주의 문을 활짝 열면 우주 속에 펼쳐진 사막에서 낙타가 지평선을 물고 달려온다. 새로운 우주는 사막 너머에 있고, 낙타는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장 무덥고 고통뿐인 사막을 건너갈 수 있는 영물이며, 천하무적의 우주창시자의 진정한 동반자일 수밖에 없다.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아무래도 세상일들이 석연치가 않”지만, 너무나도 명석하고 분명한 지혜로 무장을 하고, 영혼과 영혼들을 교미”시켜 새로운 광립자를 창출해낸다. 영혼과 영혼들을 무수히 교미시킬 때 새로운 종種들이 탄생하고, 수많은 먼지와 가스덩어리인 광립자들이 모여서 새로운 우주를 창출해낸다.
배기환 시인의 표제시인 [시간은 기억의 수레를 끌고]는 새로운 우주를 창출해내는 시이며, 이 도전적이고 야심만만한 과제를 영혼과 영혼을 교미시키고, 수많은 광립자와 광립자들을 결합시켜 수행하고 있는 시라고 할 수가 있다. “가장 튼튼하고 건강한 지구와 가장 아름다운 별들을 사주하여 또 다른 우주 하나를 만들지도 모르겠다”라는 시구가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배기환 시인은 더없이 호탕하고 천하무적의 용기를 지녔으며, “거대한 지진과 쓰나미를 동반한 천지개벽”으로 새로운 우주를 창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너무나도 의연하고 당당하게 간다는 것은 모든 영웅신화의 명장면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거대한 지진과 쓰나미를 호위무사로 거느리고 가면서----.
2.
가시 돋친 말은 아픈 말이며, 타인의 마음과 몸에 상처를 입히는 말이다. 이 가시 돋친 말의 기원은 무엇이며, 이 가시 돋친 말을 듣지 않으려면 그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말은 상호간에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그러나 이 말은 상호간의 이익과 불이익, 사랑과 혐오, 우정과 증오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자원의 배분과 이익을 둘러싸고 싸우는 투쟁의 도구가 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에게 노벨문학상을 주겠다’, ‘너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마련해주겠다’, ‘너의 사업이 꼭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너와 나는 친구이고, 나는 너와 함께 할 것이다’라는 말은 더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랑의 말이 되고, ‘이것은 내몫이지, 네몫이 아니다’, ‘너는 사기꾼이고 나는 너를 믿을 수가 없다’, ‘너와 나는 어떤 일도 함께 할 수가 없다’, ‘너는 천년, 만년 후회하게 될 거야’, ‘너는 지옥이 만원이라고 해도 반드시 지옥에 갈 것이다’라는 말은 더없이 가혹하고 듣기 거북한 가시 돋친 말이 된다.
어찌 된 일인지 갑자기 귀가 먹먹하다.
약간의 통증과 함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의사는 내시경으로 귀속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별것 아니라며 지금 양쪽 귓속에 가시 돋친 말들이 꽉 차 있단다.
가-시-돋-친-말
그놈들이 달팽이관을 콕콕 찔러대서
귀가 먹먹해지고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단다.
언어에 매달려 있는 뾰족하고 날카로운 가시들, 나는 그 길로 돌아와 양쪽 귀에 수북이 쌓여있는 그 가시들을 면봉으로 후벼 파내었다.
----[가시 돋친 말] 전문
일찍이 부처는 ‘사랑도 하지 마라, 원수도 만들지 말라’라고 역설한 바가 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서 괴롭고,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나 이 세상의 삶은 이익과 손해, 즉, 사랑과 중오(혐오)의 줄타기 위해서 성립하고, 이 줄타기를 거부하면 그 어떤 삶도 없게 된다. 이익을 보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게 되고, 어느 누구를 사랑하면 반드시 그것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된다.
“어찌 된 일인지 갑자기 귀가 먹먹하다/ 약간의 통증과 함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의사는 내시경으로 귀속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별것 아니라며 지금 양쪽 귓속에 가시 돋친 말들이 꽉 차 있단다”, “가-시-돋-친-말// 그놈들이 달팽이관을 콕콕 찔러대서/ 귀가 먹먹해지고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단다”, “언어에 매달려 있는 뾰족하고 날카로운 가시들, 나는 그 길로 돌아와 양쪽 귀에 수북이 쌓여있는 그 가시들을 면봉으로 후벼 파내었다.”
배기환 시인의 [가시 돋친 말]은 언어의 사제답게 최고급의 풍자와 해학의 진수이며, 현대사회의 세태풍조를 가장 날카롭고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는 시라고 할 수가 있다. “한때 민주주의를 발가벗겨 거꾸로 매달아 놓고 물고문을” 가하던 [잡목들의 항변], “국제 질병분류표에도 색인되지 않는다는/ 지독한 역질과 미스터 트롯에/ 지금 세상은 몹시 시달리는 중”이라는 [벽 속으로 들어간 풍문들], “콘크리트 괴물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깔깔깔 웃고” 있는 [고공의 도시], “복개천 속으로 은밀하게 쌓여가는 비위와 적폐”([아스팔트를 뜯어먹고 사는 저 은행나무의 혈액형은 무엇일까]), “장기 매매, 라는 스티커가 붙어있는 소변기 앞”([지하도 풍경]), “자식이 부모에게 덤벼들고 제자가 스승을 해害하고 누군가의 뒤통수”를 치는 [구부정한 세상] 등은 배기환 시인이 듣고 있는 ‘가시 돋친 말’의 진원지이며, 다른 한편, 그 반대방향에서 그가 그의 ‘풍자와 해학’을 통해서 그들에게 또다른 방법으로 되돌려주는 ‘가시 돋친 말’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말은 칼이면서도 흉기이고, 말은 약이면서도 독약이다.
배기환 시인의 [가시 돋친 말]은 아픈 말이며, 타인의 마음과 몸에 상처를 입히는 말이지만, 그러나 이 가시 돋친 말은 그가 그의 ‘풍자와 해학’---반어, 기지, 유머, 험담, 부정, 비판 등----으로 아주 유효 적절하게 매우 잘 사용하고 있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사랑스러운 말의 이면에는 혐오의 말이 있고, 혐오스러운 말의 이면에는 사랑스러운 말이 있다. 듣기 좋은 말의 이면에는 가시 돋친 말이 있고, 가시 돋친 말의 이면에는 듣기 좋은 말이 있다. 이익과 손해, 사랑과 혐오, 듣기 좋은 말과 가시 돋친 말은 이 세상의 삶의 밧줄에 묶여져 있으며, 이 줄타기를 거부하면 우리 인간들의 삶이 없게 된다. 비록, 듣기 싫은 말, 가시 돋친 말들이 “달팽이관을 콕콕 찔러대고 귀가 먹먹해지고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 가시 돋친 말들을 발본색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소위 혁명을 완성하고도 혁명의 과업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듯이, 또는 독재자와 싸우면서 독재자와 똑같이 닮아가듯이, 오히려, 거꾸로 배기환 시인이 그 [가시 돋친 말]을 가장 잘 사용하는 ‘풍자와 해학의 대가’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의지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개인의 의지와 단체의 의지와 공동체의 의지가 그것이다. 개인의 의지는 개인의 이익을, 단체의 의지는 그가 소속된 단체의 이익을 추구하고, 공동체의 의지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의지로서 전체의 이익을 추구한다. 우리 인간들이 주고 받는 말들은 이러한 의지들과 관련이 있고, 따라서 상호간에 가시 돋친 말들을 주고 받게 된다. 나에게 이익이 되면 듣기 좋은 말이고,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가시 돋친 말이 된다. 만일, 그렇다면 배기환 시인의 [가시 돋친 말]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것은 더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과 함께, 그 말들을 사용하며, 그 조화를 이룩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칭찬을 들으면 칭찬으로 돌려주고, 험담을 들으면 험담으로 돌려주고, 아니, 때로는 칭찬을 험담으로 배신도 하고, 험담을 칭찬으로 더욱더 크고 폭넓게 감싸주기도 하면서----. 요컨대 배기환 시인의 [가시 돋친 말]의 그 해학과 풍자, 그 방법적인 부정정신과 그 비판철학을 더욱더 깊이 있고 심오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우리 시인들의 사명과 의무이기도 할 것이다.
3.
시가 먼저일까, 삶이 먼저일까? 시인의 입장에서는 시가 먼저이고, 삶이 그 다음일 수도 있다. 농부와 상인, 또는 그밖의 일상생활인들에게는 삶이 먼저이고, 시는 그 다음일 수도 있다. 시인들은 예술지상주의자가 되고, 일상생활인들은 현실주의자가 된다. 하지만, 그러나 시와 예술은 둘이 아닌 하나이며, 그 어느 분야에서이든지간에, 자기 자신의 목표를 향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 그는 곧바로 시인이 되는 것이다. 요컨대 시를 얼마나 잘 쓰는 것인가가 중요하지 않고, 이 세상의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잘 사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행복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얀 눈을 걷으니 그 속에 숨겨진
장미의 알몸에선 붉은 향기가 흐르고
목련의 알몸에선 흰 숨결이 흐른다.
그래 장미야, 그리고 목련아
겨우내 칼날 같은 그 추위 견디며
얼마나 마음 시려했느냐?
살갗이 찢어지는 세찬 폭풍우에 아픔을 겪고서야 비로소 움트기 시작하는 저 꽃망울들, 그렇다 장미꽃 한 송이 한 송이는 아름다운 아픔 한 송이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소식이 두절되었던 그에게 빨간 향기 그윽한 아픔 한 송이를 전하기로 하였다.
잠시 침묵을 뛰어넘고 꽃대 속에서
은은하게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는 분명 티베트의 어느 사찰에선가
은은하게 들려왔던 싱잉볼 소리 같다.
나는 읽던 성경을 덮고 그 음악에 취해
또 그에게 시 한 편을 쓴다.
----[한 편의 시를 쓴다] 전문
시는 행복한 삶의 한 양식이자 낙천주의를 양식화시킨 것이다. 배기환 시인의 [한 편의 시를 쓴다]는 그의 현실주의의 소산이자 예술지상주의자의 소산이며, 궁극적으로는 그의 행복론, 즉, 낙천주의를 양식화시킨 것이다. “하얀 눈을 걷으니 그 속에 숨겨진/ 장미의 알몸에선 붉은 향기가 흐르고/ 목련의 알몸에선 흰 숨결이 흐른다”는 것은 장미와 목련이 고통의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그래 장미야, 그리고 목련아/ 겨우내 칼날 같은 그 추위 견디며/ 얼마나 마음 시려했느냐?”는 측은지심을 넘어선 더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랑의 말을 뜻한다. “살갗이 찢어지는 세찬 폭풍우” 앞에서도 꽃을 피우는 것이고, 시는 고통을 미화하고 성화시키는 것이다. “장미꽃 한 송이 한 송이도 아름다운 아픔 한 송이나 마찬가지”이고, “목련꽃 한 송이 한 송이도 아름다운 아픔 한 송이나 마찬가지”이다. 시는 사상의 꽃이고 사상은 시의 열매이다. 시는 사상의 꽃이고 경전이며, 이 경전 속에는 “잠시 침묵을 뛰어넘고 꽃대 속에서/ 은은하게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는 분명 티베트의 어느 사찰에선가/ 은은하게 들려왔던 싱잉볼 소리 같다”라는 시구에서처럼, 모든 사람들을 구원해줄 수 있는 말씀들이 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배기환 시인의 [한 편의 시를 쓴다]는 그가 그의 우주선인 ‘솔롱고스호’를 타고 가 창출해낸 새로운 우주라고 할 수가 있다. 즉, 그의 우주에는 ‘가시 돋친 말’의 반대편에서, 이 세상의 삶을 찬양하고 옹호하는 시들이 너무나도 많다고 할 수가 있다. “천관 사지와 고운孤雲이 기거했다는 상서장 거쳐 헌강왕릉에 이르니 은은하게 처용가가 울려 퍼지고 개운포로 가는 길 일러준다/ 도솔천 먼 길 향해 끈을 졸라매던 내 등산화 잠시 마애불 앞에 무릎 꿇고 앉자 명상에 든다”의 [서라벌의 숨결]도 있고, “긴 강을 끌고 온 청둥오리와 도요새들의 유영/ 그렇다, 강물에 붉은 노을이 출렁이는/ 낙동강 하구의 가을 풍경은/ 샤갈이 그려놓은 한 폭의 풍경화다”라는 [을숙도 풍경 1]도 있다. “거센 파도의 허리춤을 꽉 붙들고 있는 방파제 위에 포세이돈 신전처럼 우두커니 서서 몰운대를 응시하고 있는 빨간 등대에 묻는다/ 지난밤 얼마나 많은 불씨를 파도 속에 은밀히 숨겨 두었느냐?”라는 [몰운대 등대]도 있고, “저 새벽 바다의 봉인을 제일 먼저 뜯는 것은 시베리아 빙산에서 달려온 된바람도 아니고 바다의 막장까지 긁는 트롤선 엔진 소리도 아니며”라는 제주해녀의 [숨비소리]도 있다.
내게 최초로 각인된 바다는
내 어릴 적 외가가 있던
남해안의 어느 한적한
어촌 마을 그 바다였다.
바람에 부화된 파도가
밀려갔다 밀려오는 그 바다는
따지고 보면 바로 내 어머니인 셈이다.
파도는 고립으로부터의
탈주인 동시에 무의식의 세계를
매우 역동적으로 폭발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내 몸속에는 그 어머니가
밀물로, 때로는 썰물로
한없이 출렁거리고 있다
----[海, 어머니] 전문
우주는 자연이고, 자연은 모든 생명들의 삶의 터전이다. 배기환 시인이 그의 ‘아이디명’인 ‘솔롱고스호’를 타고 새로운 우주를 창출해낸 것은 우리 인간들의 삶의 터전인 이 지구가 너무나도 엄청나게 병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랑과 애정이 담긴 말보다는 더 이상 참고 들을 수 없는 거친 말과 가시 돋친 말들이 난무하고, 눈앞의 이익을 두고 더 이상 눈 뜨고 볼 수 없는 사생결단식의 이전투구들이 벌어지고,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수많은 생명들이 다 죽어가도록 오염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과 애정이 담긴 말과 듣기 좋은 말의 세계는 자연의 세계이며, 너와 내가 손을 잡고 한 폭의 풍경화, 즉, 아름다운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는 세계이다. 한 편의 시는 바다이고, 어머니이며, 한 편의 시는 배기환 시인의 새로운 우주이다.
배기환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인 {시간은 기억의 수레를 끌고}는 우주이고 경전이며, 동서고금을 초월하여 영원불멸의 생명력을 얻게 되는 시세계라고 할 수가 있다.
한 편의 시는 새로운 우주이고,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한 편의 시보다 더 고귀하고 위대한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