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7627]山谷黃庭堅(황정견)-塞上曲(새상곡)
고문진보 전집 제12권 曲類 240.塞上曲(새상곡) - 黃庭堅(황정견) <변방의 노래> |
塞上曲(새상곡)
黃庭堅(魯直):황정견(노직)
十月北風燕草黃(시월북풍연초황),
燕人馬肥弓力强(연인마비궁력강).
虎皮裁鞍鵰羽箭(호피재안조우전),
射殺山陰雙白狼(사살산음쌍백랑).
靑氈帳高雪不濕(청전장고설불습),
擊鼓傳觴令行急(격고전상령행급).
戎王半醉擁貂裘(융왕반취옹초구),
昭君猶抱琵琶泣(소군유포비파읍).
시월이라 북풍에 연(燕)땅의 풀 누렇게 시드니
연(燕)땅 사람들 말 살찌고 활의 힘 강하다오.
호랑이 가죽 잘라 안장 만들고 독수리 깃 단 화살로
산음(山陰)의 두 마리 흰 이리 쏘아 잡았네.
푸른 털방석 장막 높아 눈에 젖지 않으니
북치며 술잔 돌려 주령(酒令)을 급하게 행한다오.
오랑캐 임금 반쯤 취하여 초피 갖옷 끌어안으니
소군(昭君)은 아직도 비파 안고 울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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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라 북풍 몰아쳐 연 땅의 풀은 시들고, 연인들의 말 살찌고 활쏘는 힘도 세어지니, 호랑이 가죽 안장에 독수리 깃 단 화살로, 산 북쪽서 흰 이리 두 마리를 쏘아 잡았네. 푸른 담요 장막 높이 쳐서 눈에도 안 젖는데, 북을 치며 술잔 돌려 주령을 다급히 행하여라. 융왕은 반쯤 취해 담비 갖옷 입고 앉았는데, 왕소군은 옆에서 비파 타며 눈물을 흘렸네
邊塞詩(변새시)는 주로 변방에 수자리간 정부(征夫)들의 괴로움, 고향과 처자에 대한 그리움을 읊은 것이 대부분인데, 이 시는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내용으로 진취적인 것이 그 특징이다.
홍간(洪侃) 〈?-1304(충렬왕 30)〉의 《洪厓遺稿(홍애유고)》에 같은 제목으로 지은 시에 “양 치던 소무의 십년 한이요 오랑캐에게 항복한 장군의 천리 먼 고국 그리는 마음이네.[牧羊蘇武十年恨 降虜將軍千里思]”라는 시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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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塞上(새상) : 변방 要塞(요새). 새상곡(塞上曲)이나 塞下曲(새하곡)은 대개 樂府(악부)의 시임.
○ 연나라(燕國) : 중국 춘추 시대의 주나라 제후국이자, 전국 시대의 전국 칠웅 가운데 하나이다.
○ 산음(山陰) : 산의 응달진 북쪽 편.
○ 白狼(백랑) : 흰 이리로, 견융(犬戎)에서 공물(貢物)로 바쳤는데 상서(祥瑞)로운 짐승으로 여겼다.
○ 戎王(융왕) : 소군(昭君)의 남편인 흉노(匈奴)의 單于(선우)를 이른다.
※ 견융(犬戎) : 고대 중국의 은(殷)•주(周) 때에 서쪽 지방에 있던 융족(戎族)의 일파로,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봉상현(鳳翔縣) 일대에 살았던 이민족. 주나라 유왕(幽王) 11년에 신후(申侯)가 이들을 끌어들여 주나라를 침략하자, 평왕(平王)이 낙읍(洛邑)으로 동천(東遷)하였음. 견이(犬夷)라고도 함. [네이버 지식백과] 견융 [犬戎]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酒令(주령) :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술을 마실 때에 서로 마시는 방식(方式)을 정(定)하는 약속(約束)
○ 왕소군(王昭君)은 흉노의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 복주누약제 선우(復株累若鞮單于)의 연지(선우의 처)로, 본래 한나라 원제의 궁녀였다. 이름은 장(嬙, 출전은 한서)이다. 성을 왕, 자를 소군이라고 하여 보통 왕소군이라고 불리며 후일 사마소(司馬昭)의 휘(諱)를 피하여 명비(明妃), 왕명군(王明君) 등으로도 일컬어졌다.
※ 수자리(戍--) : 국경을 지키던 일. 또는 그런 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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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견(黃庭堅, 1045년~1105년)은 중국 북송의 시인이다. 자는 노직(魯直), 호는 산곡(山谷) 또는 부옹이며 소식 문하인의 제1인자이다.
23세에 진사에 급제했으나, 국사원(國史院)의 편수관이 된 이외 관리생활은 불우했다. 소식의 시학을 계승하였으며, 그의 시는 소식의 작품보다 더욱 내향적이었다. 또한 왕안석, 소식보다 더욱 두보를 존경했다. 소식과 함께 소·황(蘇·黃)으로 칭해져서 북송 시인의 대표적 존재가 되었다. 12세기 전반은 황정견 일파의 시풍이 세상을 풍미하였는데, 황정견이 강서(江西) 출신이었기 때문에 ‘강서파’라 칭해졌다
[출처] [고문진보]塞上曲(새상곡:변방의 노래) - 黃庭堅(황정견)|작성자 swings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