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과 이비후의 죽음 (레위기 10:1-2) / 김경래
레위기 8장에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 대한 제사장 위임식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모세의 주재하에 열리는 이 위임식은 7일 동안 물로 씻기고, 옷을 입히고, 관유를 바르고, 속죄제와 번제와 위임제를 바치고, 피를 뿌리고, 식사하는 일 등이 반복된다 (레8:6-34). 레위기 9장은 7일 동안의 위임식이 끝난 후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취임하여 제8일에 처음으로 시행하는 일종의 취임식에 대한 기록이다. 따라서 이날 행사는 아론의 주관하에 거행된다. 그리고 이 날의 행사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는 8장의 위임식과는 달리 이전에 명령을 받은 바가 없고, 새롭게 명령을 받은 것이다. 이 날 취임식을 위한 준비가 마친 후, 아론 자신을 위한 속죄제 (8-11절), 아론의 아들들을 위한 번제 (12-14절), 백성을 위한 각종 제사 (15-21절)가 집행된다. 그리고는 아론의 축복과 하나님의 응답이 뒤따른다 (22-24절).
레위기 10장은 위임식 제8일, 곧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취임하여 식을 행하던 날, 모든 제사를 마치고 제사장 응식을 먹기 전에 일어난 일이다. 성경은 아론의 두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가 죽임당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으나, 그들의 죽음에 대한 이유나 그 상황 설명이 그리 명료하게 묘사되어 있지는 않다. 먼저 레10:1-2의 기록을 여기에 옮겨 놓기로 하자 (개역):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여기 ‘다른 불’이란 히브리어 표현 ה שׁ (esh zara)를 옮긴 것이다. 이 표현은 역시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하고 있는 민3:4; 26:61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외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본문들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향로에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하여 많은 주석가들은 ‘불을 번제단에서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화를 입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번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향로에 채워서 분향하라’는 (레16:12) 지시는 사실상 이 사건 이후에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레16:1 참조). 그리고 역시 이 사건 이후, 고라 무리의 반역이 있었을 때, 모세는 아론에게 “향로를 취하고 (번제)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두어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고 명한 적이 있다 (민16:46). 이 두 경우 외에 “단 위의 불을 가져다가 향로에 담는 장면”은 마지막으로 신약 성경의 계시록 8:5에 기록되어 있다.
이상의 기록들을 고찰해 볼 때,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이유를 단순히 ‘다른 불’, 곧 일부 주석가들이 말하는 바, ‘번제단이 아닌 다른 곳에서 불을 취하여 분향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 시원한 대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에 대한 원인을 ‘비합법적인 분향’ 때문이라고 한다. 출30:9의 “너희는 그 [= 분향단] 위에 다른 향 (ה ת)을 사르지 말며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전제의 술을 붓지 말라”는 명령은 이 사건 이전에 있었던 지시이다. 이 견해에 동조하는 학자들은 (예를 들어, Keil & Delitzsch, Levine) 출30:9와 레위기 10장 본문 사이의 연관성을 지적하면서, ‘다른 향을 살라 바치는’ 행위를 얼마든지 ‘다른 불을 드리는’ 것으로 묘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위의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는 나답과 아비후가 죽게 된 데에는 단순히 이들 두 가지중의 어느 하나나 또는 두 가지 이유 모두로 인한 것 이상으로 더 복합적인 원인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레16:1에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 이어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아론에게 지시하신 말씀이 적혀 있다: “성소의 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레16:2-4). 이 말씀을 통해 볼 때에, 아론의 두 아들은 위임식 제8일, 곧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취임하여 식을 행하던 날, 방자하게 지성소로 들어 가려다가 (또는, 들어갔다가)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볼 수도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지시는 올바른 분향 방법에 대한 말씀으로까지 계속된다: “향로를 취하여 여호와 앞 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두 손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우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음을 면할 것이다” (레16:12-13).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 사건 이후에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술에 관한 지시를 내리셨다는 사실이다: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레10:9). 우리는 이 구절만 가지고는 이 날 과연 나답과 아비후가 술을 마시고 회막에 들어간 것인가 하는 여부를 판가름할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날의 사건을 계기로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의 후손에게 술에 관하여 엄명을 내리셨다는 점이다. 나답과 아비후의 음주 여부는 그만 두고라도, 적어도 이 날 두 사람은 회막 안에서 무언가 경망된 짓을 하였기에 죽음을 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경망된 행동이 혹시 음주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 보게 된다.
아울러 이 일 후에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고 하신 여호와의 말씀은 (레10:3), 하나님의 택함을 입어 그에게 가까이 할 수 있는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백성의 자세와 태도가 얼마나 조심스러워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나답과 아비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두 사람이 회막 안에서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일을 저질렀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호와의 불’은 그분께 가까이 하여 그분이 원하시는대로 제사하는 이들의 제물을 사름으로써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환희를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레9:22-24 참조: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필하고 내려오니라.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 동일한 ‘여호와의 불’은 그분 앞으로 방자하게 나아오는 자는 가차없이 불살라 처벌하기도 한다. 이와 유사한 종류의 형벌은 고라 무리의 반역 사건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민1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