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27-30
생명선을 찾으라 / 백구영 목사
엡 2: 19-20
19.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
세상 말로, 줄을 잘 서면 성공하고, 줄을 잘못 서면 낭패를 본다고들 합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줄들이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를 연결하는 외교줄이 있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인맥의 줄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교통 안전을 위한 차선이 있고, 거미줄처럼 늘어선 전선도 있고,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전류를 잇는 무선도 있습니다.
또한, 이 우주 공간에는 무수한 전파가 있습니다.
귀로는 들을 수 없으나 이 공간에는 음파가 가득하여 적당한 도구를 사용하여 주파수를 맞추면 각양 라디오 소리 전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눈으로는 볼 수 없으나 이 공간에는 광파가 가득하여 적당한 도구를 사용하여 주파수를 맞추면 각양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 우주공간에는 영파가 가득합니다. 사람의 육감으로는 감지 할 수 없으나 영적 수련을 통해 주파수를 맞추면 영파를 감지할 수가 있습니다.
음파의 주파수를 맞추어야 라디오 소리, 전화소리, 무선 송신을 수신할 수 있고, 광파의 주파수를 맞추어야 TV, 레이다 등의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고급 라디오라도 음파의 주파수를 맞추지 못하면 쓰레기가 되고 아무리 비싼 TV라도 광파의 주파수를 맞추지 못한다면 고철에 불과한 것 같이, 아무리 오랜 신앙생활을 했어도 영파의 주파수를 맞추지 못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믿음의 영상을 볼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두 성전의 모습을 보여주신 말씀입니다.
열왕기상 8:27-30절의 말씀은 솔로몬 왕이 성전을 지어놓고 봉헌식을 하는 한 장면입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 왕의 유지를 따라 7년이나 걸려 성전을 아름답게 지었습니다.
그는 두로왕 히람에게 교섭을 하여 많은 공물을 주고 레바논의 백향목과 우수한 기술자들을 빌려다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모세의 율법이 담긴 법궤를 지성소에 모셔놓고 봉헌식을 올렸습니다.
솔로몬왕은 성전 건축의 경위를 길게 설명한 후, 그 백성이 죄를 지은 후 이 성전에서 기도하면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해 주소서 하는 중재 기도를 드린 내용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2:19-22절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져 가는 성전을 설명하신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세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몸을 비유로하여, 머리를 중심하여 모든 지체가 하나이듯, 주안에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하나라는 말씀이며,
둘째는, 시민을 비유로 하여, 아무런 참정권도 피선권도 없는 이방인이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권리를 가진 시민이 되었다는 말씀이며,
셋째는 건물을 비유로 하여, 머릿돌 위에 건물의 모든 구조가 연결되어 하나가 되듯,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완성되어 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 안에서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게 하고 그리스도안에서 연결하여 교회가 지어져 가는 모습을 통해 생명의 줄을 찾을 수 있는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 원리를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은,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장엄하게 지어졌습니다.
열왕기상 6:15절에 보면 "백향목 널판으로 전의 안벽 곧 마루와 천장까지 벽에 입히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전을 향한 최고의 가치, 최상의 의미를 부여한 솔로몬의 신앙의 표현입니다.
크램이란 세계적인 건축가는 "교회는 바깥보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아름다움과 정성과 거룩함이 깊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성전에는 하나님의 지성소가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불완전한 사람들만 보고 비난하며 두렵고 떨리는 손으로 입을 가려야 할 지성소는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8:11절에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했다"고 하였습니다. 성전에 여호와 하나님이 임재 하신 표현입니다.
여호와의 전은 오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 자체가 생명을 가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신 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향한 우리의 관심은 언제나 최고의, 최상의 관심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의 성실을 이유로 눈에 보이는 교회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교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를 증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향한 우리의 최고의 관심은 장엄한 교회요, 최상의 관심은 거룩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잘 새겨들으시기 바랍니다.
장엄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내 집은 좀 좁아도 교회는 넓어야 하고, 내 집은 좀 어두워도 교회를 밝아야 하고, 내 집은 좀 더워도 교회는 시원해야 하고, 내 집 물건은 B급이라도 교회의 물건은 A급이어야만 합니다.
거룩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말씀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순종할 때만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최상의 내 몸, 최상의 내 마음, 최상의 내 시간, 최상의 내 재물을 드리고도 아깝지 않은 내 교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생명의 선을 찾은 사람입니다.
둘째, 솔로몬은 성전에 여호와의 법궤를 옮겨 놓았습니다.
열왕기상 8장 6절에 보면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에 메어 들였으니 곧 내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하였습니다. 성전의 장엄함과 아름다움이 아무리 최고, 최상이라 할지라도 지성소에 법궤가 없으면 영혼 없는 몸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생명은 강단에 있습니다. 내가 최상의 교회를 가지고 있는 것이 생명선을 잡은 것 같이 나의 강단을 가진 교인은 생명선을 찾은 사람입니다.
흔히, 물을 갈아먹으면 배탈이 난다고 합니다. 내 강단 없이 이리 저리 다니며 얻어먹는 말씀은 신앙의 지식은 될 수 있어도 한 몸을 이루는데는 도움이 되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나 집에서나 직장에서 딴 소리를 잘 하는 이들은 대부분 말씀의 외식을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강단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언제나 강단 맨 앞자리에 앉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빠지는 횟수가 늘어가고 앉는 자리가 점점 뒤로 가는 것은 생명선에 이상이 생긴 증거입니다.
처음에는 맨 앞자리가 마음이 편한데 차츰 중간쯤이 편해지고 나중에는 뒷자리가 편해지면 위험 신호입니다.
머지 않아 교회 밖이 더 편해져 아예 교회 밖으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맨 뒤에 앉았던 마음이 중간으로, 중간에 앉았던 마음이 맨 앞에 앉아야 은혜가 되면, 이는 내 강단을 찾아 가는 것이요 생명의 줄을 잡은 것입니다.
셋째, 솔로몬은 새 성전에서 그 백성을 위해 중보 기도를 드렸습니다.
열왕기상 8:30절에 보면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하였습니다.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성도는 말씀을 전하는 목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목자와의 좋은 관계가 필요합니다.
목자와의 좋은 관계란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요, 생명줄을 잡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도 순종치 않고 생명줄을 잡지 않으면 목자와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고 주님과의 관계도 멀어지게 됩니다.
월드컵 이후 많은 지식인들은 국민들이 보여준 침여, 질서, 열정을 다각도에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이제는 리더쉽(Leadership) 보다는 팔로쉽(Followship)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우수한 한 사람의 지도력도 중요하지만 "훈련된 대중의 성숙한 따름"은 더 큰 역량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기에 자율이 있고 질서가 있고 오랜 여운이 남은 것입니다.
갈라디아 6:6절에 보면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했고
빌립보 4:17절에는 "내가 나의 유익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목자를 가진 사람은 생명선을 찾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생명줄을 잡은 사람들에게 지금도 영파를 듣게 하시고 보게 하십니다.
어느 연구기관에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쥐에게 먹이를 주어 키우는데 세 환경으로 나누었습니다. 1번쥐는 혼자 먹게 하였습니다. 2번쥐는 다섯 마리의 쥐와 함께 먹게 하였습니다. 3번쥐는 사람이 손에 들고 먹이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1번쥐는 600일을 살았고, 2번쥐는 700일을 살았는데, 3번쥐는 950일을 살았다고 합니다.
쥐의 뇌를 검사해 보니 1번쥐의 뇌가 가장 가벼웠고, 2번쥐는 1번 쥐보다 좀 더 무거웠는데, 3번 쥐는 뇌세포가 활발하게 발달해 매우 커져 있었다고 합니다.
쥐가 사람을 알거나 이해할 능력은 없으나 쥐의 지능을 초월한 어떤 사랑과 연결될 때 이 사랑이 생물학적으로 뇌하수체속에 성장 호르몬 인자를 자극하여 건강하고 오래 살도록 한 것입니다.
미물의 짐승도 사람이 사랑으로 돌볼 때 이런 큰 변화가 있었다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목자의 말씀으로 돌봄을 받을 때 얼마나 더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온 공간이 가득한 영파를 내 교회, 내 강단, 내 목자의 주파수를 통해 듣고 보아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어 강건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